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모던 발레의 거장 앙쥴랭 프렐조카쥬 2020년 초연작
- ‘로미오와 줄리엣(1996)’, ‘스노우 화이트(2008)’ 이후 세 번째 스토리 발레(narrative ballet)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2019년 스웨덴의 젊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의 정상들을 질타하며, 미래 세대를 위해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16세였던 툰베리는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으며, 전 세계에 탄소 배출과 화석 연료의 사용, 환경오염의 심각성, 지구 온난화의 가속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경제 성장만을 지향하는 세계의 방향성이 “대멸종의 시작”을 앞당기고 있음을 지적하며, “미래 세대의 눈이 현재의 세대를 바라보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녀는 지도자들을 향해 이렇게 호소했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전체 생태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은 돈과 영원한 경제 성장에 관한 동화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최근 LG아트센터 서울에서는 프랑스 모던 발레의 거장 앙쥴랭 프렐조카쥬의 2020년 작품 ‘백조의 호수’의 짧은 공연이 있었다. 지난 2019년 프렐조카쥬 발레단의 ‘프레스코화’로 깊은 인상을 남긴 후 4년 만의 내한이었다.
고전 발레의 정수, “발레 역사의 모나리자”라고 일컬어지는 ‘백조의 호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산업화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는 심각성에 주목한 프렐조카쥬는 2023년 2월 ‘산타 바바라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로서 저는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가 겪게 될 일에 대해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 내 딸들이 살아가게 될 세상을 생각하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30년 사이에 600종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은 과연 백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1984년 안무가로 데뷔한 프렐조카쥬는 1985년, 자신의 무용단 ‘프렐조카쥬 컴퍼니’를 창설해 55편이 넘는 작품들을 세계에 선보여 왔다. 무용계의 최고상인 ‘브누아 드 라 당스’와 ‘베시 어워드’를 비롯해 많은 안무상을 수상한 프렐조카쥬는 뉴욕 시티 발레, 파리 오페라 발레, 볼쇼이 발레, 바이에른슈타츠오퍼 등 다른 무용단과도 작업해왔다.
전통 발레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양식화된 무용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프렐조카쥬의 안무는 “독일 추상 표현주의와 머스 커닝햄의 단순함과 명료함, 뉴욕 나이트클럽 ‘스튜디오 54’의 혼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감각적인 미장센과 음악, 예술적 감수성의 풍부한 조합을 자신의 무용 언어와 함께 선보이는 프렐조카쥬의 작품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주제’에서 출발하는 경향이 있다. “텍스트와 맥락, 다뤄야 할 이유”는 프렐조카쥬가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떠올리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프렐조카쥬 스스로 “발레계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이라고 지칭한 ‘백조의 호수’를 재해석함에 있어 그가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무엇일까?
그는 10살 때 발레 ‘백조의 호수’를 처음 보았고 큰 감명을 받았지만, 현대 무용의 길을 걸으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백조의 호수’의 재창작만큼은 피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201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디아길레프 페스티벌의 요청으로 발레 역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안무가 중 하나인 “마리우스 프티파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유령(Ghost)’을 창작하게 되었고, 마음이 변하게 되었다.
발레 레퍼토리 중 현재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백조의 호수’를 19세기에 프티파가 안무로 구상할 때를 상상하며, 위대한 창작자의 작품이 우리의 무의식에 남긴 흔적과 영원히 편재하는 작품 속 유령에 주목한 15분의 구성은 프렐조카쥬에게 프티파에 대한 오마주 외에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댄스 필름 페스티벌과의 인터뷰에서 세대를 건너 전달되는 차이콥스키의 강렬한 음악과 더불어 무엇보다 동기를 부여한 것은 ‘현실과의 연계성’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제목이 이미 ‘백조가 살고 있는 호수에 관한 이야기’임을 드러내고 있으므로, 환경과 자연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은 산업화로 인해 오염된 호수와 자연 서식지의 파괴로 인한 동물의 멸종이라는 ‘현실의 비극’을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프렐조카쥬는, 마법사 로트바르트의 저주에 걸려 백조로 변한 공주 오데트가 왕자 지그프리트를 만나 사랑으로 저주를 풀 희망을 품지만, 왕자가 오데트를 닮은 로트바르트의 딸 오딜에게 속아 결혼을 약속함으로써 비극에 이르는 ‘러브 스토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맥락에 맞게 설정을 변경했다.
