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급류(정대건 지음, 민음사, 2022)
2023년 봄 즈음,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급류'를 읽었다. 2년만에 책을 다시 꺼냈다. 그 사이 책은 국내 소설 순위 상위권에 올라와 있었다. 무엇이 22년의 '급류'를 25년에 주목을 받게 했을까?
여기 두 인물이 있다, 도담과 해솔. 그리고 또 두 인물이 있다. 도담의 아빠와 해솔의 엄마. 도담과 해솔은 편부모 슬하에서 자랐고, 인생의 유일한 보호자인 아빠와 엄마가 죽음으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도담과 해솔의 관계도 어그러진다. 도담은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해솔을 밀어낸다. 모질게 말하고, 피하고, 절제되지 않은 감정을 내뱉는다. 사실은 그것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 줄 모른 채.
'급류'는 기본적으로 사랑 이야기이다. 그것도 비극적인,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플롯의 형태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어떤 일을 계기로 헤어지고, 각자 다른 연인을 만났다가 자신의 감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명시되진 않았지만) 다시 결합하고 희망이 비추는 엔딩으로 끝난다.
어찌 보면 진부한 이 책은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써진 듯하다. “너는, 너를 용서했니?” 비극으로부터 12년이 지난 뒤, 도담은 해솔에게 묻는다. 결국 작가는 용서를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말이다. 상실감과 고통은 이루어 말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수많은 ‘도담’에게 전하는 하나의 메시지인 셈이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사고가 아니어도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가 말하듯 우리는 누구나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흐르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트라우마든 후회이든, 실수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에선 온전히 그 몫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그렇게 도담처럼 우리도 속에서부터 자신을 갉아먹으며 문드러진다. 그래서 이 책이 다시금 주목받는 게 아닐까. 그 잘못이 너의 탓이 아니라고, 자신에게 스스로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어서. (윤인혁 / 공연기획자·문화예술평론가·비평연대)
■ 나는 고발한다(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책세상, 2020)
1898년 1월 13일, 에밀 졸라는 신문 ’로로르(L’Aurore)‘지에 당시 펠릭스 포르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 형식의 긴 글을 발표한다. ‘공화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라는 제목의 이 글은 ’로로르‘의 편집장인 조르주 클레망소의 권유에 따라 이렇게 바뀐다.
’나는 고발한다(J'accuse)‘
3일전,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인 에스테라지 소령이 조작된 증거와 졸속 재판을 통해 무죄석방 된 것에 대해 분노한 졸라의 목적은 단지 하나. 사건의 진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테레즈 라캥‘ ’제르미날‘등의 소설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지식인이었던 졸라의 글은 커다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결국 드레퓌스는 1906년 재심을 통해 무죄와 함께 복권되어 군에 복직하였다.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2년에 걸쳐 프랑스 국민을 좌우 대결의 소용돌이에 넣은 ‘드레퓌스 사건’은 100년이 넘은 지금도 저 멀리 프랑스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반복되며, 졸라가 그토록 외쳤던 진실을 위한 행동과 실천은 지금도 누군가의 생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졸라의 글을 읽으며 떠오르는 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졌지만 밝혀지지 않은 사건의 진실들. 그래서 졸라의 글은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졸라는 이 글을 발표한 뒤에 신변의 위협으로 망명까지 택하고 결국 가스중독이라는 의문의 죽음까지 이르게 되지만 그의 삶은 증명한다. 진실은 밝혀진다라고.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오판을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 그것을 하지 못한 것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다. 이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 인정에 괴로움과 망설임이 따랐다는 고백까지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단 국가적 사건에서부터 개인의 삶에 이르기까지 잘못을 인정하고 되돌리려는 노력이야말로 퇴보가 아니라 진전이다.
“사법적 오판은 슬픈 일이지만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법부가 틀릴 수도 있고, 군부가 틀릴 수도 있다. 여기서 군부의 명예가 실추되었다는 말이 왜 나오는가? 오판이 내려졌을 때 시급한 단 하나의 의무, 그것은 조속히 오판을 시정하는 것이다.
