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시한부 삶 극복한 ‘덤의 인생’ 트롯가수 진요근
[김두호가 만난 人] 시한부 삶 극복한 ‘덤의 인생’ 트롯가수 진요근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1.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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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단체 만들어 경로잔치 300회 기록
- 대장암 극복 ‘덤으로 사는 인생’ 발표
- 노래로 담아 낸 파란만장한 삶의 애환
트롯 중견 가수 진요근은 5년 전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최근 6집 앨범을 발표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그의 타이틀 곡은 ‘덤으로 사는 인생’.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인간의 일생이 모두 한편씩의 드라마라고도 하지만 ‘덤으로 사는 인생’을 부른 진요근(1962 ∼) 트롯가수의 지난 삶은 큰 굴곡 없이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인생 경험담과 달리 극적인 재기, 역전 드라마가 많다.

최근 가요계의 한해를 마무리하는 축제인 한국가요창작협회(회장 김상욱) 주최 ‘가요창작의 날‘ 시상식에서 특별공로대상을 받은 트롯 중견 가수 진요근의 심경은 남다른 감회로 흠뻑 젖어있다. 이날 조항조와 진성도 최고가수상을 받던 날이었다.

가수 활동을 시작한 지 40년에 가까운 진요근은 5년 전 대장암 3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의 투병생활을 극복, 최근 6집 앨범을 발표하고 바쁘게 활동을 재개했다. 죽을 고비를 넘긴 후부터의 삶이 ‘덤’이라는 의미를 담아 부른 타이틀 곡이 ‘덤으로 사는 인생’(김시원 작사/이호섭 작곡)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데 하나 없이 / 부서지고 상처가 났지만 / 비틀비틀 아슬아슬 여기까지 왔다 / 험한 세상 끝까지 나를 더 사랑해준 당신 / 고맙고 사랑합니다 / 지나간 모든 것 모든 게 나에겐 / 선물이고 기적이었어 / 아 이제부터 이제부터 난 / 덤으로 사는 인생

진성 가수가 자신의 배곯은 성장기를 노랫말로 옮겨 부른 ‘보릿고개’처럼 진요근 가수도 내용 그대로 상처가 아물 날이 없도록 고달팠던 인생 체험담을 트롯가락에 실어냈다. 이제 그는 건강을 회복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놀라운 그의 미담은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심으로 각종 효행상도 수상하고 세계효운동본부 사무총장 직함도 가지고 있다. 암치료를 받기 전인 2015년에는 경로잔치 300회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효자가 부른 노래 ‘불효’

지난 11월 한국가요작가협회가 주최한 제14회 가요작가의 날에서 효행가수상을 수상한 진요근. '효자 가수'로도 잘 알려진 그는 경로 효잔치를 개최하는 등 효 실천에 앞장서왔다./사진=본인 제공

- 알려진 지난 활동내용 중에 효자로 화제에 오른 일화가 많다. 요즘 세상에 효자 소리 듣기가 쉽지 않다.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져 13년간 투병생활을 하셨다. 형님댁에도 계셨지만 우리 집에 10년 가까이 사시다가 별세하셨다. 자나 깨나 어머니, 우리 어머니 하고 살다보니 효자로 소문이 난 것 같다."

- 최근 한국가요작가협회가 주최한 제14회 가요작가의 날에 효행가수상을 수상했지만 온라인 뉴스 보도기록을 보니 2015년에 ‘가수 인생 33년 진요근 세계효문화연구소장, 대전에서 300번째 경로 효잔치’의 기사가 떠오른다. 효문화연구소까지 운영하며 경로잔치를 해온 건가?

"효심, 효도라는 것은 우리 동양인의 전통적인 근본 미덕이고 불변의 사상이다. 핵가족사회, 자기 중심, 이기주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이야말로 효사상을 젊은이들에게 깨우쳐주어야 할 시대라고 생각한다. 효문화연구소는 효의 날인 10월 2일을 기념해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교육기관과 단체대표들이 모여 ‘세계효의 날’을 제정하고 실천강령을 발표, 세계효운동본부를 설립하였을 때 내가 사무총장 겸 연구소장을 맡게 되었다."

- 효의 실천강령이라면?

"효가 대한민국 5000년 전통문화 유산임을 세계에 알린다는 것, 대한민국이 세계 윤리문화를 선도하고 효를 통한 인성교육으로 세계 인류공영에 공헌하고 대한민국 효의 날인 10월 2일을 세계효의 날로 정한다는 요지였다."

‘제300회 경로 효잔치’를 연 진요근 세계효운동본부 이사장(가운데)이 동료 가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세계효운동본부 제공
진요근(사진 가운데)이 2015년 대전에서 개최한 ‘제300회 경로 효잔치’에서 동료 가수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진요근은 세계효운동본부 사무총장이기도 하다.  

- 진 가수 작사 노래로 대표곡 중의 하나인 ‘불효’는 1991년 일부 가요제에서 신인가수상을 받았고 또 진 가수는 일찍부터 효자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소문난 효자 가수의 노래 제목과 주제가 왜 하필 ‘불효’였는가?

"‘불효’는 1990년대 초 발표 당시 전국 가요인기 차트를 이끌어가던 전국DJ연합회 다운타운 인기가요 차트 연속 15주 1위를 기록했다. 사실 불효란 말은 있어도 효자란 말은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말이면서 특별히 시선을 끌만한 칭송도 아니다. 누구나 부모나 어른에게 효심을 바치는 것은 아주 당연하고 일상적인 도리인데 그걸 굳이 돋보이는 찬사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어머니에게 아무리 효심을 바쳐도 자식들이 돌이켜 보면 온몸을 바쳐 사랑해준 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 못한 불효의 마음과 회한만이 솟구친다.

