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극작·연출·연기 '완벽한 삼박자'...연극 '춘섬이의 거짓말'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극작·연출·연기 '완벽한 삼박자'...연극 '춘섬이의 거짓말'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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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길동의 어머니는 누구였을까?...거짓말로 진실 지킨 조선 여인 이야기
- 극단 모시는 사람들 김정숙 작, 연출의 ‘춘섬이의 거짓말’
- 극작, 연출, 연기가 조화 이룬 재밌고 감동적인 수작(秀作)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신작 ‘춘섬이의 거짓말’(김정숙 작, 연출) 포스터.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7월 25일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막을 올린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신작 ‘춘섬이의 거짓말’(김정숙 작, 연출)은 점수로 매긴다면 '올 A'를 줄만 한 멋진 무대였다.

무엇보다 극단(모시는 사람들)이 신뢰할 만했고, 배우와 제작진들의 정성과 열정이 배어있었다. 연극의 절대 요소인 재미와 감동이 있었고, 13명의 배우들 모두 등을 두드려주고 싶을 만큼 개인 연기도 좋았고, 앙상블도 탄탄했다.

한낮 기온이 38도 기염을 토하는 복중에 연극 보러 가는 것도 고역일 수 있는데, '춘섬이의 거짓말'은 극장 냉방만큼이나 시원해 더할 나위 없는 피서였고, 90분간 엔돌핀이 솟아 기분이 상쾌했다. AI시대라지만 수공업 같은 손길에 사람 냄새 나는 연극이 왜 존귀한지 새삼 느껴졌다.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의 핵심은 ‘거짓말’이다.

작가 김정숙은 거짓말로 한 여인의 운명을 바꿔 진실을 지키는 통쾌한 역전극을 창작했다.

필자는 많은 연극인을 알지만 김정숙 작가야말로 때 묻지 않은 연극계의 보배 같은 존재다. 그는 1989년 극단 모시는 사람들을 창단해 작가로, 연출가로, 대표로 '반쪽이전', '강아지똥', '오아시스세탁소 습격사건', '블루사이공' 등 수많은 화제작을 창제작했다.

특히 최근에는 ‘조선여자傳’을 시리즈로 공연해 왔다. '숙영낭자전을 읽다', '심청전을 짓다'에 이어 '춘섬이의 거짓말'은 시리즈의 다섯 번째다.

필자는 몇 년 전 '심청전을 짓다'를 보고 기발한 창의력과 남다른 감성 연출에 감탄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였다. 그래서 모시는 사람들의 공연은 찾아서 볼 정도다.

이번에도 김정숙 작가는 조선 여인을 탐구하면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프리퀼(선행작품의 이야기)을 상상력으로 복원해 냈다.

당시 조선팔도를 흔든 의적 홍길동의 어머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을 빛낸 주역들. 커튼콜 무대 장면./사진=정중헌

열여덟 살, 꽃다운 춘섬이는 홍 대감댁 종이다. 숯 굽는 개불이와 정분을 나눠 아이가 생겼는데, 홍 대감의 욕망으로 짓밟혀 진퇴양난에 처한다. 배 속의 아이를 개불이의 아이로 나을 것인가, 양반의 자식으로 나을 것인가.

추상같은 안방마님의 호통 앞에 진실을 가리는 무대는 법정을 연상케 했다.

춘심을 사랑하는 개불은 통정 사실을 부정한다. 춘심은 내심 개불의 아이라고 밝히고 싶었지만 춘섬의 어머니는 말문을 막는다. 마님의 몸종 쫑쫑이, 찬모 딸끝네도 위험을 무릅쓰고 거짓말로 춘섬이를 지킨다.

이 연극의 핵심은 춘섬이 뱃속의 아이를 개불이 아닌 홍 대감 씨라고 거짓말을 하여 운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 아이가 “애비를 애비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이 되었다는 상상력으로, 김정숙 작가는 차별과 폭력 속에서도 어머니가 되기를 선택한 의지의 여인상을 그려냈다.

“춘섬이로도 내 맘대로 못살고, 별당 댁도 넘의 뜻이지만 너는 내 마음이야! 이건 너하고 나하고 짓는 팔자여!”

춘섬이 뱃속의 아이에게 하는 이 다짐이 이 연극의 요체이고, 숙명이라 여겼던 팔자를 뒤집는 조선 여인의 강단과 슬기를 작가는 설득력 있게 극화했다.

김정숙 연출과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무대는 사실적이지만 뭔가 아우라가 좀 다르다. 토속적이랄까, 아니면 옛스런 정감이 묻어난다고 할까.

이번 공연에서도 그런 색깔들이 진하게 묻어났다.

풀들이 우거진 자연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중심의 너럭바위를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무대미술의 아이디어가 좋았다. 영상으로 변화를 주어 상황의 이해를 도왔으며 조명과 음악이 좋았고 특히 손진숙의 의상이 돋보였다.

연출의 하이라이트는 안방마님의 진실 찾기였는데, 몸종과 찬모들이 함께 거짓말을 엮어내는 기지와 연대감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너럭바위에서 개불과 춘섬이 해후하는 장면의 그림자 영상과 뻐꾸기 울음소리로 애절함을 주고 받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났다.

앞부분 선비와 기생의 이별 장면이 좀 긴듯했지만 서사를 장면으로 응축하여 이야기를 이어가는 기법은 옛날얘기를 듣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을 빛낸 주역들. 커튼콜 무대 장면./사진=정중헌

이 연극을 빛낸 주역들은 배우들이다.

이름있는 배우이건 이름 없는 배우이건 이 작품을 위해 진심을 다해 몸 사리지 않고 연습한 열의가 보이는듯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출연 배우 13명 모두에게 연기상을 주고 싶을 만큼 개인 연기가 좋았고 특히 장면마다 미장셴도 멋졌으며, 전혀 튀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앙상블이 새록새록 빛났다.

춘섬 역 송혜지의 때 묻지 않은 순수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줏대 있는 연기가 주역으로서 당당해 보였다. 춘섬을 사랑하지만 신분의 벽 앞에 무너지는 개불 고예본의 순정 연기도 순수했고 울림도 주었다.

매파 역의 성장순은 마당극패 우금치를 대표하는 명배우로, 우리 정서가 흐르는 민초의 연기를 맛깔나게 해주었다.

춘섬이 아버지 역 정래석, 어머니 역 임정은의 호흡이 잘 맞았고, 특히 임정은 배우는 여성 거짓말 집단의 리더로써 모성이 묻어나는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홍대감 역 박두수 배우는 적지만 인상적인 연기를 해냈고, 안방마님 역 정연심 배우는 체통과 품성을 갖춘 지혜롭고 주관이 강한 여인상을 해냈다.

딸끝네 역 김명애, 쫑쫑이 역 송성애 배우의 장맛같은 연기는 토속성이 묻어나는 감칠맛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선달 역 서도민과 순향 역 채연정은 극 중 극 같은 이별 장면을 애절한 듀엣 연기로 펼쳤다.

초란이 역 홍정연, 쇤돌이 역 오영준도 개성 있는 캐릭터를 해냈다.

김정숙 대표가 쓰고 연출했으며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배우들이 한마음으로 창작해낸 '춘섬이의 거짓말'은 조선 여인 재조명이란 주제 의식이 명징한 희곡, 재미를 살리면서도 서사를 압축적으로 잘 풀어낸 깔끔한 연출, 배우들의 고향 음식 같은 맛깔스런 연기에 스태프들도 정성을 다한 한 편의 수공업식 연극으로, 재미와 감동을 안겨준 올해 주목할만한 역작이었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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