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37) 강화도 심은천자문서예관서 완당을 만나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37) 강화도 심은천자문서예관서 완당을 만나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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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천자문서예관에서
심은천자문서예관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인연은 참으로 묘하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어디서든 만난다. 강화도 심은천자문서예관의 심은(沁隱) 전정우(全正雨) 선생도 그렇다.

주역(周易)과 서경(書經)을 함께 공부하는 경연학당(庚衍學堂) 사제(師弟)가 날을 잡아 강화도로 갔다. 햇살 화창하고 구름 한 점 없는 아름다운 10월의 마지막 주 화요일이었다.

평일인데도 김포 통과하는 동안 길이 좀 막혔지만, 도반(道伴)들은 즐겁기만 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한강과 애기봉전망대 이정표와 문수산성을 보며 화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광개토대왕비문체로 쓴 천자문에서 말을 잃다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심은천자문서예관에 도착했다. 주소는 강화군 화점면 강화서로 861-17번지.

오른쪽 앞으로 진달래축제로 유명한 고려산(高麗山)이 있고 왼쪽은 봉천산이다. 뒤쪽은 별립산이 있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살기 좋은 곳. 고려산과 봉천산 사이에 가을걷이가 끝난 넓은 들판이 펼쳐있다. 옛날엔 바다였는데 메워 논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몽고가 침입했을 때, 강화도로 수도를 옮긴 뒤 시작된 간척사업이 그 뒤로도 계속 이어졌다.

강화도 면적이 302.6㎢로 넓어져, 남해도(301㎢)를 제치고 네 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1, 2, 3위는 제주도(1833㎢) 거제도(379㎢) 진도(375㎢)다.

심은 호고연경 대련 앞의 심은 선생
심은 호고연경 대련 앞의 심은(沁隱) 선생./사진=홍찬선

심은천자문서예관은 이곳에서 태어나 강후초등학교를 1회로 졸업한 심은(沁隱) 전정우(全正雨) 선생이 세운 곳이다. 강후초등학교는 1945년 6월, 하점공립국민학교 강후분교로 설립된 뒤 1961년 3월 독립학교로 승격됐으나, 학생이 줄어 2000년 3월 폐교됐다.

서른 살 때부터 붓을 잡고 천자문과 추사체를 써온 심은 선생은 강후초등학교를 임대해 천자문서예관을 세웠다. 강후초등학교 자리에 강화천문과학관이 세워지자, 500여m 떨어진 곳에 땅을 사서 3층 건물을 짓고 심은천자문서예관을 이전했다.

도착해서 멋진 건물을 볼 때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서예관’인 줄로 여겼다. 서예관 앞에 세워진 안내문에서 “2000년 9월23일에 설립된 심은천자문서예관으로 하점면 이강2리가 ‘천자문마을’로 명명됐고, 전예해행초 등 5체와 갑골문과 금문자 및 광개토대왕비문체와 추사체 등으로 쓴 천자문을 전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도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의 아름다운 서체로
천자문을 일필휘지로 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을
보는 것도 누구나 하는 일이 아니다
얽히고설킨 세사의 일을 잠시 놓고 
마음이 갈 때 몸도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라야 천자문에서 광개토대왕을 본다

때가 때를 만나 풍성한 가을걷이를 하듯
뜻과 뜻이 만나 문자향과 서권기를 누린다
고려산의 진달래가 방긋웃는 심은천자문서예관에서
참성단과 팔만대장경이 살아있는 심주(沁州) 강화도에서

- 홍찬선, ‘광대토대왕비문체로 쓴 천자문’ 전문.

심은 광개토대왕비문체 천자문
심은 선생의 광개토대왕비문체 천자문./사진=홍찬선

하지만 서예관에 들어가자마자 그런 생각은 선입견(先入見)과 편견(偏見)임이 드러났다. 선입견과 편견은 우리의 인식을 잘못되게 만드는 못된 ‘두 마리 개’였다. 3m 높이의 벽면을 가득 채운 각종 서체로 쓰인 천자문이 도반들의 함성을 자아냈다.

“전시된 것 외에 129서체 1150여 종의 천자문이 있다”는 심은 선생의 설명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심은(沁隱)은 전정우 선생의 아호(雅號)다. 강화도를 예전에 심주(沁州)와 심도(沁都)도 부른 것에서 ‘심’을 따고, 강화도에 은거한다는 뜻으로 ‘은’을 따서 심은이라고 지었단다.