부동산 개발업자인 ‘로트바르트’는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젊은 환경 운동가 ‘오데트’를 백조로 만들어 버리고, 석유 시추 장비 기업의 후계자인 ‘지그프리트’는 아름다운 호숫가에 공장을 지어 회사를 확장하려는 아버지의 사업에 반대한다.
원작에는 없는 돈의 욕망에 사로잡힌 ‘아버지’라는 인물이 더해지면서 로트바르트와 결탁된 아버지의 금융자본의 힘은 ‘어둠’의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젊은 세대인 오데트와 지그프리트의 ‘다른’ 생각은 거대한 어둠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속임수와 계략에 빠져 무너져 내리면서, 관객들에게 환경과 자연의 위기와 비극에 대한 인식을 전달하게 된다.
프렐조카쥬는 안무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백조의 호수’의 메아리가 되는 지점들을 간직하면서 현대적인 동작들을 표현주의적으로 사용하는 특징을 선보였다.
그는 양피지에 쓰인 원래의 글을 지우고 다시 쓰는 고대 그리스의 문서, ‘팔림프세스트(Palimpsest)’의 방식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에 의해 안무된 1895년 버전의 ‘백조의 호수’를 2020년에 새롭게 옮기면서 프렐조카쥬는 원작의 골격구조에 현대적인 새로운 살을 덧붙여, “재구성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안무”의 창작을 시도했다.
특히 관객들은 백조의 군무 장면에서 고전과의 연계성을 많이 느끼게 되는데, 프렐조카쥬의 버전은 16명의 토슈즈를 신지 않은, 깃털처럼 보이는 흰색 레이어드 튀튀를 입은 무용수들에 의해 구현된다.
프렐조카쥬 자신도 “가장 환희에 찬 순간들”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은 발끝을 세워 서는 푸앵트 동작이 아닌, 발을 바닥에 안정적으로 딛고 팔을 자유롭게 많이 사용하는 야생의 백조들을 닮은 동작들을 통해 표현된다.
러시아의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을 기반으로 한 ‘백조의 호수’는 1877년 볼쇼이 극장에서 율리우스 라이징거의 안무로 초연되었다. 당시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발레곡으로는 “너무 복잡하고, 소란스러우며, 바그너적이고, 교향곡 같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라이징거의 안무 역시 “상상력이 부족하며 기억에 남지 않는다”는 혹평을 받았다.
러시아와 독일의 민담에 근거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대본(리브레토) 역시 누가 쓴 것인지 출처가 불명확한 ‘백조의 호수’는 여러 결말로 다양하게 공연되어 온 특징이 있다. 하지만 안무에 있어서만큼은 1895년 프티파와 이바노프의 버전이 전통으로 여겨지며 현재까지 이어져왔는데, 안타깝게도 차이콥스키는 1893년에 사망해 이 작품을 보지 못했다.
원래 4막이었던 발레는 3막으로 변경되면서 프티파가 1막 1장과 2막을, 이바노프가 1막 2장과 3막을 맡아 공동으로 안무되었는데, 다양한 춤을 선보이는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 역시 프티파가 스페인 춤과 마주르카를, 이바노프가 나폴리 춤과 차르다시를 맡아 각각 안무했다.
특히 “흑조의 파드되”라고 일컬어지는 그랑 파드되는 ‘백조의 호수’에서 오딜(흑조)의 32번 회전 동작 푸에테(fouettée)를 선보이는 부분으로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것으로 유명한데, 프렐조카쥬의 버전의 경우 푸에테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데트(백조)/오딜(흑조)을 한 명의 무용수가 연기하는 방식은 그대로 유지된다.
