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30대 신예 윤민훈 연출 '검은 얼룩', 대상 수상작다운 연극 같은 연극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30대 신예 윤민훈 연출 '검은 얼룩', 대상 수상작다운 연극 같은 연극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6.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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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의 극단 손수 대표 윤민훈 연출...서울 공연서 호평
-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수상 작품
- 장지영·고훈목·이태희 배우의 연기 앙상블
- 무대 조명 음악 어우러진 신성우 작가의 반전 심리극
연극 '검은 얼룩'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새해에 연극 같은 연극을 만났다.

대전의 극단 손수가 연극의 중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1월 15~18일 4회 공연한 신성우 작, 윤민훈 연출의 '검은 얼룩'.

관극 첫 소감은 상을 받을만한 작품이라는 것, 두 번째는 1970년대 봄, 가을 시즌에 국립극장(명동예술극장)에서 했던 창작극의 아우라가 느껴진다는 것, 마지막으로 연극의 주제를 나 자신에 투영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지난해 제43회 대한민국연극제 인천에서 대전 대표로 참가, 대상인 대통령상과 연출상(윤민훈), 우수연기상(장지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연극제는 전통과 권위의 국내 최대 연극경연이다. 전국 시도별 연극제에서 뽑힌 작품들이 겨루는 결승에서 최고상과 연출상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극단 손수의 대표인 윤민훈 연출은 30대 후반의 젊은 세대로 2022년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 밀양에서도 연출작 '투견'(이난영 작)으로 대상과 최우수 연기상(장지영)을 수상했다는 점이다. '투견'은 무대미술상(윤진영 조명)도 따냈다.

국내 최고 최대의 대한민국연극제는 매년 개최 도시를 바꿔가며 축제를 여는데, 그 때문에 대상을 받아도 서울에서 공연되지 않아 접하기가 어렵다.

지난해 대상 수상 후 이집트청년연극제에 참가했던 '검은 얼룩'은 극단 손수가 대전 예술의전당 공연을 거쳐 서울에서 4회 공연 기회를 마련, 연극인뿐 아니라 관객들의 호응도가 매우 높았다.

연극 '검은 얼룩' 포스터./사진=대전예술의전당

필자는 '검은 얼룩'이 생활연극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쓴 신성우 작가 작품이어서 생활연극 배우들과 오래전 예매를 해 토요일 단체관람을 했다.

'검은 얼룩'은 극장을 나오면서 “내 몸에도 얼룩이 있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을 만큼 짙은 여운을 안겨주었고, 뒷풀이에서도 작품과 배우에 대한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큰 상을 받는다는 것은 희곡이나 연출, 배우들의 연기뿐 아니라 스태프들의 열정이 합을 이뤄야 한다.

요즘 대세 작가인 신성우의 '검은 얼룩'은 인간의 내면과 사회성을 결합 시킨 심리극으로, 희곡 작법의 정석을 따라 갈등 구조를 만들고 이를 다시 반전시켜 극적인 재미와 함께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인물의 캐릭터, 사건의 전개, 주제의 논리를 두텁게 쌓아 올렸다.

여기에 심리의 변화를 섬세하게 표출한 윤진영의 조명, 기타 리듬으로 분위기를 조성한 이인혜의 음악, 권력의 대물림을 상징하는 의자의 대비와 벽이 없이 덧마루를 응용한 다층적인 이승희의 무대 디자인, 후반부 동생 한영의 독백을 집중시킨 김동현의 영상 등이 조화를 이루면서 인물들의 심리적 기류를 잘 변주해 주었다.

필자는 30대 윤민훈 연출의 '검은 얼룩'을 보면서 1970년대 명동 시대의 시그니처였던 기승전결이 명확했던 정통 리얼리즘 연극을 떠올렸다. '검은 얼룩'은 그때처럼 사실적인 무대, 군더더기 없는 연출, 배우들의 안정적인 발성과 섬세한 감정 표현, 마이크 없는 육성이 주는 질감이 좋았고, 클라이맥스의 외마디 절규가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특히 참으로 오랜만에 배우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필자는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최근 두 번의 대상을 따낸 극단 손수의 윤민훈 연출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가 어디서 수학했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뒷풀이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만 신상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아무튼 중앙무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30대가 복고풍의 정통 리얼리즘 연극을 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복고풍이라고 했지만 30대 윤민훈의 연출 감각과 표현 언어는 나이만큼 젊었고 감각적이었다. 세상을 따듯하게 하는 희곡 창작 중심이라는 극단 지향점도 좋았다.

그는 말했다. “연극다운 연극을 보여주고 싶다. 관객들이 뭔가 기억나게 하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무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탐구와 연습만이 답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윤민훈 연출은 이 작품을 경연에 나가기 위해 2022년 대상 수상작 '투견'에서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대전의 장지영 배우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고훈목 이태희 배우를 캐스팅했다.

대전과 서울 배우의 조합은 기대 이상의 앙상블과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거두었다.

