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삶과 죽음 사이의 완충지대...연극 ‘2시 22분–A GHOST STORY’
[주하영 365칼럼] 삶과 죽음 사이의 완충지대...연극 ‘2시 22분–A GHOST STORY’
  • 주하영
  • 승인 202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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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2021년 영국 웨스트엔드 화제작
- 2022년 왓츠온스테이지 어워즈 최우수 신작상 수상, 올리비에 어워드 노미네이트
- 한국 초연...신시컴퍼니 라이선스 신작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혼령의 존재를 믿는 '벤(양승리, 가운데)'은 제니가 만났다고 주장하는 혼령을 불러내기 위한 의식을 실행한다. 왼쪽부터, 제니(박지연), 샘(김지철), 로렌(임강희)./사진= 신시컴퍼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인간이 귀신이나 혼령의 존재를 믿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가 등장하고, 뇌과학과 신경학, 수면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시대에 여전히 인간이 초자연적 존재와의 접촉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014년 영국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롭슨은 BBC를 통해 “21세기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며, 몇 가지 놀라운 이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백악관을 방문한 윈스턴 처칠 수상이 링컨 대통령의 유령을 만났다는 일화로 시작하는 글에서, 롭슨은 설문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4분의 3이 초자연적 현상을 믿으며, 5명 중 1명은 실제로 유령을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음을 언급했다.

미국 잡지 ‘디 애틀랜틱’은 같은 해 영국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2%가 유령의 존재를 믿는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음을 지적했다.영국 관광청 자료에 의하면, 영국에는 10,000개 이상의 유령이 출몰하는 장소들이 있으며, 해당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 또한 상당수에 이른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캐스팅 모음 이미지컷. 대니 로빈스의 연극 '2시 22분'은 2022년 올리비에 어워드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뿐 아니라 왓츠온스테이지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사진= 신시컴퍼니

골드스미스런던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프렌치에 따르면,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맞닥뜨려 도저히 정상적인 설명을 할 수 없을 때, 오히려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세상의 정보를 수신하는 뇌가 처리해야 할 감각과 신호는 압도적이고, 혼란이 발생할 경우, 중요한 부분만 골라내고 빈틈을 채우는 것은 두뇌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때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가하기도 한다.

‘믿는 뇌’의 저자 마이클 셔머는 인과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패턴을 발견해 의도가 담긴 것으로 간주하는 인지 방식이 인간의 진화에 유리했기 때문에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프렌치는 인간의 믿음에는 그러한 진화적 이점 외에 “감정적인 동기 부여”가 작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죽음과 끝이라는 미지의 세상을 두려워하고 호기심을 품는 인간은 유령이나 영혼의 존재는 무섭지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인 믿음을 거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빅토리아 시대의 오래된 낡은 집을 개조해 11개월된 딸을 데리고 이사한 '제니(박지연)'는 남편 샘이 출장을 간 동안 매일 밤 2시 22분에 혼령과 마주한다./사진= 신시컴퍼니

2021년 8월, 영국의 웨스트엔드 노엘 카워드 극장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오래된 낡은 집을 개조해 이사한 부부가 유령의 출몰을 둘러싼 소란과 갈등을 겪는 연극 ‘2시 22분’이 초연되었다.

11개월 된 딸을 데리고 이사한 제니와 샘이 로렌과 벤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논쟁을 중심으로 하는 스릴러 연극 ‘2시 22분’은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매진을 이어갔다.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공연이 멈췄던 웨스트엔드에서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와 극찬은 평단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연극 ‘2시 22분’은 2022년 올리비에 어워드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을 뿐 아니라 왓츠온스테이지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상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최근 신시컴퍼니는 5년 만에 라이선스 신작 연극으로 선보인 ‘2시 22분’의 한국 초연의 막을 내렸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포스터 컷. '신시컴퍼니'는 5년 만에 라이선스 신작 연극으로 영국 작가 대니 로빈스의 '2시 22분'을 한국 초연으로 선보였다./사진= 신시컴퍼니

영국 극작가 대니 로빈스(Danny Robins)의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연극 ‘2시 22분’은 실제로 로빈스의 한 친구가 혼령과 마주쳤다고 고백한 일화에서 시작됐다.

로빈스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혼령이나 신비주의를 믿지 않던 친구의 생생한 경험을 만약 다른 친구들이 듣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각자 다른 믿음을 가진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이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다고 설명했다.

