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어권의 가장 주목받는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 대표작
- 2013년 우루과이 초연 이후 16개국 공연
- 2016년 영국 오프 웨스트엔드 어워즈 작품상 수상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러시아의 비평가 빅토르 시클롭스키는 “예술은 사람이 삶의 감각을 회복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사물을 이미 알려진 방식대로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예술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시클롭스키는 “지각 과정 자체가 미학적 목적”이기 때문에 예술의 테크닉은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형식을 난해하게 만들며, 지각의 어려움과 시간을 증가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극 비평가인 리차드 혼비는 ‘드라마, 메타드라마, 지각’에서 “삶의 감각을 회복하는 일”의 중요성에 동의하며, 연극이라는 예술은 인간의 ‘지각’을 위한 도구라고 덧붙였다.
“사회가 현실을 보는 방식”을 다루는 연극은 새로운 것을 인지하고 지각하는 것을 마치 “숨어 있는 주제”처럼 다룬다. 진지한 극작가의 경우, 연극이 스스로를 드러내도록 만들고, 관객들이 ‘앎’의 능력인 ‘지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보는 방식과 사회가 품고 있는 것들을 향해 “기탄 없이 심문”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
최근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흥미로운 목소리를 내는 극작가 중 한 명”이라고 불리는 세르히오 블랑코(Sergio Blanco)의 대표작 ‘테베랜드’의 한국 초연이 막을 내렸다.
우루과이 출신으로 프랑스 코미디 프랑세즈에서 고전 문학과 연출을 공부한 블랑코는 파리에 거주하고 있지만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극을 쓴다. 연극 ‘테베랜드’는 2013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초연된 후 2015년 룩셈부르크를 거쳐, 2016년 영국 아르콜라 극장에서 공연되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고, 오프 웨스트엔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미국, 일본 등 16개국에서 공연되며 큰 주목을 받았으며, 그 중 8개국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연극 ‘테베랜드’가 이처럼 관객들의 호응을 불러온 데에는 블랑코의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는 연극 방식의 특이점이 있다. 자서전의 요소와 허구의 요소를 조합한 문학의 한 장르로서 소설에서 주로 언급되는 오토픽션은 작가의 삶에 대한 세부 사항이 허구와 혼합되는 특징이 있다.
작가의 이름과 직업이 작품 속에 그대로 등장하고, 인물의 직업이 글을 쓰는 작가인 경우가 많으며, 무엇이 허구인지 독자가 판단하기 어렵기에 추측을 유발하는 오토픽션은 글쓰기와 스토리텔링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 ‘자전적 메타픽션’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오토픽션이라는 용어는 세르주 두브로브스키가 1977년에 발표한 소설 ‘아들’의 형식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등장했지만,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의 시인 사포(Sappho)의 1인칭 내러티브를 첫 사례로 간주하기도 한다.
또, 1913년부터 1927년까지 출간된 마르셀 프루스트의 연작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오토픽션의 초기 버전으로 보는데, 이는 작가인 프루스트의 삶의 여러 세부 사항과 인물들이 작품에 포함되어 있지만 상당 부분이 허구이기 때문이다.
블랑코의 특이점은 이러한 오토픽션의 방식을 ‘연극’에 적용하면서, 연극이 창작되는 방식과 연극 자체의 형식을 다루는 ‘메타드라마(metadrama)’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았다는 데 있다.
실제 사건에 대한 리서치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품을 구현하는 ‘다큐멘터리 연극(documentary theatre)’과 메타드라마의 혼합처럼 보이는 블랑코의 오토픽션은, 관객들이 어느 것이 실제이고, 허구인지 혼란을 느끼면서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연극’임을 인지함과 동시에, 실제 사건이 어떻게 허구로 바뀌는지를 경험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2017년 ‘고도 매거진’에 게재된 인터뷰에 따르면, 블랑코가 오토픽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많은 다른 이야기들을 발견하고 드러낼 수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사유가 처음 시작된 순간부터 “실제와 허구의 교차점”이 있었음을 언급하는데, 자서전이 자신에 관해 진실만을 말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라면, 오토픽션은 오히려 거짓을 인정할 것을 제안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연극의 경우, 이 지점은 훨씬 흥미로워지는데, 관객을 향해 작가 혹은 배우가 실제로 무대에 올라 “진실의 토대 위에서 거짓말을 할 것”임을 공표하게 된다.
연극 ‘테베랜드’는 극작가인 세르히오 블랑코를 의미하는 ‘S’가 무대에서 관객들을 바라보며 환영 인사를 건네고, 존속 살인을 주제로 한 새로운 연극 프로젝트를 하게 된 경위를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존속 살인의 역사를 담은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실제로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고 있는 ‘마르틴 산토스(Martin Santos)’가 직접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는 S는 극장 관계자와의 논의 내용, 법적인 절차, 보안 조치로 인해 무대 세트가 3미터 높이의 철제 ‘우리(cage)’와 같은 형태가 되었음을 설명한다.
