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8) 관악산 사당능선 맛있게 오르는 법, 통천회에서 알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28) 관악산 사당능선 맛있게 오르는 법, 통천회에서 알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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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통천문에서
관악산 통천문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관악산은 오를 때마다 맛이 다르다. 봄에는 진달래와 솔방울 향기를 맡으며 올라서 좋고, 여름에는 팔봉능선에서 흘리는 소나기땀 내음이 사랑스럽다. 가을에는 울긋불긋 단풍 사이로 도토리 줍기에 바쁜 다람쥐와 얘기하는 게 즐겁고, 겨울엔 하얗게 펼쳐지는 설경에 엄마 품인 듯 푹 빠지는 게 행복하다. 그중에서 관악산을 가장 맛있게 오르는 것은 새벽까지 비가 내린 날, 안개를 뚫고 사당능선으로 연주대를 오른 뒤 서울대 쪽 계곡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통천회, 사당능선 통천문에서 하늘을 보다

9월 20일 토요일.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은 통천회의 정기산행일이다. 통천회(通天會)는 충남 천안에 있는 천안고의 26회 졸업생 등산모임. 북한산 통천바위를 오른 뒤에 통천회라는 이름을 지었다. 오늘은 사당능선으로 관악산 정상에 오른다. 아침 9시 지하철 2, 4호선 사당역 4번 출구가 만남의 장소다. 금요일 밤부터 내린 비가 아침 8시쯤까지 이어진 뒤 가랑비가 보슬보슬 날린다.

등산하기 딱 좋은 날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일행이 5명이었다는 것. 추석(10월6일)을 3주 앞둔 토요일이라 벌초하러 간 벗들이 많은 탓이다. 그래도 통천회는 산에 오른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거나 통천회의 산행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한 달에 한 번 
고등학교 벗들이 함께
산에 오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것 저것 잴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막걸리 잔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때로는 청계산과 대모산을 가볍게
때로는 북한산 12성문과 지리산 종주와 
설악산 공룡능선과 눈 덮힌 덕유산을 무겁게

고저장단의 가락을 맞추며 건강을 확인하고
통천문을 지나며 통천회를 생각하는 것은
환갑을 넘긴 초보 노인들에게 삶의 보람이다

- 홍찬선, '통천회' 전문.

관악산에서 내려다본 봉천동 한강과 여의도
관악산에서 내려다본 봉천동 한강과 여의도./사진=홍찬선 

기분 좋게 볼을 스치는 보슬비를 맞으며 걷는다. 남현동 예술인마을 왼쪽으로 돌아 관음사 옆으로 난 비탈길을 오른다. 무더위가 끝나고 기온도 23℃로 떨어졌지만, 습도가 높아서인지 금세 땀방울이 솟는다. 비 온 뒤 자욱한 안개 사이로 봉천동과 여의도와 한강이 어슴프레 보인다. 맑은 날 보는 모습과 달리, 다른 곳은 보이지 않는데 그곳만 햇살이 비추는 모습이 삼삼하다.

마당바위에서 중간 쉼을 한다. 막걸리에 아로니아와인을 넣어 연분홍 건강주 한 잔에 개두릅(엄나무 순)을 안주로 걸치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마당바위 밑에 둥지를 튼 길냥이도 먹을 것을 달라는 듯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막걸리와 풀이라서 줄 게 없는 것이 아쉽다.

마당바위에서 조금 더 땀을 빼면 통천문에 이른다. 바위가 기둥이 되고 지붕이 되어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든 모습이 마치 하늘과 통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통천문으로 부른다. 통천회 멤버가 통천문을 지나니 인증샷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관악산 촛대바위
관악산 촛대바위./사진=홍찬선 

이제 숨이 거칠어지고 말이 줄어든다. 오로지 발밑만 바라보며 한발 한발 내디딜 뿐이다. 사당역에서 연주대까지 이어지는 사당능선은 관악산 등산로 가운데 가장 길고 가장 힘이 드는 코스다. 나를 보고 나를 알아 가는 산행으로 제격이다. 그렇게 나를 잊고 오르다가 내리막으로 접어들 때 멋진 바위가 환하게 인사한다. 사람들은 촛대바위라고 부르는데, 내 눈엔 다르게 보인다. 문득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대화가 떠오른다.

이성계: 대사 얼굴이 꼭 돼지처럼 생겼소이다.

무학대사: 전하는 꼭 부처님 같으십니다.

이성계: 어허~, 그렇게 아부하지 말고 진짜 무엇으로 보이는지 말해 보시오.

무학대사: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이는 법이지요.

이성계: 과연 대사요. 내가 졌소이다…

지게꾼 아저씨의 근육질 장딴지에서 삶을 느끼다

관악산 정상석에서./사진=홍찬선 

등산객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아침까지 비 온 날 산행의 좋은 점 가운데 하나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관악산 정상에 오르면 사람이 많아 정상석에서 사진 찍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오늘은 사람이 적어 줄을 거의 서지 않고서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박지용 통천회 회장과 하헌우 총무, 그리고 김동진 전 회장의 행복한 미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안개 속에서 활짝 피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서울대 쪽으로 내려오기 직전 헬기장이 있다. 그곳에서 ‘산상 오찬’을 즐긴다. 통천회 ○○ 준회원이 정성껏 준비해온 순대와 내장이 순간 발열재 덕분에 김이 모락모락 오른다. 성능 좋은 보온병의 뜨거운 물로 컵라면도 맛나게 익는다. 앉은뱅이 술 한산소곡주와 아로니아와인막걸리 잔이 부딪친다. 안개가 걷히면서 과천 너머 청계산의 매봉-망경대-이수봉-국사봉이 한눈에 펼쳐진다. 등산의 즐거움 중 하나는 바로 ‘산상 오찬’에 밑에서는 볼 수 없는 풍광을 반찬 삼아 만끽하는 것이다.

