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6)선화공주, 신라와 백제 양국을 아우르는 퀸이 되다
[정진원 365칼럼 | 노래하는 삼국유사] (6)선화공주, 신라와 백제 양국을 아우르는 퀸이 되다
  • 정진원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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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원 교수의 인문학 놀이터 이야기]
익산 옛 지도/사진제공=정진원 

(5)수로부인의 딸 경덕왕 왕비 삼모부인과 황룡사 대종 에 이어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삼국유사 저자 일연

인터뷰365 정진원 칼럼니스트 = 삼국유사는 사람이 주인공인 사람 중심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사람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기존의 책 속에서는 거의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이고 중심에 있다. 삼국유사는 남성 중심의 역사책이지만 삼국사기나 ‘고승전’ 등과는 달리 여성성을 간과하지 않는다. 얼핏 남자들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행간의 뜻을 읽으면 훌륭한 남성 뒤에 그보다 몇 배 더 현명한 여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삼국유사의 반전 코드이다.

선화공주는 지금까지 만나 본 출중한 여성들 중에서도 유독 내가 걸출하다고 인정하는 여성이다. 신라의 막내 공주로 태어나 자기의 설 자리가 없자 과감히 백제로 건너가 양국의 퀸이 되었으니 말이다. 과연 그럴까. 그의 노래부터 들어보자.

선화공주의 노래 

신라 마을마다 아이들의 노래가 들리네 
서동을 안고 밤마다 사랑을 나누러 가는 
선화공주님 선화공주님 
얼라리 꼴레리 얼라리 꼴레리 

세상에 아리땁고 지혜롭기 짝이 없다던 나, 
선화공주 비운의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전락하고 말리오
나의 아버지는 석가모니의 아버지 백정왕이라 불리는 진평왕 
나의 언니는 그 이름도 유명한 신라 최초 선덕여왕 
둘째 언니 천명공주는 태종 무열왕의 어머니라네 
셋째딸인 나에게는 어차피 송곳조차 꽂을 곳 없는 신라 

마침 백제의 비범한 떡거머리 총각 행세를 하고 나타난 청년 
나를 사모한다고 아이들을 시켜 동네방네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네
그렇다면 세상사람 뜻대로 짐짓 순진한 공주놀이를 해볼까  
바리데기처럼 보따리 싸서 처음 본 듯 서동을 따라나서네 

나 이제 신라에서 할 수 없던 여왕 백제에서 되어 보려네
도량이 크고 전략가인 서동을 무왕으로 만들어볼거나 
잘 다듬고 보필해서 마 캐며 산처럼 쌓아둔 금덩이로
아버지 진평왕께 환심을 사고 신라서도 명망높은 지명스님 
백제 서동 왕이 되고 남을 재량이라 금을 실어 증명법사 성공하네
막내딸 선화공주 백제왕후 등극에 
신라 진평왕은 이제 백제는 사위 나라 
두 나라를 손에 쥐니 이 아니 좋을소냐

백제 남편 무왕되어 왕후로 만족할 선화로 알면 오산
이제 신라의 선화공주 무왕과 백제 경영 들어가네  
신라 불국토 능가하는 백제 불국토 만들어 볼거나  
미륵산 지명법사 진평왕 심부름차 황룡사 눈여겨 보고  
황룡사보다 더 큰 백제 미륵사를 조성하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라 공주의 백제 여왕 프로젝트 

신라 언니 선덕여왕의 황룡사 구층탑이 보배라면 
백제는 그 세 배 미륵삼존 모신 미륵사 
삼가람 삼탑 구층목탑, 좌우 석탑 장엄하리 
신라 비운의 막내 공주 서동요 희생양이라 섣불리 오해마오 
신라 백제 아우른 백제 무왕 킹메이커 선화공주라오  

서동과 선화공주의 서동요 재해석

삼국유사 백제본기(서동요)/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삼국유사 백제본기(서동요)/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

먼저 삼국유사 속 선화공주의 간략 스토리텔링은 다음과 같다.

백제 30대 무왕(武王 재위 600~641)은 어머니가 과부인데 남쪽 못 가의 용과 관계하여 낳았다. 어릴 때 이름은 마를 캐다가 팔아 서동(薯童)이라고 했는데 재주와 도량이 커서 헤아리기 어려웠다.

