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1) 철원 노동당사와 소이산에서 6.25 비극을 체험하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1) 철원 노동당사와 소이산에서 6.25 비극을 체험하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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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7월은 견디기 힘든 달이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엄청난 재산피해를 가져온 물 폭탄 때문만은 아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불볕더위 탓만도 아니다. 7월이 견디기 힘든 건, 72년 전 7월이 남긴 전쟁의 상처와 고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1953년 7월27일 화요일 밤10시. 3년 1개월이나 계속됐던 6.25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아니 완전히 끝난 종전(終戰)이 아니라 전쟁을 쉬는 휴전(休戰)이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었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대치상황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철원 노동당사와 시계탑
철원 노동당사와 시계탑./사진=홍찬선

철원은 남북분단과 6.25전쟁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다. 철원은 38선 이북에 있어 전쟁 전에는 공산당 치하였다. 그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철원노동당사다. 1945년부터 수복되기 전까지 철원을 다스리던 권력의 중심부였다. 노동당사는 전쟁 때 포격을 받아 건물 앞부분은 대체로 멀쩡하다. 하지만 뒤로 돌아가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다. 노동당사 광장 오른편에 철원에서 태어나 철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춘근(1960~) 시인의 시 '지뢰꽃'을 새긴 시비가 있다.

월하리를 지나
대마리 가는 길
철조망 지뢰밭에서는
가을꽃이 피고 있다

지천으로 흔한
지뢰를 지긋이 밟고
제 이념에 맞는 얼굴로 피고 지는
이름 없는 꽃

꺾으면 발밑에
뇌관이 일시에 터져
화약 냄새를 풍길 것 같은 꽃들

저 꽃의 씨앗들은 
어떤 지뢰 위에서
뿌리 내리고
가시철망에 찢긴 가슴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 걸까

흘깃 스쳐 가는
병사들 몸에서도
꽃 냄새가 난다

- 정춘근, '지뢰꽃' 전문.

철원 정춘근 시인과 _지뢰꽃 시비_
철원 정춘근 시인과 '지뢰꽃' 시비./사진=홍찬선

지뢰꽃은 지뢰에 뿌리를 내리고 피는 꽃이다. 민들레 애기똥풀 질경이 씀바귀… 같은 야생화가 무심하게 핀다. 지뢰가 묻힌 지뢰밭에서, 전쟁이 끝난 지 7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곳곳에는 지뢰밭이 많다. 폭우로 떠내려온 지뢰가 터져 사람이 다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정춘근 시인은 시 '노동당사'에서 “빨간 모자를 벗어라 관광객들아”라고 소리친다. “여기를 로마 유적쯤으로 생각하려거든/ 냉큼 떠나라”며 호통이다. “이곳은 원통하게 죽은 귀신들이 쉬는/ 유일한 사당이”기 때문이다.

철원 소이산 모노레일
철원 소이산 모노레일./사진=홍찬선

노동당사에서 정춘근 시인에게 혼나고 건너편에 있는 소이산에 올랐다. 예전에는 걸어서 갔지만 이번엔 모노레일을 타고 쉽게 올랐다. 소이산 정상에는 옛날에 봉화대가 있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미국의 레이다기지가 있었다. 미군이 핵전쟁에 대비해 750m 정도의 지하갱도를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은 갱도 일부를 한국전쟁 기념관으로 만들어 전쟁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망대로 꾸며져 있다. 이곳에 오르면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철원평야 넓이는 2억 평(661㎢)으로 서울(601㎢)보다 넓다. 6.25전쟁 때 김일성은 철원을 뺏기고 사흘 동안 통곡했다고 한다.

철원 소이산에서 본 백마고지
철원 소이산에서 본 백마고지./사진=홍찬선

휴전 직전까지 전투가 치열하게 이루어져 수많은 군인이 전사한 백마고지가 바로 철원평야에 왼쪽에 보인다. 백마고지 왼쪽에는 화살머리고지가 있고, 휴전선 너머에는 피의능선과 김일성고지(고암산)이 있다. 철원평야 끝자락 DMZ에는 옛날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수도가 있었다. 그 너머는 옛날에 화산폭발이 있었던 평강고원이다.

소이산에 올라보면 안다
궁예가 왜 이곳을 태봉의 도읍지로 정했는지를

362미터의 낮은 언덕 같은 소이산에 올라보면 밝게 안다 
일제가 왜 이곳에서 원산과 금강산 가는 철도를 나눴는지를

소이산에 올라 아이스크림고지, 삽슬봉을 내려다보면 안다
김일성이 왜 죄 없는 젊은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지를
고암산에서 도사리고 앉아 3일 동안이나 통곡하며 아랫사람들 닦달했는지를

소이산에 올라보면 저절로 아는데
백마고지는 오늘도 한마디 말이 없고
하얀 말 위로는 파란 햇살이 쏟아졌다

그날의 처절했던 아우성은 
파릇파릇 포기 붇는 모의 아우성에 묻히고

월정리역에서 세월의 법칙에 무너진 
금강산 가던 철마의 소리 없는 아우성에 맞장구로 세월을 견디고 있었다

- 홍찬선, '백마는 말이 없고' 전문

철원 백마고지 위령비
철원 백마고지 위령비./사진=홍찬선

소이산을 내려와 백마고지위령비로 갔다. 백마고지는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민통선(民統線) 안에 있어 직접 갈 수 없고, 위령비에서 아쉽게 바라보아야 한다.

백마고지는 해발 395m의 야트막한 산이다. 겨울에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흰 말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6.25전쟁 때 백마고지를 뺏고 빼앗기고 뺏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중공군과 인민군 1만여 명, 국군과 유엔군 340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곳이다.

백마고지 전투 때 아군은 21만9900여 발, 중공군은 5만5000여 발의 포탄을 투하해, 원래 396m였던 것이 395m로 낮아졌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그저 이름도 없는 야트막한 뫼였다 
고암산 오성산 평강고원 산줄기 뚝 끊어
서울보다 넓게 펼쳐진 철원평야 망루처럼
다소곳하게 자리 잡은 395미터 야산

그날 1952년 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두 번 싸워 스물네 번 주인 바뀌는 동안
소나기보다 사나운 포탄 세례로 나무와 풀
모두 사라지고 흙마저 날아 키 줄어들었다

김경진 조덕봉 소령 조흥옥 최무웅 이병 등
844명 젊은이 자유조국의 이름으로 산화했다
그날 피 헛되지 않아 너는 백마고지 계급장 
받았고, 철원 오대쌀과 노동당사 선물로 남겼다 

그날의 아수라장 고통 아스라한 역사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모가 무럭무럭 자라는 들녘은
헛헛한 나그네에게 소리 없이 외친다 
395 백마고지야, 엉아들아, 철원아, 평화야, 통일아

- 홍찬선, '백마고지' 전문.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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