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40년 회고전 여는 ‘장갑작가’ 정경연...“장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인터뷰365] 40년 회고전 여는 ‘장갑작가’ 정경연...“장갑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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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 ‘섬유미술의 개척자’, 4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다
교육자이자 예술가로 쉼 없이 달려온 ‘장갑작가’ 정경연 작가. 오는 26일부터 ‘장갑’과 함께한 40년의 여정을 만나볼 수 있는 초대 개인전을 진행한다./사진=정경연 제공

인터뷰365 김리선 기자 = “장갑으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제 수행(修行)의 일환입니다. 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장갑작가’ 정경연(1955~)작가의 목소리엔 의욕이 넘쳤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자 산업미술 대학원장을 지낸 정 작가는 대한민국 섬유 미술의 개척자이자, 섬유 미술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 그를 지칭하는 대표 수식어는 ‘장갑작가’다. 그 시작은 미국 유학 중이던 스무 살 시절 어느 날, 한국에서 어머니가 보내준 목장갑에서 비롯됐다. ‘장갑’은 반세기 동안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요 모티브이자 아이디어가 됐다. 정 작가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는 섬유예술을 넘어 회화, 판화, 조각, 설치미술 등으로 확장되고 변주됐다. 장갑은 그에겐 곧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었고, 예술적 삶을 함께한 동반자가 됐다.

정 작가는 40년간 몸담았던 대학 교정을 떠나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열성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는 26일에는 ‘장갑’과 함께한 40년의 여정을 만나볼 수 있는 초대 개인전(4월 26일~5월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인사아트프라자 갤러리 그랜드관)을 앞두고 있다. 회고전의 성격을 띠는 이번 전시회는 정 작가의 40년 장갑 작품 역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다.

회고전에 앞서 전화로 만난 정 작가는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자리라서 조금은 부끄럽다”고 말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섬유 미술의 대가’는 겸손했다.

장갑 작품은 수행(修行)

무제 87-1-a (Untitled 87-1-a) Dyed on Cotton Gloves & Mixed Techniques, Installation, 1987
무제 87-1-a, Dyed on Cotton Gloves & Mixed Techniques, Installation, 1987ⓒ정경연

- 그동안 장르의 경계를 허문 다양한 장갑 작품을 선보여왔습니다. 이번 전시회에선 어떤 작품들을 만날 수 있나요?

“1985년부터 올해 작업한 작품들입니다. 소품을 포함한 40여 점이 넘는 작품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특히 소품인 ‘너와나’는 1988년~1990년에 염색했던 장갑들을 활용한 작품들입니다. 과거 전시회 당시, 장갑이 망가질 때를 대비해 여분용으로 남겨놓았던 거였죠. ‘너와나’를 보면 장갑의 손가락 마디 부분들이 잘려져 있는데, 결국엔 다시 하나로 모입니다. 각자 분리되어 떨어져 있지만, 한 공간에서는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을 담아서 완성한 작품이죠.”

너와나 2023-06 (You&me 2023-06) 27.0×35.5cm (5F) 혼합기법 및 재료(Mixed media on canvas) 2023년
너와나 2023-06, 27.0×35.5㎝, 혼합기법 및 재료(Mixed media on canvas), 2023ⓒ정경연  

- 지난 40여 년간 ‘장갑작가’의 길을 걸어온 소회가 궁금합니다.

“미국에서 1976년에 첫 장갑 작품을 출품했으니, 근 50여 년에 가깝게 장갑 작품을 해왔습니다. 수많은 재료로 다양한 작업을 하면서도 꾸준히 장갑을 이용해서 작품을 해왔죠. 장갑으로 작품을 만드는 일은 제 수행의 일환입니다. 장갑 작업은 손이 많이 가는 거친 일이예요. 장갑을 빨고, 말리고, 염색하고, 붙이고, 자르고, 뜯고, 다시 재구성하고…. 수행 같은 작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죠. 장갑은 친구이자, 애인이자, 어머니의 사랑이자, 겸손이자 봉사예요. 이런 마음으로 작업을 합니다. 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지요.”

