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문득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발길을 옮겼다. 서울에서 당진으로!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곳. 소리의 세계에선 바로 이웃이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날,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에 소리를 보고 색다른 추억으로 새겼다.
소리를 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마음을 기울이면 소리가 보인다.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이 어느 순간 눈으로 확 들어오는 것처럼, 소리도 그렇게 마음으로 다가온다. 그림이 소리를 볼 수 있게 하는 중매쟁이가 된다.
소리를 보다
'소리를 보다(Seeing The Sound)'. 당진음악협회(지부장; 이재향 피아니스트)가 당진문예의전당에서 10월23일 저녁에 공연한 ‘사랑과 감사의 하모니 콘서트’의 제목이다. 소리를 보다! 소리를 어떻게 본다는 말인가. 호기심 발동이다. 당진문예의전당 홈페이지로 들어가 예매한다. 맨 앞에서 둘째 줄, 연주자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는 R석이 1만 원. 착한 가격에 감격한다.
무대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에 그림이 흐른다
들불이 흑백으로 번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장에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을 넘어 희망을 틔운다
파란 버드나무 잎새에 눈이 하얗게 쌓이며 혼돈이 절망의 터널을 지나 적요를 키운다
최후의 만찬장에 총소리가 울리고 나와 너와 우리가 불안해하는 사이 오아시스가 열린다
324개 그림이 12분2초 동안 흐르며 소리가 보인다
- 홍찬선, '버드나무에서 오아시스를 보다' 전문.
여느 음악회와 달랐다. 음악 대신 무대 뒤편 스크린에 그림이 흐르며 콘서트가 시작됐다. 정석희 화가의 ‘영상회화’다. ‘들불’ ‘버드나무’ ‘오아시스’ ‘적요’ 등 4개로 구성돼, 사이 사이에 음악이 연주됐다.
영상 회화는 수없이 많은 그림이 그려지고 지워지면서 만들어진다. ‘들불’은 45개 회화, ‘버드나무’는 46개, ‘오아시스’는 96개, ‘적요’는 137개의 회화가 이어진다. 그림이 흐르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세월이 보이고, 그 속에 숨어있던 소리가 살아나는 것이 보인다.
영상 회화는 마음을 깨우는 망치다. 음악을 들으려고 열었던 귀가 조금 당황하는 동안, 눈이 먼저 소리를 볼 준비를 하도록 한다. 이번 콘서트의 주제가 ‘소리를 보다’인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색소폰 클라리넷 비올라 첼로 바이올린 피아노와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등 19명의 음악인들이 다양한 음색의 음악을 선보인 것도 소리를 볼 수 있게 하는 구성이다.
그대여!
소리를 본 적이 있는지요?
소리를 본다는 것은 마음을 여는 일입니다.
마음을 여는 것은
눈에서 덕지덕지 낀 오징어껍질을 떼어내고
머리를 가득 채운 두 마리 개를 내쫓으며
탐욕 가득한 가슴을 터는 일입니다.
탐욕을 터니 바람이 보이고
두 마리 개를 내쫓으니 그림이 들리며
오징어껍질을 떼니 사람이 사랑이 됩니다
사람이 사랑이 되고
마음을 여니 소리가 보입니다.
오, 그대여!
- 홍찬선, '소리를 본다는 것' 전문.
'내 영혼 바람 되어' 말러의 비극을 보다
콘서트 뒷부분에 김효근 작곡가의 '내 영혼 바람 되어'를 테너 강태옥(피아노 반주, 주희정)이 불렀다. 이 곡은 학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영학 박사를 취득한 뒤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김효근 명예교수가 2000년대 초반, 연이은 부모님의 별세를 겪은 뒤 그 슬픔과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만든 곡이다.
가사는 인디언 사이에서 구전(口傳)되는 시 '천 개의 바람(A Thousand Winds)'을 각색해서 직접 지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추모합창으로 불리는 등, 추모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마오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는 천의 바람이 되어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한 가을 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용히 깨나면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마오 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
나는 천으 바람이 되어
찬란히 빛나는 눈빛 되어
곡식 영그는 햇빛 되어
하늘한 가을 비 되어
그대 아침 고요히 깨나면
새가 되어 날아올라
밤이 되면 저 하늘 별빛 되어
부드럽게 빛난다오
그곳에서 울지 마오 나 거기 없소
나 그곳에 잠들지 않았다오
그곳에서 슬퍼마오 나 거기 없소
그 자리에 잠든 게 아니라오
나 거기 없소 이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오
- 김효근, '내 영혼 바람 되어' 전문.
마지막으로 연주된 것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피아노 4중주 a단조’였다. 이 곡은 말러가 빈 음악원 1학년 때인 16세였던 1876년에 작곡한 것이다. 말러는 14남매 중 둘째였는데, 그 중 8명이 유아 때 사망했다고 한다.
한 살 터울의 남동생을 잃은 16세의 말러는 깊은 슬픔의 트라우마를 ‘피아노 4중주 a단조’ 로 승화시켰다. ‘빠르지 않게(nicht zu schnell)’라는 작곡가의 지시가 있고 p(여리게)로 피아노의 3화음이 잔잔하고 불안하게 시작되는데, 불안한 말러의 심장 소리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러의 피아노 4중주는 2018년 3월에 개봉된 뒤 2025년 7월에 재개봉된 영화 '셔터 아일랜드‘(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아크 러팔로, 벤 킹슬리)에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나치를 좋아하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가 유대인 작곡가인 말러의 피아노 4중주를 즐기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피아노 4중주(piano quartet)는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함께 연주하는 실내악이다. 이날 말러의 피아노 4중주는 이재향 피아니스트, 정정호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중 비올리스트, 조윤선 첼리스트가 연주했다.
12분여 연주되는 동안, 동생을 잃은 말러의 아픔이 소리로 보였다. 공연이 모두 끝나고 어둠을 뚫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가벼웠다. 소리를 들은 새로운 경험으로 10월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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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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