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5)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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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찾기 세계기록유산
2015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KBS1TV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사진=홍찬선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살면서 가장 큰 고통이 참척(慘慽)이라고 한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가슴보다 더 큰 아픔은 없을 것이다. 참척에 빗댈 수는 없어도 이별의 쓰라림도 적지 않다. 게다가 헤어져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채 끝없는 그리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 생이별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런 고통의 깊이와 넓이를 우리는 42년 전 한여름에 생생하게 경험했다.

1983년 6월30일 밤 10시15분, KBS1 TV에서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이 시작됐다. 6.25전쟁 발발 33주년과 휴전 30주년을 맞아 사전에 신청받은 이산가족 150명을 KBS공개홀에 초청해 90분 동안 방송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정 시간에 방송을 끝낼 수 없었다. 방송을 보던 이산가족들이 밤 11시가 넘어서 무작정 KBS로 몰려들었다. 방송은 새벽 2시30분까지 연장됐고, 524건의 이산가족 사연이 소개됐다. 이날 모두 29가족이 서로 만나는 감동의 장면을 연출했다. 그때 패티킴이 부른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전 국민의 울음을 자아내는 유행가가 되었다.

KBS이산가족찾기 장면/사진=KBS아카이브
KBS1 TV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 /사진=KBS아카이브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얌전한 몸매의 빛나는 눈
고운 마음씨는 달덩이 같이
이 세상 끝까지 가겠노라고
나하고 강가에서 맹세를 하던
이 여인을 누가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부드런 정열의 화사한 입
한번 마음 주면 변함이 없어
꿈 따라 님 따라 가겠노라고
내 품에 안기어서 맹세를 하던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한운사 작사, 박춘석 작곡, 패티킴 노래)

KBS이산가족찾기 장면/사진=KBS아카이브
KBS1 TV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사진=KBS아카이브

그때 이산가족찾기 생방송은 무려 453시간 45분이나 이어졌다. 그해 11월14일 새벽 4시까지 138일이나 계속된 생방송은 전 세계 TV방송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10만952건의 이산가족이 신청하고 5만3536건이 방송에 소개돼 1만189건의 이산가족이 상봉하는 감격을 누렸다. 생방송이 녹화된 테이프 원본만 463개였고, 이산가족 신청서, 큐시트(방송진행순서표), 사진 등 2만522건의 기록물은 2015년에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1983년 여름은 필자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 뜨겁던 여름방학 때, 부산 해운대인가 보령의 대천해수욕장인가로 피서가면서 이산가족찾기 방송과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를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함께 TV를 보던 사람들은 이제 6.25때 생이별했던 이산가족이 모두 다시 만나고, 남북으로 나뉘어 살고있는 이산가족도 서로 만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란 꿈에 부풀었다.

이산가족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2014년에 개봉돼 1426만 명이나 관람한 영화 ‘국제시장’(감독: 윤제균, 주연: 황정민 김윤진 오달수 정진영)에도 당시 이산가족찾기가 등장해 감동을 되새겼다. 하지만 그런 꿈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성급함과 ‘떡 줄 놈은 생각도 없는데 입맛만 다시는’ 순진함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떡 줄 놈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입맛부터 다시는 것은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6.25전쟁 때 느닷없이 생이별했던 
부모님과 남편아내와 형제자매를 찾겠다고
삼복더위 따가운 여름을 뜨겁게 지낸 뒤에
남는 건 치밀어오르는 배신이었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은
바늘허리에 실 매서 바느질을 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을 때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에서 눈물콧물로 상봉했을 때
벌건 대낮에 무지개가 반짝 떴다 사라졌을 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봐야 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판에 뛰어들면
가진 돈 모두 털리고 개망신당하게 마련이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가고
바늘 도둑이 쇠 도둑 되고
강도가 도리어 매를 드는 일
그날 이후 나날이 다달이 해해이 징해지고 있었다

- 홍찬선, '우물가에서 숭늉찾기' 전문.

KBS1 TV ‘이산 가족을 찾습니다’/사진=KBS아카이브

광복된 이듬해 일가족이 함께 월남한 원로 시인 한 분은 평양이나 금강산 또는 서울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한 번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청했는데 선정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분명히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란다. 고향이 그립고,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됐을 조부모님과 백부숙부 고모이모와 사촌형제들이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꾹 참았다. 한편으론 아쉽기도 했지만, 그래서 실망도 적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산가족이 아닌 나로서는 어느 정도 원로 시인과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토록 뜨거운 눈물을 흘린 여름이 지난 지 42년이나 흘렀는데도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기 때문이다. 문득 김종삼(金宗三, 1921~1984) 시인의 시 '민간인'이 떠오른다. 너와 내가 살기 위해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이를 죽여야 했던 그 피눈물 나는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1947년 봄
심야(深夜)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뜨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물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 김종삼, '민간인' 전문.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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