그는 내무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실제 무대 위에 관객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는 철책을 세운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하지만 연극을 위해 마르틴과 처음 만난 곳이 철책으로 둘러싸인 농구 코트였다는 점에서, 무대 세트는 마르틴과의 지속적인 만남이 이루어질 장소로서, 또 실제 마르틴이 갇혀있는 감옥을 떠올리게 하는 은유적 공간으로서, 적합한 ‘연극적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S는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연극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로 혼자 철창 코트 안에서 농구를 하고 있던 마르틴과의 첫 만남 장면을 상연해 보이는 게 어떻겠냐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허구’인 연극 속으로 들어간다.
관객들은 S가 작업한 연극 프로젝트의 한 장면이자 실제 인물인 마르틴과의 만남을 경험한다. 마르틴은 연극이 공연되는 극장이라는 곳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으며, 배우도 아닌 자신이 무대에 오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한다.
농구 코트가 있는 철창 안에서 밖으로 나온 S는 다시 관객들을 바라보며, 첫 만남 이후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작품을 위해 남긴 메모들을 읽어준다. 무대 위에 보안을 위해 설치된 철창을 비추는 감시 카메라 화면은 연극을 위한 스크린으로 이용되며, 극작가 S가 대본 작업을 위해 사용할 아이디어들을 손글씨로 쓴 메모가 등장한다.
촬영하는 카메라와 스크린은 교도소에서 감시당하고 관찰당하는 일에 익숙한 마르틴을 상징할 수 있게 되고, 철책이 둘러진 무대는 한쪽에는 농구 골대를, 다른 한쪽에는 책상을 놓아 실제 마르틴과의 면담 장소이자 대본을 작성하고 리허설을 진행하는 연극 공간으로서, 동시에 기능할 수 있게 된다.
존속살해라는 주제는 인류의 문화 속에 자리한 오이디푸스 신화,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이론과의 연계성, 이탈리아 영화감독 파솔리니의 1967년 영화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참고로 연결된다.
S는 존속살해의 시작점과 허구인 연극이 시작되는 시점에 대한 의문을 남기면서, 프란츠 카프카가 자신의 소설 ‘성’과 ‘소송’에서 ‘K’를 주인공 이름으로 설정했듯, 자신을 ‘S’로 설정한다. 또, ‘산토스’가 성인(saints)을 의미한다는 데에서 투르의 주교였던 프랑스의 대표적 성자 마르틴(마르티누스)과의 연계성을 떠올린다.
S가 메모를 통해 떠올린 모든 것들은 연극 ‘테베랜드’ 속에서 부친 살해라는 주제와 현실 속 마르틴의 삶과 연결되며 확장되고, 새로운 것들이 더해지면서 변형되어 많은 지각과 사유를 낳게 된다.
사실 ‘테베랜드’에서 블랑코가 연결하는 여러 지식과 담론들은 일종의 ‘파편’ 형태로 제시되기 때문에 수수께끼처럼 관객들이 맞춰나가야 하는 ‘퍼즐’로서 기능한다. 이는 길고 어려운 책들을 읽지 않으려는 현재의 관객들이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앎의 지식’ 속으로 뛰어들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S가 느닷없이 롤랑 바르트의 기호학적 의미의 층위를 떠올리거나 플랑드르의 그림과 설치미술, 모차르트와 도스도옙스키의 삶, 성자 마르틴이 보았던 환각과 불의 고리를 언급하는 것은 관객들이 그 모든 연결고리를 스스로 탐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 블랑코의 오토픽션의 목표가 “작은 이야기를 확장해 더 많은 것들을 확보하는 승리”에 놓여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인 S는 마르틴과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어떻게 현실이 허구화되고, 실제 대화가 인물의 대사로 변경되며, 추가된 음악과 상징, 오브제의 변경에 의해 다른 의미의 층위를 더하게 되는지를, 그대로 관객들에게 드러내 보인다.
“오토픽션은 현실을 놓지 않을 때 실패한다”고 말하는 블랑코는 실제에서 멀어져 더 많이 허구화되고, 위장되고, 변형될수록 “자아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 효과를 획득함을 강조한다.
마르틴이 연극이라는 재현의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인지하고 난 뒤 말하는 대사인 “그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무언가가 되는 건가요?”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예술은 무(無)인 것들의 세계”라는 말을 적용한 것이기도 하다.
개인의 사건일 수 있는 이야기가 역사와 만나고, 문학 속에서 상징과 기호를 찾아, 타자의 이야기와 연계되고, 자아에게 영향을 미쳐 지각의 변화를 가져오거나 더 깊고 넓은 세상 속으로 타인들을 이끌게 되는 일은 블랑코에게 중요하다.
