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적 재미와 박진감까지...젊은 관객 몰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적 재미와 박진감까지...젊은 관객 몰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5.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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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선웅 연출의 국립극장 해오름 버전...더 재미있어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 배우들의 연기 일품...하성광의 물오른 연기, 이호재의 존재감, 정진각의 절정 연기까지
- 최고의 경지에 이른 고선웅 표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완결편이라 할 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장면/사진= 국립극단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 포함 몇 차례 보았던 기군상 작, 고선웅 각색 연출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11월 2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람했다.

리모델링한 해오름극장은 좌석뿐 아니라 음향 조명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이어서 10년째 계속되는 ‘조씨고아...’의 품격을 한층 높여 주었다.

해오름 버전을 보면서 K-컬처 중 뒤져온 연극도 세계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어와 중국어 자막으로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선웅의 연출은 외국인이 보아도 소통이 될 만큼 독자적인 연극술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본 고선웅 ‘조씨고아...’의 최대 강점은 ‘재미’였다.

초연 때 짜놓은 큰 틀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복수의 시작과 준비 과정, 복수의 이야기가 명료하게 전개되어 누가 보아도 이해가 쉽고, 가슴 저리고 눈물 날 뿐 아니라, 복수의 희열을 맛볼 수가 있어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것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장면/사진= 국립극단

고선웅의 ‘조씨고아...’는 특히 배우들의 라이브 연기로 전개되는 현장의 아우라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른, 무대예술만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연극 공연에 관객이 몰리지 않는 이유는 다른 장르에 비해 재미가 적다는 것인데, ‘조씨고아...’는 복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재미와 서스펜스, 감동을 주었다.

솔직히 필자는 ‘조씨고아...’를 국립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주 올리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초연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재공연부터는 특별한 매력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이유였다.

그런데 이번 해오름 버전을 보면서 고선웅 표 ‘조씨고아...’ 완결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출 플랜부터 배우의 연기술까지 연극 예술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필자는 본 것이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 정중헌

무대 세트 없이 소도구는 천정에서 내려오도록 하고 커튼과 몇 가지 장치만으로 변화를 주면서 무대 전체를 배우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배우들의 연기술로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가게 한다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고선웅 연출과 10년째 호흡을 같이해온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를 온전히 숙지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스피디하게 무대를 이끌었다.

반복하다 보면 타성이 생길 수도 있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전체적인 앙상블을 이루면서도 극적인 장면들을 감동적으로 살려냈다. 여기에 주요 배역들의 신들린 듯한 열연이 관극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아이를 바꿔치기해서 복수의 씨앗을 키우는 이야기(1부), 20년 후 마침내 복수를 하고 조씨 성을 되찾는 대단원(2부)을 고선웅 연출은 배우들의 연기와 화술로 마디마디 풀어내 관객의 가슴을 흔들고 전율을 안겨주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장면/사진= 국립극단

복수의 중심에 시골 의사 정영(하성광)이 있다.

마흔에 아들을 얻었으나 구족을 몰살당한 조씨 가문의 대를 위해 조순(유순웅)의 아들 조삭(김도완)의 씨인 공주(우정원)의 아들과 바꿔 치기 한다.

자기 자식을 죽이는 아비와 어미(이지현)의 간장을 녹이는 아픔, 정의를 위해 한목숨 던지는 공손저구(정진각)의 결단은 이 연극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초연 당시 호연으로 주목을 받은 정영 역 하성광 배우는 10년을 한 배역에 올인, 마침내 해탈한 듯 혼신의 연기를 보였다. 정형화된 듯한 대사의 운율을 평이하게 바꾼 대신 마치 아이돌 가수의 랩 버금가는 속사포 대사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자식을 잃었을 때의 피 끓는 한의 통곡은 숨이 막히게 절절했고, 복수를 사주할 때는 냉혹한 카리스마를, 복수를 이루고 나서의 허망한 실루엣은 가슴을 싸하게 했다. 자신의 배역을 신들린 듯 혼신을 다해 구도하듯 해내는 정영의 연기에 쏟아지는 박수의 강도는 뜨거웠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공연 장면/사진= 국립극단

더블캐스팅인 조씨고아 역을 늘 보아오던 이형훈 배우가 아닌 박승화 배우가 했는데 기본기가 충실했고 연기가 신선했다. 특히 20년을 친부로 알던 정영이 복수를 사주하자 믿을 수 없다고 회의하다가 정영이 팔을 자르자 그 진정성을 믿게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끌어간 점이 좋았다.

‘조씨고아...’1부는 장군 도안고가 주인공이라고 할 만큼 장두이 배우의 역할이 컸다.

초연 때는 캐릭터에 너무 힘을 준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10년의 적공으로 이제는 표독하면서도 감정의 중심을 잡은 개성 연기로 진화했다.

역할은 적지만 한나라의 왕인 영공 역할을 팔십 대 이호재 배우가 새로 맡아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을 안겨주었는데, 대배우답게 여유와 위트까지 곁들인 원숙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전후반부에 한 번씩 등장해 복수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는 역할의 위엄을 보여준 것이다.

해오름 버전에서 가장 돋보인 배우는 공손저구 역의 정진각 배우였다. 원래 연기를 잘하는 배우지만 이번 무대에서 대사나 연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노배우의 연기는 경이로웠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 정중헌

‘조씨고아...’는 관객층의 다양화도 연극의 활성화에 청신호라고 할 만했다. 객석이 많은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을 꽉 채웠을 뿐 아니라 10대 관객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것은 연극이 재미있어서 일 것이다. 젊은 관객들이 많다 보니 극장 로비도 한층 밝아졌고 축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 연극의 장점은 천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음모와 복수가 주는 교훈에 있다.

20년을 인내하며 복수를 이룬 결말은 과연 무엇일까?

작가와 연출은 이 말을 전한다. “부디 거울삼아 평화롭기를...”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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