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하영 365칼럼] 마술적 사실주의로 구현된 ‘멕시코’...태양의 서커스 ‘루치아(LUZIA)’
[주하영 365칼럼] 마술적 사실주의로 구현된 ‘멕시코’...태양의 서커스 ‘루치아(LUZIA)’
  • 주하영
  • 승인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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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
- 태양의 서커스 38번째 작품 첫 내한
- 빅탑 투어 공연 최초로 ‘물(Water)’ 활용한 2016년 초연작
- 다니엘 핀지 파스카가 그려낸 ‘상상의 멕시코’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붉게 빛나는 달 아래에서 두 개의 거대한 그네(스윙)를 설치해 최대 10미터 높이까지 공중으로 떠오르고 회전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러시아 스윙' 퍼포먼스는 생동감과 전율, 해방감을 선사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붉게 빛나는 달 아래에서 두 개의 거대한 그네(스윙)를 설치해 최대 10미터 높이까지 공중으로 떠오르고 회전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러시아 스윙' 퍼포먼스는 생동감과 전율, 해방감을 선사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멕시코가 품은 매력은 무엇일까?

여행가 크리스 크레처는 멕시코에서 며칠을 머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놀라운 모험과 소중한 추억이 담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한다.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콜롬비아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멕시코로의 여행은 발견의 여정”임을 강조한다. 여행자의 발길이 닿는 모든 구석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고, 모든 사람이 새로운 모험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만 3천 년을 보유한 곳, 1만 3천 년 전부터 인류가 살았던 흔적을 간직한 곳, 우주와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초자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신념과 문화가 남아있는 곳...

멕시코의 인류학자 기예르모 본필 바타야는 오늘날 멕시코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된 유적지들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메소아메리카 문명이 남긴 흔적”이라고 말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폭타폭(Pok-ta-pok)'은 메소 아메리카 문명에서 3,000년 동안 이어져 온,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생명을 재탄생시키는 의례이자 공놀이다. 땅에서 튀어오르는 공은 태양을, 공을 통과시키는 고리는 일출과 일몰 혹은 춘분과 추분을 상징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폭타폭(Pok-ta-pok)'은 메소 아메리카 문명에서 3,000년 동안 이어져 온,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생명을 재탄생시키는 의례이자 공놀이다. 땅에서 튀어오르는 공은 태양을, 공을 통과시키는 고리는 일출과 일몰 혹은 춘분과 추분을 상징했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그는 마야와 아즈텍 문명을 품고 있는 멕시코가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문화들을 발전시켜왔고,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300년간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서구 유럽 문명에 의해 침범되면서도, “깊은 멕시코”를 지속적으로 품어왔음을 지적한다.

그는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창조해낸 많지 않은 문명 가운데 하나가 오늘날 멕시코라고 불리는 땅에서 출현”했으며, 이는 다름 아닌 “메소아메리카 문명”이라고 강조한다.

2016년 4월, 캐나다의 퀘벡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서커스를 널리 알린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는 꿈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상상의 멕시코’를 담은 38번째 오리지널 작품 ‘루치아’를 선보였다. 높이 20m, 직경 51m의 ‘빅탑(Big Top)’에서 펼쳐지는 투어 공연으로는 17번째 작품이었다.

태양의 빛을 상징하는 흰색과 노란색을 강조한 빅탑의 디자인은 멕시코 문화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달과 우주, 태양계의 행성들이 회전하는 길을 담아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빅탑 투어 공연 최초로 '물'을 도입한 '비의 커튼'은 기술적 도전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공연 중에 사용되는 1만 리터의 물은 한번만 공급된 뒤 공연 기간 내내 재활용되며, 무대 위 14m 높이에서 174개의 노즐을 통해 쏟아지는 물줄기 위로 여러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도록 제어가 가능하다./사진 제공 = 마스트인터내셔널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빅탑 투어 공연 최초로 '물'을 도입한 '비의 커튼'은 기술적 도전의 성취라고 할 수 있다. 공연 중에 사용되는 1만 리터의 물은 한번만 공급된 뒤 공연 기간 내내 재활용되며, 무대 위 14m 높이에서 174개의 노즐을 통해 쏟아지는 물줄기 위로 여러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도록 제어가 가능하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루치아(Luzia)’는 스페인어로 ‘빛’을 뜻하는 “luz”와 ‘비’를 뜻하는 “lluvia”를 결합해 만들어낸 단어로, 정신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태양빛과 영혼을 어루만지고 달래는 ‘물’의 속성을 주제로 하는 공연을 의미했다.