배우의 연기를 논하기 전에 '검은 얼룩'의 시놉시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형 한구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자신의 몸에 검은 얼룩이 있다며 자신의 살인죄를 자수하겠다고 나선다.

동생 한영은 이런 형을 말리며 망상 증세라며 정신과 약을 먹으라고 한다.

같은 핏줄인 수사관 민주는 한구의 살인죄를 추적한다.

필자는 이 작품의 주제는 ‘죄책감’이라고 보았다. 죄책감은 저지른 잘못에 대해 가책을 느껴 견디기 힘든 마음 상태를 뜻한다. 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권력자 중에는 허상에 시달려 고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신성우 작가는 똑같은 비행을 저지른 형제가 죄책감을 대하는 상반된 심리를 극화했다.

형은 검은 얼룩을 지워버리고 쿠바에 가서 오토바이 가게라도 하며 평범하게 살고자 한다.

동생은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잘못을 숨기고 현실을 누리고자 한다.

진실과 거짓, 망상과 현실, 의무와 책임이 교차 되던 극은 수사관 민주가 시신을 찾아내면서 반전을 일으킨다.

자수하겠다는 음성메시지로 시작하는 극 초반은 형의 행위가 망상이라며 약을 강요하는 동생을 신뢰하게끔 끌어간다. 하지만 후반부에 시체가 발견되면서 동생의 실체가 드러난다. 아버지의 눈 밖에 나 형의 보살핌을 받아온 동생은 진실을 숨기고 현실적 이익과 체면을 지키려 한다. 어떤 것이 옳은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진실을 드러내려 하는 형 한구 역의 장지영 배우는 처음 접했는데도 내공이 느껴졌다.

목소리를 높이거나 동작을 크게 하지 않으면서도 심리적 갈등과 인물 간의 관계를 자유자재로 심도 있게 표출했다. 멋을 부리거나 과장하지 않은, 안정된 발성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진정성 있는 연기를 보여 관객의 몰입도가 높았다.

연극 '검은 얼룩'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필자는 장지영 배우가 극 중에서 넋두리처럼 던진 대사 한마디에 숨이 탁 막히는 체험을 했다.

장 배우의 대사는 쿠바에 가서 오토바이 가게나 하면서 부에나비스타 노래를 들으며 살고 싶다며 쿠바를 ‘이상적인 도피처’로 말한 것인데, 1990년대 초반에 쿠바를 여행했고, 생의 마지막 버킷 리스트로 ‘쿠바에서 1년 살기’를 꼽고 있던 필자에게 그 단어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 것이다.

장지영 배우가 정중동의 연기자라면 동생 한영 역의 고훈목 배우는 자기 주장이 강한 동적인 연기로 관객을 빨아들였다.

필자와 페친인 고훈목 배우는 김정숙 대표가 이끄는 극단 모시는 사람들 멤버로 '심청전을 짓다', '춘섬이의 거짓말'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해오다 이번 '검은 얼룩'에서 장지영 배우와 투톱으로, 이태희 배우와 삼각 틀을 이루며 연기파 배우로 떠올랐다.

고훈목 배우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라스트에서 형의 몸에는 없던 검은 얼룩이 자신의 몸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격정적인 독백 연기를 펼치는데 그 절규가 관객의 막힌 속을 펑 뚫어주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배우가 무대에 섰을 때 멋지게 느껴지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고훈목 배우는 하이톤의 화술과 무드가 있는 연기로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현장의 아우라를 보여주었다.‘

수사관 민주 역의 이태희 배우는 요즘 대학로의 대세 배우로서의 당당함을 연기로 펼쳐냈다. 한영 역 고훈목 배우와의 2인 대결에서도 정확한 발성과 야무진 몸 연기로 팽팽한 긴장을 조성했다. 장지영 고훈목과의 3인 조합에서도 자신의 개성으로 한 축을 받치며 앙상블을 이루었다.

연극 '검은 얼룩'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이 작품에서 사건의 열쇠같은 역할을 하는 붉은악마 소녀 역을 해낸 김미래 배우는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이라는데, 태극기 의상에 대사가 별로 없는 눈빛과 몸 연기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버지 역 이시우 배우도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를 중후하게 펼쳐냈으며, 경리누나 역 최윤정, 비서관 역 지민기 배우도 주어진 역할을 깔끔하게 해냈다.

신성우 작, 윤민훈 연출의 '검은 얼룩' 서울 공연을 관람하며 천신만고 끝에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은 개최지에서의 경연에 그칠게 아니라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공연하여 보다 많은 관객들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규정화하기를 권하고 싶다.

요즘 대학로 연극에 관객이 없다고 하지만 공감을 주는 희곡, 힘이 있는 연출, 매력 넘치는 배우들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이면 관객들이 결코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특히 30대에 대한민국연극제 대상을 두 차례나 거머쥔 윤민훈 연출의 발견은 한국 연극의 희망으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해주기 바라는 마음이다.

장지영 고훈목 이태희 배우 역시 앞으로의 활동을 주목해 보고 싶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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