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0)실질적인 통일신라의 어머니 만명부인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0)실질적인 통일신라의 어머니 만명부인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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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만명부인 영정
만명부인(萬明夫人) 영정. 만명부인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의 동생인 김숙흘종의 딸이자 삼국통일을 이끈 김유신의 어머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김지용

(9) 김유신의 첫사랑 천관녀와 천관사 이어서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지난 글에서 김유신의 그녀, 천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윽이 유신의 어머니 만명부인이 궁금해지셨을 것이다. 유신과 천과의 사랑에 만명부인의 만류가 없었더라면 신라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신라의 역사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의 막을 내리게 한 신라의 여인 만명을 지금 만나보자.

만명, 신라 왕족 중의 왕족 진흥왕의 조카이자 진평왕의 여동생

삼국을 통일한 통일신라 프로젝트에는 가야계 후손들이 종횡무진 활약하였다. 김유신과 두 여동생 문희와 보희가 문명왕후와 영창부인으로 태종무열왕과 결탁하여 전무후무한 공적을 세웠던 덕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을 낳은 어머니는 누구일까. 신라를 삼국의 통일 주체로 만들고 불국토로 완성하려던 야심 찬 삼 남매와 둘째 아들 김흠순까지 알뜰히 활용한 역사를 만든 주인공은 진평왕의 여동생 만명부인이었다. 만명부인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기록이 많지 않다. 화랑세기에 더 많은 모계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신라판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 진골 정통의 모계 혈통 만명과 대원신통 부계 서현

신라에는 왕비를 두 모계 가문에서 배출해왔다.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이다. 그중 만명은 진골정통이다. 만명의 어머니는 진평왕을 낳은 만호부인이다. 진흥왕의 누이이고 지소태후의 딸이기도 하였다. 

한편 아버지 김서현은 가야 왕의 후손으로 대원신통 아양공주의 아들이다. 아양은 진흥왕의 딸이다. 말하자면 로미오와 줄리엣 가문의 두 남녀가 만난 셈이다.

진평왕 시절에 이 둘이 만났기에 만명의 어머니 만호부인의 반대가 극심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는 만명의 아버지 숙흘종이 반대하여 만명을 별채에 가두었다고 하였다. 부모인 만호와 숙흘종이 망한 나라 가야의 후예 김서현과 결혼을 반대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일 것이다. 만명의 노래를 들어보자.

만명부인의 노래

어느 꽃다운 봄날 그대와 나
벼락같은 사랑 아니고 
실제 벼락이 내리친 사랑을 하였네 

운명보다 더한 운명 
미쓰 신라와 미스터 가야가 만난 순간
가야 왕자 김서현은 신라 공주 만명과 
번개처럼 사랑에 빠졌네 

세상이 갈라 놓을 수 없는 사랑 
오빠 진평왕이 서현을 백제 국경으로 멀리 보낸들 
부모님이 나를 별채에 가두어 둔들 
하늘은 무심하지 않으시다 
벼락이 내리쳐 우리를 구하네 

낭군 서현을 따라 
신라 끝 멀고 먼 땅 만노에 가서 
스무달전부터 잉태했다 소문난 나의 아들 
유신을 낳았네 

다복하여라 
흠순 보희 문희를 낳아 
신라와 가야의 아이들과
알콩달콩 보란듯이 살아가네 

지금도 시골인 충북 진천 
신라와 백제 접경 만노 땅의 삶이 
공주인 나에게 고생길이었을지라도 

나는야 기꺼이 가슴에 품어
가야와 신라를 하나로 녹여내었네  
가야 청년을 사랑함은 가야와 하나 되는 일 
이제 내 아들 딸이 고구려 백제를 아우를 차례로구나 

유신과 흠순은 신라 진골 춘추의 킹메이커 
나의 두 딸은 춘추의 아내가 되어 
삼국을 통일하는 태종 무열왕으로 등극시켰네 
드디어 신라의 왕과 한 가족이 되었으나 겹혼사로 쐐기
춘추와 문희의 딸이자 나의 외손녀 지소는 유신의 배필이 되었네 
이렇게 나로 비롯한 신라 가야의 통일은 
이로써 백제와 고구려 사국통일이 시작되었네 

천관이여 
나를 원망하였던 때가 있었는가 

골품제 투철한 신라 땅에 태어나 
공주로만 부귀영화 누리고 살았어도 몰랐으리
가야진골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 하나로 
강산이 바뀌고 또 바뀐 열다섯해 동안 
나는 서라벌에 돌아올 수 없었다네
어머니 만호태후 손자 유신의 뛰어난 재주를 보고서야 
용서받고 화해한 내 인생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체 기실 나의 자식들을 위한 용단이었다네