진짜와 가짜,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놀이’라고 할 수 있는 연극 ‘테베랜드’는 마르틴이 무대에 오르는 것을 허가할 수 없다는 내부무의 결정에 의해 한 차원 더 복잡한 구성을 갖게 된다.
S는 마르틴과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 대본을 완성하지만 무대에는 마르틴을 연기할 배우 ‘페데리코(Federico)’를 대신 세우기로 결정한다. 블랑코는 페데리코와 마르틴을 배우가 1인 2역으로 연기할 것을 희곡에 명시함으로써, 교도소 농구 코트에서의 현실의 만남과 무대 위 농구 코트에서의 리허설의 경계를 흐리고, 현실과 재현을 혼란스럽게 교차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초반에 명확하게 구분되던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후반으로 갈수록 모호해지며, 마르틴과의 실제 면담 장면인지, S가 개입해 변형된 연극의 재현 장면인지를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른다.
아버지를 포크로 21번 찔러 죽인 존속살해범 마르틴이라는 현실을 둘러싼 ‘테베랜드’ 프로젝트는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오이디푸스 왕’과 연계된다.
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전염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도시 국가 테베의 땅은 진실을 밝혀 정의를 구현할 것을 요청한다. 어둡고 추운, 고통이 자리하는 곳인 ‘테베’는 사회의 범죄와 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마음속에 자리한 모호한 영역, 판단을 유보하게 되는 어지러운 혼란의 어둠이기도 하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정의와 진실, 수치심과 죄의식, 책임과 희생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신경증 등으로 해석을 확장하며 서구 문명에 하나의 상징이자 기호로 자리해왔다. 블랑코는 연극 ‘테베랜드’를 통해 이 모든 해석에 대한 의문과 다른 관점의 가능성을 파편처럼 제공한다.
사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운명을 타고난 오이디푸스의 경우, 길에서 만난 타인이 자신의 친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해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에서 마르틴과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끊임없는 학대와 폭력, 비난과 멸시를 당해 온 분노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연계점을 가진다.
블랑코는 고대 그리스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보다는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의 해석을 따르는데, 파시스트인 아버지가 아들이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빼앗고 차지할 것을 ‘불안’해한 것이 먼저였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출발점은 아들이 아니라 공격성을 가진 아버지에게 내재해 있는 것이다.
블랑코는 S를 마르틴이 실제 삶에서 겪은 끔찍한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아버지 혹은 어른의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이는 마르틴이라는 이름이 ‘전쟁’을 의미하고, S는 ‘수호자’ 혹은 ‘보호자’를 의미한다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전쟁과 같은 고통과 죄책감, 수치심에 갇혀 있던 마르틴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도록 만든 S의 안내를 받아 아버지를 살해한 행동에 대한 결과와 책임을 직면하고, 평생을 수감된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을 품게 된다.
S는 책으로 손을 짓이기는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도서관에 가지도 못하고 책을 손에 들지 못하는 마르틴을 위해 태블릿 PC를 선물한다.
간질 발작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1번 C장조 음악을 비롯해 모르는 단어의 뜻을 찾아볼 수 있도록 백과사전과 그림 자료, 전자도서로 채워진 태블릿은 ‘세상의 지식과 앎의 길’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철창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마르틴에게 새로운 ‘길’을 의미하게 된다.
영국 초연 당시 S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 트레버 화이트는 인터뷰에서, “이 특별한 연극의 재미 중 큰 부분은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며, “연극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에 관한 것”이지만, 결국 “실존 인물인 부친 살해자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포크로 살해한 범죄자를 이해하고 연민하게 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연극이라는 예술은 S와 마르틴, 페데리코를 연결하고 서로의 삶을 확장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다.
“평화를 지키는 자”라는 뜻의 페데리코는 배우로서 재현의 예술 ‘연극’을 대변한다. S와 마르틴 사이에 존재하는 페데리코는 진짜와 가짜, 실제와 허구,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경계를 흐리고 혼란을 가져오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S가 마르틴에게 지나친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블랑코는 “예술은 관객이 인간 경험에서 가장 어둡고 신비하며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찾아 탐구하도록 하는 어두운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는 세상을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 확립된 현실에 도전하며,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명확하게 설명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인 마음속 ‘테베’는 블랑코의 ‘오토픽션’이라는 형식의 복잡함과 난해함을 통해 관객들이 앎의 능력인 ‘지각’으로 나아가 거침없이 스스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존속살해를 품고 있는 인류 문화의 세상을 열어 보인다.
연극을 보고 난 뒤 더 많은 질문을 품게 되는 작품 ‘테베랜드’가 겨냥한 것은 관객들이 끝없이 사유하고 고민하며 다른 무언가를 찾도록 만드는 것, 불가능할지 모르는 것들을 향해 이해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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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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