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10월 2일 씨어터 쿰에서 개막한 ‘농촌청년’은 이제 명절에만 조명되는 농촌의 정경을 무대에 재현한 우리네 가족들의 이야기로, 아련한 추억을 소환해 주는 가족극이다.
지금으로부터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우리의 삶은 농촌스러웠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충청도 어느 농촌에서 볼 수 있었던 한 가족과 이웃의 삶을 활동사진처럼 보여주는데, 배우들의 연기가 질박하면서도 충청도 기질을 드러내 재미지게 보았다.
세상은 많이 변해 도시화되었다. AI가 대세인 요즘이지만 명절 때는 농촌이었던 고향을 찾는 행렬은 줄지 않는다. 왜냐하면 농촌은 우리들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가난했고, 고지식했지만 인정이 넘쳤고, 집집마다 추억거리가 있었다.
‘농촌청년’은 충청도 어느 농촌에서 농사짓는 심성 착한 진철(황성은)이네 이야기다. 아버지는 낱알 하나가 밥상에 오르기까지 농부들의 흘린 땀을 외치는 전형적인 농사꾼, 어머니(김순이)는 그런 남편을 수발하며 진철과 미순(정재연)을 키워낸 순박한 아낙네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하고 진철 역을 하는 황성은은 이웃집 준석(유다협)이네 아저씨(박신후), 아줌마(홍정재)를 설정해 농촌의 변화를 보여준다. 막걸리와 양주, 고졸 청년과 미국 유학 박사... 삐까번쩍한 옷차림의 옆집 유세에 주눅 드는 진철이네...
‘농촌청년’은 농사 일을 하던 진철이가 꿈꾸던 소방관이 되는 이야기다. 누대로 내려온 고지식한 농사꾼 아버지는 반대하지만, 남편의 호통 속에서도 어머니는 딸 미순이와 함께 진철의 꿈을 응원해 준다.
드라마 ‘전원일기’의 한 편같은 ‘농촌청년’이 훨씬 실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와 현장 아우라 때문이다. 특히 정형화된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어떤 배우가 하느냐에 따라 스토리 전개와 재미가 다를 수가 있다.
세 번째 이 작품을 추석 무대에 올린 황성은 연출은 이 연극의 핵심인 아버지 역에 연기 잘하는 주호성 배우를 캐스팅했다. 주 배우는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온 김순이 배우를 어머니 역으로, 정재연 배우를 딸 미순이 역으로 추천해 한 무대에 섰다.
개성이 넘치는 옆집 아저씨와 아줌마 역은 진솔한 연기로 정평이 나 있는 박신후 홍정재 배우가 맡았다. 라스트에 잠깐 나오는 준석 역은 윤다협 배우가, 그리고 잠깐 등장하는 미순의 남편 역은 카메오로 해서 매회 변화를 주고있다.
‘농촌청년’을 보면서 주호성 배우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충북이 고향이고 성우 출신인 그는 고지식한 캐릭터를 충청도 사투리로 우직스럽게 연기, 극의 캐릭터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냈다. 특히 긴 대사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화술, 답이 궁하면 충청도 식으로 눙치는 연기, 호통 속에 정을 담아내는 복합 성격 구사는 압권이었다.
주호성 배우의 아버지 연기가 무대에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역 김순이 배우의 받쳐줌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호성 김순이 배우는 ‘아내의 서랍’ 등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춰 왔는데, 이번 ‘농촌청년’에서의 케미가 특히 좋았다.
평생 남편의 호통과 지청구에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온 어머니 역을 맡은 김순이 배우는 구부정한 걸음걸이 설정과 느물느물한 어투,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충청도 여인상을 수더분하게 보여주었다. 김순이 배우의 캐릭터 역시 주호성 배우의 받쳐줌으로 입체화가 가능했다.
‘농촌청년’이란 제목의 타이틀롤인 황성은 배우의 연기는 이번에 처음 접하지만 약삭빠르지 못하나 심성이 착한 아들 진철 캐릭터를 신박한 연기로 보여주었다. 외로움을 개와의 대화로 풀던 진철이가 아버지 주호성 배우와 한판 붙는 장면의 불꽃 튀는 연기는 이 연극의 절정이었다.
필자가 믿고 보는 박신후 배우가 ‘농촌청년’에서는 허세 가득한 옆집 아저씨로 나와 평소와는 또다른 면모를 보여주었다. 양주와 자식자랑으로 고지식한 이웃 농부에게 들이대는 매우 뻔뻔한 연기가 부담 없이 먹힌 것도 주호성 배우와의 주고받기가 잘 맞아서였다고 본다.
이번 작품에서 옆집 아줌마 역을 맡은 홍정재 배우는 가장 파격적인 변신 연기를 보였다. 몸에 붙는 화려한 의상과 구두로 남편 휘어잡고 이웃 약올리는 얄미운 연기를 얄밉게 해냈다.
미순 역 정재연 배우는 어떤 역할도 소화해내는 만능 연기자임을 이 작품에서도 보여주었다. 떠밀리다시피 결혼해 아이를 가졌지만 어머니와 동생 진철이를 살갑게 보듬는 농촌 젊은 여성 캐릭터를 순박하게 해냈다.
이 연극에서 개는 중요한 포인트다. 개는 안 나오고 개집만 보이지만 그 개집 앞에서 진철은 외로움을 달랬다. 아들 진철의 말을 묵살했던 아버지도 자신이 개를 잡아먹은 사건을 아들이 추궁하자 잘못을 인정하고 소방관이 되려는 아들에게 통장을 주어 후원하는 극적 반전도 개로 풀어냈다.
이 연극의 단점을 지적하자면 무대는 넓은데 배우는 한두 명뿐일 때 극이 집약되지 않고 분산되는 허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씨어터 쿰 극장의 특징은 무대가 너른 것인데, 여기에 방 두 칸과 마루, 마당의 평상을 사실적으로 배치, 빈 공간이 많고 배우 동선이 길어 몰입감이 적었다.
추석 연휴(11일까지)에 공연되는 ‘농촌청년’은 이웃과 함께 송편을 빚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춘궁기를 극복하고 이제 잘 살게됐지만 세태는 거칠고 인정마저 각박해진 요즘 ‘농촌청년’은 아련한 향수와 함께 명절의 의미를 일깨우는, 그리고 배우의 명연기와 앙상블을 볼 수 있는 한가위처럼 훈훈한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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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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