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7월 들어 대한민국이 펄펄 끓고 있다. 한낮 체감 온도가 38도를 훌쩍 뛰어넘었다. 사람 체온보다 높은 열기에 쓰러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할 경우 목숨도 잃는 경우까지 생겼다. 밤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열대야가 이어진다. 사우나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찜통더위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예보다. 더위를 식혀줄 장마가 짧고 싱겁게 끝난데다, 티베트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 등 뜨거운 열기가 대한민국 상공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란다.
여름은 찜통더위 겨울이 따뜻한 건
사는 게 힘들어져 열받는 이 많아설까
냉방기 빵빵빵 틀어 떨어지는 면역력
- 홍찬선, ‘찜통더위’ 전문.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소나기처럼 흐르는 날.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보며 예술의전당 음악당(콘서트홀)으로 향했다. 오늘 연주회는 뉴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 주최의 ‘Classic BIG3 Concert’. 임주희 피아니스트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와 김계희 바이올리니스트의 ‘브루흐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 G단조 작품26’, 그리고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피아니스트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제3번 D단조 작품30’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찜통을 뚫고 가니, 오페라 하우스 옆 분수광장에서 물이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시원하게 뿜어나오며 더위를 달래준다. 그 옆 감나무에선 엄지손톱 만한 감이 통통하게 살이 붙고 있다. 우면산에선 시원한 골바람이 솔솔 불어와 제법 선선하다. 사람은 찜통더위로 헉헉거리지만 자연은 주어진 길을 따라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여유가 거기 있었다
찜통더위를 하늘 높이 날려보내고
열대야를 우면산 숲속으로 되돌려보내는
하얀 물보라가
느려진 시간을 제 박자로 돌려놓고 있었다
그래
여유가 집 나갔다고 넋을 잃는 건 아니었어
레일을 조금만 벗어나려고 하는 다짐만 있다면
곳곳에서 기다리는 여유를 금세 찾을 수 있었어
오래 기다렸다는 듯 여유가 덥석 품에 안겼어
- 홍찬선, ‘예술의전당 음악분수’ 전문.
‘클래식 빅3 콘서트’가 여유를 한껏 되찾아주었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은 나폴레옹이 베토벤이 살던 오스트리아 빈을 점령했던 1809년에 작곡한 곡이다. 전쟁의 고통을 딛고 웅대한 규모와 아름다운 선율이 펼쳐진다.
베토벤은 빈을 점령한 나폴레옹 군의 장교와 만났을 때,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내가 대위법만큼 병법(兵法)에 정통했더라면 당신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라며 울화통을 터뜨렸다는 일화가 전한다.
‘황제’를 협연한 임주희 피아니스트는 9살 때 게르기예프가 지휘하는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정도의 재능을 이날 한껏 뽐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김계희의 연주로 빛을 발휘했다. 브루흐가 1864년부터 1968년까지 4년에 걸쳐 작곡과 수정을 거쳐 완성한 이 곡은 브루흐에게 명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브루흐는 이 곡의 명성에 의해 자신이 더 알려지지 않았다는 고민 속에 살았다.
김계희 바이올리니스트는 제17회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한국인 처음으로 기악부문 1위를 차지하며 세계의 이목을 받은 연주자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가 끊이지 않자, 김계희 바이올리니스트는 앙코르곡으로 답례하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은 볼셰비키 혁명으로 고국 러시아를 떠나야 했던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서 자신을 알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작곡한 곡이다. 무서우리만큼의 테크닉과 초인적 지구력, 상상을 뛰어넘는 예술적 감수성과 시적 통찰력을 요구한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인,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라쉬코프스키는 정교한 테크닉과 내면적 깊이로 어렵다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멋지게 연주한 뒤 앙코르곡까지 연주해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렵다는 건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다
더위 먹은 눈꺼풀이 자꾸만 무거워지는데
언젠가 귓가를 스쳤던 피아노 선율이
가슴에 고여 있던 감정의 선으로 흘렀다
베토벤과 브루흐와 라흐마니노프,
지구 저쪽에서 나보다 100년 넘게 앞서
사랑과 아픔과 외로움을 견디며
피땀으로 만들어낸 음악이 끊겼던 추억을 되살렸다
서로 다른 환경으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서로 다른 희망으로
엇갈렸던 길이 문득 하나로 이어지고 있었다
- 홍찬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시간 넘게 이어진 연주회가 열대야를 날려보냈다. 뜨거웠던 포도(鋪道)가 여전히 따뜻했지만 6월 보름달이 보내주는 미소에 산들바람이 불었다. 모처럼 찾은 예술의전당 여유가 가뭄과 뙤약볕에 메말라가던 삶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 자락의 음악이 있는 여유, 그것은 분명 멋있는 삶의 풍경이었다. 연주회는 그저 어려운 음악에 시달리는 것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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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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