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4)김유신과 지소(지조)부인의 사국통일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14)김유신과 지소(지조)부인의 사국통일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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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삼국사기' 권 제8신라본기 제8 성덕왕 11년(712)에서는 "김유신(金庾信)의 아내를 부인(夫人)으로 봉하고, 해마다 곡식 1000석을 주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김유신의 아내는 지소부인(智炤夫人)을 말한다./출처=옥산서원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3) 김유신의 정실 아내 재매정댁 영모부인 이어서

가야계 김유신의 신라 대통합의 상징 지소부인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이제 대망의 삼국유사 속 7세기 격변기 김유신의 우바이 대단원의 시간이 왔다. 김춘추 무열왕과 김유신 누이 문희의 막내딸 지소가 김유신의 부인이 되는 이야기이다. 외삼촌이기도 한 환갑의 김유신의 부인이 되는 일. 이로써 철통같은 겹겹의 가야와 신라 대통합이 완성된다.

지소와 유신의 노래  

내 아버지 신라 진골 김춘추 
왕이 되신 이듬해에 
애지중지 막내딸 
나 지소, 방년 꽃다운 나이에 
신라의 구원 아니 천하의 영웅호걸 외삼촌 유신께 
시집 보내시네 

지소여 지소여
환갑을 맞이한 신랑 
나 유신의 마음 황송하고 애틋하여라
며느리로 삼아도 모자를 어여쁘고 아리따운 나의 조카 지소를 
신부로 맞이한 뜻은 
나의 대에서 기필코 가야와 신라 합체를 이룩할 의무가 있었으매  
미안코 눈물겹구나

나의 낭군이시여
우리 서로의 사명을 알기에 
어찌 속속들이 말로 하리오 
어찌 알뜰히 사랑하고 사랑하지 아니하리오 
나의 가야 어머니 문희와 신라 아버지 춘추의 혼인의 역사 
나 또한 그 사명과 사랑 뒤밟아야 할 운명이라면  
원술과 원정, 장이, 원정 
기꺼이 금슬 좋게 네 아들 두어 완수하오리 
저에게 처음이고 그대의 마지막 사랑 
가야신라 대통합의 결실이 아니리오 

우리의 결합으로 가야 신라 철통같이 하나 되고 
백제와 고구려 신라로 통일하였으니 
가야 백제 고구려 신라 사국 통일 
진실로 유신 당신 덕분이오 
진실로 지소 덕분이오 

사랑하고 사랑하오 
나 유신, 죽어서도 우리 신라를 지키리 
나 지소, 살아서도 출가하여 유신과 신라를 위하리

김춘추와 문희의 셋째 딸 지소 

'통일전'은 한반도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신라 삼국통일의 위업을 기리고자 지난 1977년 건립된 전각이다. 전각 안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통일전 입구를 항공촬영한 모습./사진=경주시청

오늘 소개할 지소부인(智炤夫人)은 김춘추 태종무열왕과 문명왕후의 셋째 딸로 김유신의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정실부인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조(智照)’라 기록돼 있고, 열전 김유신전에는 ‘지소(智炤)’라 기록돼 있다.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김유신이 60세가 되던 해 655년에 혼인하였다고 한다. ‘원술랑’의 어머니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어떻게 환갑인 외삼촌과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지소의 생몰년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아버지 김춘추가 602년에 태어나 661년까지 59세를 살았고 김유신이 595년에 태어나 673년까지 79세를 살았다는 기록으로 대략 유추할 수 있다. 

‘화랑세기 18세 풍월주 춘추공’ 기록에 의하면 춘추는 24세에 풍월주에 오르고 문희를 화군으로 삼아 법민을 낳았다고 되어있다. 626년에 법민이 태어나고 이어 ‘인문(629), 문왕(?), 노차, 지경, 개원’ 뒤에 지소가 태어난다. 대략 630년대 초중반으로 보아도 655년 결혼할 때는 스무살 안팎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두 번째 부인 보희의 자식들도 ‘개지문, 지원, 요석, 차득’ 등도 있어 이복 형제들과의 관계에서도 연대를 추측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요석공주보다 동생이라는 설이 있으나 요석도 630년대생으로 추측할 수 있어 연구가 요청된다.

한편 지소는 성덕왕 때까지 살았던 기록이 있다. 신라본기 성덕왕 11년(712) 기록에서 김유신의 아내가 살아있으며 존칭과 곡식을 하사받았다는 것이다. 630년대에 태어났다면 거의 80정도 되니 꽤 장수한 셈이다. 

정략 결혼의 대표주자 지소

아버지 무열왕이 죽기 6년 전에 아버지보다 나이가 7살 많은 환갑인 외삼촌과 결혼을 해야 하는 운명은 어떤 것일까.

신기하게 화랑세기에는 지소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 무열왕이 즉위한지 1년만인 무열왕 2년 655년 결혼이란 것을 보았을 때는 정략적 결혼이란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덕여왕이 승하한 654년에 김유신은 화백회의에서 군신들을 설득해 김춘추를 왕으로 추대한다. 춘추는 어떻게든 유신의 공에 보답해야 했고 골품제가 팽배했던 당시 처음으로 진골로 왕이 된 춘추는 유신의 활약과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유신의 두 여동생과 결혼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기의 딸을 유신과 혼인시켜 사위로 삼은 것이다. 처남 매부관계와 장인 사위 관계로 결속력이 공고해진 것이다. 

