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홍찬선 칼럼니스트 = 멀리 갈 것 없다. 푹푹 찌는 불볕더위에 꽉꽉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그저 시원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양재 매헌시민의숲에 가면 된다. 매헌기념관에서 “사나이가 한 번 집을 나서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1932) 의사의 “장부출가생불환(장부출가생불환)”의 나라사랑 정신을 배우며 더위를 다스린다.
사람은 왜 사느냐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산다
보라! 풀은 꽃을 피우고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나도 이상의 꽃을 피우고
열매 맺기를 다짐하였다
우리 청년 시대에는 부모의 사랑보다
형제의 사랑보다 처자의 사랑보다도
더 한층 강의(剛毅)한 사랑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나의 우로(雨露)와 나의 강산과
나의 부모를 버리고라도
이 강의한 사랑을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 길을 택하였다
- 윤봉길 의사의 어록 중에서
매헌기념관을 돌아 나와 오른쪽 숲으로 들어가면 윤봉길 의사를 기리는 시비와 숭모비, 그리고 동상이 있다. 시비에는 윤 의사가 젊었을 때 한가위를 맞아 연 시회(詩會)에서 장원을 차지한 한시가 새겨 있다.
“不朽聲名士氣明 士氣明明萬古晴 萬古晴心都在學 都在學行不朽聲(불후성명사기명 사기명명만고청 만고청심도재학 도재학행불후성)”이란 한시가 윤 의사의 필체로 남아있다.
“길이 드리울 그 이름 선비의 기개 밝고/ 선비의 기개 밝고 밝아 만고에 맑으리/ 만고에 맑은 마음 모두 배움에 있으니/ 그 모두가 배우고 실천함에 있으니 그 명성 스러짐이 없으리”.
그렇게 다짐한 윤 의사는 1932년 4월29일, 상해 홍구(虹口)공원에서 전승(戰勝) 행사를 하는 일제의 수뇌부에게 폭탄을 던졌다. 이 의거로 침략자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대장과 가와바타 사다지 상해일본거류민단장이 폭사했고, 시게미츠 마모루 주중공사는 오른쪽 다리를, 우에다 중장은 왼쪽 다리를 잃었으며, 노무라 중장은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등 많은 인사가 중경상을 입었다.
윤 의사는 홍구공원거사를 이틀 앞두고 홍구공원을 답사한 뒤 '홍구공원에서 푸른 풀을 밟으며'라는 시를 지었다. 윤 의사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처처(萋萋)한 방초(芳草)여
명년에 춘색(春色)이 이르거든
왕손으로 더불어 같이 오게
청청한 방초여
명년에 춘색이 이르거든
고려(高麗) 강산에도 다녀가오
다정한 방초여
금년 4월29일에
방포일성(放砲一聲)으로 맹세하세
- 윤봉길, '홍구공원에서 푸른 풀을 밟으며' 전문.
윤봉길 의사를 뵙고 숲길을 걷는다. 빽빽한 나무가 뜨거운 햇볕을 가리고, 우렁찬 매미들의 합창이 무더위를 가시게 해준다. 에어컨으로 냉방병에 걸리지 않고, 도로 체증으로 화딱지가 나지도 않는, 자연과 더불어 더위를 다스리는 멋진 피서다.
그대가 있어 푹푹 찌는 불볕더위를 견딜 수 있었다
자주 들르지는 못해도 늘 마음 한쪽 자리하고
울화통 터지는 일 있어도 항상 거기 있는 그대!
떠올리며 막걸리 한 잔에 훨훨 털어 버렸다
스물넷 꽃다운 나이에 눈에 밟히는 두 아들,
남겨 두고 돌아올 수 없는 길 웃으며 떠난 님!
