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7)신라 명랑법사의 어머니 남간부인은 자장율사 여동생 법승랑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7)신라 명랑법사의 어머니 남간부인은 자장율사 여동생 법승랑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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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남간사지 당간지주" "명랑법사가 지은 사천왕사 터"
명랑법사가 지은 사천왕사 터/사진=정진원

 (16)승만경과 승만 진덕여왕의 신라를 위한 십대서원 이어서

말 없는 말로 설법하는 법승랑이야기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삼국유사의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듯이 법승랑 남간부인도 이름뿐 자튀가 없다. 그러나 신라불국토의 인프라 구축과 소프트웨어 채움에 이 여인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법승랑의 노래 

진리의 수레 아가씨 
내 이름은 법승랑이라네 
오빠 자장의 이름은 선종랑 
부처되실 도령이었다면 
나는 그 부처 진리담을 수레되리라고 
아버지 김무림, 어머니 유모부인 
천부관음 지어 발원하셨지 

결혼하여 얻은 이름 남간부인 
진리의 수레 굴리기를 멈추지 않았지 

사촌언니 선덕여왕과 오빠 자장이 이룩한 신라불국토 
나의 아들 삼형제가 가다듬고 호위하였네 
맏아들 국교 나랏사람 가르치고 
둘째아들 의안 바른 도리 안에서 편안함을 펼쳤네 
막내 아들 국육 명랑법사 나라를 기르고 지켜내었네 

언니와 오빠의 신라불국토 인프라에 
나의 아들들 손발되어 차곡차곡 신라를 불교로 교육하고 
그 안에서 계율지켜 통일 신라 이룩하였네 

나의 이름 덧없어도 좋아라 
오롯이 법승랑 남간부인을 기리는 
남간사 당간 지주는 알아주리   

삼국유사 권2 기이 문무왕 법민조에는 사천왕사의 창건 배경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 고종이 몇 번이나 신라를 치려고 하였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당에 와 있던 문무왕의 동생인 김인문을 불러 꾸짖고 옥에 가둔 후 장차 50만 대군으로 신라를 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김인문은 당에 유학을 와 있던 의상에게 알리고 의상은 급히 귀국하여 당의 침략 야욕을 신라에 전했다. 이에 문무왕은 신하들과 논의한 끝에 용궁에서 비법을 배워와 신통력이 대단하다는 명랑법사에게 그 대책을 묻게 되었다. 명랑법사는 낭산 남쪽에 있는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세울 것을 건의하였으나 미처 절을 착공하기도 전에 당군이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명랑법사는 임시로 오색비단으로 절을 짓고, 풀로써 오방에 신장을 만들어 모시고 유가명승 열두 분과 더불어 문두루 비법으로 기원을 드렸다. 그러자 당군은 신라군과 대적도 하기 전에 바다에 사나운 풍랑이 일어 당의 배가 모두 침몰하였다. 그 뒤 절을 완성하며 사천왕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즉 사천왕사는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위해 기도를 드려 당군을 물리친 신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로써 신라 7대 사찰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문무왕 19년 679년에 지어진 사천왕사의 터가 남아 있다. 또한 경덕왕 때 살았던 향가 제망매가의 저자 월명사가 피리를 잘 불어 가던 달도 멈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월명리에 지어진 사천왕사. 그 절의 창건은 문두루 비법으로 유명한 명랑법사가 지어 당나라 수군을 문무왕 때 두 번이나 물리친 유래가 서려있기도 하다.

그 명랑법사에게도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으니 자장율사의 여동생이기도 하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남간부인(南澗夫人)으로 전해지기도 하는데 경주의 남간사터가 살던 곳이라 전해지기도 하고 결혼 전 법승랑(法乘娘)이라고 불렸는데 이름 그대로 법의 수레라는 의미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삼국유사에는 슬쩍 한 귀퉁이만 쳐들면 수많은 줄기줄기 알알이 박힌 신라의 사람들과 절에 대한 이야기가 밤하늘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우리는 자장율사가 신라의 불국토를 이룩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데 여기서는 그의 여동생 법승랑과 조카 명랑법사에 대해 주목해보려고 한다.

명랑법사의 이름은 명랑(明朗)이고 자는 국육(國育)이며, 신라의 사간(沙干) 재량(才良)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간부인(南澗夫人)인데 법승랑(法乘娘)이라고도 하며 소판(蘇判) 무림(茂林)의 딸 김씨이니, 즉 자장(慈藏)의 누이동생이다. 재량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국교대덕(國敎大德)이고 다음은 의안대덕(義安大德)이며 법사는 막내아들이다. (삼국유사 신주편 명랑신인 조)

큰아들은 나라를 가르치는 국교(國敎)이고 둘째 아들은 의례로 편안하게 하는 의안(義安)이고 셋째 아들은 나라를 기르는 국육(國育) 명랑이다. 대덕 또한 우리가 고승대덕이라고 하듯 당시의 훌륭한 스님에게 왕이 임명하는 직책으로 지혜와 덕망이 높은 승려에 대한 호칭이었다. 동문선에 나오는 최치원의 글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50세 이상의 승려로 7년의 임기를 정해 왕이 직접 임명하였다고 한다. 신라는 총 40명 정도의 대덕이 있었다고 하는데 세 아들이 모두 나라를 위한 호국 관련 대덕인 것이다.

