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조기 평전(주강현 지음, 바다위의정원, 2021)
“어부는 구멍이 뚫린 대나무통을 바닷물에 집어넣고 한쪽 귀를 막고서 조기 울음을 들었다. …개구리 소리보다는 작고 바람 소리에 가까운 ‘우이~’하는 요란한 소리라는 게 공통된 느낌이다.” (76~77쪽)
가끔 짭조름한 음식을 먹고 싶다면 십중팔구 보리굴비가 떠오른다. 소금기 가득한 굴비를 녹차물에 말은 밥에 얹어 먹으면, 그만큼 맛과 향이 진하게 느껴지는 바다가 없다.
지금은 고급식재료·음식처럼 여겨지는 조기와 굴비는 인터넷에서 15~20마리에 2~4만원 선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물론 상질은 열 미에 20만원 내외를 호가한다. 그러나 불과 1백여 년 전만 하더라도, 서해안 현지에서 한 동(1,000마리)에 15원 내외를 받고 팔던 생선이었다. 그 당시에도 취급이 나쁘지 않았으나, 많은 어획량을 바탕으로 저가에 유통되던 생선이었다.
오늘의 조기는 흑산도에서 영광 법성포와 경기·황해지역, 특히 연평도를 거쳐 평안북도 철산까지 이르던 거대한 서해에서 사라지고 있다. 연평도 이북에서는 더 이상 조기가 잡히지 않는다. 기후변화와 남획의 결과이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듣는 환경위기와 멸종을 경고하는, 클리셰적인 진혼곡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한 생물이 멸종으로 향하는 여정과 현실을 개탄하지 않는다.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조기 어획과 이로써 삶을 영위하는 각 지방을 현장에서 관찰한다. 그리고 한 종의 생물이 점차 사라지는 현실이 이를 둘러싼 생활환경과 문화, 종교의 몰락으로 연결한다. 즉, 조기의 몰락이 하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효과를 불러왔다.
황해도 출생의 故 김금화 만신이 모시던 임경업 장군은, 연평도에서 모셔지며 조기의 신으로 자리 잡았다. 신화는 연평 앞 바다에 모이는 각 도의 조기잡이 어민들을 통해 평안 철산과 충청 서산까지 퍼졌다. 조기로 점을 치고, 조기 풍어를 기원하며 서해안 곳곳에서 퍼졌던 배연신굿은 조기 어획의 황혼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저자는 그물을 꼼꼼하게 짜 남획으로 자연이 주는 이자 대신 ‘원금’을 까먹는 모습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현대 물질문명의 욕망은 자연을 언제나 착취와 부를 생산하는 대상으로 타자화한다. 그래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어떠한가. 조기가 사라진 연평 바다처럼 까나리와 꽃게잡이로 옮겨가면 그만일까. 조기의 울음이 고요해지고, 그 자리에는 자연을 벗어난 오직 인간만의 삶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윤인혁 / 공연기획자·문화예술평론가·비평연대)
■ 한낮의 어둠 (율리아 에브너 지음, 김하현 옮김, 한겨레출판, 2021)
24년 12.3일, 계엄령 선포에 간밤을 뜬 눈으로 지세웠다. 6시간 만에 막을 내렸지만 모든 걸 목도한 후로 일상을 영위하기 쉽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를 비롯 수 십만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왔다. 오랫 동안 목소리내고 투쟁한 끝에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왜 국가의 지도자는 국가를 위기에 빠뜨렸을까. 이유는 지도자마저 세뇌시킬 만큼 강력한 극우세력의 배후가 있음을 마다 의심치 않았다. 이들의 실체는 무엇인지 또 이들의 전략은 무엇일까 궁금하던 찰나 이 책을 만났다.
저자는 10여 곳의 극단주의 단체에 잠입하여 세력을 확장하는 수법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백인민족주의자 집단 ‘세대정체성’ 에 들어가고자 자신의 혈통을 증명하기도 하고, 극우 미디어가 어떻게 온라인 공격 및 혐오 생산 전략을 펼치는 지도 보여준다. 좋은 네오나치로 보이기 위한 퍼스널 브랜딩 워크숍을 여는 네오나치부터 의류브랜드를 론칭하여 은밀하게 하켄크로이츠 약어를 심는 청년들도 있다.
극단주의 단체에서 주목할 특징은 젊은 연령이 주축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기술 활용에 적극적이다. AI 기술, 해킹 그리고 SNS 등을 적극 활용하여 범국가적인 연대를 이루고 혐오 범죄를 조장한다.
