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천안 아산의 가수' 김호진, 희망을 노래하는 오뚜기 인생
[김두호가 만난 人] '천안 아산의 가수' 김호진, 희망을 노래하는 오뚜기 인생
  • 김두호 기자
  • 승인 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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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와 치유 캠페인송 작곡가 겸 가수, 악기 지도자로 활동
- '30초 손 씻기 송', 질병관리본부가 국민 캠페인송으로 채택
고향 천안 아산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겸 시인 김호진. 그가 지금껏 작사 또는 작곡한 곡만 400여 곡에 이른다. 김 씨가 작곡한 ‘30초 손 씻기 송‘은 질병관리본부가 채택한 코로나 예방 캠페인 곡으로 널리 사랑받았다. 가난한 가수 지망생으로 시작해 무명 가수로서 고단한 삶도 보냈지만, 언제나 오뚜기처럼 일어나 밝고 경쾌한 곡으로 즐거움과 희망을 안겨주고 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충남 천안에서 음악학원을 운영하며 가수 활동을 하는 김호진(1972∼ 충남 천안시 창일실용음악학원 )싱어송라이터의 위안과 치유, 극복의 캠페인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코로나19로 불안한 이 시대 사람들의 가슴에 훈훈한 위로의 바람으로 퍼져가고 있다.

16살 중학생 시절에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 따라 하기에 빠져들어 고교 시절에 5인조 그룹사운드 ‘이방인’을 만들어 라이브 공연 활동을 시작하는 등 쉰 살을 앞둔 지금까지 노래 인생을 산 김호진 가수의 음악적 특색은 구성진 리듬이나 슬픈 노랫말보다 밝고 희망적인 노래, 명랑하고 즐거운 노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점이다.

자신이 태어나 성장한 천안, 아산 지역에서 활동해오면서 지금까지 400여 곡을 작곡 또는 작사까지 한 그의 음악 영역은 동영상 채널 유튜브를 비롯한 온라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으로 번져나가고 있고 일부 부르기 쉬운 동요풍의 코로나 예방 캠페인 노래는 방송을 타고 어린이들의 입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집에 들어오면 누구보다 빠르게 / 손을 씻어 씻어 / 손가락과 손등을 문지르고 / 깍지도 끼고 / 마주 잡아도 보고 / 귀여운 엄지손가락 닦아 닦아 / 우리 모두 깨끗이 씻어요 / 30초 30초 손 씻기 자주~"

‘30초 손 씻기 송‘ 윤정원 작사 김호진 작곡의 노래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질병관리본부가 국민 캠페인 송으로 채택해 방송을 타기도 했다.

또 천안시가 시민 보급용으로 채택한 그의 작사 작곡 노래 ‘마스크 써 주세요’는 음악을 전공하는 딸 김미소(22·서원대 음악교육과 4학년) 학생이 불러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노래가 좋아 노래를 부르며 살아온 김호진 가수의 노래 인생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라이브 음악 카페를 열었다가 망하기도 하고 행복한 가정이 무너지는 아픔도 겪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고통 속에서도 슬픔보다 기쁨과 희망을 노래하며 살아온 김호진 가수의 ‘희망 찾기’ 라이프 스토리를 들었다.

 ‘사랑해요, 고마워요’가 음악 정신

- 명함의 한쪽 면에 ‘사랑해요, 고마워요 / 작곡가, 시인’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이름과 직장, 직업을 내세우는 명함에 감사의 인사말을 내세운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 한쪽에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해집니다’는 글귀도 들어 있다. 그것이 모두 나의 음악 인생을 이끌어 가고 있는 창작 정신이고 신념의 뿌리와 같다. 음악인은 듣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 용기와 즐거움을 느끼고 일깨워 주기 위한 직업 세계라고 생각하며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부른 노래는 모두 신나고 따뜻하고 명랑한 노래들이고 다른 가수들이 부른 나의 창작곡들도 모두 그런 나의 음악적 신념과 가치관, 사명감을 반영하고 있다."