곡예와 비를 접목해 무대 한가운데 폭우가 쏟아지는 장대한 ‘비의 커튼(rain curtain)’을 만들어내고 수중 퍼포먼스를 선보인 ‘루치아’는 태양의 서커스의 투어 공연으로는 처음 ‘물’이라는 요소를 도입한 기술적 도전을 성취한 작품이기도 했다.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에서는 1만 리터의 물이 쏟아지는 비의 커튼과 함께 마술적 사실주의로 그려낸 신비로운 ‘멕시코’를 감상할 수 있는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360도를 회전하는 무대, 비를 맞으면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곡예, 실물 크기의 말과 재규어 퍼펫의 등장, 다양한 동물과 선인장의 의상을 입은 퍼포머들이 라틴 아메리카를 느끼게 하는 음악과 상징적 무늬로 초현실주의적인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루치아’는 ‘꿈’의 속성을 특징으로 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멕시코인들의 영혼에 깊이 내재된 음악을 노래하는 가수는 개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61개의 모터가 움직이면서 하얀 꽃잎들을 하나씩 붉은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9kg 무게의 드레스를 통해 기술의 적용을 드러낸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멕시코인들의 영혼에 깊이 내재된 음악을 노래하는 가수는 개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61개의 모터가 움직이면서 하얀 꽃잎들을 하나씩 붉은 꽃으로 피어나게 하는 9kg 무게의 드레스를 통해 기술의 적용을 드러낸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루치아’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다니엘 핀지 파스카는 ‘카탈로니아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멕시코를 주제로 한 작품을 의뢰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깊이와 소리, 냄새가 있는 멕시코”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서커스에서 “곡예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고전적인 요소를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에 주목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출신의 연출가이자 안무가로 아름다운 미장센과 스토리, 연극적 요소를 강조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서크 엘루아즈(Cirque Éloize)’의 제작을 이끌기도 했던 파스카는 ‘루치아’가 10년 동안 멕시코에서 거주했던 자신의 느낌과 상상, 직관을 바탕으로 구현된 작품임을 피력한다.

20세기 최고의 멕시코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후안 룰포의 소설 ‘페드로 파라모’의 서술 방식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06년 영화 ‘판의 미로’의 느낌을 적용하고자 했다는 파스카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특징이기도 한 ‘마술적 사실주의’가 “매우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이라는 점에서 아크로바틱 언어와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1막의 끝부분에 무대 중앙 위로 내려오는 구멍 뚫린 종이 랜턴 모양의 거대한 '파펠 피카도(Papel picado)'는 죽은 자들의 제단을 꾸미기 위해 종이를 오려 만든 장식물이다. 파펠 피카도 위에는 공연에 등장하고 사용되는 모든 이미지가 문양으로 새겨져 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1막의 끝부분에 무대 중앙 위로 내려오는 구멍 뚫린 종이 랜턴 모양의 거대한 '파펠 피카도(Papel picado)'는 죽은 자들의 제단을 꾸미기 위해 종이를 오려 만든 장식물이다. 파펠 피카도 위에는 공연에 등장하고 사용되는 모든 이미지가 문양으로 새겨져 있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1925년 독일의 사진작가이자 미술 평론가, 역사가인 프란츠 로가 처음 언급한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는 환상적이고 신화적이며 꿈과 같은 요소를 현실과 함께 결합하는 방식을 말한다.

