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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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연대] 이솔림·황예린·백희성·배희주·김상화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다산초당, 2024)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다산초당, 2024)

살면서 각자 감당해야 할 불행이 있다. 그 몫은 온전히 한 사람의 것으로, 피해 가거나 누군가 대신해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불행은 공평하다. 그러나 불행의 크기만큼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닥친다.

유럽의 지성 슈테판 츠바이크를 찾아온 불행도 그런 것이었을까. 1942년, 세 차례의 이민과 망명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의 미공개 에세이 아홉 편이 이 책에 담겼다. 유작과도 같은 이 글에서 츠바이크는 시종일관 따뜻하고, 부정한 세상을 향해서는 불이 일듯 뜨겁다. 삶을 끝내던 순간 차갑게 식어갔을 그의 몸과 대비되어 더 아리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츠바이크의 삶에 들이닥친 2차 세계대전은 "작은 심장 하나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었다. 자신의 시대를 "엄청난 고통의 시대"라 명명한 그는 더 이상 연민할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동시대 사람들을 글로 조용히 위로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각자의 불행을 견뎌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짧은 글 묶음을 선물하고 싶다.(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이솔림

■ 쓸수록 선명해진다 (앨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옮김, 프런트페이지, 2025)

쓸수록 선명해진다(앨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옮김, 프런트페이지, 2025)

AI가 무섭도록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 우리는 왜 스스로 글을 써야만 할까? ‘쓸수록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처 몰랐던 자신의 내면세계를 탐험하고, 외연을 한층 더 확장할 무기로써 ‘글쓰기’를 독자들에게 쥐여 준다. 이 무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아주 단출하다. 빈 종이와 한 자루의 필기구, 그리고 5분 정도의 시간. 간소한 준비물들만 가지고도 더 깊고, 넓은 나의 세계로 데려가는 방법을 소개한다.

무엇보다도 빈 종이만 보면 무엇을 써야 ‘적절할’지 몰라 머릿속이 텅 비는 당신에게 걸린 저주를 풀어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을 것.’ 한번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어떤 이유로도 끊기거나 망설이지 않기를 당부한다. 그 이유가 설사 잘못된 맞춤법일지라도, 혹은 누군가 들으면 야유를 보낼 아재 개그일지라도.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를 찾는 것에 몰두하는 지금, 글쓰기 앞에만 서면 딱딱하게 얼어붙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생각이 흐르는 대로 글을 써 내려가는 자유로움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만나는 짜릿함을 맛보게 해주는 건 물론,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 걸맞은 새로운 당신에게로 안내할 테다.(황예린/출판마케터·문화비평가·비평연대)

황예린<br>
황예린 

건축, 300년 (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23)

건축, 300년(이상현 지음, 효형출판, 2023)

건축을 볼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이 건물은 왜 이렇게 생겼지?” 어떤 건물은 예쁘고, 어떤 건물은… 음, 그냥 이상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이해 못 하는 건물일수록 전문가들은 “이거 명작인데?”라고 말한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건축, 300년’은 이 미스터리를 풀어주는 책이다.

이 책은 짜증날 정도로 복잡한 건축 역사를 아주 간단하고 명쾌하게 설명한다. 예를 들어, 모더니즘을 ‘단순한 형태 + 장식 배제’라고 정의하면서, 왜 그렇게 됐는지를 아주 현실적으로 풀어낸다. 쉽게 말해, “전쟁 나고 다 무너졌는데, 장식 따위에 돈 쓸 겨를이 어디 있어? 빨리 싸고 튼튼하게 지어야지!”라는 상황이었던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도 갑자기 모든 걸 잃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아름다운 장식’보다 ‘빨리 짓고 오래 가는 건물’이 우선이지 않을까?

