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 (김종진, 효형출판, 2024)
“건축적 컨셉이 뭐니?”
“음... 공간을 구성하는 벽과 슬라브, 기둥에서 건축적인 컨셉이 나타났으면 좋겠어.”
건축학과 4학년 설계 수업에서 교수님께 들은 이 크리틱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만큼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돌아보면 2학년 이후부터 나는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통해 형태를 고려하고, 그로부터 분위기와 건축적 개념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잊고 있었다.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형태 안에서 살아간다. 지구는 완벽한 구의 형태고, 새해 아침이면 사람들은 수평선, 호라이즌 위 일출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향한다. 등산 중 저 멀리 펼쳐진 능선을 바라보면 부드럽게 이어진 곡선이 다가온다. 우리는 매일 형태를 마주하지만, 그것들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책은 형태를 수평, 수직, 경사, 곡면, 기둥, 그리드, 구, 원, 정육면체, 비정형—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각의 형태는 자연을 근거로 삼으며, 건축과 예술, 종교, 철학과 연결된다. 독자는 형태의 본질뿐 아니라, 그것이 사회 곳곳에 스며든 흔적도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형태란 실체하지만 실체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사물을, 그 자체를 감각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다. 이를 통해 세계에 대한 상이 만들어진다.”
읽기 전이었다면 이 문장에 쉽게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만화 속 치즈의 구멍이나 수건돌리기를 위해 둥글게 앉은 자리에서조차 공간성과 형태를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어떤 형태의 공간을 짓고,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결국 이러한 감각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현대 사회는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 AI를 통해 이미지도 쉽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큼 형태의 본질에 대해서 잊어서는 안 된다. (김재훈 /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저, 김병욱 역, 가디언, 2024)
도서관에 가면 읽을 책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즐거우면서도, 평생 이 중 절반도 읽지 못하고 죽을 거란 사실에 짓눌린다. 때론 이런 갑갑함이 책 한 권을 읽을 때에도 올라온다. 어떤 책이든 내가 열 번을 정독한다고 해서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에 대해 감히 왈가왈부하기 위해선 바보가 될 용기를 내야 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의기소침한 독서가에게 용기를 북돋는다. 저자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열띤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책에 관한 추천사나 카탈로그만 읽어도 그 책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교양은 그 책이 위치한 지적 지형도를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 또 어떤 책은 제대로 읽지 않고 훑기만 해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다독이 작가를 망쳐놓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다독과 정독이 신성시되는 사회에서 저자의 이런 주장은 상당히 허무맹랑해 보인다. ‘그래서 대충 읽어도 그만이라는 거야?’ 하는 반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에 압도되지 않고 자유로이 가지고 놀기 위해선 분명히 필요한 태도다. 저자가 읽지 않은 책, 읽고 잊어버린 책, 소문만 들은 책들을 겁 없이 쥐락펴락하는 태도는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수없이 쌓인 미개봉 책탑에 대한 압박은 줄이고, 죄책감 없이 독서에 뛰어들게 하는 게 저자의 비밀스러운 의도였을지도 모르겠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 군, 인권 열외 (김형남 저, 휴머니스트,2022)
다들 군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선진 병영이라는 일환으로 생활관 개선, 월급 인상같이 처우가 좋아진 점도 있지만, 아직도 ‘군 인권’ 만큼은 50년대 쓰던 수통처럼 바뀌지 않았다.
군인권센터 인권활동가인 저자는 ‘사람답게 존중받는 군인이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다(14쪽)’ 고 말한다. 책에 언급된 윤승주 일병, 이예람 중사, 홍정기 일병, 변희수 하사와 언급되지 않은 장병들은 군대에서 ‘사람’이 되지 못하고 흙이 되어 돌아왔다. 선임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상관의 성폭력으로, 군인의 나태한 대응으로, 성별 전환에 대한 거부와 부당한 대우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방의 의무라는 신성함을 씌울 때는 언제고, 막상 들어갔을 땐 싼 값에 사들여 홀대받는 장병들의 상처는 아물긴 커녕 자꾸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군대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한 군인권센터는 휴대폰 사용을 비롯하여 공관병 폐지, 병가 제도 개선, 영창제 폐지 등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인권활동가인 저자의 시선으로 기록한 이 책은 앞으로의 군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지 고민한 이정표라 볼 수 있다.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 최소한 군은 '정말로 좋아졌다' 는 진심어린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 편집자의 사생활 (고우리, 미디어샘, 2023)
그녀가 창업한 출판사 ‘마름모’의 캐치프레이즈는 “평행하는 선들은 결국 만난다”이다. 읽는 사람을 순식간에 궁리로 내모는 기이한 글귀. 수학자가 봤으면 질겁을 하겠다. 그의 명함에 적혀 있던 문장은 얼핏 말장난처럼 보였다. 하지만 생각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할 때마다 이 짧은 문장의 의미는 변했고, 변했으며, 또 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 마름모!’ 하며 손뼉을 쳤다. 똑같은 간격으로 평행하는 선 두 쌍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달려오다 만나면, 그렇다! ‘네 변의 길이가 모두 같은 특별한 도형’ 마름모가 만들어진다. 마름모처럼 철저하고 감동적인 균형이 또 있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 책도 마름모다. 책 만드는 고우리와 글 쓰는 고우리, 평행하던 그 둘이 결국 만났으니까 말이다. 가벼운 농담 같은 말투지만, 맹렬한 위트와 격렬한 사유를 똑같은 변의 길이로 담고 있는 책이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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