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G아트센터 서울 2023년 기획공연 ‘CoMPAS 23’ 라인업 마지막 작품...엠피앤컴퍼니 공동제작
- 2년 동안 나무 위에 살았던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우리가 전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에 대한 연구서라 할 수 있는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을 기획한 브뤼노 카반은 “전쟁은 총체적인 사회 현상이자 문화적 행위”라고 말한다.
전쟁은 “국가 지도자와 군인들이 다루는 사안”이지만 정치와 사회 체제를 뒤흔들고, 사회 집단과 개인을 끌어들일 뿐 아니라 경제와 환경 자원에 영향을 미치고, “자기 자신과 적에 대한 표상”과 “삶과 죽음에 대한 믿음”을 조종한다.
카반은 “전쟁을 연구한다는 것은 곧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와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결정적인 체험을 연구하는 일”이며, “수 세대에 걸쳐 이어져 온 트라우마를 연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반에 따르면, 인류가 전쟁을 경험하고 생각하는 방식의 큰 변화는 19세기와 20세기에 이루어졌다. 시민이 국가 방위에 관여하기 시작하고, 기술 혁명을 이루며 군사 장비가 크게 변화한 1860~1960년 사이의 시기는 “대량 절멸”이라는 끔찍한 비극을 불러왔다.
20세기는 군대의 몰개성화와 병사들의 이념화로 인해 전쟁의 파괴력이 더욱 커졌고, 전쟁을 지향하는 전체주의 사회에서 강화된 ‘국민 공동체’의 개념은 국민이 전쟁 활동에 계속 개입하도록 만들기 위한 모든 선전 운동을 동원했다.
2차 세계대전은 어떤 국민도 전쟁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도록 만들었는데, ‘애국심’은 강조되었고, 적은 “야만적이고 냉혹한 존재로 묘사”되었으며, “확대된 가족으로서의 조국”을 설파했다.
역사학자인 카렌 하게만은 “큰 규모의 전쟁이 성공하려면 전체 국민의 지지”가 필요했기 때문에 “감정에 찬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인 표현법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쟁 문화”만이 “피할 수 없는 폭력의 증대”를 야기해 어느 한쪽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으로 끝을 낼 수 있었음을 설명한다.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에서는 기획공연 ‘CoMPAS 23’ 라인업의 마지막 작품인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공연이 한창이다. 일본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노우에 히사시가 나무 위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두 일본군 병사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고 영감을 받아 창작된 작품이다.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였던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야자키현 출신과 오키나와현 출신의 두 병사가 1945년 4월부터 1947년 3월까지 20미터 높이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생존했다는 기사는 이노우에 히사시로 하여금 오키나와 전투를 소재로 한 연극을 집필하도록 만든다.
1985년경부터 시작된 작업은 1990년 4월, 도쿄 키노쿠니야 홀에서 2인극으로 공연될 예정이었으나, 대본이 완성되지 않은 관계로 취소되었다. 2009년 폐암 판정을 받은 이노우에 히사시는 다시 자료 수집을 시작해 2010년 7월 기노쿠니아 서든 시어터에서 초연할 계획이었지만, 4월 9일 사망함으로 인해 미완으로 남게 된다.
‘나무 위의 군대’라는 제목으로 “오키나와를 무대로 한 소설이나 희곡을 죽기 전에 써 보고 싶다”라고 말한 고인의 바람이 이루어지지 못함을 안타까워한 주변 사람들은 미완의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
이노우에 히사시가 결성한 극단 고마츠좌를 맡게 된 대표 이노우에 마야는 일본의 대표적인 연출가 쿠리야마 타미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내 집필을 의뢰받은 극작가 호라이 류타에 의해 완성된 대본으로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2013년 도쿄 분카무라 시어터 코쿤에서 초연을 올리게 되었다.