뉴욕 현대 미술관은 이러한 예술 경향을 “비범하고 놀라운 것들이 현실 속 일상과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그려냄으로써 비일상적인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고자 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프리다 칼로를 통해 보다 발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소설로의 영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통해 개척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겪어낸 역사를 7대에 걸친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토착 신화의 마술과 같은 ‘상상력’으로 펼쳐낸 마르케스의 서술 방식은 룰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부흥했던 멕시코 영화 산업을 떠올리는 바닷가 영화 촬영 세트장에서는 6미터 높이까지 구조물을 쌓아올리며 전율을 불러오는 '핸드 밸런싱'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1930년대부터 60년대까지 부흥했던 멕시코 영화 산업을 떠올리는 바닷가 영화 촬영 세트장에서는 6미터 높이까지 구조물을 쌓아올리며 전율을 불러오는 '핸드 밸런싱' 퍼포먼스가 펼쳐진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루치아’가 드러내는 멕시코는 식민지 시대나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을 거친 뒤 복잡한 대립과 갈등을 겪어온 국가가 아닌 외지인인 파스카가 문화와 자연을 통해 느끼고 영감을 얻은, “멕시코의 삶을 상징적으로 재상상한” 꿈과 같은 세상이다.

예술감독인 그레이스 발데즈는 멕시코의 아름답고 풍부한 문화를 기념하는 목적에서 기획된 ‘루치아’가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세계로의 ‘여정’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시간과 역사의 순환성, 과거와 현재의 혼재, 환상과 일상의 혼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 방식은 ‘루치아’에서 여행자인 ‘광대(clown)’가 멕시코 자연의 한 지점에 불시착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여행자인 '광대'는 자유낙하 도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불시착한 곳에서 중앙에 꽃혀있는 커다란 금속 열쇠를 발견하고 힘을 다해 돌린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여행자인 '광대'는 자유낙하 도중 낙하산이 펴지지 않아 불시착한 곳에서 중앙에 꽃혀있는 커다란 금속 열쇠를 발견하고 힘을 다해 돌린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루치아 공항 1번 활주로의 이륙 준비 완료와 고도 3만 피트 상공의 비행을 알리는 조종사는 점프 후 자유낙하의 속도가 시속 2백㎞가 될 것이며, 3천5백 피트에 도달했을 때 반드시 낙하산을 펼쳐야 함을 공지한다.

하지만 바람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자유낙하 중인 여행자의 낙하산은 펴지지 않고, 패닉 상태에 빠진 여행자는 임시방편으로 우산을 펼쳐 지상에 안전하게 도착한다.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땅을 마주한 여행자는 배회하다 커다란 금속으로 된 열쇠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두 손으로 힘을 다해 밀어 돌린다. 태엽을 감아 움직이는 오르골처럼 무대는 360도로 회전하기 시작하고, 기타와 퍼커션이 지배하는 경쾌한 라틴 멜로디가 흐른다.

무대 뒤에 자리하고 있는 거대한 원반 모양의 ‘태양’이 오렌지빛을 띤 노란색으로 밝아지면, 화려한 “나비의 날개”를 펼친 여인이 등장해 은빛 금속의 말과 함께 트레드밀 위를 달리기 시작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해마다 캐나다부터 멕시코까지 이동하는 '제왕나비'는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는 멕시코인들의 순수한 열정과 수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발 빠른 타라우마라 부족을 상징한다. 또, '말'은 멕시코 문화와 친숙한 동물이며, 멕시코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사진 제공 = 마스트인터내셔널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해마다 캐나다부터 멕시코까지 이동하는 '제왕나비'는 장애를 두려워하지 않는 멕시코인들의 순수한 열정과 수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발 빠른 타라우마라 부족을 상징한다. 또, '말'은 멕시코 문화와 친숙한 동물이며, 멕시코의 정체성을 나타내기도 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죽은 자의 영혼을 집으로 불러온다는 황금색 메리골드(셈파수칠, cempasúchil) 5천 송이가 피어있는 가운데 6m 길이의 날개를 길게 늘어뜨리고 맨발로 달리는 여인은 “수백 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발 빠른 타라우마라 부족”의 ‘강인한 정신’을 대변한다.

또, 캐나다 남부에서 멕시코 중부로 이동하는 ‘제왕나비’의 연례 여정을 상징한다. 오늘날 제왕나비는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에서 생물의 다양성과 인권을 옹호하는 상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제왕나비가 날아오는 것은 조상의 영혼이 돌아옴과 함께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을 기리는 ‘죽은 자의 날(Day of the Dead)’을 의미한다는 데서 메리골드의 상징과 연계되는 점이 있다.

