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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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연대] 김재훈·서민서·최상현·김성신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김지윤 지음, 팩토리나인, 2023)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김지윤 지음, 팩토리나인, 2023)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고민을 나누고 위로하며 해결해 나가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세상에서 사람들 간의 소통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 책은 인간관계의 따뜻함과 마음을 꺼내 보이는 것과 들어주는 행위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책은 익명의 고민과 조언, 위로를 담는 빨래방의 주인 모를 연두색 다이어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각기 연령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고충을 적고 공유하며, 그 속에서 점차 위로를 얻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잊었던 모습을 떠올린다. 현대 사회는 길거리만 봐도 모두가 귀에 이어폰을 꽂고, 휴대폰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지나가며, 이웃집과 웃으며 인사하던 옛날과 달리 어느새 우린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소통과 잃어버린 인간관계에서 받을 수 있는 따뜻함과 위로를 보여준다.

공간은 왜 하필 빨래방일까? 빨래방은 누구나 올 수 있다. 빨래방은 더러워진 빨래처럼, 고민과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해 지친 사람을 의미하는 듯하다. 익명의 조언과 위로는 빨래방의 세제와 섬유유연제처럼, 마음의 짐을 씻어주는 역할인 것이다.

이 책은 변화된 현대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인간관계의 따뜻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또한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을 데워주었다. 책을 읽은 독자들은 소통이 사라져가는 지금, 누군가에게 연두색 다이어리이자 빨래방이 되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게끔 한다.

작가가 말한 것처럼, “마음을 꺼내 보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고, 그 마음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행운이다” 이전에는 당연시했던 일들이 이젠 행운이 되어버렸다. 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의 시그니처 섬유 유연제 시트의 냄새는 잊었던 사람 냄새가 아닐까.(김재훈 /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김재훈

베테랑의 몸(희정 지음, 최형락(그림), 한겨레출판, 2023)

베테랑의 몸(희정 지음, 최형락(그림), 한겨레출판, 2023)

일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돈만 벌면 되는가. 그렇다고 하기엔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을 하며 보낸다. 일은 일이라고 하지만, 모르는 사이에 삶에 찰싹 붙어 사고와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생활패턴은 일에 맞춰지고, 몸은 직업병으로 빚어진다. 그렇다고 순전히 자아 추구만을 목적으로 삼을 수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세계를 유지하고, 내 사람을 돌보는 것은 꿈만 가지고는 안 된다. 돈벌이가 되는 직업이 그 앞에 선행되는 전제로 보이기도 한다.

직업인과 노동자 사이에서 줄을 타며, 그 신성함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혹은 어느 한쪽에 치우쳐 매너리즘에 빠진 이들에게도 좋은 처방이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열두 명의 베테랑을 만났다. 한평생 일에 전념하며, 일을 살아낸 몸을 성실히 마주했다.

”둥글게 말린 어깨와 길게 뺀 목, 기울어진 등이 그의 분주한 손길을 숨긴다. 저 자세를 안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 붙박여 일한 사람만이 가지는 뒤태가 있다.“

일을 할 때 몸 안에서 팔딱이는 마음, 일에 맞춰진 몸의 모양, 그리고 일하는 몸을 둘러싼 사회를 두루 다뤘다. 세공사, 조리사, 로프공, 어부… 감히 해보리라 생각지 못한 직업들이다. 주머니에 손 넣고 ‘극한 직업‘을 구경하는 마음으로 읽히진 않는다. 일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끄덕이게 되는 일의 감각, 일하는 마음이 살아있다.