프로그램북의 ‘작가 설명’에 따르면, 이노우에 히사시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전쟁은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고, 반전사상과 일본의 전쟁 책임론에 대한 “자기반성적 태도”의 메시지들이 2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한 그의 여러 극들을 통해 전달되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 또한 두 명의 병사들의 다른 생각과 입장, 태도를 통해 전쟁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인지, 신념이라고 믿는 것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을 던지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해 품게 되는 ‘수치심’과 ‘살의’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품는다.
수치심과 살의에 관한 질문은 커다란 나무 위에 단둘이 남겨진 상황에서도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존재를 규정 받는 ‘실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인간의 특성과 공동체, 삶, 그리고 신념과 행동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1945년 4월 일본의 어느 섬”으로 설정된 연극 ‘나무 위의 군대’의 배경은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3개월간 격렬하게 치러진 ‘오키나와 전투’이다.
특정 섬만을 겨냥한 작품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무 위에 남겨진 두 명의 병사의 출신이 다르다는 점과 관련해 본토 일본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1879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어 오키나와현이 되었고,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미국 군정 하에 있다가, 1972년에 다시 일본에 반환된 역사적 배경은 본토 출신의 상관이 오키나와 출신의 신병과 갈등을 빚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상관은 “난 이 나라의 국민이야. 너랑은 달라!”라던가 “이 섬사람들은 아직 우리 국민이 아닌 거야?”와 같은 말들을 하며 신병과 자신을 구분 짓는다. 이는 전쟁 당시 일본 영토로 편입된 지 60여 년밖에 되지 않았던 오키나와를 본토인들이 차별과 멸시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두 병사가 커다란 나무 위에서 숨어 지낸 배경에는 “포로가 되는 치욕 대신 죽기를 선택하는 일본군의 독특한 신념”이자 군인의 행동 규범인 ‘전진훈(戰陣訓)’이 작용한다. 이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주입에 근거한다. 이미 여러 차례 전투를 경험한 본토 출신의 상관의 경우, 1931년부터 군대 자체가 하나의 제국을 이뤘던 일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상관은 끊임없이 수치심과 치욕, 부끄러움과 굴욕을 언급하는데,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목숨보다 중요하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 오딜 루아네트는 군대와 정치가 긴밀하게 뒤얽힌 역사를 갖고 있는 일본이 1920년대부터 사회 전체에 통제력을 발휘해 군대의 요구와 가치에 사회를 종속시켰음을 강조한다. 6~15세 소년을 위한 예비 군사 훈련은 1925년부터 학교에서 보편적으로 실시되었고, 1941~1942년에는 예비군 단체와 국가 수호를 위한 여성 단체 가입자가 1천만 명에 달했음을 지적한다.
반면, 오키나와의 작은 섬 이에지마에서 목동으로 살며 처음으로 전쟁을 겪게 된 신병은 자신이 태어난 곳을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한 군인이다. 신병은 자신의 섬을 지켜주기 위해 본토에서 온 상관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는 사실에 존경심을 품지만 의문 역시 간직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질문한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를 지킨다는 게 정말 가능한 건가? 뭘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애인을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이 나라를 위해서?”
신병은 잘 알지도 못하는 먼 섬까지 와서 한숨도 자지 않고 나무 위에서 경계를 서며, 잠이 들면 코를 고는 자신을 깨워주는 상관을 향해 “어쨌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전체주의 국가의 군인으로서의 훈련을 받지 않은 신병은 굶주림에 정신을 잃을지라도 적군의 식량에는 결코 손을 댈 수 없다는 상관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하며, 나무 위로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몸을 숨긴 것과 전략적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 머무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신병에게는 그저 상관의 명령에 따르다 보면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고, 섬에서 적군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 뿐이다.
격렬한 전투 속에서 죽음을 피해 ‘가쥬마루(ガジュマル)’라고 불리는 거대하고 줄기와 잎이 무성한 나무로 올라간 두 병사의 생각의 대립과 차이는 나무의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질문들을 던진다.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물을 첨벙거리며 모래사장을 걷듯 무대 위에 등장한 여자는 병사들이 2년 동안 숨어 지낸 나무에 대해 설명한다.