프렐조카쥬는 새로운 설정이 추가됨에 따라 차이콥스키의 발레 음악에도 변화를 주었는데, 3시간에 달하는 원작의 공연시간을 110분으로 단축하면서, 원곡의 90%를 보존하고 10%는 다른 음악을 배치했다.
차이콥스키의 다른 작품, 가령 교향곡 4번과 교향적 발라드 보예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 전례의 케루빔 찬가와 같은 음악들이 ‘백조의 호수’의 발레곡의 선율과 조화를 이루며, 테크노 음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이 다변화된 분위기를 반영한다.
무엇보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보리스 라베의 영상을 통해 무대 공간의 변화뿐 아니라 각 장면을 둘러싼 배경을 설명하게 되는 특징이 있는데, 샌프란시스코 댄스 필름 페스티벌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영상들은 드로잉에서 가져온 이미지를 애니메이션으로 구축한 것이라고 한다.
안개가 자욱한 호숫가와 달빛이 비치는 푸른 호수, 네온사인을 밝힌 고층 빌딩 숲, 빛이 스며들어오는 방안과 아름다운 호숫가에 건설되는 거대하고 흉물스러운 공장, 기중기에 의해 쓰러지는 커다란 나무와 숲의 모습은 영상들을 통해 매우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어가며 메시지 또한 전달하게 된다.
한편, 패션 디자이너 이고르 샤프린의 백조들의 의상은 깃털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깃털로 뒤덮인 듯 보이는 디자인으로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인 야생 백조들의 강렬한 군무를 완성하게 되는데, 깃털처럼 보이는 문양은 ‘종이접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막이 오르면, 호숫가에서 신비한 공기의 흐름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서 있던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이 구름처럼 움직이는 원을 향해 손을 뻗는다. 사각형이 되기도 하고 원이 되기도 하는 공기의 흐름에 매료된 젊은 여인 곁으로 검은 가죽바지를 입은 세 명의 남자들이 접근한다.
남자들은 여인의 흰 블라우스를 찢어 치마처럼 입히고 여러 번 돌려 묶어 백조의 의상처럼 만들어 버린다. 하얀 원을 그리던 신비한 공기의 흐름은 인간의 골격 구조가 새의 날개의 형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며 깃털로 흩어져 사라져 버린다.
오데트가 로트바르트의 마법에 의해 백조가 되는 첫 장면의 폭력성과 공포, 어둠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불길한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이후 지그프리트가 호숫가에서 검은 가죽바지를 입은 세 명의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상당한 폭력성이 구현된다.
또, 호숫가의 땅에서 화석 연료를 추출하고 자본화하려는 로트바르트와 시추 장비 공장을 건설하려는 아버지의 ‘밀회 장면’이나 아버지와 지그프리트의 ‘다툼 장면’에서도 폭력성이 드러난다. 이는 폭력 또한 인간 세상의 한 측면이고,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직면해야만 하는 현실”이라는 프렐조카쥬의 생각을 반영한다. 더불어 경제 성장과 이윤, 재정적 가치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과 자연이 다뤄지는 방식이 결코 부드럽지 않고 폭력적임을 의미하게 된다.
석유 시추 기업의 고층 빌딩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의 화려함은 첫 장면의 두려움과 대조를 이룬다. 지그프리트의 아버지는 직원들과 아내에게 설계도면과 공장 모형을 보여주며 자신의 사업 확장 계획을 발표한다.
구름 가득한 호숫가 위로 백조들이 날아다니는 영상은 고층 빌딩이 가득한 밤하늘 풍경으로 바뀌고, 우아한 어머니와 권위적인 아버지의 춤에 이어 흰색 양복을 입은 지그프리트의 등장이 이어진다. 반복적으로 울리는 시계 종소리에 맞춰 슬로 모션으로 등장하는 지그프리트의 모습은 현대적 음악의 배경 속에 아들의 이질적 특성을 표현하게 된다.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만을 드러내는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는 상당히 가깝게 묘사되는데, 평화롭고 따스한 모성을 표현하는 ‘어머니’는 아들과 연인처럼 아름다운 2인무를 선보인다.