나의 노래는 어머니를 향한 애틋한 심경을 표현한 내용이다.

‘어머님이 그리워서 / 하늘을 바라보면 / 가까이 왔다가 멀어지는 / 보고싶은 그 얼굴이 이몸이 잘되라고 / 두 손 모아 얼마나 빌었던가 / 가슴을 치며 가슴을 치며 / 울면서 불러봐도 오지 않는 어머님’ 이 노랫말은 어느 순간 그냥 내 입에서 저절로 흘러나왔다."

 온 몸으로 울던 가수지망생 시절

가수 진요근

- 은행원이 많은 직업 중에서 인기 직종으로 선두자리를 차지할 때가 있었다. 좋은 은행원 직장을 버리고 가수의 길을 선택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진 가수의 과거사를 오래전 주변사람들에게 들었다.

"내 인생 스토리는 소설 몇 권을 쓸 만큼 다채롭고 많다. 부모님 곁에서 단칸 셋방에서 형님과 네 식구가 살면서 대전상고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상업고교에서 가장 선망의 대상인 주산실력이 전교 1위를 차지했다. 그 덕분에 은행에 특채되어 장래가 보장되었으나 가수가 된다고 상경해 고생이란 고생은 다 경험했다."

- 구체적으로 어떤 고생을 한 것인가?

"1981년 상경해 음식점 웨이터에서 배달원, 연탄배달, 상품 세일즈맨, 멸치장사, 택시기사, 헬스클럽 강사 등을 전전하다가 때로는 명동 지하상가 빈터를 찾아 신문지 깔고 노숙을 하던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신정동에 있는 교회에서 연탄난로 피우며 겨울을 나기도 했고 파고다 공원을 찾아 모여 있는 노인 어른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음식을 대접받으며 허기를 면하는 거리의 가수 시절도 경험했다.

그런 인고의 환경 속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와 무대가 있으면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특히 나의 가창력이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경로잔치나 자선음악회 같은 무대는 만사 제쳐두고 봉사활동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서초구 출신 김덕룡 정무장관이 주관한 서초구민회관에서 당시 인기 트롯가수 노사연 방실이 설운도 가수와 함께 기량을 겨루며 박수갈채를 받았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 인기가수로 뜻을 이루어 활동을 하다가 다시 또 불치의 암 판정을 받았으나 그 고난을 무난히 이겨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활동을 하고 있으니 대단하다. 삶의 의지력이 경이롭게 보인다.

"인생을 희망적으로 보고 살아왔고 세상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내 성격이 나의 인생을 꺾지 못한 것 같다. 2016년 시한부 생명의 대장암3기 판정을 받았다. 절망 앞에서 밤새워 울었다. 암덩어리가 무려 13㎝라고 했다. 대장을 약 30㎝를 잘라내는 대수술, 생니 8개가 한꺼번에 빠지고 체증이 20㎏ 빠지는 독한 항암치료를 받으며 5년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아낸 과정을 두고 가족도 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병실에서 투병생활 당시의 가수 진요근./사진=본인 제공 

- 고통과 절망을 이겨낸 투병생활 과정에는 남모르는 일화도 많았을 것이다.

"항암주사를 맞게 되면 머리카락이 빠지는 고통의 그물 속에 걸려들게 되는 데 나는 부작용으로 손발이 저리고 소화장애가 비롯되어 네 발 짐승처럼 기어서 화장실을 갈 때가 많았다. 암세포를 죽이는 주사지만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다. 죽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 막내딸이 잠자는 모습을 보면 생존의지가 불길처럼 살아나기도 했다.

아내와 아들이 지극정성으로 따뜻한 뒷바라지를 하고 내 스스로 운동을 열심히 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틈나면 산을 오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추락사고로 위기도 있었지만 목발에 의지해서도 걷는 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나의 인생에서 아마도 주어진 수명을 끝내고 지금은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늘 여유 있고 편안하다. 큰 욕심도 없다."

- 활동 공백기를 딛고 다시 왕성하게 공연활동을 하고 있는 의지력이 감동적이다.

"건강이 회복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고음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목청이 주저앉아 일정한 선을 넘어서지 않았다. 죽기 살기로 추운 겨울에도 대청댐 산속으로 들어가 목청을 일으켜 세우려고 고함을 질러댔다. 지치면 하나님에게 기도하면서 목청 훈련을 거듭한 끝에 젊을 때 목소리를 다시 찾았다."

진요근은 한국가요창작협회가 주최한 ‘가요창작의 날‘ 시상식에서 특별공로가수대상을 받았다.

- ‘진요근 가수의 덤인생’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가족을 소개해 달라.

"홍삼과 장어즙, 칡즙과 상황버섯, 머위잎과 양배추며 야채를 꾸준히 건강식으로 마련해주는 아내와 병상에 있을 때 손과 발이 되어준 두 아들과 딸 하나가 있다. 효자 차남 동민(28)이는 지난 2019년 아프리카TV 게임마스터 BJ대상을 받고 지금 구독자 2백만이 넘는 악어 유튜버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큰아들 동환(29)이는 특전사 출신으로 개인사업을 하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우리 딸 유림(25)이는 뷰티 메이커업 분야에서 인정을 받고 있어서 걱정이 없고 행복하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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