미국식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럽식 포스트모더니즘을 비교하는 부분도 압권이다. 미국식은 “어? 옛날에 쓰던 거, 다시 써볼까?” 하는 느낌이고, 유럽식은 “기계적으로 더 쓸 만한 게 없을까?” 하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너무 직관적이라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이 책을 전문가가 읽으면 “아, 이제 정리가 딱 되네”라고 감탄할 것이고, 일반인이 읽으면 “아, 내가 좋아하던 건물이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이상한 건물이 명작으로 인정받는 이유’를 알게 된다.

사실 스승님의 책을 감히 서평하는 게 죄송스럽지만… 뭐, 퇴계 이황 선생님도 어린 기대승의 반론을 받아주셨다지 않나. 다행히 난 반론을 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니 조금은 덜 죄송하다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결론? 건축가라면 필독, 일반인이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건축, 300년’은 건축이 왜 그렇게 변해왔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 최고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백희성/KEAB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작가, 비평연대)

백희성
백희성

일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 (애니 로슨 지음, 박지선 옮김, 프런트페이지, 2025)

일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애니 로슨 지음, 박지선 옮김, 프런트페이지, 2025)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것이다. 어느 날 상사가 말이 없고 저기압인 것 같아 괜히 내가 잘못한 건 아닌지 눈치를 보거나, 실수라도 하면 집에 와서까지 곱씹으며 후회한 순간들 말이다. 입사 초반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사회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는 것 같지?’ 싶어서 억울하거나 화가 치밀 때도 있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지만 일보다 더 어려운 건 바로 사람이다. ‘일하는 사람을 위한 철학’의 저자 애니 로슨은 ‘명상록’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완벽한 안내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49가지 문제 상황을 스토아 철학을 통해 풀어낸다. 사람은 원래 짜증난다는 사실 받아들이기, 부정적 피드백을 대하는 법, 직장 내 빌런 대처법 등 회사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문제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준다. 나를 소모하지 않고 내면의 힘을 키우고 싶다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일하는 사람을 위한 유쾌한 철학책을 만나보자.(배희주/출판마케터·비평연대)

배희주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 (남현지 지음, 창비, 2024)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남현지 지음, 창비, 2024)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식으로 삶을 뭉뚱그리고 싶을 때마다 시집을 편다. 말을 칼처럼 벼려 세상에 금을 내는 시집을 만나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때문. 이번에도 그렇게 '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건강한 삶'을 펼쳤다. 2021년 창비신인시인상으로 등단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남현지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집은 우리가 발 딛고 선 이곳이 "이웃 나라에 전쟁이 일어나도/아침이면 연어가 도착"하는 세상('전자랜드'), "얼음을 씹어 먹으며" "빙하의 사진을 들여다"보게 되는 세상임을 그저 보여준다('실내장식'). 시집 속에는 "시든 나무를 여기 두고/떠나는 사람을 보았는데/내가 그럴 것 같다고" 말하는 화자가 있고('이웃의 정원'), 이윽고 "흙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끌면서" "죽은 나무를 버리러 가는" 화자가 있다('행복의 문턱'). 식물이 자꾸 죽거나 죽임당하고, "미세플라스틱이" "고래와 갓난아이에게서도" 발견되는 세계('축적과 이동'). 그곳이 여기임을 시집은 초지일관 나직이 말한다. 시집은 직접적으로 이 세계가 아프다고 포효하진 않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시인이 시집에 안치시킨 세계가 종일 소리 없이 아프다는걸.

세상이 틀려먹게 흐르고 있음을 모두가 모르지 않고 살아간다. 다만 이에 무감해질 뿐이다. 그럴 때 시인들은 끈질기게 세계를 감각하는 방식으로 이에 저항하려는 것 같다. '무감'에 무감해지지 않기로. 그럴 때라야 말은 비로소 칼이 될 수 있을 테다. 그러니 시를 읽기로 택한 독자로서, 그 칼로 만들어진 시들의 예리함에 오직 감탄만 하지 않아야겠다. "혼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밤이 계속"('오늘 서울 날씨')되더라도, 적어도 세계의 고통에 나의 안온한 오늘을 비추어 안도하는 짓 따위는 더는 그만둬야겠다.(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

김상화<br>
김상화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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