- 고향을 떠나지 않는 향토 가수로 활동하면서 따뜻하고 밝고 명랑한 노래 보급의 전도사 역할을 해 무엇보다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그저 노래가 좋아서 노래를 부르며 사는 것으로 행복하다. 인기가수로 빛을 본 적도 없이 여전히 무명의 시골 가수지만 열심히 변함없이 즐겁게 음악인으로서의 정신과 신앙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실현해 가고 있다."

- 최근에 진산 가수가 발표한 이종열, 김호진 작사 김호진 작곡의 ‘돈 들어오네’ 트로트 장르의 노래가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 소셜미디어를 타고 대중 인기곡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쾌한 리듬에 노랫말만으로도 어깨춤이 나올 정도로 신바람이 나고 재미있게 들린다.

싱어송라이터 겸 시인 김호진.  

""돈 있다고 자랑 말아요 / 돈 없다고 기죽지 마요 / 돌고 도는 게 돈이랍니다 /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돌고 돌고 돌고 돌아 / 내 통장에 돈 들어오네 /열심히 일했더니 (으쌰으쌰으쌰으쌰) / 개미처럼 일했더니(으쌰으쌰으쌰으쌰) / 나에게도 좋은 날이 있구나 / 돌고 돌고 돌고 돌고 / 돌고 돌고 돌고 돌아 /내 통장에 돈 들어오네⋯⋯ . 빚도 싹 다 갚고 / 멋진 집도 사고 / 좋은데도 구경갑니다⋯돈 들어오네 돈 들어오네 /내 통장에 돈 들어오네 /당신 통장에도 돈 들어가요 / 나누면서 살아갑시다 / 돈 들어오네∼"

돈이 없어도 땀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면 돈이 들어온다는 노래인데 부르기 쉽고 가사가 외우기 쉬워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불안에 휩싸인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나의 작은 재능을 바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내가 제작한 질병 예방 캠페인 노래인 ‘손 씻기’ 노래를 채택, 보급했고 우리 천안 시청에서도 나와 딸이 만들어 보낸 노래 ‘마스크 송’을 시민 캠페인 노래로 채택해 보급하고 있다."

- 천안 시민의 코로나 예방송이 된 ‘마스크 송’은 어떤 노랫말인가?

"누구나 쉽게 흥얼거리며 경쾌하게 부를 수 있는 동요 가락의 노래다. "마스크 써주세요 / 마스크 써 주세요 / 생명을 살리는 마스크 써주세요 / 마스크 써주세요 / 생명을 살리는 마스크 써주세요 / 고마워요 사랑해요 / 마스크 써주세요 / 마스크를 써주세요"라는 캠페인 주제를 마냥 반복하는 노래다. 내가 작사 작곡하고 청주 서원대에서 음악 교육학을 전공하는 딸(김미소 22)이 불렀다."

가난한 가수 지망생의 꿈과 고난의 길

- 살아오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노래를 시작하게 된 것은 타고난 재능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어쩌다 취미가 있어서 선택한 길인가?

"양쪽 모두 관련이 있다. 나는 천안시에서 가까운 아산시 탕정면 동산리가 고향이다.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눈물 젖은 두만강’을 부르면서, 배따라기, 조용필, 정태춘, 최성수, 전영록, 김수철, 김현식 등의 스타 가수들이 활동하던 7080 시절에 천안으로 학교를 다니며 그분들의 히트곡을 교재로 삼고 오로지 혼자서 노래 연습을 하고 가수들 흉내 내면서 성장했다. 누가 노래를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라디오나 카세트 테이프나 텔레비전을 통해 공연실황을 보며 독학으로 통기타 가수의 길을 찾았다. "

- 기타를 연주하는 데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스스로 터득했다면 뛰어난 음악적 감각과 선천적 재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학교 졸업 때 나의 형이 공장에 취직해 받은 월급으로 내가 꿈속에서도 소원하던 세고비아 통기타 하나를 선물로 사주었다. 그것이 음악 인생의 길을 터 준 길잡이 역할을 했고 나를 가수의 길로 인도한 보물 구실을 했다. 혼자서 마을 뒷산에 올라가 밤낮으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통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고 연습한 노래를 동네 형들과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불러주면 “김 가수 노래 너무 잘한다”는 찬사가 따랐다. 칭찬의 힘이 가수로 가는 길을 재촉해준 셈이다. 너무 기분 좋아서 더 열심히 시간 날 때마다 뒷산에 올라가서 통기타를 튕기며 목이 터져라 노래연습을 했다."