원술랑을 비롯한 네 아들의 어머니 지소의 위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소는 많은 자녀를 낳았다. 이미 김유신에게는 천관과 재매정댁 영모부인이 있었다. 게다가 영모의 언니이자 자장율사의 어머니인 유모도 부인으로 화랑세기는 기록하고 있다. 정실인 재매부인 영모와의 사이에 아들 삼광과 진광, 신광, 작광, 영광 네 딸이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군승 또는 시득’이라는 서자가 등장하는데 천관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신과 지소 사이에 ‘원술’을 비롯한 ‘원정, 장이, 원망’ 네 아들이 태어난다. 

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김유신 아들 원술이 참전한 '매소성 전투'의 기록화/출처=전쟁기념관 오픈 아카이브

우리가 잘 아는 원술랑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에 한반도 장악의 야심을 버리지 않고 기회만 엿보고 있던 당나라가 672년 다시 쳐들어 왔을 때 원술은 화랑들과 함께 앞장을 섰다.  

원술은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고자 하니 그의 부관 담능이 말하기를 “전쟁터에서 일진일퇴는 있을 수 있는 일이며 무모한 희생이 결코 충성과 효도가 아니다” 하면서 적진을 향해 돌격하려는 원술을 한사코 만류하였다. 전쟁터에서 물러선 원술이 돌아오자 김유신은 비겁하게 살아 돌아왔다면서 맞아주지 않았을 뿐더러 크게 꾸짖고 문무왕에게 군률로써 사형에 처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왕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들 김원술이 전투에서 후퇴한 일로 남편이 아들과 일방적으로 연을 끊자, 지소 또한 673년 김유신 사후에 찾아온 아들 김원술을 내치며 만나주지 않았다. 

그 후 그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있다가 문무왕 15년(675)에 매소천성에서 당나라 군대를 격파한 공을 세웠으나 벼슬을 받지 않았다.

지소의 아들로 기록된 삼광과 원정, 서자 군승 이야기

삼광이 재매부인의 소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소의 아들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김삼광이 666년 숙위로 당나라에 간 사실이나 672년 석문(石門) 전투에서 비장(裨將)으로 출전한 사실에 비추어 보면 지소가 낳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원정(元貞)은 신라 문무왕 때 대신으로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다. ‘서원술성’의 축성 책임자를 지냈는데 이때 고구려 정벌 당시 공이 많았던 ‘구근’을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일을 태만히 한다고 하여 곤장을 친 일을 종신토록 부끄러워하고 후회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서자(庶子) 군승(軍勝)에 대한 기록도 전한다. 

김군승은 비록 서자이긴 하지만 김유신의 장남인 김삼광보다 먼저 활약상이 나타난다. 즉, 김군승이 문무왕 2년(662) 김유신을 따라 고구려 정벌에 참여한 바 있는 것과 달리 김삼광은 문무왕 6년(666) 입당숙위(入唐宿衛)한 후 신문왕 초에 활약하였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보아 김군승은 지소부인 태생이 아니라 천관이나 또 다른 6두품 부인의 소생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가야계 후손과 진골 출신 통일신라 왕가의 딸 지소의 통일

지소부인의 행적에 대해 "지소부인은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으면서[落髮衣褐] 비구니가 되었다"고 전한다.('삼국사기' 권 제43 열전 제3 김유신(金庾信)하)/출처=옥산서원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지소는 어쩌면 지혜로운 안목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꽃다운 나이였으나 국가의 안위와 평생을 고생해 갓 즉위한 진골 아버지 무열왕과 외삼촌 유신의 아교 역할로 견고한 통일신라의 역할을 기꺼이 자처한 것은 아니었을까.

21세기 필자의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결단력과 대의명분으로 통일신라에 앞서 가야 엄마의 딸이자 신라 아버지의 딸인 자신이 최후의 가야장군 유신을 신라 공주로서 품어 궁극적인 4국통일을 이루어낸 것이다. 유신의 사후에는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고 전한다.

가야 진골과 신라 진골의 사국통일 

가야계 후손인 김유신이 신라계로 편입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속에 김춘추 진지왕계 후손과 손을 잡고 신라 귀족으로 등장한다. 춘추가 왕이 되고 유신의 여동생 둘이 왕비가 된다. 그 다음에는 춘추 부부의 딸이 유신의 부인이 된다. 

그야말로 겹사돈을 넘는 혈연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공고한 유신의 가계도 5대를 이어 가지 못한다. ‘유신-삼광-윤중-?-암’으로 이어지던 유신계는 김암에 이르러 육두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유신의 가계’를 중심으로 7세기 통일 신라를 이룩하는 당대의 여성들을 살펴보았다. 차근차근 유신의 동생 김흠순이나 춘추의 동생 김인문, 그들의 후손들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이제 통일신라의 꽃피는 전성기를 이야기할 시절 인연이 도래하고 있다.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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