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목이 칼칼했다. 약간 열도 잡혔다. 해마다 찾아오는 불청객인 감기몸살 조짐이다. 서둘러 긴팔옷을 입고 이불도 두꺼운 것으로 바꾸었다. 해열제도 한 알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개운하지 않았다. 오후에 가기로 한 맨발걷기에 갈까 말까 고민이 생겼다. 결단을 내렸다. 몸 상태가 좀 좋지 않지만, 감기몸살에 질 수 없었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보즉생와즉사(步則生臥則死)’를 주문처럼 외우며 문을 나섰다.
10월 11일 토요일 오후 2시30분. 서울시 강남구 일원동 732번지에 있는 한솔근린공원에 도착했다. 지하철 3호선 5번 출구로 나와 한솔아파트까지 직진한 뒤 왼쪽(대모산 쪽)으로 돌면 나온다. 어린이놀이터를 지나 농구장이 맨발걷기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길고도 길었던 개천절-한가위-한글날 연휴 막바지였는데도, 하나 둘 모여든 사람이 금세 50여명으로 불어났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모래밭에서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을 부르며 가볍게 몸을 푼다. 오른쪽으로 두 발자국, 왼쪽으로 두 발자국, 뒤쪽으로 두 발자국, 앞으로 두 발자국 떼면서 왼쪽으로 90도 도는 동작을 되풀이한다.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몇 번 하니 몸이 알아서 먼저 움직인다.
막혔던 길이 터진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가는 길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길
두꺼운 신발에 막혀 고린내 나던
죽음이 새 길 따라 살아난다
앞굼치로 걸으면 얼굴이 밝아지고
가운데로 걸으면 오장육부가 살아나고
뒷굼치로 걸으면 아랫도리가 부풀어오른다
하늘과 땅이 발바닥에서 사귀어
잊었던 어린이 마음이 솔솔솔 피어난다
- 홍찬선, '맨발걷기' 전문.
사람이 다 모이자 박창동(1952~)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이 앞에 섰다. 맨발 걷기는 지압(地壓)과 접지(接地)와 족궁(足弓, arch)형성 등 3가지 효과가 있다고 말문을 연다.
발바닥은 우리 몸의 축소판이며, 앞꿈치는 목 위를, 뒤꿈치는 허리 아래를, 족궁 부근의 중간은 가슴 속의 오장육부와 연결돼 있다. 앞꿈치로 걸으면 머리 아픈 게 사라지고 눈이 밝아지며 이명과 비염 등도 없어진다. 얼굴 혈색이 발그스름하게 건강해진다. 가운데로 걸으면 오장육부가 활성화돼 숙변이 쑥 빠지고, 뒤꿈치로 걷는 효과는 걸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박동창 회장은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KB금융 최고전략책임자(CSO)를 역임한 금융전문가다. 은퇴한 뒤 2006년에 '맨발로 걷는 즐거움'을 출간하고, 2016년부터 대모산에서 ‘맨발걷기숲길힐링스쿨’을 운영해오고 있다. '맨발걷기의 기적' 등 맨발걷기 효과를 널리 알리는 책을 출간하고 있다.
맨발 걷기의 효과에 관한 박 회장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함께 참여한 분이 옆구리를 찌르며 손가락으로 숲을 가리킨다. 숲의 풀 사이에서 뭔가가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고라니가 풀을 뜯고 있다.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다. 암 수 한 쌍이든가, 어미와 새끼 같다.
고라니는 사슴과의 노루의 일종으로 몸통의 크기가 110㎝정도로 작다. 겨울에 교미하고 봄에 새끼를 낳는다. 고라니 두 마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가 지금 퍽퍽한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한 발만 숲으로 다가가면 생명이 용솟음치는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맨발걷기가 좋다는 것을
신발 신어본 적이 없는
고라니가 빙그레 알려준다
한솔공원 옆 숲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으며
어서 신발을 벗고
우리와 함께 걷자고 눈짓한다
삵과 사람과 멧돼지를
조심해야 하는 운명으로
늘 겁 가득한 눈으로 사주경계에 나서지만
맨발로 걷는 사람의 마음을 믿기에
오늘은 넉넉한 눈으로 말을 건넨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고
밤과 도토리 떨어지는 노래 들으며 즐겁게 걸어보라고
- 홍찬선, '고라니' 전문.