책이 쓰인 당시 유럽 전역으로 부의 양극화, 기존 정치세력의 불만 그리고 이민자 문제에 대한 입지 불안이 극단주의 집단의 불씨를 피울 때 이들의 전략은 플랫폼에서 위험한 변화의 동력(14쪽)으로 작용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문득 서부지법 폭동에 가담한 극우세력이 생각났다. 게임처럼 상황을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사물을 무기처럼 휘둘러 파괴하였다. 심지어 이 분위기를 즐기거나 영상을 보고 후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재미와 악의 분간은 어려워지고 혐오와 폭력은 돈이 된다고 부추기는 분위기가 더해지는 상황. 마치 책 속에서 극단주의 단체가 바라는 분위기가 폭동에서 드러난 것 같았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양극화와 정치적 문제 및 사회적 갈등이 만연하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어도 불통하는 권력 앞에 분노와 좌절이 겹치자 개인의 책임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이 때 불안을 미끼삼아 수익을 거두는 극단주의 집단은 갈등을 조장하고 개인을 갈등의 대상으로, 서로 손해보면 안된다는 생각에 빠지게끔 만든다. 성소수자, 여성, 노인, 이주민 공격으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권력에 항거하는 것보다 쉽기에 혐오가 자리잡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타락한 저항’(교유서가, 2019) 에서 ‘타인의 고통을 자극적으로 즐기는 감각에 내면의 굳은살이 생겨 부끄러움을 상실해간다. 증오는 반지성과 연대한다. 가상의 적의를 부추긴다.’(192p) 고 말한다. 가상의 적의를 부추기고 증오하게 만드는 극단주의 집단의 초기는 미미해보이지만 점차 세를 키워 국가 지도자까지 세뇌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풀 수 없었다. 여전히 우리 시대 내란은 끝나지 않은 것 같다. (최상현 / 출판평론가·비평연대)
■ 인증샷 바깥의 공간 (문형근 지음, 궁리출판, 2022)
SNS의 보편화는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했다. 공간은 이제 인증샷을 위한 배경의 역할을 수행한다. SNS에는 수많은 '좋은 공간'에서 찍힌 사진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런 사진들의 주인공은 공간 그 자체가 아니라 '잘 찍힌 나'이다. 공간은 '나'를 돋보이게 하는 무대장치로 기능하며,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는 종종 간과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은 과연 이렇게 소비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그러나 시선을 돌려, 내가 아닌 나를 둘러싼 공간 자체에 집중하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공간의 모양, 색, 온도, 질감을 느끼면, 감성이 드러난다. 감성은 우리를 사유하게 만든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의 폐쇄적 시각에서 벗어나, 공간으로의 자유롭고 발산적인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발견하게 된다. 경험은 공간을 장소로 만든다.
공간 + 경험(기억) = 장소.
장소는 우리의 도시와 일상에 풍요로움을 더하며, 우리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간에서 사진이 아니라 사유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인증샷은 소통으로의 기능적 확장을 이루게 될지도 모른다. 현재의 SNS는 경험의 결괏값을 보여주는 일방향적 통보의 장으로 작동하고 있다. 하지만 인증샷에 경험의 과정을 담아내고, 공간의 요소와 분위기를 통해 보는 이의 상상을 자극한다면 어떨까? 사유가 담긴 인증샷은 단순히 "내가 여기에 다녀왔다"라는 통보를 넘어, 소셜 네트워킹의 다방향적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이러한 기능적 확장을 통해 SNS는 사유를 나누는 아고라이자 민주적 소통의 연습장으로서 변화할 수 있다.
‘인증샷 바깥의 공간’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상을 담은 기록이다. 저자는 자신이 방문한 공간들을 복합문화공간, 카페, 다이닝과 와인 바, 호텔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한다. 담백한 문체로 쓰인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마치 그 공간에 직접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저자는 공간을 단순한 배경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간의 본질적 가치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발견하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공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며,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길을 안내한다.
기회가 된다면 책에서 소개된 공간들 중 한곳을 방문해 보길 권한다. 그곳에서 저자가 느낀 감성과 시선을 곱씹어보고, 자신의 새로운 사유를 발견해 보길 바란다. 사유하는 순간, 그 공간은 더 이상 인증샷의 배경이 아닌, 온전한 내 것이 된다. 이는 ‘인증샷 바깥의 공간’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이자, 우리가 공간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다. (설명문 / 건축설계 및 공간디자이너·비평연대)
■ 특허 존중 사회 (백만기·전기억 지음, 타커스, 2024)
창조적 사고와 특허가 만드는 기술 사회.
“불의 나라에서 얼음 화폐를 사용한다면?”