내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유신을 너에게 보내 
나와 같은 운명을 결단코 허락할 순 없었느니 
너에게도 나와 같은 전철을 밟게 할 순 없었다 

하늘의 뜻을 전하는 천관이여 
너도 내 뜻과 같아 
유신을 놓는 것이 더 큰 사랑임을 알지 않았더냐 

미안코 미안쿠나 
고맙고 고맙구나 

우리는 사랑에 눈먼 체
역사를 새로 쓰는  
만고에 빛날 만명이요 
하늘의 뜻을 아는 천관인 것을

신라 진흥왕의 조카 만명과 가야 후예 김서현과의 만남

그럼 만명과 서현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신기하게 신라 선화공주와 백제 서동이 만나는 장면이 연상될 만큼 비슷하다. 진평왕의 동생 만명이 고모이니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 사랑의 원조이다.

처음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았을 때 내심 기뻐하여 그녀에게 눈짓을 하고는 중매도 없이 야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충북 진천) 태수가 되었을 때, 만명과 함께 가려 하니 숙흘종이 그제야 딸이 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반대하며 딸을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만명이 창문으로 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初, <舒玄>路見葛文王<立宗>之子<肅訖宗>之女<萬明>, 心悅而目挑之, 不待媒妁而合. <舒玄>爲<萬弩郡>太守, 將與俱行, <肅訖宗>始知女子與<玄>野合, 疾之囚於別第, 使人守之. 忽雷震屋門, 守者驚亂, <萬明>從竇而出, 遂與<舒玄>赴<萬弩郡>.

선화공주의 내용은 삼국유사 무왕 조에 나온다.

공주가 유배지로 가는데 서동이 도중에 나타나 절을 하고는 자신이 모시고 가겠다고 하였다. 공주는 비록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몰랐지만 뜻밖에도 믿음직하여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따라오도록 하였고 또 몰래 정도 통하였다.

公主將至竄所 薯童出拜途中 將欲侍衛而行 公主雖不識其從來 偶爾信悅 因此隨行 潛通焉

그리하여 만명과 서현의 이야기가 선화와 서동의 이야기로 와전되거나 확대 재생산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두 사람이 길에서 만나 첫눈에 반했고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청춘 두 남녀는 먼저 사실혼 관계에 들어간다. 이때부터 중매가 있었다니 유구한 역사이다. 별채에 가두고 둘을 못 만나게 했을 때 하늘이 도왔는지 벼락이 치고 서현은 그녀를 창문으로 구출해 충청도 진천 백제의 접경까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었을 때 만명과 함께 가려 하니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았다. 그녀를 반대하여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만명이 창문으로 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舒玄>爲<萬弩郡>太守, 將與俱行, <肅訖宗>始知女子與<玄>野合, 疾之囚於別第, 使人守之. 忽雷震屋門, 守者驚亂, <萬明>從竇而出, 遂與<舒玄>赴<萬弩郡>.

20개월만에 충청도 진천에서 태어난 김유신과 유신 이름의 유래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태실은 아이가 출산한 뒤 나오는 탯줄을 보관하는 곳을 말한다. 김유신이 태어난 곳은 만노군 태수로 부임한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김유신의 어머니는 신라 진골 정통의 모계 혈통 만명부인이다. 만명부인은 가야 왕족 후손인 김서현과 사랑에 빠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혼인해 김유신, 김흠순, 김보희, 문명왕후 4남매를 낳았다./사진=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서현은 경진(庚辰)일 밤에 화성과 토성 두 별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만명도 역시 신축일 밤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잉태하여 스무 달 만에 유신을 낳았다. ....

“내가 경진일 밤에 좋은 꿈을 꾸어 이 아이를 얻었오. 그러므로 마땅히 이 날짜로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예법에는 날자로 이름을 짓지 않게 되어 있다 하오. 그런즉 경(庚)은 유(庾)와 글자가 서로 비슷하고, 진(辰)은 신(信)과 발음이 서로 비슷하며, 더구나 옛날의 현인 중에도 유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어찌 이를 이름으로 삼지 않으리오?”라 하고 마침내 이름을 김유신(金庾信)이라 하였다.