- 고교 시절에 그룹사운드에 들어가 라이브 공연 활동을 했다는 이력도 사실인가?

"목소리를 트이고 싶어 고교 2학년 여름 방학 때 설악산 백암 폭포에서 소리 연습을 하다가 내려와 여기저기 노래 가르쳐주는 곳을 알아보던 중 친구로부터 다른 학교 같은 또래들이 그룹사운드를 만들었는데 일렉기타 자리가 비어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 친구들의 연습실로 향했다.

오디션을 통과해서 일렉기타 멤버로 신문사에서 숙식하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신문 배달을 하고 학교를 마치면 연습실로 달려가 음악연습을 했다. 아마추어 그룹이었지만 모두 공연무대에서만큼은 손색없는 끼가 충만한 밴드였다. 우리는 졸업할 때까지 각각 다니는 학교 안팎에서 주목받고 사랑받는 음악 활동으로 제법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나는 고교 3학년 졸업할 무렵부터 시내 밤무대에 나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언더그라운드의 대장 김현식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며 박수를 받았다. 나의 라이브 공연의 유래는 하이틴 음악도 그 시절에 시작된 셈이다."

- ‘천안의 김현식, 김광석’이라는 별칭이 있다고 들었다.

"김현식 가수를 가장 좋아해서 그분 앨범의 노래를 주로 불렀다. ‘사랑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내사랑 내곁에‘, ‘추억만들기‘ 등... 김광석 가수의 ‘일어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도 나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나의 노래 음색이나 발성 기법, 음악적 스타일이 오래전부터 결과적으로 고인이 된 김현식 김광석 가수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면서 ‘천안의 김현식, 김광석’이라는 애칭이 따라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내 나름의 음악적 특성을 살리고 노랫말도 주제와 표현 내용에 개성이 다른 점도 있어서 과거 같지가 않다."

- 고생담이 많은 것 같다.

"지난 이야기를 고백하자니 무슨 고백부터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고 숨이 차오른다. 군 복무 시절도 수송병으로 복무했지만 나의 작곡 기량을 인정받아 부대 군가(수송가)를 만들어 함께 불렀고 휴식시간이나 부대 행사 축제 때는 나의 라이브 공연이 인기를 모았다. 통기타의 관심 있는 선임병, 후임병에게 기타연주를 가르치기도 했다."

- 제대 후는?

"그때부터 고생문을 들어섰다. 군대 입대 전에 함께 음악을 했던 선배의 소개로 서울에 계신 편곡가분이 무료로 앨범을 내주겠다고 해 부모님에게 취업이 되어 서울로 간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그 음악 편곡가분의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지하 1층 사무실에서 주거하다시피 살며 신곡을 준비하면서 가까운 한강변 하수관을 연습실로 활용하는 고생도 경험했다.

하지만 편곡가분의 재정적 지원에 한계가 따랐고 의욕만으로 서울에서 제작 시스템을 무시하며 음반을 내기도 힘들뿐더러 소속사 없이 가수 활동을 하는 것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 결국 그 무렵 좌절기에 귀향을 선택한 것인가?

