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충남 보령시의 죽도(竹島)에 있는 상화원에 간다는 매헌산악회의 알림이 뜨자마자 신청했다. 보령시가 ‘충남방문의 해’를 기념해 마련한 ‘신진서-최정 빅 매치’의 마지막 경기가 열린 곳이라서 더욱 가고 싶은 곳이었다. 막바지 단풍을 만끽하려는 상추객(賞秋客)이 몰려 고속도로가 곳곳에서 빚어진 정체의 짜증은 상화원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다스릴 수 있었다.
'한국의 이상향' 상화원, 제방 허물고 갯벌 살리다
상화원이 있는 죽도를 가고 오려면 차에서 내려 제방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제방을 허물고 다리 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포방조제와 죽도 사이에 만들어진 제방으로 바다 물길이 막혀 죽어가는, 갯벌을 살리기 위한 공사였다. 2024년 12월24일부터 2026년 6월23일까지 92억3800만원의 예산을 들이는 공사다. 만들려고만 하는 제방을 허물고, 죽어가는 갯벌을 살리는 공사가 참으로 반가웠다. 갯벌의 가치를 이제야 제대로 알고, 허무는 것이 살리는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상화원(尙和園)은 충남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 산154-1에 있는 테마공원이다. 죽도(竹島)라는 섬에 20여년 동안 한국식 전통공원으로 꾸몄다. 세계에서 가장 긴 2km의 회랑(回廊)을 따라 느긋하게 걸으며 섬을 한 바퀴 돈다. 옛 한옥을 이전해서 꾸민 한옥마을, 지는 해가 아름다운 석양정원, ‘바멍’ 하며 나를 되돌아보는 명상관, 현대미술갤러리와 ‘오징어게임’ ‘기생충’ ‘나의 아저씨’를 만날 수 있는 영상갤러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끊어진 길을 잇는 길이다
제방을 허무는 건
막혔던 바닷물을 흐르게 하는 일
죽어가던 갯벌을 다시 살리는 길
나뉜 길을 모으는 길이다
마굿간의 말구유와 만대루와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한 곳으로 모아
갈라진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길
꽃을 감상하는 정원이기도 하고
서로 꽃이 되는 마당이기도 하고
꽃처럼 고운 서릿발의 공원이기도 하고
화이부동으로 어울리는 조화의 집이기도 하다
- 홍찬선, '상화원에서 길을 보다' 전문.
상화원은 ‘조화(調和)를 숭상하는 공원’이라는 뜻이다. 상화원이란 이름에 걸맞도록 상화원에는 불교 기독교 유교의 세 종교의 상징물이 곳곳에 있다. 불교를 상징하는 ‘반가사유상’이 석양정원의 바닷가 바위 위에 놓여 있고,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관음보살상이 고혹적인 자세로 누워, 바다에서 올라오는 열두 마리 사슴을 바라보는 모습도 있다.
기독교의 예수를 상징하는 33개의 ‘수석정원’이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져 있기도 하다. 33은 예수의 나이를 뜻한다. 시작은 예수가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성서에 따라 말구유가 첫 번째 상징이며, 마지막 33번째는 십자가가 있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예수의 일생’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유교의 상징으로는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에 있는 만대루(晩對樓)가 한옥마을 뒤쪽에 복원되어 있다. 또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와 함께 조선시대 성리학의 쌍벽을 이루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을 기리는 정자인 ‘퇴계대(退溪臺)’도 있다. 회랑을 걷다가 '죽도 상화원'이란 시도 만났다.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봤던 국보 반가사유상을 죽도에서 보고 쓴 시다.
보령-대천 끄트머리
섬인 듯 육지인 듯
예스러움 간직한 채
새로움 맞이하는
그윽한 “비밀의 정원”
오늘 오길 잘했다
신기한 보관(寶冠) 쓰고
서해를 등진 좌상(坐像)
부동의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
무슨 생각 그리 깊나?
“천년을 머금은 미소”
비칠 듯한 속마음
오솔길과 계단길
대나무와 소나무
연못과 석양정원
어우러진 “이상향”
찾아온 나그네마다
쉼을 안고 떠난다
- 남대극, '죽도 상화원' 전문.