로빈스는 만약 내가 본 것을 가장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사랑을 기반으로 한 배우자라면, 혹은 오랜 우정을 이어온 친구라면, 생각의 차이가 ‘관계’를 어떻게 이끌게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유령 이야기’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사랑과 확신, 연대와 믿음으로 견고하다고 여겼던 관계는 신비주의와 미신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적대감과 짜증, 무시와 천대, 비웃음과 마주하게 될 때, 흔들리거나 깨질 수 있을까? 내가 확신하는 것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끝까지 의지하고 신뢰하는 일은 가능할까? 사랑한다면서 상대가 본 것을 인정하지도 못하고 끝까지 부정하는 태도는 관계의 지속을 가져올 수 있을까?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과학적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샘(김지철)'은 자신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4일 동안 '제니(박지연)'가 혼령과 마주했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다./사진= 신시컴퍼니

로빈스의 질문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매일 밤 2시 22분이 되면 남자의 혼령이 나타나 아기 침대 주변을 맴돌고 흐느끼는 소리를 낸다는 아내 제니의 주장에 맞서는 남편 샘의 이야기로 창작된다.

제니는 대학 때부터 20년간 남편의 친구였던 정신과 의사 로렌과 그녀가 최근에 사귄 남자 친구 벤이 혼령이 나타나는 시간인 새벽 2시 22분까지 함께 있어줄 것을 요청한다. ‘바보들을 위한 천문학’이라는 책을 집필할 정도로 사람들의 과학적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샘이 자신이 출장으로 집을 비운 4일 동안 제니가 혼령과 마주했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칠 뿐 아니라 태양계를 둘러싼 우주에 관한 것부터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샘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혼령의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느꼈다고 확신하는 제니의 주장이 뇌의 착각이자 환상이라고 일축한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샘(최영준, 오른쪽)'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혼령의 소리를 들었을 뿐 아니라 느꼈다고 확신하는 '제니(아이비, 가운데)'의 주장이 뇌의 착각이자 환상이라고 일축한다. '로렌(방진의)'은 중립을 지키고자 하고, '벤(차용학)'은 제니의 말을 신뢰한다./사진= 신시컴퍼니

샘은 혼령이 나타나는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증명해줄 것을 로렌과 벤에게 부탁하는 제니를 아연실색하며 만류한다. 하지만 모든 질문의 답을 안다고 생각하는 샘이 틀렸을 가능성을 확인하고픈 로렌과 유령과 영혼, 환생을 믿는 벤은 제니의 요청대로 새벽 2시 22분까지 집에 머물기로 동의한다.

난방 장치가 고장난 추운 집에서 아기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베이비 모니터를 켜놓은 채 거실에 모여 앉은 네 사람은 집 근처 여우굴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와인잔을 기울인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정신과 의사인 '로렌(임강희)'과 남자 친구인 '벤(양승리)'은 샘과 제니가 새로 이사간 집의 저녁 식사에 초대된다./사진= 신시컴퍼니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남편 샘을 만나면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 제니는 자신이 마주한 혼령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혼령의 출몰을 기다리는 네 사람은 물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 소리를 내거나 물건을 움직이는 유령을 일컫는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의 존재를 믿는 신비주의자의 입장에서, 각기 논쟁을 시작한다.

제니가 경험한 혼령의 존재는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일까? 1970년대부터 그 집에 살아온 이전 집주인 마가렛의 죽은 남편 프랭크일까? 만약 프랭크라면,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손때가 묻은 집과 가구, 추억을 지울 수 없는 영혼의 갈 곳 없는 머무름일까, 아니면 집을 그대로 보존해 줄 것을 바랐던 마가렛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현대식으로 리모델링해 과거의 흔적을 지운 데 대한 분노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주인이 된 제니와 샘, 그리고 아기 피비에게 경고해 줄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제니(아이비, 왼쪽)'는 20년간 남편의 친구였던 정신과 의사 '로렌(방진의, 오른쪽)과 그녀가 최근에 사귄 남자 친구 '벤(차용학, 가운데)에게 혼령이 나타나는 시간인 새벽 2시 22분까지 함께 있어줄 것을 요청한다.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하고, 오싹한 비명과 공포, 극도의 긴장감을 낳는 호러(horror) 장르라기보다는 범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탐정 추리극의 공식을 따른다. 한곳에 모여 앉은 사람들,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되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 각자의 숨겨진 속내와 얽혀 있는 관계가 하나씩 드러나며 퍼즐을 맞추도록 유도되는 조각들….

