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첫 장면부터 가슴 뭉클...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첫 장면부터 가슴 뭉클...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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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장센이 멋진 '연극계 전설의 귀환'
- 임영웅 연출의 체취 묻어나는 심재찬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
- 같은 듯 다른 연출...명료함 돋보여
- 이호성 박상종 배우의 케미가 추억 소환, 10월 4일까지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출연진들./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9월 14일 소극장 산울림에서 관람한 S 베케트 원작, 심재찬 연출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지난해 작고한 한국연극의 큰어른 임영웅 선생을 떠오르게 해 첫 장면부터 가슴이 뭉클했다.

산울림과 연출가 임영웅의 '고도...'라고 할만큼 임영웅 선생은 생전 50년간 약 1500회의 공연을 했고 프랑스 아비뇽, 아일랜드 더블린, 폴란드 그다니스크 등 해외 공연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필자는 한국일보 강당에서 했다는 김성옥 함현진 주연의 한국 초연은 보지 못했지만, 아비뇽 연극제와 폴란드 그다니스크 초청공연에 동행해 임영웅 선생의 '고도...'와는 연이 깊다.

특히 88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 공연의 하나로 문예회관 무대에 올려진 임영웅 연출 '고도...'를 관람한 영국의 평론가 마틴 에슬린(부조리극이라는 개념을 만든 비평가)이 "정말 잊을 수 없는 공연"이라고 호평한 평문을 조선일보에 게재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고도...'와 평생을 같이 해온 임영웅 연출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고도...'는 여전히 임영웅 선생의 전유물처럼 관객들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임영웅 표 '고도...'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9년 명동예술극장에 올려진 기념공연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극단 산울림이 심재찬 연출, 이호성 박상종 정나진 문성복 문다원 배우 캐스팅으로, ‘전설의 무대’를 귀환시켰다.

임영웅 선생의 조연출을 비롯해 임영웅 선생과 가장 많은 작업을 했고, 그분의 성품은 물론 연출 스타일까지 꿰고 있는 심재찬 연출은 ‘전설의 고도’를 재현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일선에서 물러났던 그가 건강을 회복해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했다는 것은 연극계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포스터./사진=산울림

심재찬 연출의 '고도...'는 임영웅 표 '고도...'와 같은 듯 달랐다.

전체적인 극의 아우라는 스승의 스타일을 따랐으나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심재찬 특유의 장기인 ‘명료함’이 돋보였다. 배우들의 동작이나 호흡에서는 임영웅의 색깔이 묻어났으나, 부조리한 대사나 난해한 주제는 관객이 보다 이해하기 쉽게 심플하게 풀어낸 것이다.

2025 산울림 공연에서 블라디미르 역은 이호성, 에스트라공 역은 박상종 배우가 맡았다.

극중 ‘고고’와 ‘디디’로 불리는 이 배역은 이호재 전무송을 비롯해 많은 배우들이 해왔었다,

이호성은 필자가 동행했던 폴란드 공연에서 블라디미르 역을 했었고, 에스트라공 역 박상종은 최근 심재찬 연출의 '만선'과 심영민 연출의 '비목' 등에 출연한 연기파 배우이다.

이호성과 박상종은 대조가 되면서도 조화를 이루었다. 이호성은 체구가 크고 선이 굵은 연기를 펼친 반면 박상종은 체구가 작지만 디테일한 연기가 특기여서 ‘궁합’이 잘 맞았다. 블라디미르는 풍부한 성량으로 극의 큰 줄기를 잡아나갔다며, 에스트라공은 다양한 표정과 오밀조밀한 동작으로 작고 아기자기한 연기를 만들어갔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블라디미르 역을 맡은 배우 이호성, 에스트라공 역의 배우 박상종 캐릭터 컷./사진=산울림

부조리극인 '고도...'는 열 번 넘게 보았지만 대사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적은 거의 없었다.

2차 대전 후 정신적 혼란, 인간 존재의 무의미, 소통 부재 등을 형상화하고 있어 주제도 난해하지만 툭툭 던지는 대사도 의미를 알기 어렵다.

임영웅 연출은 초기에 이 작품을 다소 무겁게 끌어갔으나, 중기 이후부터는 첫장면부터 객석에서 웃음이 터지게 연출했으나 대사가 부조리하고 무의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심재찬 연출의 '고도...' 역시 기다림, 반복, 침묵, 불확실성이라는 주제로 존재의 무의미와 부조리에 초점을 맞추어 스토리나 대사 내용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 죽이기’ 말장난 같은 대사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번 무대를 보면서 무대 위에 그려지는 미장센(장면 속 시각적 구성 요소)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관람 내내 했다.

무대에는 디자이너 박동우가 제작한 나무 한 그루뿐이고 초창기부터 참여해온 김종호의 조명이 변화를 줄 뿐인데, 고고와 디디의 대칭적 움직임은 나무와 더불어 영상 속 또는 명화 속 그림 같은 미적(美的) 감흥을 일으켰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커튼콜 무대에서 박상종, 이호성 배우./사진=정중헌

미장셴의 조화는 포조(정나진), 럭키(문성복)의 등장 이후 4인 무대에서도 매력을 더했다.

포조 역을 맡은 정나진 배우는 대학로에서 활동폭이 큰 연기파로, 모호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게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했다. 럭키 역 문성복 배우 역시 기존과는 좀 다른 설정으로 주목을 끌었는데, 1막과 2막 후반부에 나오는 소년 역 문다원과 부자간이라는 점도 흥미로웠다.

대사들이 부조리하고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구인지 볼 때마다 모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케트의 '고도...'는 몇십년동안 반복해 보아도 이 작품만이 풍기는 아우라가 있고, 외로움 쓸쓸함 허무 같은 감정이 밀려드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인애 무대디자이너는 "학부시절 이 공연을 보고 연극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라 생각이 되어 무대미술가가 되었다"며 "인생을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작품"이라고 페북에 공연을 권하는 글을 올렸다.

이번 공연을 보면서 산울림 소극장을 만들고 많은 히트작을 남긴 임영웅 선생의 부재가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그 빈자리를 부인 오증자(번역), 딸 임수진(총괄 프로듀서), 아들 임수현(예술감독) 등 가족이 지키면서 '고도...'를 귀환시켰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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