한편 신라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의 셋째 공주 선화(善花,善化)가 뛰어나게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서라벌로 가서 마을 아이들에게 마를 주고 꾀어서 자신이 지은 동요를 부르게 했다. ‘서동요’라는 이 노래는 정확히 말하면 서동이 사주한 ‘선화공주 참요(讖謠)’이다. 참요는 시대 상황을 암시하거나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요샛말로 ‘루머 송’이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방薯童房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가 대궐까지 퍼지자 신하들은 임금에게 극력히 간해서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하였다. 떠날 때 왕후는 순금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서동은 기다렸다가 공주에게 절하면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공주는 그에 대해 알지 못했지만 짝이 되어 믿고 좋아하니 따라가면서 서동과 그윽히 정을 통했다. ‘그윽하다’는 말은 되살려 쓰고 싶은 우리말이다. 깊고 아늑하고 고요하며 느낌이 은근하고 생각이 간절하다는 뜻이다.

그런 뒤에야 공주는 서동의 이름을 알았고 동요의 징험도 믿게 되었다. 함께 백제로 와서 모후가 준 금을 꺼내 놓고 살아나갈 계획을 의논하자 서동이 크게 웃는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마를 캐던 곳에 황금을 흙덩이처럼 쌓아두었소.”하였다. 공주는 이 말에 “그것은 천하의 가장 큰 보배이니 그대는 우리 부모님이 계신 대궐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서동은 “좋소이다.” 화답하였다.

두 사람은 신통력 있는 지명법사에게 부탁해 그 금을 신라 궁중으로 보내고 진평왕은 그 신기한 조화를 특별하게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하고 항상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 인해 인심을 얻어서 드디어 왕위에 올랐다.

선화공주의 큰 그림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서동공원에 조성된 선화공주와 서동왕자의 조각상.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서동공원에 조성된 선화공주와 서동왕자의 조각상./출처=한국관광공사

미염무쌍(美艶無雙), 아름답고 맵시 곱기가 짝이 없다 라고 표현된 선화공주는 그동안 ‘서동요’ 억울한 루머의 희생양으로만 부각되어 왔다. 그 노래 내용도 서동이 아니라 선화공주가 주도하는 모양새로 밤마다 서동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에 지략과 전략을 겸비한 선화공주의 반전이 시작된다. 이것이 선화공주에 대한 첫 번째 관전 포인트이다.

바로 아버지 진평왕에게 쫓겨난 신세가 되지만 나중에 백제 무왕의 아내 곧 백제 왕비가 된 신데렐라 스토리 유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삼국유사’ 속의 기록을 정독하면 선화공주는 바보 온달을 장군으로 만드는 평강공주 이상으로 야심 찬 인물이다.

금도 몰라보는 일개 마를 팔던 ‘마동’ 청년에게 금의 가치와 그것의 활용 방법을 가르친다. 곧 백제의 지명법사를 매개로 하여 아버지 진평왕을 설득해 남편 서동이 백제 무왕에 오르도록 하는 것이다.

인생 최대의 위기에서 이 정도 반전의 결실을 맺은 선화공주의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물론 부창부수 남편인 서동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다. 서동의 출생 또한 어머니가 과부의 몸으로 연못의 용을 아버지로 하여 태어나게 된다는 평범하지 않은 설정이다.

과부임에도 불구하고 ‘용’으로 상징되는 ‘왕’과의 만남은 어머니 또한 출중한 면모를 지녔음을 시사한다. 어머니와 함께 마를 캐며 살았어도 기량을 헤아리기 어려웠다는 표현에서 이웃 나라 신라의 어여쁜 공주를 얻을만한 지략과 용기가 있음을 본다.

왕의 서자 출신으로 추정되는 서동이 선화공주에게 왕실의 법도와 금의 가치를 배우고, 장인인 신라 진평왕의 신임을 지지기반 세력으로 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선화와 서동, 진평으로 이루어진 신라와 백제가 상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win-win(윈-윈) 전략이다.

백제 무왕의 킹메이커, 백제 왕후가 된 신라공주

그동안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순진한 신라공주와 무식한 백제왕자의 사랑 이야기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드라마나 축제, 공연 등이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선화공주가 예쁘기만 한 신라공주, 서동의 아내, 무왕의 왕비로만 기억될 것이 아니라 남편 서동의 킹메이커, 신라 황룡사보다 규모가 큰 백제 대표 사찰 ‘미륵사’를 창건한 창건주,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어머니로서 재조명되는 콘텐츠가 필요한 때이다.