로빈스는 2021년에 출간된 희곡의 ‘소개글’에서 아직 공연을 보지 않은 관객들을 위해 스포일러를 금할 것을 요청하면서, 유령 출몰의 이야기는 결국 “탐정 이야기”이며, 모든 탐정 소설들이 그렇듯 즐거움은 범인을 추측하고 추론하는 과정에 있음을 피력한다.

로빈스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유령 혹은 혼령’이라는 단어가 불러내는 사람들의 반응과 행동, 그리고 각자가 품은 다른 생각과 믿음이며, 인간이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죽음 이후의 존재, 혹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믿음을 계속 간직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제니(아이비)'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남편을 만나면서 과학에 눈을 떴고, '샘(최영준)'이 쏟아내는 지식을 그대로 수용하며 남편의 방식에 맞춰 살아왔다./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에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저널리스트, DJ로 활동했던 로빈스가 2017년부터 유령의 출몰과 초자연적인 현상에 관해 팟캐스트 채널을 진행하면서 쌓아 온 논쟁 포인트와 리서치가 반영되어 있다.

400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한 그의 팟캐스트 프로그램은 유령을 목격한 수많은 사람들의 연락을 통해 로빈스를 “영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령 전문가”로 만들었고, 호러 영화 제작사인 블룸하우스 프로덕션과 BBC에서 TV 영화를 작업하는 기회를 선물했다.

로빈스는 ‘이브닝 스탠더드’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유령의 존재를 믿고 싶어하는 회의론자”라고 설명하는데, 혼령의 증거를 찾아다니며 입증하고자 하지만, 실제로 만나 본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 자신의 죽음을 확신하는 공황 발작과 천사를 보는 환각을 경험하면서 “죽음이 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로빈스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마주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유령 이야기의 적절한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회의적인 태도와 모순되는 경험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파헤치고, 인간이 왜 괴담 이야기에 매료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연극 ‘2시 22분’의 출발점 역시 종교를 갖고 있었으나 남편을 만나면서 과학의 세상에 눈을 떴고,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았으나 혼령을 만나는 경험을 한 ‘제니’에게 설정된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이전 세대의 역사와 기억, 문화, 시간을 품고 있는 오래된 집은 저소득층이 거주하던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 도시를 재활성화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통해 부유층 거주지로 탈바꿈한다./사진= 신시컴퍼니

이전 세대의 역사와 기억, 문화, 시간을 품고 있는 오래된 집은 저소득층이 거주하던 낙후된 지역을 개발해 도시를 재활성화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통해 부유층 거주지로 탈바꿈한다. 같은 장소에서 살다간 많은 사람들의 과거는 벽에 겹겹이 덧칠된 페인트처럼 깊이 숨겨져 보이지 않게 된다. 마치 삶이 죽음에 의해 지워지고, 인간이 육체를 잃으면서, 영혼이 머물 곳을 찾지 못하는 것과 유사하다.

로빈스가 무대 배경을 1970년대 벽지의 일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페인트칠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집’으로 설정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AI 음성 비서에게 조명을 줄여줄 것을 지시하거나 파티 음악을 틀어줄 것을 요청하는 발전된 기술의 시대는 손으로 가족이 사용할 테이블을 직접 만들고, 공구함을 소중하게 여기던 이전 세대의 흔적을 어딘가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 샘이 “빛 공해가 없는 곳”으로 언급하면서 별을 관찰하기 위해 다녀온 사크(Sark)섬은 16세기 중반 이후부터 2008년까지 “봉건 자치령”을 유지해 온 오랜 과거의 유산을 갖고 있는 지역이다. 말이 끄는 마차와 트랙터가 주요 이동수단인 사크섬은 2011년부터 ‘어두운 하늘 협회(Dark Sky Association)’에 의해 자연적인 인간의 생태와 밤의 유산을 지켜내기 위한 곳으로 지정되었다.