美 유학 중 어머니가 보내온 목장갑 다발...눈물 울컥 쏟았죠

작업 중인 정경연 작가. 40년간 몸담았던 대학 교정을 떠난 후에도 열성적으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사진=정경연 제공

- 오랜 세월 작품의 소재로 장갑을 사용해왔습니다. 장갑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2학년 때 결혼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20살 때였죠. 딸이 타국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어머니가 맨손으로 일하지 말라며 목장갑을 보내셨어요. 한국서 도착한 한 다발의 장갑을 보고 눈물을 울컥 쏟았죠.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장갑은 제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어머니가 보내준 장갑이 작품세계에 영향을 끼치게 된 인연이 특별합니다. 장갑은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 어머니가 보내온 목장갑을 받았을 때 많은 감정이 휘몰아쳤어요. 장갑은 서민적인 소재이기도 하지만, 누구나 평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죠. 부자든 가난하든 장갑을 낀 손은 누구나 똑같잖아요.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 면장갑을 끼고 새벽부터 열심히 일하는 환경미화원의 모습도 떠올랐어요. 모든 게 감사하더라고요. 한순간에 머릿속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놀라웠을 정도였죠. 겸손하게 작품에 임하고, 검소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죠. 아마 그때 철이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어머니 선물이 첫 작품으로

어울림 2013-54 (Oullim 2013-54), 116.8×91.0cm, Mixed Materials & Techniques on canvas, 2013 (50F)
어울림 2013-54, 116.8×91.0㎝, Mixed Materials & Techniques on canvas, 2013ⓒ정경연

그의 첫 장갑 작품의 탄생 비화는 흥미롭다. 1976년 ‘어버이날(당시 ‘어머니날’)을 앞두고 어머니에게 선물을 보내고자 장갑에 정성껏 염색을 입히며 작품을 완성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본 지도교수가 "졸업 작품전에 찬조 출품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어머니를 위해 준비했던 선물은 그의 첫 작품이 됐다. 첫 귀국전에서도 장갑 작품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노끈 등을 활용한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장갑 작품은 20점 중 2점뿐이었는데도 높은 관심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 1980년 26살에 최연소 홍익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후 40여 년간 후학 양성에 힘쏟으셨죠. 강단에 서면서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는데 힘들지는 않았나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하루걸러 하루씩 자면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전업 작가 생활을 한 거나 다름없을 정도였죠. 방학에도 작업을 계속했고, 차 안에는 늘 재료들을 넣고 다녔죠. 그렇다고 교육자로의 일을 소홀히 한 적이 없어요. 2020년 정년 퇴임 때 ‘황조근정훈장’도 받았습니다.”

작업 중인 정경연 작가/사진=정경연 제공

정 작가는 국내외로 개인전 59회 및 천여 회의 단체전으로 활약하면서 대한민국 황조근정훈장, 석주미술상, 이중섭 미술상, 대한민국미술인상 여성작가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정 작가는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장갑작가’의 독보적 위상을 떨치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등 국내 주요 미술관을 비롯해 일본 후쿠오카미술관, 대만 타이페이시립미술관, 대만국립역사박물관, 미국 워싱턴여성미술관 등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지난 40여 년간 교육자이자 예술가로 쉼 없이 달려왔는데, 퇴임 후 작가로서의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작가와 마음 수행 두 가지에만 집중하면 되니 좋아요. 퇴임 후엔 명상도 하고 마음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요.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내려놓는 ‘하심(下心)’의 자세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나와 남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아파하는 거죠. 작품 역시 이런 의미를 담고 있고요. 인생이 하루하루가 아까워요. 죽음은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미룰 수 없는 예약과 같은 거니까요.”

투게더 2022-01, 193.9×130.3㎝, Mixed Materials & Techniques on canvas, 2022 ⓒ정경연

- ‘너와나’, ‘투게더’란 작품 명제도 그런 의미가 담긴 건가요.

“그렇죠. 이전에도 ‘하모니’, ‘어울림’이란 명제를 많이 썼어요. 20세기엔 ‘무제’란 명제도 많이 썼죠. 무(無)는 곧 유(有)라고 생각해요. 빈 컵에 물을 가득 채우면 컵이 비어있는 건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됩니다. 불교 ‘반야심경’의 구절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을 떠올리며 작품에 임했죠.”

정 작가는 지난 3월 한국섬유패션정책연구원 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사진들의 만장일치였다. 애초 이사장직 제안을 받고 고심했으나, “도움이 된다면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 작가로서, 그리고 개인적으로 바라는 바가 있다면요.

"초발심(初發心)을 되새기며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 처음으로 돌아가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작품에 임하는 마음도 그렇고요.”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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