책에서 던지는 황당한 질문은 단순한 사고 실험이 아니다. 우리는 과연 이러한 물음에 각자 어떠한 답을 내놓을까?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태도, 즉 창조적 사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다. 특허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특허는 단순히 발명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창조적 문제 해결을 촉진하고 기술 혁신을 가속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특허가 무조건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특허 존중 사회’는 특허가 기술자와 발명가의 열정을 북돋우는 동시에, 기술 독점을 통해 시장 경쟁을 저해할 수도 있음을 조명한다.
특허의 중요성은 단순한 개인의 권리 보호에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 차원에서도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다. 역사적으로도 특허 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 국가들이 기술적 우위를 점해왔다. 예를 들어, 영국은 전매조례를 통해 유망한 기술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며 산업혁명을 주도했다. 반면, 일본은 발명가에 대한 보상 체계가 미흡했던 결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나카무라 슈지와 같은 핵심 인재가 해외로 유출되는 문제를 겪었다. 이는 국가가 특허 보호와 기술 개발에 대한 체계적인 전략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AI, 반도체, 양자 기술과 같은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이러한 전략적 접근이 더욱 중요하다.
책은 또한 한국 사회의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정답을 찾는 교육 방식에 익숙해져 왔고, 이는 효율적이고 빠른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AI가 정답을 쉽게 도출할 수 있는 시대에, 단순한 정답보다 중요한 것은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이다. 특허는 ‘정답’이 아니라 ‘창조’의 영역에 속하며, 기존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이제는 ‘패스트 팔로워’를 넘어 ‘퍼스트 무버’로 전환하기 위해 창의적 사고를 키우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이 책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얼마나 깊이 문제를 탐구하며 살아왔는가?” 나는 정해진 답만을 좇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단기적인 이익만을 계산하며 더 큰 가치와 신념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이는 단순히 특허 제도의 필요성을 논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 혁신을 이끄는 창조적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등장하는 인상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려 보자.
“불의 나라에서 얼음 화폐를 사용한다면?”
이 질문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기존의 상식과 한계를 넘어서 새로운 해법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특허 존중 사회에서 필요한 사고방식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특허를 단순한 권리 보호가 아니라 창조적 혁신의 출발점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기술 경쟁력을 넘어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기술 혁신의 중심에 서 있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단순히 특허 제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데 이 책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특허 존중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며, 함께 창조적 사고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가길 바란다. (강민지 / 문화평론가·프롬레코드대표·비평연대)
■긴긴밤 (루리 지음, 문학동네, 2021)
이토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으며 몇 번이나 울음이 터지는 것을 참았는지, 지친 하루 끝에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벌개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음 속에 가득 번지는 온기에 행복했고, 또 어디선가 마주칠 내 인생의 ‘긴긴밤’을 이겨낼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코뿔소 노든과 아기펭귄 덕분에.
작가 루리의 소설 ‘긴긴밤’은 2021년 출간되어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누적 판매 50만부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가 된 소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멸종직전의 세상 단 하나 뿐인 흰코뿔소 노든과 버려진 알에서 태어난 아기 펭귄. 코뿔소의 뭉툭하고 두꺼운 앞발로 품어 부화시킨 아기 펭귄 은 코뿔소에게 의지하며 자라난다. 밀렵꾼들에게 아내와 아이를 잃고 인간에게 복수를 하는 게 삶의 전부였던 흰코뿔소는 아기펭귄을 바다에 안전하게 데려다 주기 위해 복수도 미룬다.
그렇게 함께 떠난 멀고 도 험한 긴 여정에서 상실을 경험한 두 존재는 깨닫는다. 복수는 필요 없음을, 그리고 아무리 외롭고 힘들더라도 내 곁에 함께 해줄 누군가의 소중함을.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고 바다에 거의 다다를 무렵 밀렵꾼들을 만난 코뿔소는 아기 펭귄을 지키기 위해 대신 상처를 입게 되고,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걸 깨달은 아기 펭귄은 용기를 내어 혼자 떠난 길 끝에 마침내 바다를 만난다. 코뿔소와 펭귄의 종을 넘은 우정과 누구에 게나 닥치는 인생의 긴긴 밤을 함께 헤쳐나가는 희망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인생 책'으로 손꼽혀왔다.
나이를 먹는 일이란,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집에 놀러왔다가 저녁이면 돌아가는 고모, 이모 붙잡고 엉엉 울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내어 울지 않을 뿐, 이별과 외로움은 여전히 쓸쓸하다. 그래서 긴긴밤을 함께 해 줄 네가 얼마나 감사한지.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이 소설은 하나하나 일깨워주고 있었다. 누군가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실수하지 않도록 가르쳐 주는 마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은 마음. 관객들 모두 그런 사람 하나 떠올리며 감사의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게 하는 공감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최여정 / 작가·문화평론가·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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