관악산 지게꾼
관악산 지게꾼./사진=홍찬선 

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내려오는 계단 끝에서 자신보다 키가 큰 짐을 실은 지게를 지고 오르는 지게꾼을 만난다. 관악산 정상석 앞에서 막걸리와 맥주와 아이스께끼와 생수와 음료수 등을 파는 사람에게 가져다주는 짐이다. 맨몸으로 오르기도 쉽지 않은 비탈길을 아슬아슬 열 발짝 옮기고선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게를 세운다. 참으로 고달픈 삶으로 느껴진다. 등산객이 지게꾼이 알아들을 수 없게 속삭인다.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리고 다리 후들거리며 힘들게 하는 것보다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나?”

그럴지도 모른다. 오로지 돈 버는 것만 생각한다면 무거운 지게 짐을 지고 가파른 관악산을 오르는 것보다 에어컨 빵빵 나오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게 짐 아저씨’는 그런 사실을 몰라서 지게를 지고 있을까…

관악산 무릉도원폭포
관악산 무릉도원 폭포./사진=홍찬선 

지게 짐이 화두로 자리 잡는다. 그리고 10분쯤 내려오니 관악산에서 평소에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관악산(冠岳山)은 이름 그대로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라서 물이 귀하다. 비가 오면 금세 흘러내려 계곡에도 물 흐르는 것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비 온 직후엔 사정이 다르다. 아침 8시까지 제법 많은 비가 내린 오늘은 계곡이 물 흐르는 소리로 왁자지껄하다. 바위가 있는 곳이면 모두 폭포가 된다. “오늘 관악산은 지리산의 뱀사골계곡과 설악산 수렴동계곡보다 낫다”는 일행의 감탄이 과장이 아니란 걸 안다.

홀딱 벗고 뛰어들려는 
유혹을 가까스로 참는다

보는 눈이 많기도 했지만
이미 뚝 떨어진 기온으로
알탕 할 때는 지났다

그래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어
양말을 벗고 장딴지까지 담근다

무릉도원 별유천지가 바로 여기였다
네 시간 동안 솟았던 소나기땀이 저만치 물러가고
지긋지긋하던 무좀도 나 살리라는 듯 도망쳤다

바로 이맛이었다
관악산을 가장 맛있게 오르는 것은

아침까지 비 온 날  
안개를 벗 삼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무릉도원 폭포로 변신한 계곡에 시름을 담그는 것이다

- 홍찬선, '관악산 무릉도원 폭포' 전문.

말벌도 취한 통천회 관악산 사당능선 종주

일어나기 싫었다. 그냥 이대로 무릉도원 폭포에서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바람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다음에 가야 할 곳이 있기 마련이다. 아쉬움을 접고 주춤주춤 일어선다. 대학교 다닐 때 개구멍으로 넘나들던 ‘강 건너 술집’에서 한잔 술에 시대의 핏대를 올리던 낭만은 바람과 함께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를 서정주(徐廷住, 1915~2000)의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이란 시비가 차지하고 있다.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낙성대의 강감찬 장군의 넋이
먼저 일어나시어 소리치신다
“너희들은 왜 쪼무래기로만 남으려하느냐?
이 세계의 최대강국이던
(키타이)를 쳐부수던 내 힘을
너희는 어찌해서 깡그리 다 잊어야만 하느냐”고…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신림동에 사시던
신자하(申紫霞)님의 넋도
곰곰이 이어서 말씀하신다
“자네들은 어째서 또 사랑마저 잊었는가?
겨레가 겨레끼리 사랑하고 살어야 하는
그 근본정신까지 잊어야만 하는가” 하고…

그러면 관악산의 철쭉꽃 뿌리들은
나직한 소리로 웅얼거린다―
“아무리 치운 겨울날에도
우리들 뿌리만은 언제나 싱싱하여
한봄에 꽃필 채비를 하고 있오
당신들도 그래야만 할 것 아니오?”하고… 

그러면 관악산의 까치떼들이
짹짹짹짹 조아리며 세배를 한다―
“단군자손 여로분께 세배 올려요
우리들 까치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단군할아버지의 그때부터 벌써
그곁에서 모시고 살아왔거든요” 하고…

- 서정주,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 전문.

미당(未堂) 서정주는 말년에 관악구 남현동에 살았으니 '관악구에 새해가 오면'이란 시를 쓸만했다. 다만 일제말기와 전두환 정권 초기에 보였던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로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그런 미당의 시비가 관악산에 있다는 게 의외다.

이제 지하철 신림선 관악산입구역 부근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통천회의 관악산 사당능선종주를 마무리한다. 그때 말벌 한 마리가 불쑥 찾아왔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 때문에 온몸이 떨려 막걸리 한 모금으로 체온을 올리려고 했나 보다. 그 모습에서 살아야 하는 생명체의 절실함을 느낀다.

관악산 막걸리에 향기에 빠진 벌
관악산 막걸리에 향기에 빠진 벌./사진=홍찬선 

말벌도 막걸리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로 기온이 뚝 떨어지자
체온이 내려간 말벌이 마지막 숙제를 하려는지
막걸리 잔을 꽃으로 여기고 꿀빨대를 꽂았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 지 벌써 한 달,
통천회 건각들은 말벌과 함께 막걸리 사랑을 나눴다

- 홍찬선, '막걸리 유혹에 빠진 말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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