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오를 때마다 맛이 다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가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맞이한다. 혼자일 때와 벗과 함께 걸을 때의 숨결도 다르다. 한두 번 올랐다고 북한산에 다녀왔다고 하는 건 겸손을 모르는 것이다. 의상능선의 불끈불끈 솟은 속살을 맛보지 않고 삼각산을 올랐다고 하는 건, 하나만 알고 둘 셋은 모르는 것이다.
의상능선의 연인바위와 오누이바위
북한산 의상능선은 북한산성탐방센터에서 의상봉-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나한봉-대남문까지 4.9㎞ 이어진다. 의상능선 왼쪽으로는 원효봉과 노적봉을 거쳐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족두리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이 이어지는 비봉능선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경치가 좋은데 가파른 바위 오르막길을 밧줄 잡고 올라야 하는 어려움으로 잘 가지 않는 길이다. 여름에는 소나기 땀으로 힘들고, 겨울엔 바위가 꽁꽁 얼어붙어 미끄럽고 칼바람까지 몰아쳐 더욱 힘들다. 진달래가 피는 봄과 단풍이 예쁘게 드는 가을에는, 느긋한 진양조로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오르는 맛이 일품이다.
의상능선을 오르는 첫걸음은 가볍다. 여느 뒷산 산책길과 비슷하다. 하지만 바위가 나타나고 밧줄을 타고 오르기 시작하면서 모습을 확 바꾼다. 그래도 즐겁다. 숨이 차면 되돌아서서 은평한옥마을과 덕양산 너머 서해바다와 일산의 고층빌딩과 저 멀리 송악산까지 바라보는 맛이 멋있다.
첫 번째 ‘딸각오르막’을 오르니 넓은 바위에 사뿐히 올라앉은 바위가 어서 오라고 인사한다. 돌아서서 앉아 숨을 고르며 보니 정다운 연인처럼 보인다. 오른쪽 바위가 입을 내밀고 왼쪽 바위의 귀에 대고 사랑을 속삭이자 여인처럼 보이는 바위가 부끄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힌다. 즉석에서 ‘연인바위’라고 이름을 붙여 본다.
연인바위의 전송을 받으며 다시 오른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인데도 땀이 흐른다. 그만큼 경사가 가파르다. 의상봉(502m) 정상을 바로 앞두고 정상보다 더 정상 같은 너럭바위에 앉는다. 백운대를 뒤에 놓고 사진을 찍은 뒤, 아로니아 막걸리 한 잔을 마신다. 삼각산 산신령에게 먼저 고수레를 하고, 아름다운 북한산을 가슴에 품고 맑은 공기를 들여 마시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의상봉 정상을 내려오면서 왼쪽으로 보이는 국녕사의 엄청나게 큰 와불(臥佛)을 지나친다. 무너진 성벽을 따라 걷다가 용출봉을 향해 걷는다. 막아서는 오르막을 오르니 조그만 바위가 큰 바위를 향해 놓여 있는 바위가 눈에 띈다. 웃는 얼굴로 다가서는 누이에게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바위벽에 새겨놓은 오빠의 마음이 느껴져, ‘오누이바위’라고 불러본다.
삼각산 의상능선은 거울이다
꼭꼭 숨기고자 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해 겨울,
잔뜩 찌푸린 마음으로 올랐을 땐 하얀 눈빛으로
그해 여름,
시름 안고 발 디뎠을 땐 소나기 땀으로
그해 가을,
즐거운 가슴으로 내디딜 땐 고려청자 빛으로
의상능선을 품은 북한산은 표정이다
가을을 아쉬워하는 골바람이
파아란 하늘에 바알간 단풍을 건넨다
원효와 의상이 노적가리 쌓는 겨루기 하는 사이
아로니아 막걸리 고수레로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 되고
미르가 살다 하늘로 오른 봉우리를 사뿐, 사뿐 뛰어
증취봉에서 찐 시루떡을 나한 문수에게 공양하니
백운과 인수와 만경이 두 손 내밀며 활짝 웃는다
- 홍찬선, '의상능선을 오르며' 전문.
의상능선의 백미 용출-용혈-증취봉
‘오누이바위’까지가 의상능선의 맛보기라면 이제부터가 백미(白眉)다. 용출봉(龍出峰, 571m)-용혈봉(龍穴峰, 581m)-증취봉(甑炊峰, 593m)을 잇는 삼연봉(三連峯) 구간이 의상능선을 타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오르내림이 심하고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 나아갈 수 있다. 그래도 숨이 차지는 않는다. 네 발을 다 사용하다보니 속도가 나지 않는 탓이다.
용출봉과 용혈봉 사이에 보는 사람과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른 바위가 불끈 솟아 있다. 횃불처럼 보이기도 하고, 남근(男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용혈봉으로 올라가는 중간에 되돌아보니 조그만 배처럼 보인다. 앞부분은 뱃머리고, 뒷부분 평평한 곳은 사람이 타고 느긋하게 유람하는 곳이다. 의상능선을 오르다 힘든 사람은 이 배를 타고 느긋하게 쉬다가 가라고, 북한산 산신령이 마련해 놓았나 보다.
여러 모습의 바위를 보면서 조물주는 참으로 자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산에 오르며 힘들 때, 이런 저런 바위를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땀을 식히며 다시 오를 힘을 내라는 뜻이 익힌다. 그런 생각을 하며 봉우리에 오르니, 철모 모양을 한 커다란 바위가 맞이한다.
