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다운증후군 여성의 사랑과 독립...정성·진정·협업 빛난 연극 '젤리피쉬'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다운증후군 여성의 사랑과 독립...정성·진정·협업 빛난 연극 '젤리피쉬'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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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운증후군 배우 출연...장애를 지닌 젊은 여성이 사랑과 독립을 찾아가는 여정 담아
- 수어 통역과 프롬프터 배치 등 장애인도 무대 설 수 있고 관극 할 수 있게 협업
-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앙상블이 빚어내는 감동적인 장면 많아
- 정성으로 만들고, 진정으로 연기하고, 협업이 빛나 더 감동한 연극
연극 '젤리피쉬' 장면./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국립극단의 픽(초청)공연으로 9월 21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관람한 벤 웬더릴 작, 민새롬 연출의 '젤리피쉬'는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출연해 다운증후군 장애를 지닌 한 여성의 사랑과 독립을 그린 내용도 특이했지만, 필자는 특별한 창작 인력을 투입해 ‘방식과 태도를 전혀 다르게 만들어낸’ 무대에서 더 특별한 체험을 했다.

연출과 배우와 수어(手語) 통역 및 프롬프터 등 더 세심하게 접근한 스태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면서, 이 같은 공연이 자주 공연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후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상업화가 만연한 세태에서 장애인 등 소수와 약자를 위한 공익 또는 공공연극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특히 국공립 극장뿐 아니라 민간 극장에도 그들을 위한 시설과 서비스가 더 많이 제공될 수 있는 지원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연극 '젤리피쉬' 장면./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수화 연극 '젤리피쉬'를 보면서 국립인 명동예술극장은 장애인 공연에 필요한 제반 여건이 갖춰져 관객들도 진일보한 환경에서 공연을 체험할 수 있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수어가 연극의 한 요소로 대두되고 있지만, 금년 8월 에딘버러프린지 페스티벌 공연을 보면서 그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현지에서 본 7편의 공연 중 신체극 '망각의 본질'과 뮤지컬 코미디 'JEEZUS' 두 편에 수어통역사가 무대에 등장했다.

'망각의 본질'에서는 대사가 나오는 앞부분 몇 분을 위해 수어통역사가 무대를 지켰고, '지저스'에서는 두 명의 주연 배우들과 수어통역자들이 함께 공연을 이끌었다.

'젤리피쉬'에서 특이한 점은 ‘접근성 스태프’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수어 통역은 정지은 이수현 유민지 씨가 맡았는데 이들은 ‘공인수어통번역 잘함’ 소속으로, 수어통번역과 연출은 김홍남 대표가 했다. 음성해설은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서수연 대표가 했고, 공연 관람을 도운 자막은 임민정 씨가 제작했다.

연극 '젤리피쉬' 장면./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젤리피쉬' 스태프 중에는 프롬프터 주연경 씨가 있다. 장애를 지닌 캘리 역 백지윤 배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대사를 도와주는 역할이다. 백지윤 배우와 호흡을 같이 하며 능동성을 다치지 않도록 순발력을 발휘하는 무대 위의 또 다른 배우인 셈이다.

프로그램을 보면 민새롬 연출을 “매 작품마다 섬세하고 정교한 해석에 세련된 미장셴을 더해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는 연출”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스페셜 스태프와 함께해야 하는 특별한 연출 방식으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전체를 컨트롤하며, 기존의 무대와는 다른 형식의 무대를 구현해 냈다.

공연 사진으로 봐도 알 수 있듯이 수어 통역자들이 무대 위의 무대에서 또 하나의 무언극을 하고 있고, 프롬프터는 백지윤 배우와 함께 움직이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배우들의 의상을 바꿔주고 소품을 이동하면서 켈리 역 백지윤 배우의 컨디션도 조절해 주는 크루들의 활동도 인상적이었다.

'젤리피쉬'의 주인공 켈리를 맡은 백지윤 배우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인이지만 무대에서 거의 핸디캡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지난해 공연했었고, 막공이기도 했지만 프롬프터의 도움을 별로 받지 않는 듯한 독립적인 연기를 깔끔하게 해냈다.

연극 '젤리피쉬' 장면./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무용을 전공했다는 백지윤 배우는 장애인을 연기하는 프로배우들이 따라 할 수 없는 장애인 특유의 화법과 동작을 리얼하게 해내 작품의 특성을 살려냈다. 특히 자막이 도움을 주기는 했으나 대사를 또렷하게 전달해 관극이 편했다.

장애인 배우와 함께 공연하는 비장애인 배우들도 일반 공연과는 많이 달라 어려움도 따랐을텐데 엄마 아그네스 역 정수영, 남자친구 닐 역 이휘종 배우는 다운증후군 백지윤, 저신장 장애인 도미닉 역 김범진 배우와 매끄러운 앙상블을 이뤄 일반 연극을 보는 느낌을 주었다.

이렇게까지 팀워크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지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이중 커리어가 많은 정수영 배우는 장애인 딸을 가장 잘 알고 걱정하는 엄마의 캐릭터를 진정성 있게 해냈으며, 장애와 비장애 캐릭터를 연결하는 극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닐 역의 이휘종 배우는 장애인 연인을 일반인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보통 청년 역할을 꾸밈없이 해냈다.

항상 명쾌한 대화로 극 중 해결사 같은 이웃인 도미닉 역의 김범진 배우는 저신장 장애를 지녔지만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는 전문 배우다.

필자는 2021년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 '코리올라누스'에서 그의 연기를 보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화술이며 연기가 흠잡을 데 없을뿐더러 독특한 개성으로 주목을 받을 만했다.

연극 '젤리피쉬' 장면./사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옥상훈

이제 작품 이야기를 해 볼 차례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벤 워더릴은 장애인 여성의 특별한 여정을 그린 '젤리피쉬'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특히 런던의 내셔널 씨어터(영국 국립극장)에서 공연 당시 연출과 제작과 관극 환경 등 여러 면에서 화제가 되었고 주목을 받았다.

장애를 지닌 딸을 둔 엄마는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엄마는 안쓰러워 보호하고 도움을 주려하지만 성장한 딸은 남자친구를 만나고 임신까지 하게 된다.

작가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이들 모녀의 갈등과 변화의 여정을 시간이 흐르는 일기 형식으로 그려내 공감을 안겨주었다.

무대 양옆에도 객석을 배치해 관객들과의 친밀도를 높인 것도 이 공연의 특징이었다.

관객 참여 공연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관객들은 동화 속 장면 같은 무대를 보면서 웃고 눈물 흘리며 배우들과 함께 호흡했다.

색다른 형식으로 공연된 한국판 '젤리피쉬'에 공감이 가는 것은 우리도 장애를 가진 당사자와 가족이 적지 않아 이 연극을 통해 여러 문제의 한 단면과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그들의 내면과 그들만의 세계를 알아야 거기서 해결책도 나오고 세상이 보다 따뜻해 질 수 있음을 이 연극은 보여준다. 어렵겠지만 소수자를 위한 다양한 연극이 제작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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