매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이주하는 자연 속 제왕나비의 여정은 캐나다에 기반을 둔 태양의 서커스가 멕시코를 기리는 공연을 창작한 ‘이동’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떠올리게도 만든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벌새 의상을 입은 퍼포머들은 지름이 75센티미터인 후프를 향해 트레드밀 위에서 점프를 하며 '후프 다이빙'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후프를 뛰어넘는 행위는 새로운 상황이나 영역으로 점프하는 자유로움과 도전, 해방을 상징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벌새 의상을 입은 퍼포머들은 지름이 75㎝인 후프를 향해 트레드밀 위에서 점프를 하며 '후프 다이빙'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후프를 뛰어넘는 행위는 새로운 상황이나 영역으로 점프하는 자유로움과 도전, 해방을 상징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여정은 ‘벌새’의 날개와 부리를 한 곡예사들이 두 개의 트레드밀 위에서 지름이 75㎝인 후프를 점프해 통과하는 묘기를 선보이는 “민첩성과 속도를 강조한 액트”로 이어진다.

‘후프 다이빙(Hoop diving)’이라는 전통적인 서커스 묘기에 영국 광산 산업 현장에서 사용되던 컨베이어 벨트를 적용시켜 속도와 불안정성을 더해 난이도를 높인 퍼포먼스는 “죽은 영혼이 태양과 함께 여행을 한 뒤 빛나는 별이 하늘을 가로지르면 벌새로 환생한다”는 아즈텍의 믿음을 반영한다.

“모든 인간에게 동물의 영혼이 깃든다”는 메소아메리카 문명의 ‘나구알 사상(the Nagual)’은 모든 퍼포머의 의상에 반영된다. 이구아나 숄을 두른 여인부터 바퀴벌레, 메뚜기, 아르마딜로, 뱀, 악어, 황새치, 심지어 용설란과 페요테를 떠올리게 하는 코듀로이로 된 선인장 옷을 입은 퍼포머들이 등장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아즈텍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비와 물을 관장하고 다산을 상징하는 신인 '틀락록(Tlaloc)'의 부름을 받아 열대정원에서 지내게 된다고 믿었다. '페요테'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배경 속에서 '마스트 & 폴'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아즈텍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비와 물을 관장하고 다산을 상징하는 신인 '틀락록(Tlaloc)'의 부름을 받아 열대정원에서 지내게 된다고 믿었다. '페요테'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배경 속에서 '마스트 & 폴' 퍼포먼스가 펼쳐진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루치아’에는 1,000개의 의상들이 활용된다. 몬트리올에 위치한 본사에서 300여 명의 디자이너에 의해 수작업으로 맞춤 제작된 신비로운 의상들은 현실 속에 비범한 요소를 시각적으로 불러와 ‘마술적 사실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장소’를 중심으로 의상이 강조되고, 각기 다른 서커스 퍼포먼스를 선사하며, 시간을 따르지 않는 장면들이 나열되는 전개는 연계성과 맥락을 찾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현실과 환상이 공존하고 시대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벌새가 퍼포먼스를 선보이던 들판에서 멕시코 영화의 황금기인 1930년대 연기가 자욱한 댄스홀로 이어지고, 아가베 식물인 ‘키오테스(quiotes)’와 선인장이 있는 사막에서 비를 맞는가 하면,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현대의 바닷가 세트장으로 이동하는 공연은 분명 시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몸의 유연성을 극대화해 관절이 없는 듯 뱀처럼 움직이는 '연체곡예'는 멕시코 조각가 페드로 리나레스의 꿈에 등장했던 '알레브리헤(alebrije)'라는 기묘한 동물을 표현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몸의 유연성을 극대화해 관절이 없는 듯 뱀처럼 움직이는 '연체곡예'는 멕시코 조각가 페드로 리나레스의 꿈에 등장했던 '알레브리헤(alebrije)'라는 기묘한 동물을 표현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사진.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사진. 수평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원반은 조명에 따라 해와 달로 변화한다. 마야인들이 후세의 관문으로 여기던 천연 우물 '세노테'에서 '에어리얼 스트랩'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퍼포머는 전사 혹은 주술사의 영혼을 인도하는 동물로 여겨진 '재규어'와 소통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사진. 수평으로 회전하는 거대한 원반은 조명에 따라 해와 달로 변화한다. 마야인들이 후세의 관문으로 여기던 천연 우물 '세노테'에서 '에어리얼 스트랩' 퍼포먼스를 선사하는 퍼포머는 전사 혹은 주술사의 영혼을 인도하는 동물로 여겨진 '재규어'와 소통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프리스타일의 축구 묘기와 비보잉이 결합된 댄스 대결이 펼쳐지는 현대의 길거리를 조명하던 무대는 마야인들이 후세의 관문으로 여기는 천연 우물 ‘세노테(cenote)’나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선인장인 ‘페요테(peyote)’, 죽은 자들의 영혼이 머무는 열대 정원의 몽환적인 세상으로 이동한다.

