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40년 ‘부활’ 이끈 김태원 "70살 넘어도 음악 하는 밴드로 기억되길"
[인터뷰365] 40년 ‘부활’ 이끈 김태원 "70살 넘어도 음악 하는 밴드로 기억되길"
  • 김건탁 인터뷰어
  • 승인 2023.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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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록의 전설이자 최장수 록밴드 '부활' 리더 겸 기타리스트 김태원
- 대한민국 ‘록(Rock)’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40여 년의 몸부림
- 11년 만의 정규앨범 14집 발매 앞두고 신곡 ‘기적(Miracle)’ 발표
- "시각·청각 기능 저하...그래도 음악할 수 있어 행복"
40여 년 대한민국의 록(Rock)을 지켜온 그룹 ‘부활’의 김태원/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인터뷰365 김건탁 인터뷰어 = 대한민국 뮤지션 김태원(1963년~)은 지난 1986년 그룹 ‘부활’ 1집 ‘록 윌 네버 다이(Rock Will Never Die)’를 시작으로, 40여 년 ‘록(Rock)’의 정신을 지키며 1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다.

‘부활’은 지난 40여 년간 해체나 활동 중단 없이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는 국내 최장수 록밴드다. 그 중심에는 리더 김태원이 있다. 40여 년을 한결같이, 때론 구도자처럼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이어온 김태원. 그에게 있어서 음악은, 살아 숨 쉬는 존재였다.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다가간다(준비한다)”는 인생 철학으로 오직 한 길만을 걸어왔다. 

부활의 탄생은 1985년 4월, 부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디 엔드(The End)’의 파고다 예술관 라이브 콘서트에서 시작됐다. 당시 4인조로 결성된 멤버 라인업은 김태원(기타/보컬), 이태윤(베이스/보컬), 이지웅(기타), 황태순(드럼)이었다. 그해 7월 김태원의 제안으로 김종서가 영입되면서 ‘부활’로 밴드 명을 바꾸고 정기공연 및 지방공연을 이어나갔다.

이듬해인 1986년 첫 번째 앨범 수록곡 ‘희야’, ‘비와 당신이 이야기’, ‘인형의 부활’을 시작으로 수많은 명반과 명곡을 쏟아냈다. 어느 곡하나 쉽게 탄생된 건 없었다. 김태원의 곡은 끝없는 고뇌의 결과물이다. 대표적으로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감(작곡에 몰두하다 부인과 아이들을 해외로 떠나보내야 했던 시간들)으로, 더욱 몸부림쳤던 순간 탄생했던 곡이 ‘네버 엔딩 스토리’다.  

대한민국 락밴드의 전설로 불리는 그룹 ‘부활’/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현재 그는 한쪽 귀의 청각 이상과 패혈증을 앓은 후 후각 기능의 저하가 왔지만, 꾸준한 치료에 전념해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어쩌면 지난 시간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만들어 낸 명곡들의 부산물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도 김태원은 부활을 꿈꾼다.

올가을 그룹 ‘부활’의 정규 앨범 14집이 발매된다. 13집이 지난 2012년 나왔기에 무려 11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는 것이다. 2023년 화창한 봄날 ‘대한민국 Rock의 정신’ 그룹 부활의 김태원을 만나 그의 음악과 인생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기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지난 12일은 김태원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약속 시간보다 훨씬 앞서 인터뷰 장소에 앉아있었다.

38년 역사의 현역밴드 '부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

- 얼마 전, 정규 앨범 14집 발매에 앞서 신곡 ‘기적(Miracle)’을 발표했다. 13집 후 11년 만에 새 앨범이다.

“항상 그룹 ‘부활’의 리더라는 고민을 한다. 팀 음악을 하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용기를 드릴 수 있는 앨범이 되고 싶다.”

- ‘부활’은 살아있는 락의 전설이자, 한국 헤비메탈의 1세대 개척자로 불린다. 처음 음악을 하게 된 계기와 ‘부활’의 탄생 배경이 궁금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기타를 쳤다. 고교 졸업 후 무대 경험을 쌓기 위해, 일부러 지방의 도시(마산, 광주, 온양 등)를 돌아다녔다. 당시 무대 위로 맥주병이 날아드는 건 예삿일이었다. 그 와중에도 연주를 계속했으니 (웃음) 그후 1985년 서대문에서 이태윤, 황순태와 함께 ‘디 엔드(The End)’를 결성했고 이후 김종서를 영입했다. 숭의음악당 청소년 콘서트·대구 어린이회관 콘서트·세종문화회관 LIVE를 거쳐 그해 10월 24일 파고다 예술관에서 ‘제1회 부활 발표회’ 공연을 하며, ‘부활’로 개명했다. 그렇게 그룹 ‘부활’이 탄생하게 됐다.”

‘부활 1집’ ‘Rock Will Never Die’의 앨범표지/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 ‘부활’의 리더이자 로커로 40여 년 가까이 밴드를 이끌어왔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해체나 활동 중단은 없었다. ‘록’의 정신을 지키며 40년 외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그렇다. 참으로 많은 시련이 있었다. 록에 대한 편견과 싸워야 했고, 한편으로는 멤버(팀원)들의 개인적인 부분도 고려해야 했고 창작자로 음악을 만들어야 했던 시간까지. 하지만 10~20년의 세월이 지나도 대중들이 듣는 음악을, 또한 부활이라는 밴드가 70살이 넘어서도 음악을 하는 밴드로 기억되기 위해서 나름 처절한 몸부림을 쳤다고 생각한다. 2010년 초반 방송 예능프로에 출연했던 것도 멤버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당시 음악인들이 말이 많았다. 대한민국 로커 김태원이 예능프로에 출연한다고...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록이란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고상한 프로그램에만 출연한다는 것은, 시대의 정신에도 어긋나며 대중문화 예술이라는 큰 틀에도 벗어나는 것이다. 덕분에 ‘부활’은 다시 사랑받을 수 있었다.”

