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은 지식을 늘리려는 게 아니다. 역사의 현장을 다니면서 역사를 아는 것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살펴보고, 선조들이 살았던 삶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금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발품 들여 현장을 찾아가는 것은, 책에서 알 수 없는 흔적에서 옛날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어서다. 영등포역사(驛舍) 이쪽과 저쪽에서도 개발이란 미명(美名) 아래 나날이 지워지는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는 이유다.
영등포공원과 아파트단지로 바뀐 OB맥주 공장
영등포역 1번 출구로 나선다. 100여m 직진하면 영등포공원이 나온다. 공원배치도를 보고 원형광장 옆에 있는 담금솥을 찾아간다. 담금솥은 1933년에 구리로 제작된 지름 7m, 높이 4.5m의 큰 솥이다. 맥주를 만들 때 맥아(麥芽)와 호프와 전분과 양조용수를 배합해 끓인 뒤 발효시키는 핵심 설비다.
한 번에 500hℓ(헥타리터, 1hl=100ℓ)를 끓이던 솥이다. 한국 최초의 맥주공장이던 OB맥주가 1997년 경기도 이천(利川)으로 이전할 때까지, 이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1933년에 제작해 1996년까지 맥주 제조용으로 사용됐다”는 설명문이 새겨 있는 담금솥은 영등포공원의 대표적 상징물이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는 것을
영등포공원 원형광장 옆의 담금솥이 알려주었다
한때 맥아와 호프와 전분을 가슴에 품고
시원한 맥주를 콸 콸 콸 쏟아내던 열정도
여름이 지나면 차가운 냉정으로 바뀐다는 것을
자신을 살갑게 사랑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셋…, 더 나은 세상으로 떠나자
환갑이 넘은 커다란 담금솥도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물건이든
때에 맞춰 바뀌어야
젖은 낙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간 저녁노을을 받아 든
담금솥이 염화미소로 말해주었다
- 홍찬선, 'OB맥주 담금솥' 전문.
담금솥을 지나 오른쪽으로 조금 돌자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안내판이 반갑게 맞이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맥아더 사령관 한강방어선 시찰지’라고 쓰여 있다.
“1950년 6월29일 수원비행장에 도착한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Douglas MacArthur, 1880~1964)는 전쟁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이어 전선을 직접 확인하기로 하고, 시흥을 거쳐 한강전선을 마주한 영등포 동양맥주공장(현 영등포공원) 옆 언덕으로 이동하여 전황을 관찰하였다. 이때 언덕의 진지를 방어하던 한 병사가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고 말해 맥아더를 크게 감동시켰다. 이날 맥아더의 전선 시찰은 미군의 6.25전쟁 참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역사는 우연에 의해 필연이 된다. 그때 맥아더 사령관을 만났던 병사가 용감하게 “상관이 철수 명령을 내릴 때까지 지키겠다”고 말하지 않고, 공포에 질린 얼굴로 ‘여기서 개죽음 당할 수 없다’며 비굴하게 대답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정답 없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새김질하며, 뒤로 돌아 영등포문화원 쪽으로 걷는다.
‘공원에 시비 하나 쯤은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헛된 것은 아니었다. 문화원 앞에 이성희(李誠嬉) 시인의 '영원한 삶의 자리' 시비가 있다. 반가웠다.
오천년의 문화
겨레의 얼 속에
맥맥히 살아 역사하는
뜨거운 심장 영등포여
목련화 눈부신 새벽 봄부터
청둥오리 밤섬 찾는 늦겨울 이르도록
은행나무 억척스런 생명력으로
우리의 꿈과 현실 가득 실은
소금배가 큰 가람 드나들던
영원한 삶의 자리
도도히 흐르는 한강
그 젖줄 이어 자라난 너와 내가
서로 고여주며 들무새 하며
우리의 문화 꽃향기
온 누리에 수 놓으리
민족의 광장 가로질러
나래마다 금빛 희망 번득이며
하늘 뜻 우러러 합창하며
번영의 무한시공 솟아 오르리
- 이성희, '영원한 삶의 자리' 전문.
경성방직 사무동과 문래동 집창촌의 변신
왔던 길로 돌아 나와 영등포역 앞 지하도를 건넌다. 요즘 영등포 랜드마크로 유명한 타임스퀘어로 간다. 이곳은 1930년대 경성방직이 있던 곳이다. 경성방직은 1919년 10월5일, 자본금 100만원으로 설립됐다. 최초 납입자본금은 25만원이었고, 사장은 박영효(朴泳孝, 1861~1939), 주주는 김성수(金性洙, 1891~1955)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 자산가들이었다.
1920년 3월, 영등포에 공장부지 5000평을 구입해 본사 사옥과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1923년 1월, 공장이 완공됐고 4월에 최초 광목 제품이 생산됐다. 1933년 공장이 증축됐고 자본금 100만원도 완납됐다. 1935년에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金秊洙, 1896~1979)가 2대 사장으로 취임했고 이듬해 현재 남아있는 사무동이 건립됐다.
현대문명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타임스퀘어’ 앞에 맹장처럼 붙어있는 ‘경성방직 사무동’은 1936년에 건립된 이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역사적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에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는 카페 및 베이커리 시설이 들어섰고 전시공간도 있어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경성방직 사무동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대로변에 색다른 풍경을 만난다. 2층으로 된 건물이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1층은 상품을 진열하는 쇼윈도처럼 보이고, 2층엔 에어컨 실외기가 달린 곳으로 보아 살림집 같다. 소문으로만 듣던 영등포역 앞 집창촌이다.
한동안 흥청거렸을 이곳도 세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모양이다. 성매매금지법이 시행되고, 주변의 공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영향을 받는 듯, 해거름인데도 모두 불이 꺼져 있다.
쓸쓸한 가슴을 달래며 신도림역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1966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수정여관을 찾아서다. 수정여관은 환갑 나이에도 여전히 영업을 한다. 경복궁 옆 보안여관과 함께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이다.
영등포역 앞 타임스퀘어는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별유천지다
21세기 최덤단 유행을 뽐내는
고급 백화점 앞에 90살 경성방직 사무동이
맹장처럼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90살 청춘을 주장한다
그 앞을 지나
대선제분 옛 영등포공장 쪽으로 걸으면
도로 옆에 불꺼진 쇼윈도 건물이 어색하게 맞이한다
공장과 기차역이 있으면
밥집과 술집과 색시집은 으레 있는 것,
한때 흥청거렸을 거리는 찬물에 뭐 줄 듯
세월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는데
문래동을 가득 채웠던 공장들이 떠나고
문래창작촌이 더부살이로 엉거주춤 자리잡은 뒤
환갑을 앞둔 수정여관이
서울 최고 어르신으로 에헴 하며 짐짓 의젓을 뽐낸다
- 홍찬선, '타임스퀘어에서 수정여관까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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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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