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4) 여강에서 ‘시간은 빠르게, 세월은 느리게’를 경험하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 (14) 여강에서 ‘시간은 빠르게, 세월은 느리게’를 경험하다
  • 홍찬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25.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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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남한강출렁다리에서
여주 남한강출렁다리에서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삶은 경험이다. 다양한 경험은 삶을 넓고 깊게 해준다. 방안에서 빈둥거리면 삶은 좁고 얕아지면서 쪼그라든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른다.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다 보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면서, 좋은 경험과 추억이 쌓인다. 하루는 짧지만 한 달과 한 해가 길어지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렇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면 시간은 지겹게 지나가지 않는다. 하루는 길지만 한 달과 한 해는 후다닥 지나가는 역설이다.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사진=홍찬선

삼복더위를 뚫고 다시 찾은 여주에서 ‘시간은 빠르게, 세월은 느리게’ 흐른다는 것을 다시 경험했다. 경기도 여주(驪州)시를 흐르는 남한강을 여강(驪江)이라 부르는데, 여강 남쪽의 영월루(迎月樓)에서 만난 바람이 첫 단추였다.

영월루는 본디 조선시대 여주관아의 정문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서양식 건물로 바뀌면서 현재 있는 곳으로 옮겼다. ‘달을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에 맞게 여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영월루 한쪽에 ‘남한강 소식’이란 ‘노래가사비’가 있어 운치를 더했다.

신륵사 깊은 밤에 종소리만 우는데
동대에 어린 꿈을 
너는 어이 잊을소냐
남한강 칠백리를 등지고 떠나올 때 
눈물 많이 흘렸었지
다시 밟을 내 고향아 
남한강아 잘 있느냐

마암대 깊은 밤에 물소리만 처량한데 
옛 놀던 영월루엔
어린 꿈이 날 울리네
양동섬 백사장에 슬피우는 물새야
달빛 실은 뗏목 위에
한숨만이 실렸더냐
고향봄도 실렸더냐

남한강 나루터에 강물만이 처량한데
노젓는 사공들아
고향노래 불러다오
타관 땅 섧고 설어 고향을 울며 볼 때
눈물 많이 흘렸었지
다시 밟을 내 고향아
남한강아 잘 있느냐

- '남한강 소식' 전문, 김태영 작사작곡, 허민 노래.

여주 영월루
여주 영월루./사진=홍찬선

영월루는 마암(馬巖)이라 새긴 절벽 바위 위에 서 있어 그 멋을 더한다. 마암이란 황마(黃馬)와 여마(驪馬)가 솟아났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로, 여주라는 고을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한다. 마암 앞에서 바라보니 여강을 가로지르는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가 햇살에 반짝거린다. 출렁다리를 건너 신륵사로 갔다.

신륵사(神勒寺)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남한강변 봉미산(鳳尾山, 156m) 기슭에 세운 절이다. 고려말 우왕 때 강 건너 마암에서 용마(龍馬)가 나타나 행패를 부리자, 나옹선사(懶翁禪師, 1320~1376)가 굴레(勒)를 가지고 다스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 세종대왕의 무덤인 영릉(英陵)의 원찰 역할도 했다. 신륵사에는 다층전탑과 대장각기비와 조사당 등 보물 8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700살 가까운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주 신륵사 관세음보살
여주 신륵사 은행나무 가지 사이에 보이는 관세음보살 형상./사진=홍찬선