팔을 위로 뻗으며 솟아오르는 동작이 많은 아버지의 독무는 나르시시즘과 거만함, 권력을 향한 욕망과 이기심을 드러내게 되는데, 빠르게 움직이는 붉은 곡선과 흰 곡선의 주식 시세 그래프 사이로 휴지 조각처럼 떨어져 내리는 지폐들의 영상을 배경으로 테크노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종당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프렐조카쥬는 샴페인 잔을 손에 든 채 흥청망청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순간에도 현실을 외면하는 무관심과 무감각의 ‘태도’를 드러내고자 했음을 피력하는데,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일종의 술책”이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그는 기후와 환경오염에 대한 현재 세상의 태도가 정확히 그와 같은 ‘외면’과 ‘무시’를 향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2021년 영화 ‘돈 룩 업’을 언급한다.
지그프리트와 백조가 된 오데트의 만남 장면은 환상적인 안개가 가득 드리워진 영상과 함께 실제 백조의 동작을 연상시키는 안무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로트바르트를 포함한 불량배들에 의해 폭행당해 정신을 잃은 지그프리트는 호숫가의 백조들에 의해 구조된다. 하지만 오데트와 지그프리트가 가까워지는 것을 염려하는 백조들의 물결은 파도처럼 양쪽에서 두 사람을 밀고 당기기 시작한다.
프렐조카쥬는 두 사람의 사랑을 열정적이고, 관능적이며, 장난스러우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하는데, 원작의 전통적인 안무들을 비틀거나 재해석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반면, 무도회에 등장한 오데트를 닮은 흑조 오딜의 안무는 상당히 도발적이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로트바르트가 뒤에서 오딜을 조종하는 측면과 불안을 느끼는 어머니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아버지의 모습이 긴장감을 증폭한다.
화면의 영상은 점점 더 높게 건설되는 공장과 오일로 인해 검게 변해가는 호수를 통해 ‘위기’를 표현하고, 결국 백조들은 부동산 개발업자의 딸 오딜과의 결혼에 동의한 지그프리트의 변심으로 인해 오염된 서식지에서 고통스럽게 몸을 떨며 죽음을 맞이한다. 뒤늦게 호숫가로 달려간 지그프리트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미 숨을 거둔 오데트를 포함한 수많은 백조들의 사체뿐이다.
프렐조카쥬는 ‘백조의 호수’를 통해 러브 스토리가 가진 낭만적 특성뿐 아니라 현재의 세대에게 유효한 정치적 질문 또한 제시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온통 검은색으로 변해버린 호수에서 부들부들 몸을 떨며 죽어가는 백조들의 모습은 사랑보다 ‘환경’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도록 만든다.
지그프리트의 변심은 현 세대의 배신이 될 수 있고, 백조들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 될 수 있기에, 프렐조카쥬의 ‘백조의 호수’는 다른 어떤 버전의 ‘백조의 호수’보다 암울함과 섬뜩함을 강조하게 된다. 기후의 비극은 더 이상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가까이 다가와 있는 커다란 위협이 되며, 깨진 사랑의 약속은 우리가 끝없이 배신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사랑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우리의 아이들, 아이들의 아이들이 보게 될 세상에는 ‘백조’와 ‘호수’가 존재할 수 있을까? 무대 위를 가득 채운 쓰러진 백조들을 보면서 관객들 모두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뉴욕타임스’의 무용평론가 로슬린 술카스의 말처럼, 프렐조카쥬의 ‘백조의 호수’에서 “살아남지 못한 것은 사랑만이 아니라 세상 그 자체”이다. 미래 세대의 세상을 구원할 길은 현 세대의 선택에 달려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의 선택은 자연의 보존과 파괴 중 무엇을 향하게 될까?
-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