결정적 증거 앞에서도 오류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날, 바로 그날 진정한 과오가 시작되리라. 사실 어려운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오판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오판을 인정하는 데 괴로움과 망설임이 있었다는 것을 시인할 결심을 하는 날, 바로 그날 만사가 형통하리라. 그 점을 인식하는 이는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최여정 / 작가·문화평론가·비평연대)
■ 프로그래머 철학을 만나다(유석문 지음, 로드북, 2014)
“누구나 승률 100%의 삶을 살 수 없으므로 자부심과 자존심의 상승과 추락은 피할 수 없고, 이 과정에서 인간의 내면은 피폐해진다.”
이 문장은 책을 읽는 내내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았던 구절이다.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청년들이 일과 경쟁에서 물러나 '나홀로'를 선택하는 사회적 흐름 속에서, 나는 그 원인을 단순한 의지 부족이나 회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소소한 성공’을 경험하지 못한 채 자존감이 무너진 결과라고 느낀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미 훌륭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에도 자신을 낮춰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아무리 “정말 대단하다”고 말해도 “이것만 할 줄 알아서 뭐해”라고 답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이는 개인의 겸손이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실적 중심, 결과 중심의 사회가 만들어낸 자아 인식의 왜곡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한때 내가 해낸 일들에 대해 스스로 폄하하고, 비교 속에서 자주 위축되곤 했다. 그럴수록 도전은 두려워졌고, 실패는 나의 본질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책은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바로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하고, 기대치보다 실천 자체에 의미를 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로 다가왔다. 예를 들어,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보다 '제출했다는 행위 자체'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사고 전환의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당장의 성과를 보장하진 않지만, 자기 효능감과 내면의 회복 탄력성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비교에서 자유로워지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이 생긴다. 이는 결국 다시 외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프로그래머, 철학을 만나다'는 단순히 프로그래머를 위한 철학 책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비교와 성과 압박 속에서 흔들리는 현대인에게, 사고의 전환과 내면의 단단함을 회복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소소한 성공을 발견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출발점이 되어줄 수 있다. 내면의 변화는 외면의 삶을 바꾼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작은 실천에서부터 비롯된다고 믿는다. 오늘 하루도 이 책을 마무리한 성공감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 (강민지 / 문화평론가·프롬레코드대표·비평연대)
■ 불변의 법칙(모건 하우절 지음, 이수경 옮김, 서삼독, 2024)
“조급 X, 부지런 O.”
대학 시절, 동기의 자리에 붙어 있던 짧은 문구였다. 이 담백한 한 줄이, 지금까지도 내 뇌리에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아마 현재의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부지런함은 삶을 밀고 나가는 지속적인 힘이지만, 조급함은 당장의 결핍을 채우려는 불안의 반사작용이었다. 내 성취의 과정 속엔 항상 조급함이 함께했고, 그 불청객은 득보다 더 많은 실을 주곤 했다.
현대 사회는 조급하다. 기술은 어제보다 빠르고, 사람들은 내일의 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배운다. AI 혁명 이후, 압박은 더 노골적으로 작동한다. 모든 사람이 AI 전문가가 되어야 하며, 한 걸음만 늦어도 도태될 것이라 경고한다. 이러한 강박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예측’을 시도하게 만든다. 무엇이 바뀔까, 언제 변할까, 그 변화에 어떻게 올라탈 수 있을까. 예측은 조급함의 다른 이름이 된다. 불확실성을 예측으로 감당하려 하지만, 실상 그것은 불안을 잠시 잊기 위한 자구책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바뀔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바뀌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일이다. 본질은 표면 아래서 늘 반복된다. 기술은 진화하고 환경은 변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집단적 반응은 달라지지 않는다. 탐욕과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민감성, 소속감의 본능, 사회적 비교와 설득에 흔들리는 심리. 이 모든 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불변하는 것을 아는 것, 흔들리지 않는 나만의 인생관을 세워 나가는 것. 그때 비로소 우리는 조급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보다 명료한 대비와 준비의 자세를 가질 수 있다.
모건 하우절은 세계를 견인하는 거인들의 통찰과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토대로 23가지의 ‘불변의 법칙’을 소개한다. 조급함과 불안 사이에서 헤엄치는 당신에게, ‘불변의 법칙’은 등대가 되어 선명한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설명문 / 건축설계 및 공간디자이너·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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