정말로, 세상엔 할 일이 너무 많다. 그 모든 일마다 숙련을 갖춘 베테랑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작가가 만난 베테랑들은 평생을 몸 바쳐 일했어도 자신이 베테랑이라고 말하길 주저했다. 세상은 그렇게 숨겨진 베테랑들의 손길로 굴러간다. 그런데 그 일들을 해보지 않고도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20년을 그 일로 먹고살았다는 사람에게도 방구석 전문가들은 스스럼없이 입을 댄다. 설령 그 정보가 맞다고는 해도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전문성이 흐려지는 세상에서도 직업인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 성실한 직업인을 볼 때의 존경을 되새긴다. 방구석 전문가들이 입을 열 때, 왼손으론 ‘쉿!‘을, 오른손으론 이 책을 건네주고 싶다. (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서민서
서민서

예언자의 노래(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2024)

예언자의 노래(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은행나무, 2024)

파시즘이 뒤덮은 아일랜드에서 주인공 '아일리시' 의 남편 '래리'는 전교조 활동으로 경찰에 체포되고 아들 마크는 군에 징집된다. 두 아이(몰리와 베일리)만이 남자 내전이 벌어지고 아일리시 가족은 생존을 위해 분투한다. 꿈과 회상을 오가는 의식의 흐름, 마침표 없이 이어지는 대화에서 그가 처한 현실의 긴박함을 드러내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12.3 계엄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회가 군에 의해 점령되고 법치가 무너지고 입출국도 자유롭지 못하고 언론과 출판마저 마비되었다면,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러다 내전이라도 일어났다면 일상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떠나는 자가 아닌 지키는 자들의 이야기다. 경찰이 직장과 집으로 찾아올지라도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출퇴근하고, 틈틈이 장도 보고, 연로한 아버지를 돌보는 아이리시를 통해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될 거라'는 믿음으로 일상을 영위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것들을 노래하듯 불러낼 때, ‘눈에 보이지 않던 사악함은 쫓겨(354쪽)’ 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최상현<br>
최상현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3)

조선이 만난 아인슈타인(민태기 지음, 위즈덤하우스, 2023)

이론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역사적인 인물이지만, 왠지 그리 오래전 인물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물리학’이 여전히 현대 과학계의 가장 주요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 역사 속 ‘일제 강점기’는 아주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당시 지금 우리의 삶의 조건과 풍경이 너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을 1905년, ‘일반상대성이론’은 1916년에 발표한다. 그리고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해가 1921년이다.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난 해가 1919년이니까 불과 3년 차다. 우리의 역사 위에 아인슈타인을 포개어 놓으니 일제 강점기는 그리 오래된 역사가 아니었고, 아인슈타인은 의외로 오래전 인물이다.

누리호와 차세대 발사체 엔진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인 민태기 박사는 이런 사실들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떠올린다. ‘과학의 혁명이 이루어지던 이 시기 우리 조상들은 아인슈타인을 알았을까? 조선의 지식인은 양자역학을 공부했을까?’하고 말이다.

민태기 박사는 당시의 신문과 사료 등을 추적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100년 전인 1920년대 초반부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그의 연구와 물리학 이론에 대한 순회강연이 열렸고, 여기에 대중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며, 주요 일간지와 잡지들은 연이어 새로운 과학의 탄생을 지면에 올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당시로는 최신 이론이었던 양자역학에도 조선의 대중들이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22년 아인슈타인 부부가 일본 도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우리 언론들은 그의 방문 일정을 시시각각 보도한다. 무려 한 달이 넘게 이어진 아인슈타인의 일본 방문은 엄청난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고, 그때부터 조선 사회에서 아인슈타인과 상대성이론은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 인식된다. 백 년 전 아인슈타인은 지금의 BTS에 비교할 만한 인기 스타였던 셈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아인슈타인에게 이토록 매료되었던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나라를 잃은 유대민족 출신이지만 과학적 업적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민족을 위해 대학을 세우며 후학을 양성했다는 아인슈타인의 이야기에 당시 조선 지식인들이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민태기 박사는 설명한다. 즉 아인슈타인처럼 과학을 공부하면 나라를 되찾을 수 있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는 것이다.

백 년 전 조선의 과학자들도 함께 소개하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상대성 이론을 해설한 나경석, 독일에 가서 아인슈타인을 만난 황진남, 천문학자 이원철, 물리학자 최규남, 육종학자 우장춘, 수학자 이임학, 양자화학자 이태규…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과학자들의 행보와 과학적 업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가 패배감과 절망으로만 채워진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향한 도약을 준비한 매우 역동적인 시대였다는 것을 알려준다.(김성신 출판평론가·비평연대)

김성신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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