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추석 연휴 때 김포에서 한가위를 풍성하게 즐겼다. 우선 문수산 자락에 있는 김포국제조각공원에서 도시생활에 지친 눈을 달랬다.
이곳은 조각작품을 통해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1998년에 조성됐다. 다니엘 뷔렌 등 세계적 조각가 14명과 한국의 작가 16명의 작품 30점을 감상할 수 있다.
북한 땅이 보이는 문수산휴양림에 있는 조각공원은 피톤치드를 담뿍 담은 향긋한 솔 내음을 맡으며 조각작품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예술과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참 좋은 공간이다. 남북한 평화통일의 시대를 이끌어가는 대한민국 평화문화1번지임을 느낀다.
숲속 오솔길
솔향기 물씬 풍기는 오솔길에서
3개의 눈을 만난다
가슴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의 눈,
해처럼 맑고 밝게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는 슬기의 눈,
있는 것을 그대로 보는 왼쪽 오른쪽 두 개의 눈,
심안(心眼)과 혜안(慧眼)과 육안(肉眼)으로
자유와 평화와 통일을 본다
최고급 하이힐 구찌 한 짝이 다른 한짝을 뜨겁게 기다리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물구나무 서서 끊긴 허리를 아파하고
끝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거울 바라보며 다잡고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이산가족의 그림자를 더듬으며
북녘 땅을 마주하는 문수산 자락,
솔내음 물씬 풍기는 오솔길에서
새소리와 바람결과 나무그늘이 하나로 어우러져
반드시 오고야 말, 그날의 어깨동무 어울림마당을 본다
- 홍찬선, ‘김포국제조각공원에서 3개의 눈을 만나다’ 전문.
‘3개의 눈’은 미국의 댄 그레이험(Dan Graham, 1942~)의 작품 ‘양분된 반사유리 트라이앵글’을 감상할 때 나온 말이다.
사방 6m 길이의 삼각 프레임은 남북한을 둘러싼 강대국의 3자 구도를 상징하며, 반원으로 나뉜 내부 중앙부는 서로 비추되 통할 수 없는 분단의 현실을 의미한다. 반사유리를 통해 한 하늘 아래 비치는 풍경은 하나지만 서로 통할 수 없는 분단된 현실이다.
강화유리로 만든 이 작품은 깨질 것 같으면서도 징그럽게 깨지지 않는 분단상황이지만, 정면에서 충격을 가하면 센 충격에도 끄덕하지 않아도 모서리를 가격하면 예초기에 튀긴 자그마한 돌멩이에도 깨지는 강화유리처럼, 분단도 어떤 계기가 있으면 순식간에 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분단을 이겨내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는 ‘어떤 계기’는 심안과 혜안과 육안의 눈으로 보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국제조각공원은 문수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문수산성이 있는 문수산은 강화도를 오가면서 몇 번이나 가려고 했던 곳이다. 하지만, 늘 일정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이번엔 아예 일정에 넣었다. 문수산성은 갑곶진과 함께 강화의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의 성이다.
1694년에 돌로 쌓았으며, 1812년에 수축(修築)했다. 둘레는 6.2㎞이며, 성내 면적은 28만8000㎡(약 8만8900평)이다.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강화도를 점령한 프랑스군이 바다를 건너 오자 문수산성을 지키던 조선군이 프랑스군 3명을 사살하고, 2명을 부상시켰다.
하지만 조선군이 무기의 열세로 버티지 못하고 퇴각한 뒤, 프랑스군은 문수산성의 남문과 성벽을 파괴하고 민가 30여호를 불사른 뒤 강화도로 돌아갔다. 문수산성은 1964년에 사적 139호로 지정됐고, 파괴되었던 북문과 남문, 그리고 문수산(376m) 정상에 있던 장대가 복원됐다.
문수산 정상에서 동아문(東亞門)을 지나 동북쪽 봉우리에 서면 염하(鹽河)라고 불리는 소금강 너머 강화도와 북한과 조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이 강화도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산성을 쌓은 이유를 금방 깨닫는다. 병자호란 때는 이곳을 지키던 산성이 없어, 청군이 강화도를 쉽게 공격했다.
긴 연휴 때문인지 토요일인데도 등산객이 별로 없어 한산하다. 내려올 때 김포에서 왔다는 부부를 만났다. 남편은 산에 자생하는 버섯을 채취한다며 봉지에 담긴 ‘황소비단그물버섯’을 보여준다. 소나무 아래에서 자란다고 해서 솔버섯으로 둘리는 이 버섯은 이름 그대로 비단그물처럼 예쁘다. ‘아름다운 버섯은 독을 품고 있다’고 하는데, 이 버섯은 먹을 수 있단다. 그 사람의 말을 믿고 황소비단그물버섯을 반 봉지 딴다.