169년 만에 완당(阮堂)을 만나다

심은 세한도
세한도(歲寒圖)./사진=홍찬선
심은 불이선란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사진=홍찬선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붓글씨의 최고봉이라는 뜻에서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작품이 벽에 가득 걸려 있었다. 세한도(歲寒圖)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물론 서울 삼성동에 있는 봉은사(奉恩寺)의 대웅전(大雄殿)과 판전(板殿) 글씨가 보였다.

완당의 붓글씨 철학이 담긴 “畫法有長江萬里 書藝如孤松一枝(화법유장강만리 서세여고송일지”라는 대련도 있다. “그림 그리는 법은 장강처럼 만리에 이르고 서예는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는 뜻이다.

또 완당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 “好古有時搜斷碑 硏經婁日罷吟詩(호고유시수단비 연경누일파음시)”라는 대련도 맞이해주었다. “옛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날 때마다 깨진 비석을 찾아다녔고, 경서를 연구하느라 며칠 동안 시 읊는 것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물론 완당이 직접 쓴 글씨가 아니라 완당의 글씨를 심은 선생이 추사체를 자신의 서법(書法)으로 해석해서 쓴 ‘심은체(沁隱體)’다. 심은 선생은 2년 전인 2023년 10월4일부터 10월17일까지 서울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추사 사후 167년 만에 만나다’전을 열었다. 이때 그는 완당 작품과 자신이 쓴 작품을 나란히 실어 도록을 출간했다. 웬만한 서예가도 추사와 직접 비교해 도록을 낸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예술가에게 도전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으며, 창의성 없는 자세야말로 어떤 분야의 예술가에게도 금기어이기에, 하고 싶은 그대로 길을 새롭게 내며 묵묵히 가고자 하는 마음을 다시금 곧추세워보는 계기”로 삼기 위해서였다.

심은 훈민정음서문
훈민정음서문./사진=홍찬선

강화도는 스며드는 섬
완당(阮堂)의 묵향(墨香)에 
눈과 귀가 홍복(洪福)을 누린다

심주(沁州)에서 태어나 
심도(沁都)에서 사는
심은(沁隱)의 지필묵(紙筆墨)으로
추사(秋史)가 되살아나고

서른 살에 붓을 잡고 오십여년 동안
벼루 열 개를 뚫고 붓 천 개가 몽당붓이 되도록
하루 열 시간 씩 운필(運筆)한 덕분으로

광개토대왕비문이 천자문으로 되살아오고
시간 날 때마다 옛 비석조각 찾아다닌 완당을
심은체의 세한도와 불이선란도와 판전과…
극랑정토 위 붉은 연꽃 미소로 만난다

- 홍찬선, ‘169년만에 완당을 만나다’ 전문.

‘추사순례’와 ‘추사기행1,2’를 쓴 임병목 선생은 심은 선생의 ‘추사전(秋史展’에 대한 축하글에서 “심은이 추사 글씨 임서전(臨書展)을 처음으로 도모한 것은, 사계(斯界) 제현(諸賢)들에게 칭찬받으려는 까닭이 아니며, 오직 추사체를 사해지내에 현양(顯揚)하려는 까닭”이라며 “추사학예통섭(秋史學藝統攝)의 경지가 면면히 이어져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또 ‘심은 추사전에 붙여(寄題沁隱秋史展)’이란 축하한시도 지었다.

乍涼風輒催霜辰(사량풍첩최상진)
秋展春卿慕念新(추전춘경모념신)
盡瀉胸中平素肄(진사흉중평소이)
不要賞美不求銀(불요상미불구은)

8월 바람이 홀연하게 서리 내리는 때를 재촉하는데
추사전시하는 심은의 그리워하는 마음 더욱 새로워라
가슴 속에 평소 연마한 것을 모조리 다 쏟아냄은
칭찬을 바라거나 재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네

- 임병목, ‘심은 추사전에 붙여(寄題沁隱秋史展)’ 전문.

심은 강화8경
‘강화팔경’ 시조./사진=홍찬선

심은천자문서예관 한 곳에 ‘강화팔경’ 시조가 전시돼 있다. 전등사 보문사 연미정 갑곳돈대 마니산 광성보 초지진 적석사 등 8수로 연시조다. 그중 ‘마니산’을 옮겨본다.

우뚝한 곳매에다 뚝심이 대단하오
참성단(塹城壇) 소사나무 벼락에도 꿈쩍않아
단군님 수염 잡으니 일곱 선녀 뾰로통

- ‘강화팔경’ 중 ‘마니산’ 전문.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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