‘현대미술갤러리’에 전시된 홍주완 작가의 ‘하이힐 그림에 투영된 여성성에 관한 연구’도 눈을 즐겁게 했다. 홍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누구에게나 인생의 고비는 온다. 그 순간에 무너지느냐 밟고 다시 일어서느냐의 차이일 뿐. 그 고비를 넘겼을 때 한 단계 성장하는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나아가라는 의지를 담고 싶었다. 그런 에너지를 심장 바닥의 것까지 모아 그려 넣고 싶다. 본인의 그런 마음과 진정성을 관객이 고스란히 받는다면 기쁘고 무섭고 소름끼친다. 다시 킬힐에 올라서고 싶다. 본인이 느끼는 이런 카타르시스를 표현하고 싶다”고 밝혔다. '작가의 말'을 읽고 작품을 보니 느낌이 확 다가왔다.
초겨울에 북적대는 대천해수욕장
점심을 먹고 대천해수욕장에 갔다. 1979년 여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대천에 사는 벗의 집에 갔다가 처음 가보았던 해수욕장이다. 그 뒤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몇 차례 다녀왔지만, 찬바람이 부는 초겨울에 간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이었다. 연인과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온 사람이 제법 많았다.
백사장에 사랑의 맹세를 써놓은 연인도 있고, 모래밭에 도랑을 내 포석정(鮑石亭)을 만드는 아이도 있었다. 바다에선 유람선을 타고 환호성을 올리는 사람도 많았다.
바다가 그리운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키재기 다툼 속에
시퍼렇게 멍든 가슴 달래며 사는 도인(都人)들은
끝없이 펼쳐진 파도 소리와
그 소리를 타고 훨훨 나는 갈매기와
그 갈매기를 따뜻이 품에 감싸는
벗이 무척 그리운 것이다
구름에 햇님이 숨고
들국화 향기에 가을이 숨죽일 때
바다가 그리운 벗은 나풀나풀
대천해수욕장으로 가는 것이다
가서 일년 오년 십년 사십년…
나도 모르게 흘러간 세월을 붙잡고
그렇게 보낸 게 아니라고 곱씹는 것이다
- 홍찬선, '대천해수욕장' 전문.
상화원과 대천해수욕장의 추억을 안고 보령시 청라면 장현리의 청라은행나무마을로 갔다. 장현(長峴)마을에 은행나무가 많아 은행나무마을로 불리는 것은 전설과 관련이 있다. 이 마을 뒷산은 까마귀가 많이 살고 있어 까마귀산이라고 불리는 오서산(烏棲山, 791m)이다.
이 산 아래 동쪽 작은 못 옆에 마을을 지키는 누런 구렁이 한 머리가 살고 있었다. 구렁이는 용이 되기를 빌면서 천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 천 년이 되는 날, 구렁이는 황룡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물줄기를 휘감으며 하늘로 올라갔다. 몇 년 뒤,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던 까마귀들이 노란 은행알을 밝견하고, 용이 물고 있던 여의주라고 여겼다. 까마귀들은 은행을 이곳으로 물고 와서 정성껏 키웠다. 그때부터 장현마을에 은행나무가 많이 자라게 되었다.
땅에 떨어진 은행을 주워가지 않아 쿠린내가 진동했다. 쿠린내를 벗삼아 마을을 구경하는데 조그만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가보니 ‘가소정(可笑亭)’이란 현판과 함께 정자의 유래와 한시 한편이 실려있다.
“가소정은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의 후손인 가소(可笑) 김이철(金履澈, 1782~1855)이 1830년 경에 지은 것이다. 가소는 김이철의 호이며, 시를 읊고 퉁소를 분다는 뜻으로 세웠다.”
莫笑一間可笑亭(막소일간가소정)
亭名從古各有形(정명종고각유형)
先生心事本如水(선생심사본여수)
八十光陰以笑經(팔십광음이소경)
한 칸의 정자를 가소정이라 했다고 비웃지 마라
정자 이름은 예부터 각자의 형태에 따라 짓는 것이니
선생의 마음 씀씀이가 본디 흐르는 물과 같아
팔십 년 세월을 웃으며 지냈으니 말이네
장현마을을 되돌아 나오며 마을어귀에 서있는 ‘4H비’를 보았다.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손(Hands) 건강(Health)의 머리글자로, 새마을운동이 펼쳐지던 1970년대에 세워진 것이다. 요즘 어지간한 시골 동네에 가도 ‘4H비’를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에 있는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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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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