솔버섯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황소비단그물버섯을 아세요?
예쁜 버섯일수록 독을 품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귀딱지를 떠올리며 모른다, 관심없다, 딴 데 가서 알아보라며 시큰둥하게 왼고개했다
쯧쯧, 좋은 마음으로 알려주려는데 지복을 지발로 차다니…
옆에서 지켜보던 김포 사신다는 분이 답답한 듯 거드셨다
그거 황금비단그물버섯이고 먹을 수 있어요! 고지혈증을 개선시키고 항암효과도 있으며, 식이섬유 비타민 철분 칼슘 아연 옆산 등 영양소가 많아, 면역력을 강화시키고 활성산소를 없애 피부 건강에 좋아 노화를 방지합니다. 끓는 물에 데치면 보라색으로 바뀌니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좋아요~
일필휘지의 설명에, 용기를 냈다. 문수산성 소나무 아래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황소비단그물버섯을 집으로 옮겼다. 막걸리와 곁들이니, 솔잎향을 가득 담은 솔버섯이 쫄깃쫄깃 혀에 안기며, 믿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속삭였다. 역시 이 세상에서 가장 야한 음식은 버섯이었다
산에 올라 소나무 아래를 헤집으며 황금비단그물버섯을 찾는 꿈을 꾸었다
- 홍찬선, ‘황소비단그물버섯이 말하다’ 전문.
북문으로 내려온 뒤, 북한 쪽이 궁금해 차를 달린다. 조금 달리니 마을이 끝나고 길 끝에 부대가 있다. 더는 갈 수 없다. 되돌아 나오며 아까 봐두었던 길옆의 농산물 좌판대에서 선다. 할머니가 고구마 무 가지 부추 꽈리고추 밤 쪽파 호박 배 등을 늘어놓고 판다. 다가가니 배 한 조각 건네며 먹어보라고 한다. 달콤하다. 이것저것 흥정한다. 한 무더기에 5000원 이내다. 몇 가지를 골라 3만원을 맞춘다. 문수산성 아래, 동막골에서 한가위 앞두고 만난 3만원의 행복이다.
삼만원으로 자동차 트렁크가 가득 찼다
팔뚝만한 무 4개가 싱싱한 무청을 달고 4000원
아기 장딴지처럼 통통한 밤고구마 5개가 5000원
졸이다가 정구지다가 솔이기도 한 부추 한다발이 5000원
뒷산에서 아침에 주웠을 탱탱한 알밤 한되가 3000원
오이보다 큰 보랏빛 가지가 한 무더기에 3000원
하얀 허벅지를 드러내고 파전을 유혹하는 쪽파 한 단이 4000원
매워 보이는데 새콤하다고 아양 떠는 꽈리고추 한 봉지가 5000원
3만원을 내니 살포시 안긴 3000원짜리 애호박이 1000원
김포 문수산성의 북문에서 북한 쪽이 궁금해 달려간 동네,
동막골에서 만난 좌판대에서 한가위 보름달처럼 너그러운
할머니의 풋풋한 미소에 지갑이 저절로 열리자
뜨거운 여름을 가을로 바꾼 농산물이 행복덩이로 거듭났다
- 홍찬선, ‘3만원의 행복’ 전문.
고려의 손돌과 조선의 조헌에게 나라사랑을 배운다
‘3만원의 행복’을 가슴에 품고 손돌의 묘로 향한다. 손돌(孫乭)은 고려 고종(高宗, 1192~1259) 때 뱃사공이다. 배를 모는 기술이 귀신 같다고 해서 주사(舟師)라고 불렸다.
몽고가 침입했을 때 고종이 강화도로 몽진을 떠났고, 배가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鹽河) 중에서도 물살이 거센 김포의 덕포진과 강화도의 광성보 사이를 지날 때, 뱃길이 앞의 산에 막힌 것처럼 보이고 물결은 거세져 배가 침몰할 것처럼 흔들려 모두 불안에 떨었다.
