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울산시 울주군에 가면 암각화가 2개 있다. 울산시를 가로지르는 태화강 상류의 지류인 대곡천(大谷川) 바위 절벽에 있는 ‘대곡리반구대암각화’와 2.3㎞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천전리(川前里) 명문과 암각화’가 그것이다.
일반인에게는 반구대암각화가 더 많이 알려졌지만, 천전리암각화가 먼저 세상에 알려졌다. 두 암각화는 2025년 7월12일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2010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지 15년만의 일이며, 한국에서 17번째 세계유산이 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다행한 일이다
좀 더 잘 했더라면 좀 더 일찍 됐을 것이었어도
지금이라도 잘 된 것이다
그 옛날
말은 있어도 글자가 아직 없었을 때
살면서 터득한 삶의 지혜를 아들 손자에게 어떻게 전달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배움터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그 옛날
배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을 엄두도 내기 힘들었을 때
그 엄청난 고래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그림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울주 반구대 암각화가 드디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되었다
그 옛날
우리 동해에 여러 고래가 많이 살았다는 사실과
우리 조상이 거친 바다에 나가 고래를 사냥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암각화
지금 우리가 편리하고자 사연댐을 막아
장마철에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이 없도록 해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남겨줘야 할 것이다
- 홍찬선, '세계유산 반구대 암각화' 전문.
사람은 아주 옛날부터 바위에 그림을 그렸다. 바위그림은 바위에 새겨진 암각화(巖刻畫)와 바위에 채색으로 그린 암채화(巖彩畫)로 나뉜다. 다만 아직까지 암채화는 발견된 것이 없어 바위그림은 암각화를 뜻한다. 암각화는 글자가 출현하기 이전인 선사(先史)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역사시대에 만들어진 마애불(磨崖佛) 각석(刻石) 등과 다르다.
‘대곡리반구대암각화’는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3에 있다. 넓이 8m, 높이 4.5m의 바위에 고래 범 사슴 등 312개 정도의 그림이 그려 있다. 1971년 12월25일에 세상에 알려져, 1995년에 국보 제285호로 지정됐다.
암각화에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 들쇠고래 범고래 상괭이 등 7종의 고래가 그려져 있다. 고래잡이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 이곳이 고래를 어떻게 잡는지를 가르치는 학교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범 표범 늑대 거북 새 사슴 등 20여종의 동물도 등장한다. 암각화는 북서쪽을 향하고 있어 3월부터 11월까지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에 햇볕이 비추면 그림이 더욱 뚜렷하고 입체적으로 보인다.
반구대암각화는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약 6000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 전통의 독보적 증거이자 한국 동남부 연안 지역 선사문화의 발전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유산”이라는 점에서 세계유산 등재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1965년에 건설된 사연댐이 걸림돌로 부상했다. 장마철에 사연댐 수위가 60m가 되면 반구대암각화의 거의 대부분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보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실제로 2020년 9월19일, 반구대암각화를 보러 갔을 때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지나간 직후라서 암각화가 물에 잠겨 제대로 보지 못했다. 2022년에 사연댐에 수문을 2027년까지 만들어 만수위를 암각화가 잠기지 않을 수준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여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통과시켰다.
때를 잘못 골랐다
마이삭과 하이선이 휩쓸고 간 뒤
혹시나 하는 설렘을 담아 서울에서
자동차를 빨리 몰았으나 역시나였다
만 년 전 신석기시대 선조들이 남긴
작품은 무심하게 물속에 잠겨 있었다
가슴이 쓰라렸다
태풍 두 방에 쓰러진 안내판이 아팠고
암각화를 볼 수 없다는 섭섭함보다
국보를, 아니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큰비만 오면 잠기게 만든 개념 없음이
코로나19보다 더 아프게 했다
- 홍찬선, '반구대암각화' 일부.
반구대암각화와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10-2번지에 있다. 1970년 12월24일 동국대학교 불교유적 조사단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전국적으로 알려진 된 게 그때라는 말이다. 넓이 9.5m, 높이 2.7m의 바위에 암각화와 명문(銘文)을 새겼다. 바위 윗부분이 앞으로 25〬 가량 기울어져 처마 역할을 함으로써, 비바람으로부터 암각화와 명문(銘文)이 보호될 수 있게 되었다. 1973년 5월4일, 국보 제147호로 지정됐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어느 한 시기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신석기 시대부터 신라 때까지 오랜 기간 누적된 것이 특징이다. 바위 왼쪽에는 신석기 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동물 그림과 사람이 활을 들고 사슴을 사냥하는 그림 등이 새겨 있다. 위쪽에는 청동기 시대에 새긴 것으로 보이는 마름모와 동그라미 모습의 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또 신라 때 금속도구로 사람 배 용 행렬장면 등을 그린 것도 있다. 지금부터 1500년 전인 525년(을사년)과 539년(기미년)에 새긴 한자도 뚜렷하게 보인다.
525년, 법흥왕(法興王, ?~540)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이 누이와 함께 이곳을 찾아 ‘서석곡(書石谷)’이라는 이름을 붙인 글(원명, 原銘)이 바위의 아래 오른쪽에 있고, 14년 뒤인 539년에 사부지갈문왕의 아내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와 아들(뒤에 진흥왕)이 갈문왕의 자취를 찾아와 왼쪽에 글(추명, 追銘)을 남겼다. 이밖에 귀족과 승려, 화랑들이 이곳을 찾아 남긴 명문과 그림도 확인된다.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끈기 있게 자세히 살펴보면 밝게 보인다.
가는 곳마다 예술이요
보는 것마다 역사입니다
천년을 잠자고 있던
백제의 미소가 어느 날 문득 우리 곁으로 온 것처럼
만 년 전에 그려졌을 바위그림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와서 세계유산이 된 것처럼
아직도 우리의 밝은 눈과 깨어 있는 머리와
부지런한 발걸음을 기다리는 예술과 역사가 많습니다
그 옛날부터 이 땅에 터를 잡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온 조상들의 숨결이 곳곳에 꿈틀대고 있습니다
- 홍찬선, '가는 곳마다 예술이요 보는 것마다 역사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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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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