"서울에서 그렇게 노래의 길을 찾다가 고향 아산으로 돌아갔다. 우선 식생활이 중요해 아산에 있는 유업회사에 취직을 해 직장생활을 할 때가 있었다. 직장생활 중에도 음악 활동 기회를 찾는 노력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저녁이면 라이브 카페를 찾아다니며 노래를 불렀다 그때가 참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결혼도 하고 알뜰하게 벌어 아파트 살림집도 마련한 뒤 나는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천안 시내에 라이브 카페를 개업했다. IMF로 세상이 무너졌을 때였다. 있는 재산을 모두 동원해 부푼 희망을 안고 운영하던 라이브 음악 카페가 7년 만에 아파트까지 날리고 형편없이 망하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가정까지 파경에 이른 절망적인 때가 있었다."

- 그렇다면 가족은 지금 ‘마스크 송’ 캠페인 노래를 부른 음악 전공 딸 하나뿐인가?

"아니다. 파산의 고통 속에서 이혼했던 아내와 8년 만에 재결합하는 남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다. 과거 불행한 일들이 노래에 빠져버린 내 인생의 불찰에서 비롯된 것인데 누구보다 남편의 처지를 잘 이해하는 아내가 파국이 된 가정 회복에 어느 날 선뜻 내 손을 다시 잡아준 덕분이다."

캠페인 송의 음악인으로 산다

위로와 치유 캠페인송 작곡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호진 싱어송라이터 겸 시인은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독실한 신앙심도 노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물론이다. 한때 별세하신 아버지가 생전에 지하수 개발사업을 하실 때 작업 현장 일을 돕다가 건축물의 붕괴로 추락해 허리를 크게 다친 적도 있었는데 6m 높이에서 떨어지는 순간 예수님을 부르게 되었고 병원에서 성경책도 보게 되었다. 병원을 나오면서 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또 찬송가 음악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의 모든 인생이 바뀌었고 현재까지 400여 곡을 작곡하고 그중에 150여 곡이 교회 음악이다. CCM 곡 중에서 비교적 많이 전파된 노래로 동방현주 가수가 부른 ‘내 영혼 연약할 때’가 있다."

- 실용음악 교육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실용음악학원에서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성인분들에게 기타와 드럼 노래를 지도하게 되었는데 벌써 14년이 넘었다. 평생 활동해온 음악 재능을 돈벌이 보다 나눔의 정신으로 전해주려고 노력한다."

- 노랫말은 대체로 짧은 문장에 작사가의 문학적 감성과 언어가 표현되는 시의 창작세계와 통한다는 말이 있다. 명함에 작곡가 겸 시인으로 직업소개를 했다. 시도 쓰는가?

"중학교 시절 한때 시인이 꿈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10원짜리 시집 제목으로 100편 넘게 썼는데 아쉽게도 군대 가기 전 시집 노트를 잃어버렸다. 2018년 5월에 열린동해문학에서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었고 나의 시 노랫말로 만든 앨범 중에는 ‘이제부터 모두 내게 맡겨줘요‘, ’사탕 주는 날‘ ,’꿈을 꾸는 소년’, ‘진작에’ 등이 있다.

주로 다른 시인분들의 시로 200여 곡 작곡을 하였는데 그중에 최근에 내가 직접 부른 노래는 이남범 시인의 ‘그대 잘 지내나요’ 가 있다 노랫말을 쓰는 분들은 대다수 시인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낱말 하나하나에서 짧은 문장 한 줄마다 섬세한 감성과 감정의 혼을 담아내는 것이 시나 노랫말이라고 생각한다."

- 중학생 시절부터 쉰 살에 이른 지금까지 작곡과 노래와 더불어 살아온 음악인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께서 시골 무명 송라이터를 세상에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인터뷰365가 자살예방 운동인 ‘365 생명사랑’운동을 하면서 유튜브에 올리는 ‘살자TV’를 관심 있게 구독하고 있다. 바로 내가 하려고 준비하던 주제의 캠페인 송과 뜻이 통하는 분야다. ‘365 생명사랑’운동을 함께 협력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앞으로 새롭게 만드는 노래들로 사회를 따뜻하게 하고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가수로, 또한 위로와 치유 캠페인송 작곡가로 가야 할 길이 바쁘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힘내세요’가 나의 마지막 외치고 싶은 말이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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