덕산이 아니라 양재매헌시민의 숲에 자리잡음이
복이였다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지뢰 복
어제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
시민의 숲이 38선 같은 포도로 나뉘어
그대는 북쪽에 늠름하게 서 있고
남쪽엔 다른 세계 펼쳐 있었다
6.25전쟁 때 유격백마부대의 희생자와
1987년 버마에서 KAL 858기 희생자와
19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희생자와
2011년 7월27일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들이
86아세안게임과 88올림픽을 위해 만들어진
양재매헌시민의 공원 품에 다소곳이 안겨 있었다
- 홍찬선, '양재매헌시민의 숲' 전문.
양재매헌시민의 숲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를 넘어 남쪽으로 가면 매헌기념관 쪽과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먼저 만나는 것이 ‘유격백마부대충혼탑’이다.
유격백마부대는 1950년 11월22일, 평안북도 정주군과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유격부대다.
김응수를 부대장으로 한 대원 2600여 명은 군번도, 계급도, 무기지원도 없는 열악한 상태에서, 압록강 청천강 하구와 대화도 신미도 등에서 공산군과 500여 차례 전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적 사살 3000여 명, 중공군 생포 600여 명, 반공애국청년과 민간인 구출 1만8000여 명, 철도 터널 교량 등 파괴 등의 전과를 올렸다. 552명의 전사는 숭고한 나라 사랑이었다. 그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탑이 바로 ‘유격백마부대충혼탑’이다.
유격백마부대를 아시나요?
처음 들어보는 부대라고요
양재매헌시민의 숲에 가 보세요
백석 시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 2600명이
자발적으로, 군번도 없고 계급도 없이
공산군들과 유격전을 벌여
엄청난 전과를 올리는 동안
오백 쉰 두 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에
고개 숙이실 거예요
자칫 잊기 쉬운 역사와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몸바친 분들의 고마움을
새록새록 새기게 될 것이고요
이제 유격백마부대를 확실히 아셨지요?
- 홍찬선, '유격백마부대를 아시나요' 전문.
유격백마부대 전사자들의 명복을 빌고 양재매헌시민의 숲을 다시 걸으며, 억울한 죽음들을 생각한다. 1987년 11월29일, 이라크의 사담국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KAL) 858편 보잉707여객기가 버마 상공에서 폭발했다. 이 사고로 승객 104명과 승무원 11명 등 탑승객 115명이 모두 사망했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의 특수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액체시한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 그때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양재매헌시민의 숲에 있다.
1995년 6월29일 오후 5시57분 경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붕괴로 502명이 죽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재산 피해액은 약 27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분들의 명복을 비는 위령비도 이곳에 있다.
2011년 7월27일 우면산에 내린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 16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당했다. 그분들의 위령비가 2018년에 이곳에 세워졌다. 비 앞에 임방춘 시인의 추모시 '우면산의 눈물'이 새겨 있다. 이 땅에 억울한 죽음으로 눈물 흘리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빈다.
이 고운 산에 오르면
그 해 7월
빗속에서 떠난 임
눈에 삼삼
목이 메이고
심장이 파열된 채
내 가슴이 부서져
이제는
한 줄기 바람으로 돌아와
야윈 볼에 감긴다
햇살조차 흐릿한 하늘가
세찬 먹구름이
분노처럼 천지를 덮어 오는데
그날도
애써 외면하더니
맞장구치더니
강 건너 불 보듯 하더니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내 눈물 옹이가 되고
산사태교훈 헛되이 말라는
바람소리
빗소리…
- 임방춘, '우면산의 눈물' 전문.
-
홍찬선 칼럼니스트
시인 겸 소설가. 충남 아산 출신으로 천안고,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과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자를 하면서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과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 성균관대학교 성균인문동양학아카데미 등을 수료했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 역임한 뒤, 100세 시대에 제2인생을 살기 위해 2017년 7월부터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한 뒤 시집 ‘틈’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생명과 사랑’ 등 19권과 부부시화집 ‘그 섬에서 1박2일’ 등 2권을 출간했다. ‘연인’에서 소설 등단(2019)해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장편소설 ‘백석의 불시착’도 출간했다.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 경제분야 저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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