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삶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여행이다.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게 죽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으며 산다. 죽음을 잊고 살기에, 삶에서 경건함이 사라지고 오로지 돈과 권력과 욕망만을 추구한다. 돈과 자리에 눈이 어두워 사람에 충성하느라 민족과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인생은 짧고 역사는 길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가면 죽음이 갖는 의미를 새로 새기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되돌아본다. 죽음의 순간 이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을 쫓아다니느라 소중한 삶을 날려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유관순 누나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 우리의 옷 매무새를 가지런히 고치게 하게 한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유관순 누나의 마지막 유언 중에서
유관순(柳寬順, 1902~1920) 누나는 천안 아우내(병천, 竝川)에서 태어났다. 이화학당 고등부에 다니던 1919년 3월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거족적 봉기에 놀란 조선총독부가 휴교령을 내리자, 유관순은 고향으로 내려가 4월 1일 아우내장터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일제 경찰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받을 때 당당하게 대한의 독립을 주장했다. 복역 중 일제의 고문을 받고 순국했다.
유관순 누나의 묘는 처음에 이태원공동묘지에 있었다. 일제가 1936년 이곳을 택지로 개발한다며 묘지를 훼손했을 때 멸실됐다. 무연고자 2만8000여명과 함께 화장한 뒤 망우리공동묘지에 이장하고 ‘합장비(合葬碑)’를 세웠다. 병천면 용두리에 생가가 복원돼 있고, 생가 뒷산 정상에 ‘유관순열사봉화탑’이 있다. 그 아래에 ‘초혼묘(招魂墓)’와 ‘유관순사우(祠宇)’가 있다.
열아홉 살 누나는
꽃보다 더 아름다웠던 누나는
죽어서 영원히 살고 있습니다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이태원묘지부터 함께 했던 수많은 동포들과 함께
오늘도 우리의 발길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나라 잃는 고통을 겪지 말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고
어깨를 두드려 줍니다
- 홍찬선, ‘죽어서 영원히 사는 유관순’ 전문.
유관순 누나를 뵙고 망우역사문화공원 둘레길을 왼쪽으로 1㎞쯤 걸었다. 오른쪽에서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을 만났다. 만해는 1919년 3월1일에 낭독된 ‘기미독립선언서’ 뒷부분에 있는 ‘공약3장’을 직접 썼다. 민족대표 33인으로 일제에 체포돼 3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26년에 시집 ‘님의침묵’을 출간했다. 시 ‘님의침묵’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만해는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에 살 때, 변절한 최린(崔麟, 1878~1958)과 친일활동을 벌인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을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리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침을 휩싸고 돕니다.
- 한용운, ‘님의침묵’ 전문.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유명한 항일독립운동가와 시인, 화가, 의사 및 한국을 사랑한 일본인 등의 묘소가 많다.
오세창 문일평 조봉암 박찬익 서동일 같은 독립운동가, 김상용 박인환 시인, 최학송 소설가, 이중섭 화가, 지석영 선생, 가수 차중락, 사이토 오토사쿠와 아사카와 다쿠마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묘소를 모두 참배하려면 2박3일로도 모자란다. 다른 분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박인환 시인의 묘를 찾았다.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시인의 묘 앞에는 동료 시인들이 힘을 모아 세운 자그마한 시비가 있다. 시비에는 박 시인이 갑자기 서거하기 며칠 전에 쓴 시 '세월이 가면'의 한 구절이 새겨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묘 앞 조그만 꽃병에는 박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꽂아놓은 꽃이 가득했다. 박인환 시인은 갔지만 그 눈동자와 입술과 시는 우리 가슴에 있다. 묘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북한산과 도봉산 및 수락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박인환 시인의 묘에 갈 때마다 잔잔한 미소가 솟는다
망우역사문화공원 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박인환 묘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묘를 다녀간 사람이 남기고 간 마음이 가슴에 포근히 안긴다
처음 갔을 때의 아픔이 살며시 풀리고
귀천한 지 70년이 되도록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시단(詩壇)의 악폐를 바로 잡아야겠다는 다짐을 세운다
- 홍찬선, ‘박인환 묘에서’ 전문.
박인환 시인은 서른한 살이던 1956년 3월20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존경하던 이상(李箱, 1910~1937) 시인을 추모한다며 3일 연속 빈속에 술을 마시고 심장마비로 급서(急逝)했다.
그는 ‘인천항’ ‘남풍’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 ‘자본가에게’ ‘서적과 풍경’ 등, 그가 살던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찾으려는 시를 많이 남겼다.
하지만 그런 ‘박인환 다운 시’는 잊힌 채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 일부 시만이 부각되며 ‘경박한 감상주의자’로 폄훼됐다. 그와 가깝게 지냈던 김수영(金洙暎, 1921~1968) 시인이 박인환 폄훼(貶毁)에 앞장섰다. 박인환 시인의 70주기를 앞두고, 잘못 알려진 박 시인의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하는 일을 해야겠다.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박인환 시인의 시 ‘인천항’의 뒷부분을 읽어본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퍼덕이는 숙사(宿舍)와
주둔소의 네온사인은 붉고
정크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언 잭이 날리던
식민지 향항(香港)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海港)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
- 박인환, '인천항' 끝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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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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