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풍경이다. 풍경은 사람과 상관없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사람의 발길과 눈길과 마음길이 닿으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다가온 풍경은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역사가 된다. 28년 동안 기자로 활동하다 ‘100세 시대의 작가’로 변신한 홍찬선 시인이 발품 팔아 얻은 풍경을 시로 풀어 독자들을 찾아간다. ‘홍찬선 시인의 시로 보는 세상 풍경’은 하루하루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생각을 줄 것이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왼쪽 10시 방향의 봉우리가 가칠봉입니다. 6.25전쟁 때 그곳에서 전투를 벌이던 미군이 해안면을 바라보고 화채 그릇처럼 보인다며 ‘펀치볼(punch bowl)’이라고 해서 그 이름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가칠봉 오른쪽 봉우리가 김일성고지이고, 정면에 보이는 높은 산은 운봉입니다. 운봉 오른쪽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 금강산의 비로봉이 보입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펀치볼마을’과 북한 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에서 차분하게 설명하는 관광안내원의 설명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 사이의 거리는 불과 1000~1200m. 바로 눈앞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산과 그 사이를 상처처럼 드러난 남북의 철책선을 보니, 조금 전 양구통일관 앞에서 읽은 '휴전선 아래 우리 마을'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내가 사는 마을은
대암산 아래 작은 마을
저 너머 북녘하늘 바라보며
소리쳐 부르면
이산가족 달려나와
손짓할 것 같은데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이 없어요
가칠봉 정상에 올라
산 아래 북녘땅 바라보며
소리쳐 부르면
북한친구 달려나와
뛰어놀 것 같은데
아무리 불러도
메아리만 대답해요
우리 마을 뒷산 너머
바로 저곳이
가고파도 갈 수 없는 북녘 땅
북한에 두고 온
이산가족 그리며
휴전선 가까운 이곳에서 살자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우리 가족만은 알 수 있어요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할머니의 긴 한숨 거두고
북한 친구 함께 뛰놀게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휴전선 아래 우리 마을
제일 신나게
- 김은숙, '휴전선 아래 우리 마을' 전문, 양구통일관 앞 시비에서.
'휴전선 아래 우리 마을'은 양구해안초등학교 6학년에 다니던 김은숙 어린이가 쓴 시다. 펀치볼에서 태어나 하루라도 빨리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는 할머니를 보면서, 북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통일이 어서 오라고 노래하는 가슴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김은숙 어린이의 시에 눈시울을 적시며 을지전망대를 돌아서 나오는데 노산 이은상(李殷相, 1903~1982) 시인의 시 '그대 왜 거기에 가 섰나'가 다시 가슴을 적셨다.
그대 왜 거기에 가 섰나
한 뼘 가슴속엔 백두산만한 심장이 뛰고
다섯 자 몸뚱이 속엔 압록강 만한 혈관이 흘러
거기에서 조국에서 조국에의 사랑이 불타오르지 않던가
다시 한 번 물어본다
그대 왜 거기에 가 섰나
그대 대답하게
큰 목소리로 대답해보게
내 생명 조국과 함께 하려고
나 이곳에 와 섰노라고
- 이은상, '그대 왜 거기에 가 섰나' 전문.
가슴뿐만 아니라 머리에도 기억하기 위해, 초병(哨兵)에게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물어보니 안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베껴 적었다. 일행에 뒤처지지 않도록 서둘렀다. 다 쓴 뒤 일행을 뒤따라 나가니 펀치볼이 한눈에 펼쳐졌다. 을지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포토존’이다. 북한 쪽을 사진에 담을 수 없는 아쉬움을 펀치볼에 듬뿍 담았다. 짧게 보고 돌아가야 할 시간, 문득 철조망 사이로 핀 붓꽃이 다가왔다.
네가 보랏빛으로 수줍게 웃고 있었어
유월이면 산과 들에서 수없이 만난 네가 반가워
스마트폰을 들이대려는 순간 깨달았어
너의 미소가 왜 환하지 않고 조금 어색했는지
그래, 그것은 아픔이었어
네가 두 팔 벌려 나를 맞이하려 해도
보이지 않는 무장(武裝) 위에
보이는 평화가 아슬아슬하고
해와 바람과 구름과 새만
새카만 가슴을 하얗게 어루만지며
지뢰와 철조망과 딱딱하게 굳은 이념에
허리가 잘리고 발길이 끊어진 고통,
그래도 너는 미소를 잃지 않았어
땅 밑으로는 물이 흐르듯
쏟아지는 땀방울 속에서 뜻이 자라고
무너지는 가슴과 가슴이 모이고 있다며
포기하지 말라고 전하려는 것이었어
붓꽃의 말과 사람의 말이 달라도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울긋불긋 가을이 오듯
아프더라도 지긋이 다음을 기다리라고 알려주는 것이었어
- 홍찬선, '철책선에 핀 붓꽃' 전문.
붓꽃이 전한 말을 듣고 돌아서는 데 ‘해병대 김일성고지작전 전몰영령진혼제기념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는 ‘을지십자탑’이 있고, “저 북녘땅에 사랑과 평화의 복음이 깃들도록 이 십자탑을 세웁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참으로 아픈 곳이었다.
70여 년 전, 이곳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해병대 형님들 덕분에 지금 내가 평화롭게 숨 쉬고 있음에 새삼 감사드리며,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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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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