아버지는 신라 관등 중 8등급에 해당하는 사간(沙干) 재량(才良)이라는 것 외에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다. 오히려 어머니 법승랑이 예사롭지 않다. 처녀일 때는 법의 수레, 진리의 수레라는 이름이었고 결혼해서는 남간부인으로 불렸는데 지금도 경주에는 드넓은 남간사 터 당간지주와 우물이 남아 있어 그곳이 그들의 전지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다.

그의 오라버니 자장은 아버지 김무림과 어머니 유모부인이 천부관음을 조성해 지극정성 기도하여 태어났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자장정율 조와 화랑세기 14세 풍월주 무림공 편에 자세하다. 그렇게 어렵사리 얻은 아들 하나만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조카 명랑법사가 삼국유사에 등장하면서 자장의 여동생 법승랑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 명랑은 어떻게 문두루 비법으로 당나라 군사들을 두 번이나 바다에 침몰시키는 혁혁한 공을 세웠을까.

명랑은 선덕여왕 즉위한 632년 당나라에 가서 진언밀교를 배우고 3년 만에 귀국한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 용의 청에 따라 용궁에 들어가 비법을 전하고 황금 1,000냥[1,000근이라고도 한다.]을 시주받아 땅 밑으로 몰래 와서 자기 집 우물 밑에서 솟아 나왔다. 자기 집을 희사하여 절을 만들었고 용왕이 시주한 황금으로 탑과 불상을 장식하자 광채가 유달리 특이하였다. 그래서 절을 금광사(金光寺)라 하였다.

외삼촌 자장과 자장의 사촌 선덕여왕이 분황사, 황룡사 구층탑과 통도사 등을 합심하여 세운 신라 불국토의 토대 위에서 명랑과 법승랑이 한 일은 무엇인가. 법승랑 또한 선덕의 사촌 여동생이다. ‘국교, 의안, 국육’ 삼형제를 낳아 나라를 위해 가르치고 편안케 하고 위기에서 구하게 한 승려로 활동했다는 사실은 7세기 신라 불국토를 굳건하게 해낸 인재불사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막내아들 명랑은 어머니 법승랑이 푸른 구슬을 삼키는 태몽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어렵지 않게 용의 여의주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러한 명랑의 중심 행적이 용왕을 만나고 바다의 풍랑을 일으켜 당나라 군대를 격퇴하는 것에 주목할 일이다. 그러므로 어머니 법승랑의 예지몽은 명랑의 활약을 미리 점지해주는 잘 짜인 각본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명랑이 자신의 집을 황금으로 꾸며 금광사라 하였다는 사실도 이중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금광명경’은 호국삼부경의 하나로 법화경, 인왕경과 함께 호국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데 신라 당시 명랑법사로부터 전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명랑은 신라 밀교 신인종(神印宗)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밀교 경전으로 대승불교가 전파된 지역에서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경전이 금광명경(金光明經)이다. 그러므로 그의 집을 고쳐 만든 금빛 찬란한 절은 금광명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명랑법사의 밀교를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당시 신라시대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불교의 여러 종파가 꽃피우고 있었다. 화엄경으로 대표되는 법성종과 유식으로 대표되는 법상종 외에 밀교가 크게 성행했던 것을 명랑의 활약으로 알 수 있다.

명랑은 생몰연도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몇 가지 활동 단서로 그의 연대를 추측할 수 있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632년(선덕왕 1) 당나라 유학으로 진언밀교(眞言密敎)의 비법을 배우고 3년 만인 635년에 귀국하였다는 사실, 문무왕 8년인 668년 그리고 671년 두 차례에 걸쳐 당나라 수군을 물리치기 위해 밀교의 문두루 비법을 써서 사천왕사를 짓고 신라를 구해내는 일들이 그것이다.

남간사지 당간지주/사진=정진원
남간사지 당간지주/사진=정진원

그의 어머니 법승랑 남간부인의 이야기 또한 안타깝게도 삼국유사의 이 짧은 출현 외에 어디에도 전하지 않는다. 다만 자장율사의 여동생이라는 사실로 무림공의 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들의 아버지 무림공이 비처왕과 법흥왕의 후손이라는 사실로 법승랑 또한 왕족이자 진골의 혈통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7세기 신라불국토를 구축해나가는 오빠 자장율사와 사촌언니 선덕여왕에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신라 불국토 프로젝트에 전심전력으로 합세하여 아들 삼형제를 출가시키고 그들이 구현해내는 대덕의 활약으로 법승랑의 이름값인 법의 수레, 불교의 수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처녀 시절의 법승랑은 신라를 구하는 삼형제의 어머니 남간부인으로서 오빠 자장율사, 언니 선덕여왕의 불교국가 기틀 위에 통일 신라로 가는 수레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국교, 의안, 국육 명랑 삼형제는 법을 실은 바퀴라고도 봄직 하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훌륭한 고승대덕을 위시한 인물들 뒤에는 그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눈 밝은 이들은 본다. 그들에게만 보이는 여러 다빈치 코드와 힌트들이 삼국유사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삼국유사와 화랑세기를 독서백편 의자현하여야 할 것이다.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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