또, 멕시코의 프로 레슬링 스포츠인 ‘루차 리브레(lucha libre)’와 수중 스쿠버 다이빙, 아즈텍의 물의 여신을 불러오기도 한다.

15년 동안 태양의 서커스 마케팅 부서를 이끈 장 다비드는 혁신적이면서도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요소들을 “스스로 갱신”함으로써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추구하는 “창의성”이 태양의 서커스의 성공 비결이라고 말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장소를 중심으로 '의상'이 강조되고,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장면들이 나열되는 전개는 여행자의 '수중 스쿠버 다이빙'의 세상을 구현하기도 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장소를 중심으로 '의상'이 강조되고,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장면들이 나열되는 전개는 여행자의 '수중 스쿠버 다이빙'의 세상을 구현하기도 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기예를 선보이기 위해 서커스에서 반복적으로 만나게 되는 묘기와 퍼포먼스들을 보다 발전시키거나 기술과 접목시키는 노력은 ‘루치아’에도 반영된다.

3명의 남성 포터(porter)들의 손에만 의지해 바닥에 발을 딛지 않은 채 회전하거나 뒤집고 멀리 던져지는 여성 플라이어(flyer)는 ‘핸드 투 핸드(Hand to Hand)’ 퍼포먼스의 놀라움을 보여준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파트너인 포터의 손에만 의지해서 플라이어가 공중으로 던져지거나 줄넘기처럼 돌려지는 '핸드 투 핸드' 퍼포먼스는 1930년대 멕시코 영화의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연기가 자욱한 댄스홀에서 펼쳐진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파트너인 포터의 손에만 의지해서 플라이어가 공중으로 던져지거나 줄넘기처럼 돌려지는 '핸드 투 핸드' 퍼포먼스는 1930년대 멕시코 영화의 황금기를 연상시키는 연기가 자욱한 댄스홀에서 펼쳐진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중력을 거스르며 수직으로 세워진 막대기를 오르내리고 교차하는 ‘마스트 앤 폴(Masts & Poles)’과 천장에 매달린 줄 하나에 의지해 손과 발을 걸어 날아오르고 회전하는 ‘에어리얼 스트랩(Aerial Straps)’, 7개의 곤봉을 프로펠러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스피드 저글링’, 몸의 유연성을 극대화해 관절이 없는 듯 뱀처럼 움직이는 ‘연체곡예(Contortion)’의 퍼포먼스들은 다른 작품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점이 존재한다.

러시아 스윙의 경우, 태양의 서커스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두 개의 대형 그네인 ‘스윙’을 무대에 설치하고, 최대 10m 높이까지 퍼포머들을 공중으로 던져 올려 다른 그네로 착지하는 기술을 선보인다. 또, ‘헤어 서스펜션’ 퍼포먼스는 머리카락을 모두 하나로 모아 묶은 채로 줄 하나에 매달려 공중을 나는 위험천만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사진. 머리카락을 모두 하나로 모아 묶은 채로 줄 하나에 매달려 공중을 나는 '헤어 서스펜션' 퍼포먼스는 생명이자 창조의 '힘'을 발휘했던 아즈텍 문명의 물의 여신을 불러온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머리카락을 모두 하나로 모아 묶은 채로 줄 하나에 매달려 공중을 나는 '헤어 서스펜션' 퍼포먼스는 생명이자 창조의 '힘'을 발휘했던 아즈텍 문명의 물의 여신을 불러온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무엇보다 ‘루치아’의 핵심 키워드는 ‘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멕시코에 내리는 다양한 종류의 비를 14m 상공에서 174개의 노즐을 통해 쏟아지도록 연출한 무대는 “기술의 승리”라는 평가와 함께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360도로 회전하며 자유자재로 물을 뿜어내 원하는 모양의 ‘비의 커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치는 아름답게 쏟아져 내리는 폭우 위에 벌새, 하트, 나뭇잎, 나비 등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그려낸다.