칠백년 은행나무 불법에 통달했나
도탄에 신음하는 중생을 구하고자
지중(枝中)에 관세음보살
두 손 모아 합장 절

강월헌(江月軒) 나옹선사 구룡(九龍)을 몰아내고
봉미산 영강가에 원찰(願刹)을 밝혔으니
오십칠 짧은 인생을
세종대왕 기댔네

- 홍찬선, '신륵사 관세음보살' 전문

여주 조포나루터 표지석
여주 조포나루터 표지석과 위령비./사진=홍찬선

신륵사를 돌아나오며 그동안 너댓번 방문하는 동안 보지 못했던 ‘조포(潮浦)나루터’ 표지석과 ‘위령비’를 보았다. 이곳이 바로 조포나루터가 있던 곳이라고 했다. 조포나루터는 서울의 삼개(마포나루)와 넓개(광나루) 및 여주의 이포나루와 함께 한강의 4대 나루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에서 1963년 10월 23일, 나룻배가 뒤집혀 49명이 익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희생자는 이날 신륵사로 수학여행을 왔던 안양의 흥안(興安)국민학교 5,6학년 38명과 학부모 10명 및 교장선생님 등이었다. 사고는 정원의 2배가 넘는 150명이 탔고, 나룻배를 밀어주던 모터보트의 과속 등, 지켜야 할 당연한 것을 지키지 않아 어처구니없게 일어났다. 사고 뒤에 발견된 일기장에는 희생된 여학생의 설렘이 적혀 있었다.

내일 소풍을 간다.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신륵사에 가면 참 재미있을 거야. 부처님도 있다고 하는데 무슨 소원을 빌까? 중학교 합격? 그렇지 않으면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고… 엄마에게 무슨 선물을 사다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잠이 안온다. - 경향신문, 1963년 10월 24일 자에서

그 여학생의 설렘과 꿈은 순식간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무사히 돌아오게 해 달라”는 소원은 부처님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티 없이 맑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일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위령비를 보고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긴다.

여주 출렁다리와 빛의터널
여주 출렁다리와 빛의터널./사진=홍찬선

서쪽 하늘을 발갛게 익히며 해가 넘어가고 출렁다리에 조명이 들어오고 있다. 오늘은 8월30일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6시30분부터 열리는 ‘여강 썸머 나잇 버스킹’의 첫째 날이다. 정모세 피아니스트와 안성미 보컬리스트의 감미로운 음악 속에 삼복의 불볕더위가 저만치 물러났다.

마음이 구름으로 통했다
바람과 바람이 함께 피운 구름이
봉황새로 힘차게 날아올랐다

삼복더위다 불볕더위다 더위먹었다며
아우성에 아우성이 겹치는 팔월
여강 신륵사 전탑 위로 
땅과 사람과 하늘이 하나 되고

뜨겁게 타올랐던 태양이 
윤유월의 반달에게 임무를 넘기자
세종대왕이 빙긋이 웃으셨다

신륵사와 금모래은모래 강변유원지를 이어주는
여주남한강출렁다리가 살랑살랑 콧노래로 물었다 
너희가 여강의 바람맛을 알아?

- 홍찬선, '여강에서 바람맛을 즐기다' 전문.

세월은 두루마리 화장지 같다고 한다. 처음에는 느릿느릿 흐르다가 조금씩 빨라진 뒤 절반 넘어 풀리면 후다닥 풀린다. 그리곤 끝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10대는 시속 10킬로로 흐르다가 40대는 40킬로, 60대는 60킬로를 가리킨 뒤 70대 이후는 KTX, 제트기, 로켓처럼 날아간다.

왜 그럴까. 50대 이후로는 뭔가 기억에 남을만한 새로운 것이나 의미있는 것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은 어제처럼, 내일은 어제와 비슷한 일로 흐지부지 보내니 재미가 없다. 어제 봄을 맞았나 했는데 벌써 삼복더위에 헉헉댄다. 또 하루 지나면 귀뚜라미 노래를 들을 겨를도 없이 엄동설한에 두 손을 호호 불고 두 발을 동동거린다.

여주 남한강 출렁다리를 건너 신륵사와 영월사를 오가며 길고 긴 여름날을 짧고 길게 보내는 것. 바로 불볕더위를 시원하게 다스리며 ‘시간은 빠르게, 세월은 느리게’의 삶을 만드는 지혜다.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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