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8) '불로장생'의 영원한 사랑으로 무더위 이기고 '궁시박물관'을 덤으로 얻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8) '불로장생'의 영원한 사랑으로 무더위 이기고 '궁시박물관'을 덤으로 얻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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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니아앞에서
아로니아 앞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피한다고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삼복의 불볕더위가 그렇다. 덥다고 에어컨을 틀면 냉방병에 걸리기 쉽다. 나도 너도 에어컨을 켜면 외풍기의 뜨거운 바람으로 바깥 기온은 더 올라간다. 갈수록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따뜻해지는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고, 극한 호우가 자주 내린다.

무더위는 맞서서 다스릴 수 있다. 덥다고 냉방된 방안에만 있는 것보다 야외로 나가 아로니아를 따면 기분 좋은 땀이 흐른다. 까맣게 익은 아로니아를 따는 손맛도 좋고, 무더위를 다스리며 딴 아로니아로 주스를 만들고 와인을 만드는 것도 즐거움이다. 일을 끝내고 시원한 지하수로 등목을 하면 무릉도원의 신선이 따로 없다.

아로니아1
검게 익은 아로니아./사진=홍찬선 

햇살을 담뿍 받아 검게 익은 아로니아
왕매미 노래 듣고 가을을 준비한다
소나기 닮은 땀방울 익어가는 와인향

바람이 파주로 불었다
아침저녁으로 문득 가을을 담은 바람이다
여름을 까맣게 기록한 아로니아가 반갑게 맞이하는 상쾌한 바람이 34도 막더위와 소나기 땀방울을 식혔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손과 손, 가슴과 가슴이 박자를 맞추자 바구니가 금세 가득이다
시원한 수박과 막걸리의 추임새에 아로니아는 보름의 기다림에 손가락 걸었다
파주로 분 바람이 무더위를 날리고 아로니아 와인바람으로 솔솔 불었다
불로장생의 영원한 사랑 바람이었다

- 홍찬선, '불로장생의 영원한 사랑' 전문.

아로니아의 꽃말은 불로장생과 영원한 사랑이다. 안토시아닌과 폴리페놀, 카테킨과 탄닌 등의 성분이 많아 노화를 방지하고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또 술을 많이 마신 뒤의 숙취를 해소하고 눈의 피로를 회복시키는 등의 효과가 있다. 그런 아로니아를 따러 길을 나섰다. 원래는 광복절 이틀 전인 8월 13일에 가려고 했는데, 아로니아 농장이 있는 파주에 호우주의보가 내려 광복절로 순연했다.

아로니아 와인
아로니아 와인./사진=홍찬선 

경연학당(庚衍學堂)에서 천자문과 주역(周易)을 함께 배우는 도반(道伴)과 함께였다. 마침 파주 법흥리에 사는 배움 벗 이환(麗桓) 선생이 아로니아 농장을 갖고 있어, 피서(避暑) 겸해서 갔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경험이 있어서였을 것이다. 처음보다 아로니아 따기가 쉽고 즐거웠다.

작년에 딴 아로니아로 만든 와인 향기와 아로니아를 넣어 지은 밥 내음으로 힘들지 않았다. 그런 변화를 사마귀도 알았을 것이다. 문득 갈색 사마귀 한 마리가 내 등으로 날라 오더니 목의 절벽을 암벽 타듯이 올라 모자 끝에 섰다. 승리의 함성을 지르는지, 하늘 향해 두 앞발을 들어 올렸다. 포효하는 모습에, 도반들이 박수치며 함성을 질렀다. 사마귀가 싱긋 웃더니 잘 있으라는 듯 푸르륵 날아갔다.

모자 끝에 선 사마귀./사진=홍찬선 

버마재비의 간택을 받았다

폭우가 지나가 화창한 광복절 오후
파주 법흥리에서 아로니아를 따는데
갈색 사마귀 한 마리가
노오란 내 옷에 얼이 빠졌는지
등으로 날아와 목을 타고 암벽 등반하듯 모자 위로 오르더니
파아란 하늘을 향해 우뚝 선 뒤 푸르록 날아갔다

뒷다리로 서서 앞다리로 수레와 맞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은 용기인지 어리석은 것인지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 뒤에 참새가 노리는 것을 
생각하는 사이 까만 아로니아가 품으로 달려들었다 

사마귀의 간택에 광복절 80주년의 해가 발갛게 익었다
 
- 홍찬선, '사마귀의 간택을 받다' 전문.

아로니아를 따는 중간에 원두막에 앉아 간식으로 옥수수를 먹었다. 밭에서 방금 따 쪄서 입에서 살살 녹았다. 수박과 참외도 마트에서 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선하고 달콤했다. 커다란 봉지에 가득 담은 들깨 잎의 고소한 향기가 가슴과 가슴으로 이어졌다.

손과 손톱은 아로니아로 검붉게 물들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5시. 10시부터 시작한 아로니아 따기와 와인 담기가 끝났다. 시간이 남아 인근에 있는 영집궁시박물관으로 갔다. 간다 간다 하면서 시간이 잘 안 맞아 남겨두었던 묵은 숙제를 했다.

영집궁시박물관./사진=홍찬선 

영집궁시박물관(楹集弓矢博物館)은 활(弓)과 화살(矢)을 전시하는 대한민국 유일의 활 화살 전문박물관이다. 영집(楹集) 5대째 활과 화살을 만들고 있는 궁시장(弓矢匠) 유영기(劉永基, 1936~2023, 중요무형문화재 제47호)의 호다.

경기도 장단에서 태어난 유영기는 15세 때 6.25전쟁이 나자 부친 유복삼(劉福三)과 월남하면서 화살 장비와 민어부레(접착제)만 챙겼다고 한다. 집문서나 패물은 그냥 놓아둔 채였다. 현재는 아들 유세현(劉世鉉)이 이어받았다.

영집궁시박물관 활쏘기 체험
영집궁시박물관 활쏘기 체험./사진=홍찬선 

2001년 5월19일,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국원말길 168에 개관한 영집궁시박물관은 각종 화살과 국궁 자료 및 제작 도구 등 300점을 전시하고 있다. 활과 화살을 직접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으며 활터에서 활을 쏴 볼 수도 있다.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으며, 임진각과 제3땅굴과 연계해 돌아볼 수 있다.

궁시박물관이라고?
태안앞바다에 괭이갈매기들이 알을 낳아 기르는
궁시도(弓矢島)라는 섬을 언뜻 들어본 것 같은데
궁시는 활과 화살을 뜻하는 말일텐데
활과 화살을 전시하는 박물관이 있다는 말인가?
그럼 영집은? 

아로니아를 따러 파주 법흥리에 갈 때마다
가슴에 품었던 궁금증이 풀렸다
영집(楹集)은 궁시박물관을 세운 유영기 궁시장의 호이고
영집궁시박물관은 대한민국에서 오직 하나뿐인 활과 화살 박물관이라는 사실이
6.25전쟁을 피해 월남하면서 집문서와 패물을 포기하고 
오로지 화살장비와 민어부레만을 챙겨 평생 궁시장으로 살았다는 것을
간단해 보여도 130번의 손길이 가야 비로소 화살 하나가 만들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 홍찬선, '영집궁시박물관' 전문.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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