태양의 서커스의 컴퍼니 매니저인 헤더 라일리에 따르면, 무대 위로 내린 폭우는 9만 4천 개의 작은 구멍을 통해 무대 아래에 위치한 거대한 깔때기에 저장되고, 바깥에 있는 트럭의 필터 시스템으로 들어가 정화를 거친 뒤 재활용된다.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묘기를 펼치고, 3천 리터의 물웅덩이 형태의 ‘풀(pool)’ 속에 몸을 담그기도 하는 곡예 퍼포먼스를 위해 물의 온도는 항상 섭씨 39도로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물’은 살아있는 시스템으로서 역동성을 갖춘 ‘생명’이자 ‘창조의 힘’을 상징한다.

파스카가 서크 엘루아즈의 ‘레인(Rain)’ 공연을 통해 선보였던, 2톤의 물이 10분간 ‘비’로 쏟아지는 무대에서 11명의 퍼포머들이 묘기를 펼치며 아름다운 미장센을 만들어낸 피날레는 ‘루치아’에서 확장을 이룬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사막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수중 곡예를 선보이는 '시르 휠'과 '트라피즈'의 장면은 빗속의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의 도움으로 탄생했으며, 자유와 해방감을 상징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사막에서 소나기를 맞으며 수중 곡예를 선보이는 '시르 휠'과 '트라피즈'의 장면은 빗속의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들의 도움으로 탄생했으며, 자유와 해방감을 상징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또, 빗속에서 ‘시르 휠(Cyr Wheel)’을 활용하는 발전을 성취한다. 훌라후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2배 이상 큰 철제 바퀴를 사용해 아티스트가 균형을 잡고 회전할 수 있는 ‘시르 휠’은 서크 엘루아즈의 창립멤버인 다니엘 시르가 디자인한 것으로,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무한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쏟아지는 비속의 젖은 무대에서 휠을 움직이는 일은 위험하고 도전적인 일이기 때문에, 제작진은 시르 휠의 틈새에 자전거 타이어를 삽입하는 아이디어를 더했다.

그로 인해 360도로 회전하는 오렌지빛 무대에서 두 명의 시르 휠 퍼포머가 공중 그네에 매달리거나 회전하는 기술을 선보이는 ‘트라피즈(Trapeze)’ 퍼포머와 함께 환상적인 곡예를 펼치며, 천둥소리가 동반된 소나기 속에서 자유로움과 해방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장면의 탄생이 가능해졌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공연 장면. 여행자의 여정의 마지막은 모든 퍼포머들이 마을 축제를 벌이며 파티를 즐기는 가운데, 태엽으로 감긴 시간이 멈추고 '정지' 상태에 이르는 '피에스타 피날레'로 구현된다./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태양과 달을 상징하는 거대한 원반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색채와 여러 장소, 시간대를 거친 여정은 ‘루치아’의 화려한 의상의 모든 퍼포머들이 길게 놓인 커다란 테이블 주변으로 모여 마을 파티를 즐기는 축제 ‘피에스타’를 마지막으로 ‘정지’에 이른다.

감긴 태엽의 시간이 다한 듯 여행자인 ‘광대’를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멈춰버린 세상은 신비한 마법을 벗어난 ‘현실’을 일깨운다.

하지만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메소아메리카의 믿음 속에서 마술적인 축제가 펼쳐졌던 서커스 예술의 ‘경험’은 삶을 축하하고 환희를 추억하도록 만든다.

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빅탑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남겨진 ‘멕시코의 꿈’은 각자의 기억과 감상으로 빚어진 나름의 이야기를 품은 채 현실에 새로운 희망과 에너지를 불러오는 ‘발견의 여정’을 이룬다.

‘상상의 멕시코’는 마술적 사실주의를 거쳐 ‘현실’로 되돌아오고, 봄과 겨울, 낮과 밤, 태양과 달, 삶과 죽음의 순환을 자연 속에서 또다시 반복할 모든 준비를 마친다. 12월 31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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