고종은 손돌이 자신을 해치기 위해 일부러 배를 이쪽으로 몰고 왔다고 여겨, 손돌을 참수(斬首)하라고 명령했다. 손돌은 처형 직전 뱃머리에 바가지를 띄우고, 바가지를 따라가라고 한 뒤 죽임을 당했다. 배가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한 뒤, 고종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덕포진에 묘를 쓰고 사당을 세워 공의 억울한 죽음을 위로했다. 그가 죽은 음력 10월20일에 제사도 지내주었다. 이곳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해서 손돌목으로 불렀다. 해마다 음력 10월20일에 찬바람이 부는 데 이를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윗 사람이 잘못 하면
죄 없는 아랫 사람이
시달리고 죽임까지 당한다
농사는 농사꾼에 맡기고
배몰이는 뱃사공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똑똑하고 올바른 사람을 믿어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헛것에 휘둘리고
교언영색과 부화뇌동에 휘말려
보이지 않는 것 너머의 진실을 깨닫지 못해
배몰이의 스승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 사람이 어처구니없게 죽은 지
800년이 지나는 동안 그 자취도 없어졌는데
그 사람의 억울함을 아는 사람이 있어
가까스로 묘를 찾고 그 뜻을 이어가고 있다
- 홍찬선, ‘주사(舟師) 손돌을 기리며’ 전문.
그 뒤 손돌 묘는 잊혔다. 조선 시대 포를 설치한 돈대(墩臺)가 있던 덕포진 포대도 일제 때 무참하게 파괴됐다. 이 부근에 살던 김기송 옹은 꿈에 손돌이 나타나 자신의 묘가 이 부근에 있다고 알려준 뒤, 6000평이나 되는 과수원을 판 돈으로 덕포진 포대와 손돌 묘를 복원하는데 진력했다.
그 덕분에 손돌의 묘가 멋지게 거듭났고, 덕포진 포대도 복원됐다. 참으로 좋은 뜻 가진 사람이 있어 역사는 새롭게 발전함을 알 수 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우저서원(牛渚書院)이다. 우저서원은 김포에서 태어난 중봉(重峯) 조헌(趙憲, 1544~1592)의 집터에, 그를 기리기 위해 위폐를 모신 곳이다. 1648년에 세워졌으며, 1675년 숙종 때 우저(牛渚)라는 사액(賜額)이 내려졌고,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절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중봉은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와 성혼(成渾, 1535~1598)의 문인이다. 우저서원 양쪽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김창근 시인은 '우저서원 느티나무'란 시조로 중봉의 꼿꼿한 나라사랑정신과 그 느티나무를 노래했다.
중봉산 밑 구두물 초가 집터 뒤꼍에
먼 옛날 수목 골라 기려 심은 그 뜻대로
그 누가 저 느티나무처럼 우림하도 사셨는가
가난을 길벗 삼고 서책을 윤도 삼아
선현들 말씀을 별빛인 듯 붙좇으며
또바기 험한 벼슬길도 올곧게 내걸으시던
여우재 어둠 속 같은 음험한 모략에도
비바람 몰아치고 역병 도는 유배길에도
푸르고 드토은 지조 결코 꺾지 않으시던
감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대 드리운 채
한강물 굽어보다 왜침을 예견하고
이 강토 지켜낼 방책 시름겨워 공글리시던
나라가 위태로우니 왜(倭) 사신의 목 베라고
도끼를 둘러맨 채 대궐 앞에 뛰쳐나가
이마를 주춧돌에 찧어 피 흘리며 포효하시던
그 충혼의 절의, 가득 서린 저 보호수는
한 목 숨 다 바쳐 왜적을 섬멸하려고
앞장서 떨쳐 일어서신 중봉, 바로 그 님의 모습
- 김창근, ‘우저서원 느티나무’ 전문.
중봉은 임진왜란(壬辰倭亂, 1592~1598)이 일어나기 전에, 왜군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상소를 자주 올렸다. 그는 도끼를 들고 가서 상소의 내용이 잘못됐으면 그 도끼로 자신의 목을 치라고 하며 올리는 지부상소(持斧上疏)로 유명했다.
실제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2년 5월, 충북 옥천(沃川)에서 의병 1600여명을 모아 의병장이 되었다. 관군 및 영규(靈圭, ?~1592) 대사가 이끄는 승병 1000여명과 함께 청주성을 탈환한 뒤, 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막기 위해 700명의 의병과 승병 800여명을 거느리고 남으로 향했다.
금산(錦山)에서 코바야카와 타카카케(小早川隆景, 1533~1597)이 지휘하는 1만5000명의 왜군과 싸우다 의,승병과 함께 모두 전사했다. 비록 전멸했지만 왜군의 호남 진격을 막아 호남곡창지대를 방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투가 끝난 지 4일 후, 조헌의 제자인 박정량과 전승업이 전사자 700명의 유골을 한 곳에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칠백의총(七百義塚)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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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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