뿌리가 지면으로 나와 줄기와 얽힌 채로 몸통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나무는 여자에 의해 “생명을 빨아먹는 나무”라고 지칭된다. 수백 년 동안 땅에 있는 온갖 것들을 빨아들여왔다고 설명되는 나무는 마치 죽음의 기록이자 전쟁의 역사를 목격한 영혼처럼 느껴진다.
총격을 피해 나무 위로 올라온 상관은 교전 중 죽어가는 다른 병사를 구하기 위해 아래로 내려가려는 신병을 만류한다. 위치가 발각돼 적의 공세가 나무를 향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여자는 “따뜻하고 느긋했던 섬”이 수많은 시체가 쌓인 전쟁터로 변했고, 두 병사가 앞으로 2년 동안 “이 섬에 남겨진 단 두 명의 군대”로서 나무 위에 잠복하게 될 것임을 설명한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신비함을 강조한 여자의 존재를 ‘내레이터’ 삼아 모든 것을 지켜본 나무의 기억이 펼쳐지듯, 혹은 두 병사의 선택과 행동을 시험하는 신이라도 된 듯, 관객들을 향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종일관 무대 위를 배회하며 극 속 인물이 되기도 하고, 극 밖에서 관객들에게 극 중 인물의 속내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여자는 ‘연극이 연극임을 일깨우는’ 장치로서도 기능하게 된다.
나무 아래 시체들이 부패하기 시작하고 굶주림에 현기증을 느끼는 즈음 두 병사는 적군의 식량을 두고 갈등하기 시작한다. “인간 같지도 않은 적군”의 식량을 먹고 살아남는 굴욕을 용납할 수 없는 상관과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아 섬을 지켜야 하지 않겠냐는 신병의 대립은 상관의 마음에 ‘수치심’을 일깨운다. 상관은 섬을 짓밟고 불태운 사람들과 그들이 먹는 음식은 다른 것이라고 말하는 신병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고, 운이 좋아 나무로 피신할 수 있었다고 여기는 신병의 태도에 불편함을 느낀다.
잠을 참으며 보초를 서고, 굶주림을 인내하며,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고 질문하지 않는 군인으로서의 훈련방식에 익숙한 상관에게 신병의 다른 생각과 다른 태도, 다른 결정은 ‘살의’를 불러일으킨다. 적군의 식량을 먹고 얼굴빛이 좋아진 신병을 향해 굶주림에 지친 자신이 무력을 행사할 수 없음을 인지한 상관은 나무에서 신병을 밀어 실수로 떨어져 죽은 것으로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다. 여자가 상관을 바라보며 말한다.
“인간은 괴물이다. 전쟁터에서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괴물이 태어난다.”
도대체 왜 상관은 단 두 명만 남은 상황에서도 상대를 죽이고픈 마음에 사로잡힌 것일까? 전우애에 기대어 함께 적에 맞설 생각을 해도 모자랄 판에 왜 “해맑고 유치한” 신병의 웃음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위해 잠자리를 나뭇가지로 만들어주는 그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일까?
연극 ‘나무 위의 군대’가 드러내는 많은 면모 중 핵심의 질문은 사실 여기에 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의 시작, 타인과의 갈등이 일어나는 출발점, 혐오와 미움이 작동하게 되는 이유, 그것은 최초의 인간 사이 ‘전쟁’의 시작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상관과 신병의 갈등은 “나를 바라보는 자”인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옥’을 인식하는 인간 존재를 떠올리도록 만든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자신이 외면하고 있던 것을 마주하게 될 때의 불쾌감과 불편함, 거북함은 상관에게 ‘수치심’으로 작용하고, 자신이 모든 것의 중심이던 상관의 세상을 와해시키는 신병이라는 ‘타인’의 시선은, 주체를 잃고 객체가 되어버린 존재를 세우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고픈 갈망을 상관이 품도록 만든다.