- 시간을 거슬러 1987년으로 돌아가면 ‘희야’와 ‘회상1’을 성공시킨 이승철의 탈퇴를 겪었고, 팀에서 늘 반복되어온 보컬의 여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또한 많은 로커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부활을 떠났다.

“인정한다. 어찌 보면 리더로서 팀원을 지키지 못했기에, 떠나간 이들에게 미안하다. 멤버들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내 나름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한 것이다. 지금은 세월의 흔적들로 남아 있을 뿐. 하지만 그 모든 요소가 뿌리가 되어 오늘의 ‘부활’이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암 검사 받아...그래도 지금 이 순간이 행복"

80년대 록(Rock) 밴드들을 위한 라이브의 메카는 ‘파고다 예술관’과 ‘숭의 음악당’이었다. 당시 그룹 ‘부활’의 라이브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

- 어린 시절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나의 곡 중에 ‘순간’이라는 노래가 있다. 부모님에 관한 노래다. 청년 시절 아버지께서 용산에 있는 2층 회사에 근무할 때, 우연히 거리를 지나가시는 어머니에게 반하셨고. (웃음) 그렇게 두 분이 결혼하셔서 3남 2녀를 낳으셨다.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다. 위로 형 둘에 밑으로 여동생 둘이다. 막내아들이었기에 집안의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이렇다 저렇다는 말을 안 하셨다. 어떤 때는 그 과묵이 공포로 다가온 적도 있다. 어머니의 응원과 배려로 오늘의 김태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께서는 매일 일기를 쓰셨다. 나 또한 그날의 일정과 크고 작은 개인의 일들을 매일 매일 기록한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메모하는 습관이다. 현재 아버지는 치매 중기 단계로 접어든 상태다. 아침에 눈을 뜨실 때도 어머니를 찾고 밤에 눈을 감을 때도 어머니를 찾는다. “엄마를 쫓아다니는 벤자민”으로 별명을 지어드렸다. (웃음)”

- 과거 위암 수술에 이어 패혈증 투병기를 고백해 팬들의 걱정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

“항상 그래왔듯이 안 좋다. 현재 양쪽의 시력이 모두 흐릿하고 청력에 문제도 있다.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2011년 2월 KBS ‘남자의 자격’ 고정멤버로 출연할 당시 위암 검사를 받았다가 초기 위암 판정을 받았다. 1, 2차 수술을 했고 퇴원한 지 3일 후 예정되었던 부활 정규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약속되었던 거니까. 원래 내 수술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 문제로 방송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 암 검사를 받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하다. 아직은 내 음악으로, 그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남자의 자격’은 생명의 은인이라 생각한다.” 

딸도 가수로 활동..."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죠"

- 평소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내곤 했다. 가족에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다면.

“사랑을 하면 시·공간은 중요치 않다. 내 안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보고 싶을 때, 가슴을 살짝 열어 보면 그만이다. 아내 이현주 씨가 힘든 시간을 현명하게 잘 버텨왔다. 감사드린다. 슬하에 장녀 김서현(1997년생)과 아들 김우현(2000년생)이 있다. 아버지께서 그러하셨듯이 나 또한,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속으로 기도할 뿐이다.”

'부활' 김태원 가족사진. 시계방향으로 김태원, 딸 김서현, 아내 이현주, 아들 김우현. 장녀 김서현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수로 활동중이다. /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 장녀 김서현 또한 2013년 가수로 데뷔해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부녀가 같은 가수의 길을 걷고 있다.

“서로 배우려 한다. 늘...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에 박수를 보낸다. 스스로 결정했기에 최선을 다하라는 응원을 보낸다. 몇 년 후에는 동료이자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 (웃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고 있다.”

- 본인의 인생을 타협 없이 개척해 왔다. 인생 철학은 무엇인가?

“무엇인가 교훈적인 유머를 전하고 싶다. 아울러 타인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조화(하모니)’를 염두에 두며 모든 상황을 결정했다. 개개인의 서로 다른 능력들이 전체 안에서 어우러질 때, 거대한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그것이 궁극의 목적이다. 나의 이러한 생각 때문에 많이 이들에게 상처 준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인가 편지를 쓰듯, 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가끔은 내가 하는 유머에도 숨겨져 있다)”

 11년 만의 정규앨범 14집 발매 앞두고 발표한 부활의 신곡 ‘기적(Miracle)’/사진=부활엔터테인먼트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365를 통해 인사드린다. 11년 만에 정규 앨범을 발표하는 것 같다. 힘들고 지친 시간, ‘위로’를 드릴 마음으로 올 가을 14집을 발표한다. 그동안 그룹 ‘부활’을 사랑해 주시고 40년을 함께 해 온,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룹 ‘부활’ 김태원은...

1965년 4월 12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태어났으며 174㎝, O형으로 장안전문대를 졸업했다. 그룹 ‘부활’의 리더/작곡·작사/기타리스트로 40년을 지내왔다. 1986년 ‘부활 1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3집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2023년 가을 14집 발매를 앞두고 신곡 ‘기적(Miracle)’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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