유신은 595년 진평왕 17년 경진일에 만노군(진천)에서 태어나 그와 비슷한 한자인 유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려 20개월 만에 태어났다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무릇 영웅호걸이 태어날 때는 범상치 않은 탄생 비화가 많다. 박혁거세나 김수로왕처럼 알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석탈해처럼 궤짝에 실려 오기도 하고... 석가모니의 아들 라후라도 석가모니 출가 후 6년 동안 어머니 태내에 있었다 하지 않는가.

만명의 오빠 진평왕이 만노로 사랑의 도피를 한 여동생을 위해 서현에게 만노태수로 봉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으니 20개월의 임신 기간은 그간의 고생스러운 과정도 가미되었을 수도 있다. 중매 없이 야합은 사실혼이라 할 수 있으니 어쩌면 유신이 두 번째 임신으로 첫째는 유산됐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결사적인 결혼 반대에 임신했다고 소문을 먼저 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신의 사랑했던 천관에게는 엄격했던 만명

이렇게 어렵사리 결혼했던 만명이었기에 자유로운 연애와 사랑에 관대할 법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반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명의 어머니 만호태후가 만명부부와 손자 유신을 15년 동안이나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신이 어린 시절 진천에 살았다는 기록과 태후가 유신을 보고서야 됨됨이를 인정하고 15세에 풍월주가 되었다는 기록이 뒷받침해준다.

그렇게 얻은 화랑도 시절에 천관녀를 만나는 것을 만명이 반대하자 유신은 사랑하는 천관녀에게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술 취한 유신을 천관녀에게 데려다주자 그는 애마의 목을 베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지난 글에 나누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화랑세기에도 나오지 않고 고려시대 이인로가 쓴 파한집과 조선시대 동경잡기에 나온다. 그 천관사터가 2000년도에 발굴되었다. 천관을 무녀나 신관으로 보는 설도 있지만 어머니 만명은 아들 유신이 대원신통과 진골정통, 그리고 가야계를 아울러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2015년에 촬영된 경주 김유신묘 전경./사진=경주시

신라 통일의 실질주역 4남매의 어머니

만명은 어려서는 자기 사랑에 적극적이고 그 사랑을 위하여 신라의 변방 진천까지 서현을 따라가 결혼하는 담대함을 가졌다. 이것은 둘째 딸 문희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꿰매고 혼전 임신으로 문무왕 법민을 낳는 담대함의 유전자로 이어진다.

만명은 결혼을 한 후 어머니 만호부인이 먼저 손자를 보고 싶다는 명분으로 부를 때까지 결코 친정에 가지 않는다.

김유신이 15세에 화랑들의 우두머리 풍월주가 되기까지 꽤 긴 세월이었다. 여기서 만명부인의 자기가 결심하고 실행한 일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고 책임지는 모습을 본다. 그 세월 동안 아들 유신은 신라의 서울이 아닌 백제 접경지대에 살면서 철이 일찍 들었던 것 같다. 효자 김유신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서라벌로 돌아와 천관을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유신은 어머니 만명의 반대에 평생에 못 잊을 천관과 이별을 선택한다. 그리고 유신은 미실의 아들 하종, 그 하종의 딸 영모 재매부인과 결혼한다. 영모는 자장의 어머니 유모부인의 언니이기도 하다.

그렇게 유신은 철저히 신라인이 되고 그 세력에 두 여동생과 남동생 흠순을 결집하여 삼국을 통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만명부인이 없었으면 가야계 김씨와 신라계 김씨와의 결합도 없었고 걸출한 4남매도 없었다. 딸들이 김춘추와 결혼할 일도 없었고 무열왕도 없고 손자 문무왕의 삼국 통일도 없었을 것이다.

삼국 통일의 역사는 더 먼 후일의 일이거나 역사와 영토가 달라졌음도 자명한 일이니 어쩌면 김유신 4남매보다 더 중요한 삼국 통일의 주역은 만명부인이 아닐까. 만명의 아버지 숙흘종의 반대가 기록에 전하지만 누가 봐도 어머니 만호부인이 15년 동안 용서하지 않은 사실로 당시 모계 실세 위력이 대단함을 보여준다. 만호는 딸 만명의 사랑을 반대하고 만명은 아들 유신의 사랑을 반대하여 역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만호의 아들 진평도 딸 선화공주의 사랑을 반대한다. 무릇 사랑이란 반대를 무릅써야만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신라의 역사뿐 아니라 고구려, 백제의 역사의 막을 내리게 한 신라의 만명을 이제 역사에서 주목할 만하지 않은가. 노래하는 삼국유사 열 번째 이야기까지 여성들의 노래가 크게 들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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