고라니의 말을 듣고 걷기 시작한다. 유아숲체험교실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대모산 정상을 향해 걷는다. 늘 수서역 6번 출구나 구룡마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 대모산을, 오늘은 새롭게 걷는다. 새로움은 새로움을 얻는다. 아침까지 내린 비로 축축해진 흙길을 걷는 새로움, 발가락 사이로 흙탕물이 튀어 오르는 오래된 추억의 새로움, 아기 엄지발가락 만한 알밤이 떨어져 머리를 때리는 새로운 경험, 비탈길을 오른 뒤 넓은 쉼터에 세워진 박정진 시인의 시 '대모산'이 새겨진 시판(詩板)의 반가움이 주는 새로움…
1.
대모산 꽃피면 내 마음 꽃피네
대모산 눈 나리면 내 마음 눈 나리네
내 아침음 너를 오르는 일
내 저녁은 너를 꿈꾸는 일
너와 더불어 늙어 가면
하나도 슬프지 않네
벗이여! 풀 한 포기라도 밟지 마소
벗이여! 꽃 한 송이라도 꺾지 마소
그대로 우리 아히들에게 물려주어
날마다 오르고 또 오르세
이보다 더한 유산 없으리
이보다 더한 보람 없으리
큰돈보다도
큰집보다도
우리 삶 온통 감싸주며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평평히 누워있는 저 어머니!
천년만년 함께 하세
여기 노래하는 사람
여기 기도하는 사람
약수 길러 오는 사람
말없이 산등성이 오르는 사람
언제난 꽃향기 새소리로
우리 영혼 씻어주네
금강산아, 부럽지 않다
지리산아, 부럽지 않다
일용할 양식처럼 우리 옆에 늘 있는
적덩하게 아름답고 적당하게 살찌고
적당한 거리에 있는 그대는
알토랑 아낙 같은 산
2.
대모산 가슴은 울 어머니 가슴
대모산 계곡은 울 어머니 계곡
물이란 물 모두 약수로 변해
무진장 흘러내리고
주말이면 시장서는 것 같은 산
옛약수터, 임록천, 옥수천
봄이면 진달래 붉어 설레고
산수유, 개나리, 은방울꽃
뻐꾸기, 딱따구리, 산까치
아키시아 향기 진동할 땐 옛 님을 그리고
밤꽃 향기 가득 찰 땐 길 떠난 낭군 그리네
한여름 짙푸른 그날 동네아낙들 낭랑한 목소리
가을이면 머리 위에 투닥투닥 떨어지는 밤송이
청설모와 다투며 알밤 줍는 아히들
단풍 사이로 불국사 염불소리 애잔할 즈음이면
어느 덧 골짜기마다 백석이 빛나네
빛나는 하얀 등줄기 가쁜 숨으로 오르면
모든 욕망과 원한과 삶의 찌꺼기 저절로 토해지네
손 내밀면 언제나 가까이서 손 잡아주고
하릴없이 오르면 이내 말동무되는 넌
우리의 수호천사
전날 술로 못다 달랜 시름을 마저 하게 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넌
보약 같은 산
눈감고도 갈 수 있는 산
눈감고도 훤히 볼 수 있는 산
언제나 옆에 있기에 무덤덤할 때도 있지만
있을 건 다 있고
볼 건 다 있다네
그리고 책 읽는 사람도 있다네
- 박정진, '대모산' 전문.
내려오는 길에 오를 때는 보지 못했던 ‘대모산 숲속야생화원’이 보였다. 그곳은 맨발로 걷기엔 좀 거칠다. 신발을 신고 가본다. 이곳은 사람들이 산자락을 밭으로 일궈 상추와 고추와 가치와 무와 배추 등을 가꾸던 곳이었다. 훼손된 숲을 되살리려 경작지를 사들여 야행화원으로 꾸몄다. 기존에 있던 지형을 이용해 돌담 사이로 여러 들꽃이 계절에 따라 피도록 만들었다.
봄에는 노루귀, 여름에는 히어리, 가을에는 구절초가 제격이다. 가을이 시작된 지 제법 돼서 그런지 야생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털부처꽃과 꽃향유와 억새꽃이 끝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수북하게 떨어진 은행알도 가을 보내기가 서운해서 울었는지, 얼굴이 누렇게 부어 있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에는 앞다퉈 줍던 은행알이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맨발걷기로 챙긴 몸과 마음의 건강으로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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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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