상관에게 신병은 자신의 실존 자체를 의심하고 질문하도록 만드는 ‘타자의 시선’이고, 자신의 존재를 세우고 있던 국가에 의해 주입된 신념들을 무너뜨리는 ‘적’과 같다.
상관의 살의가 사라지는 순간은 적군의 야영지를 눈앞에 둔 채 패전한 상태에서 더 이상 싸우는 군인으로서가 아니라 생존하려는 인간으로 정체성이 옮겨간 때이다. 적의 야영지를 탐색하러 잠시 나무에서 내려간 상관은 전쟁이 미국의 승리로 끝났음을 인식하게 되고, 적군이 버린 음식들을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울부짖는다.
이후 상관은 신병과 함께 밤이면 나무에서 내려와 식량을 확보하고 낮에는 나무에서 지내는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한다. 신병은 상관의 변화를 느낀다. 기호식품인 담배를 확보하는 일에 더 많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 더 큰 보상을 받는 ‘자본주의’를 운운하며 모든 것을 공평하게 나누던 법칙을 변경하자는 상관을 바라보며, 신병은 그가 군인으로서의 ‘본분’을 잃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하지만 신병 또한 상관에게 솔직하지 않다. 막연하게 섬을 구하기 위해 자원한 신병의 군인으로서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가는 적군의 야영지 앞에서 언제 올지 모를 ‘지원군’을 기다리며, ‘총기 손질’을 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상으로 변해버렸다.
친구의 신발을 찾아주느라 밤까지 애를 썼던 추억의 장소는 죽어가는 친구를 두고도 외면했던 끔찍한 곳이 되어 버렸고, 애인하고 함께 걷던 나무 아래는 목숨을 부지하고자 숨어 지낸,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 버렸다.
본토 사람들이 먼저 시작한 전쟁으로 인해 적군이 섬을 공격했고, 그로 인해 많은 섬사람들이 죽음에 이르렀음에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상관을 신병은 이해할 수가 없다.
신병은 자신 역시 태어나고 자란 섬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본분’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인식하지만, 적을 몰아낼 방법을 모르기에 상관을 무조건 믿는다. “믿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매달리고, 미워하면서도 믿는다”라는 신병의 말은 씁쓸함을 남긴다.
“전쟁은 2년 전에 끝났습니다. 어서 나무에서 나오세요”라는 섬사람들의 편지는 또다시 수치심과 본분, 신념을 둘러싼 두 병사의 ‘전쟁’을 불러온다. 한동안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신념을 생각하지 않았던 상관은 또다시 ‘수치심’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수치”라고 주장하는 상관과 나무 위에서 외롭게 싸워 온 자신들을 영웅으로 여겨줄 것이라는 신병의 의견은 또다시 대립한다.
나무에서 내려가는 일이 두려운 상관은 나무에서 내려가자는 신병을 향해 총을 겨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참을 수 없는 인간의 본성, 믿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특징, 온 세상에 단둘만 남아도 바로 옆에 있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제일 무섭고, 타인의 시선을 ‘지옥’으로 여기는 존재론적 현실의 암울함,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비단 전쟁의 무용함만이 아닌 인간 실존의 핵심을 파헤친다.
공동체를 구성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 타인에 의해 벌거벗겨지는 자신과의 대면을 ‘수치’로 느끼는 인간, 그로 인해 타인이 없는 삶을 원하지만 타인에게 의지해 믿을 수밖에 없는 인간, 공동체가 목표로 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수단으로 세뇌당하면서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과연 작품을 미완으로 남긴 이노우에 히사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닫힌 방’을 떠올리게 하는 연극 ‘나무 위의 군대’가 겨냥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타인과의 관계, 포섭, 자유를 둘러싼 ‘전쟁’ 그것은 아니었을까? 8월 1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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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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