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관광객의 철학(아즈마 히로키 지음, 리시올, 2025)
그야말로 대혼돈의 시대이다. 퇴근길 서울 시내, 혹은 주말 주요 국가기관 근처를 지나다보면 현대사를 목격하는 동시에 군집된 다원화된 끈적한 욕망 또한 저주파의 진동처럼 느낄 수 있다. 이 진동이 주는 혼란속에, 우리가 맞이할 체계가 사라진 국가와 사회에 대해 매일 수백개의 스피커가 경고한다.
복잡한 마음으로 '관광객의 철학'을 집어든다. 이 책은 관광에 대해 말하는 책이 아니다. 철학 이론을 다루거나 철학 이론을 활용한 긍정의 말씀을 전하는 자기계발류의 서적도 아니다. 정치철학서라고 하기엔 저자조차 책에서 언급하듯, 논점과 논거사이의 연결이 느슨하다.
하지만 저자는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 자본주의 아래 상생하는 개념들로 보편가치가 상실된 사회에 대안적인 정치 사상을 찾는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관광객처럼 살기’이다. 관광객의 정체성은 이중으로 구성된다. 소비하며 잠깐동안 체류하는 존재인 동시에 다른 세계에선 노동하며 거주하고 집단을 이루어 산다. 저자는 이 모순적인 구조의 정체성을 통해 20세기 철학의 관념에서 벗어나 모순을 통해 소통하기를 제안한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 원론들을 방대하고 아낌없이, 시원하게 인용하며 주저하지 않는 저자의 태도가 연대하는 존재로서의 위로를 준다.(이수련 / 비평연대)
■ 그런 세대는 없다(신진욱 지음, 개마고원, 2022)
국민연금 개혁이 졸속으로 통과되니, 오래전에 읽은 마르크스의 책이 생각났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도입부에선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지만, 역사가 만들어지는 여건 자체는 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근데 마치 이 상황은 '먼저 온 사람들'이 '나중에 온 사람들'의 여건까지도 마련해주려는 것 같다. 역사적 여건까진 모르겠지만, 경제적 여건이 이전보다 더 불확실하게 된 건 사실이다.
이 책은 한국사회의 세대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책이다. 세대갈등은 정치적 문제의 층위에서 보면 많은 경우 핵심이라기보단, 진짜 문제를 가리는 데 이용된다. 국민연금 개혁이 통과되자마자 보수의 다양한 정치인들이 우후죽순으로 시끄러워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세대론을 넘어 우리가 진짜 문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 커즈와일의 말처럼 2042년에 특이점이 와서 인류가 모두 영생하게 된다면, 이런 식의 세대갈등이 사라지게 될까? 죽음이 사라진 세계에서도 국민연금 개혁은 이런 식으로 통과될까? 그 세계도 ‘은퇴’가 사라지진 않을 테니 똑같을까?(맹준혁 / 출판편집자·콘텐츠 기획자)
■ 꽃괴물(정성훈 지음, 한솔수북, 2024)
정성훈 작가의 그림책 ‘꽃괴물’은 제목부터 봄과 참 잘 어울린다. 불을 좋아하고, 불을 뿜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 책의 화자 ‘괴물’은 아주 솔직하고 순수하다. 하지만 새로운 섬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 불이 아닌, 우연히 괴물의 몸속에 들어간 ‘꽃’을 사랑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진짜 내 모습을 숨긴 적이 있지 않은가.
정성훈 작가는 서양화를 전공한 섬세한 감각으로 색과 구도, 캐릭터의 표정 하나하나를 채운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그 안에는 ‘진짜 나’와 ‘관계 속의 나’,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따뜻하게 녹아 있어 아이는 물론 어른의 마음까지 사로잡는다. ‘꽃괴물’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에도 ‘나다움’을 잃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그 ‘나다움’을 어떻게 조율하고 나누느냐에 따라 관계는 전혀 다른 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에게는 자기표현의 용기를, 어른들에게는 관계의 성찰을 선물한다.
꽃과 불, 친구와 나, 다름과 조화를 하나의 이야기 안에 이토록 사랑스럽게 풀어낸 그림책이 또 있을까. 불을 뿜는 괴물과 꽃이 하나가 되어 마침내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불로, 친구들이 좋아하는 꽃을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순간까지 꼭 당도해 보길 바란다.(김미향 /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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