정상석이 보이지 않아, 바위 뒤로 가니 증취봉(甑炊峰, 593m)라고 쓴 정상석이 보인다. ‘甑炊’라는 글자를 보니, 방금 전까지 철모로 보였던 바위가 정말 시루처럼 보인다. 증(甑)이 떡을 찌는 ‘시루’이기 때문이다. 북한산 산신령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증취봉에서 떡을 많이 쪄서 삼각산 봉우리와 나무와 풀과 새와 물고기와 나눠 먹는 모양이다.
증취봉에서 보이지 않는 떡을 잔뜩 먹고 다시 발길을 옮긴다. 다음 봉우리는 나월봉(651m)인데, 등산하기엔 너무 위험해 길을 막아놓아서 우회하고, 나한봉(羅漢峰, 681m)에 오른다. 나한봉에 옛날에 있던 치성(雉城)을 말끔하게 복원해 놓았다. 문수봉(文殊峯, 727m)을 배경으로 사진 찍고 대남문을 향해 걷는다.
비탈길을 올라 대남문 쪽이 아닌 왼쪽으로 조금 가면, 백운대(白雲臺, 835m)와 인수봉(人壽峰, 811m)과 만경대(萬鏡臺, 800m)는 물론 방금 지나온 의상능선의 여러 봉우리와 멀리 도봉산 자운봉(紫雲峰, 740m)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비밀의 전망대’가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늦가을 오후, 환한 태양이 조명을 비추듯 밝게 빛나는 북한산의 절경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통천문 지나, 비봉은 또 숙제로 남기다
대남문을 지나 구기동으로 내려가려다, 중간에 오른쪽 계곡으로 길을 잡아 승가봉으로 향한다. 문수봉을 오르기에는 시간이 늦을 듯하여 우회로를 선택해 비봉능선으로 간다. 비봉능선은 불광역에서 족두리봉과 비봉을 거쳐 사모바위-통천문-승가봉-문수봉으로 오른 적은 여러 번 있으나, 문수봉 쪽에서 내려가는 것은 처음인 듯하다. 오를 때와 내려갈 때의 다른 맛을 느끼며 걷는다.
승가봉에서 문수봉을 바라보니 ‘똥바위’가 아쉽다고 인사한다. 거대한 바위덩어리인 문수봉에 앉혀있는 모습이 잘 소화된 이쁜 똥무더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귀여운 이름을 얻었다.
똥바위를 다음에 보기로 손가락 걸고, 통천문(通天門)을 지나간다. 바위와 바위 사이에 바위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고, 그 아래로 길이 있다. 아래에서 위로 지나갈 때 모습이 하늘로 가는 문처럼 보인다고 해서 ‘통천문’이란 이름을 얻었다. 필자는 충남 천안시에 있는 천안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천고26회 동창들의 등산모임이 ‘통천회’다. 바로 이 통천문에서 따온 것이다.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땅속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바위를 깨워
위로 위로 더 위로 솟구치게 한 뒤
거침없는 세월로 버릴 것 모두 깎아내
껍데기는 버리고 알맹이만 남겨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가듯 빠듯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찰라를 뚫어 영원히 이어지는 길이다
- 홍찬선, '북한산 통천문' 전문.
이제 승가봉과 사모바위를 지나 비봉을 남겨놓았다. 비봉(碑峰, 560m)은 신라의 진흥왕(眞興王, 534~576)이 한강유역을 정복하고 이곳에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비는 무학대사비라고 전해졌으나,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고증으로 진흥왕순수비로 확정됐고, 국보3호로 지정됐다. 원본은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이곳에는 모조품이 세워져 있다.
비봉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코뿔소를 닮은 코뿔소바위를 돌아서 비봉 바로 앞까지 갔지만, 그곳부터는 매우 위험하다. 40년 전 대학생 때 진흥왕순수비를 보자며 이곳까지 왔다가 포기했고, 10년마다 도전했지만 그때마다 돌아서야 했다. 불쑥 튀어나온 바윗길을 오르기도 겁나지만, 내려올 때는 두 다리가 후들거려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이번에는 한돌(還甲)도 지났으니,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코뿔소바위를 지났지만…. 다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꼿꼿이 서서 오르내리는데, 다른 사람이 그렇다고 해서 나도 할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삼 세 번은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막바지에 단 하나 남은 외다리 비탈길 앞에서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두려워
코뿔소의 비웃음과 완당(阮堂)의 쯧쯧 소리를 견디며
또 돌아서고 말았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자며
큰일 앞두고 일 벌이지 말자며
진품이면 가겠는데 모조품이라고 핑계대면서
돌아서는 뒤꽁무니를 덕양산 넘어온 해가 아프게 들이박았다
- 홍찬선, '비봉, 또 숙제로 남기다' 전문.
시계바늘이 4시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향로봉과 족두리봉을 거쳐 불광역으로 내려가기에는 늦었다. 발길을 돌려 승가사 쪽으로 내려왔다. 계곡은 마지막 단풍이 물들었고, 땅속에 스며든 빗물이 퐁퐁 솟아나며 계곡을 적셨다. 오랜만에 맛본 의상-비봉능선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비봉을 오르지 못한 아쉬움은 한동안 가슴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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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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