뜬금없는 사탁 적덕의 딸 백제왕후 등장

미륵사지
미륵사지 전경 그림/사진 제공=정진원

특히 2010년 익산 ‘미륵사 서탑’에서 발굴된 ‘금동사리봉안기’의 주인공 ‘사탁적덕’의 딸인 ‘백제왕후’와의 관계 정립과 해석도 흥미로운 콘텐츠가 될 것이다. 미륵사 서탑에서 백제왕후가 ‘가람을 조립했다’는 금동사리봉안기의 기록으로 일부 학자들은 삼국유사의 선화공주를 허구의 인물로 몰아가려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 둘이 모두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그 둘의 존재와 관계를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백제왕후가 기록된 사리봉안기와 선화공주가 기록된 삼국유사의 기록을 면밀히 대조하여 살펴보았다.

백제왕후는 ‘가람’을 ‘조립(造立伽藍)’하였고 선화공주는 '대가람'을 '창'하였다고(創大伽籃, 各三所創之)되어 있었다. 조립은 ‘승방(僧房), 정사(精舍)’나 ‘불상(佛像)’ 등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구조물을 만들 때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창(創)은 어떤 일을 무(無)에서 유(有)로 만들고 새롭게 시작할 때 쓰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 훈민정음 창제(創制), 조선왕조 창업(創業) 등이 그것이다.

미륵사는 삼국유사의 선화공주가 삼원삼탑(各三所) 대가람의 전체 설계와 인프라를 구축한(創之) '창건주체(創建主體)’이고, 사리봉안기의 백제왕후는 ‘가람(伽藍)’의 구체적인 건축물 가운데 하나인 삼 탑 중 ‘서탑’을 만든 ‘조성주체(造成主體)’로 해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42년간이나 통치한 무왕이 첫 번째 왕후로 선화공주를, 그 이후의 왕후로 사탁씨의 딸을 배필로 맞는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신라 선덕여왕과의 대비

한편 진평왕의 큰딸인 언니 선덕여왕과의 관계도 곰곰이 짚어봐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 당나라가 줄지어 신라를 침략하는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상황을 역전의 기회로 멋지게 반전시켜 통일신라의 기틀을 다진 선덕여왕, 그리고 자칫 루머의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던 선화공주의 백제 왕비 등극으로 이어지는 통쾌한 반전이 절묘하게 닮아 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두 자매의 역사적인 불사(佛事)의 기량 또한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닮은 꼴이다. 선덕은 신라 최대의 황룡사 구층탑을 세우고 선화는 백제 최대의 익산 미륵사를 세운다. 선화공주가 진평왕의 셋째 딸이 아니라는 설과 그러므로 선덕과 자매도 아니라는 설왕설래를 단칼에 잠재우는 유전자이다.

신라 황룡사에 비견되는 익산 미륵사를 건립하자고 제안한 것도 선화공주이다. 아버지 진평왕은 딸과 사위의 나라 백제에 미륵사를 짓는 공장바지들도 파견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보통 1금당 1탑인 가람 양식이던 시절 백제에는 미륵 삼존을 모시는 3금당 3탑 양식의 전에 없던 대사찰이 건립되었다고 삼국유사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요즈음 대중들에게 조금만 인기를 얻으면 ‘국민 여동생’이니 ‘세기의 결혼식’이니 하는 수식어를 남발한다. 신라와 백제가 결합하여 삼국통일 전에 사랑으로 양국통일을 이룬 선화와 서동 정도는 되어야 세기의 로맨스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신라와 백제의 정략결혼이라 볼 수도 있지만 선화공주는 짐짓 사랑에 응하는 체하며 신라와 백제를 아우른 지모가 출중한 여성으로 재평가해야 할 시점이다. 다음에는 선덕여왕의 노래를 기대하시라.

정진원 칼럼니스트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연구교수, K Classic 콘텐츠연구소 소장. 튀르키예(터키)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 교수, 동국대 세계불교학연구소 교수와 헝가리 ELTE대학교에서 한국학과 교수, 서울대 규장각과 고려대 한국학연구소 교수를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여 년간 해외 한국학 학회 발표와 특강, 외국 학생들과 한국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로 홍익대 문학박사를 받은 국어학자이자 동국대에서 삼국유사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현재 월인석보와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하여 국내와 유럽을 중심으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월인석보, 그대 이름은 한글대장경>, <석보상절, 훈민정음 조선대장경의 길을 열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자장과 선덕여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삼국유사, 원효와 춤추다>, <여행하는 인간 놀이하는 인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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