밤이면 완전히 암흑에 잠기게 되는 섬이면서도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에는 와이파이 통신시설까지 제공되는 사크섬의 현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는 구도심과 유사한 점이 있다. 변화와 계몽, 진보와 개량을 선호하는 샘이 수만 년 전에 출발한 과거의 빛인 별을 보기 위해 제니와 딸 비피를 집에 남겨두고 홀로 떠난 시각, 제니는 오래된 집에서 누군가의 영혼일지 모를 유령과 마주친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극작가 대니 로빈스는 1970년대 벽지의 일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페인트칠을 완전히 마무리하지 못한 ‘집’으로 무대 배경을 설정한다. 왼쪽부터, 샘(최영준), 로렌(방진의), 벤(차용학)./사진= 신시컴퍼니

샘은 모든 초자연적 현상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허구의 결과일 뿐, 패턴과 연관성을 찾아 의미를 발견하려는 두뇌의 작용이며, 이성이 아닌 본능과 관련된 “도마뱀의 뇌”가 작동한 탓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벤은 샘의 대척점에서 신비주의자의 관점을 드러낸다.

벤은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1940년대에 2차 세계대전의 공포를 이겨내고 영국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노래를 집에 출몰한 할머니 유령에게 배운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벤은 혼령과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고, 퇴마를 통해 혼령에게서 벗어난 경험이 있다.

욕실 인테리어 시공업자인 그는 오래된 기억과 이전 시대의 유산들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부수고, 지우고, 새롭게 변형시켜야 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 인간이 지닌 모든 감정 가운데 공포심이 인류를 생존하게 만든 가장 큰 요소라고 말하는 로렌은 심리학적 입장을 대변한다. 인간을 합리적 이성과 비합리적 믿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로렌은 제니와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로렌은 혼령이 죽음과 삶 사이에서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의 ‘틈’을 메우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만, 벤이 제니를 통해 불러낸 폴터가이스트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2시 22분' 공연 장면. 욕실 인테리어 시공업자인 '벤(차용학)'은 '로렌(방진의)'의 집의 화장실을 수리해주면서 연인으로 발전했다./사진= 신시컴퍼니

금지된 것에 더욱 이끌리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에 보다 집착하게 되는 심리 반동 작용인 ‘흰곰 효과’를 언급하는 로렌은 샘의 회의론에 근거를 보태며, 심리학자 다니엘 웨그너의 ‘억제된 욕망일수록 정반대의 태도를 표출하게 된다’는 방어기제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이성과 감성, 육체와 정신,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인간은 양 극단 사이에서 늘 균형점을 찾고자 애쓴다. 진실을 추구하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는 인간은 세상의 ‘틈’을 믿음으로 메우고,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증거를 찾아 헤맨다.

로빈스는 “혼령은 우리와 죽음 사이의 완충지대”라고 말한다. 초자연적 경험에 대한 기록은 역사 속에서 특정 패턴을 따르고 있음을 지적하는 로빈스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혼돈의 증상이 아니라 혼돈에 대한 반응”이라고 주장한다.

사회 혼란이 가중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존재하며, 수많은 죽음과 파괴를 경험한 세상은 “삶의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유령과 영혼에게 매달리는 신비주의의 부흥을 목도해왔다.

로빈스는 암울하고 잔인하게 느껴지는 세상 속에서 붙들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인간의 “집단적 갈망”이라고 할 수 있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죽음에 대한 방어책”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혼령이 실재하는 것이든 아니든, 유령과 영혼에 대한 믿음은 사후의 삶을 긍정함으로써, 죽음이라는 상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우리의 유한한 삶이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연극 '2시 22분' 인물 포스터 컷. (왼쪽 포스터) 샘(최영준), 제니(아이비), 로렌(방진의), 벤(차용학), (오른쪽 포스터) 샘(김지철), 제니(박지연), 로렌(임강희), 벤(양승리)./사진= 신시컴퍼니

하트퍼드셔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리처드 와이즈먼은 초자연적 경험은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경우”와 “대중 미디어”라는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주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고통이나 아픔이 없는 세상을 원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항상 함께하는 삶을 바란다. 인간의 상상력은 때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보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인류 역사와 함께하는 초자연적 존재와 현상에 대한 진실은 무엇일까? 아직 우리가 닿지 못한 신비와 숨겨진 비밀의 ‘틈’일까, 아니면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낸 희망의 소산 혹은 불안의 환영일까? 우리가 혼령의 존재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주하영
jhy02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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