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기념작, 2023 토월정통연극 시리즈
-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오셀로’...질투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진 한 인간 이야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질투심은 무엇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질투라는 “녹색 눈의 괴물”에 사로잡혀 “분별”을 잃은 마음에는 ‘비극’외에 다른 결론이 없을까? 질투는 정말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표현처럼 “저절로 잉태되고 저절로 태어나는 괴물”이자 “자신을 먹어치우는 먹이를 조롱하는” 통제 불능의 혼란일 뿐일까? 질투심의 근간에 자리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진화론적 관점에 따르면, 질투는 인류가 자신과 자손의 생존을 보장하도록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는 목적에서 비롯된 기제이며, 생후 5개월 된 유아에게서조차 발견되는 매우 흔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이다. 기본적으로 질투심을 촉발하고 추동하는 것은 ‘위협’이다.
질투심은 불안, 공포, 염려의 감정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소유라고 여겼던 것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염려,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관계가 흔들리는 불안은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을 불러온다.
질투를 부채질하는 것은 ‘의심’이며, 상상하는 인간의 능력은 질투로 인한 무력감과 분노, 경멸과 증오, 혐오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사실상 버림받는 것에 대한 ‘공포’와 배신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질투는 관계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이며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이지만 때로 치유할 수 없는 치명적인 ‘독’이 되기도 한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오셀로’는 질투로 인해 한 인간이 어떻게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고귀한 성품을 가진 무어인 장군 오셀로가 이아고라는 기수의 계략에 빠져 아무 죄가 없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고 질투해 목을 졸라 죽이게 되는 이야기, 이 끔찍한 비극의 교훈은 “공기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도 질투란 놈이 끼어들면”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확증”이 되어 인간을 야만적인 상태에 도달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예술의전당은 전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토월정통연극 시리즈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작품”으로 연극 ‘오셀로’를 선보였다.
‘햄릿’과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의 중간쯤인 1603~1604년경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오셀로’는 20세기를 거치면서 많은 비평적 논란과 상연의 어려움을 겪어온 작품이다.
‘오셀로’는 이탈리아 작가인 친티오의 1565년 이야기 모음집 ‘에카토미티(Gli Hecatommithi)’ 가운데 ‘무어인 캡틴’을 출처로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단지 ‘무어인’으로만 불리던 질투에 사로잡힌 남편에게 ‘오셀로’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극의 제목을 “베니스의 무어인, 오셀로의 비극”으로 칭했다.
베니스에 용병으로 와 있는 “검은 피부”로 표현되는 오셀로가 백인 귀족 여성 데스데모나와 몰래 결혼했다는 사실은 이미 ‘이방인’으로서의 오셀로의 위치를 설명하게 되는데,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인 톰 매캘링던은 셰익스피어가 오셀로를 ‘베니스의 무어인’이라고 부름으로써 이미 “양립하기 힘든 두 개의 문화가 묘하게 결합된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어인’이라는 단어의 광범위함과 다양성 때문에 오셀로를 흑인으로 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쟁이 있기도 했고, 셰익스피어가 인종차별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 적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중세 이후 무어인은 아프리카 흑인으로 간주되어왔다. 즉, 오셀로는 데브라 요하낙의 지적처럼, “무슬림이라는 문화적 조상을 갖고 있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베니스에서 정체성을 찾은” 이방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셰익스피어 시대의 관객들이 ‘오셀로’를 무대로 만났을 17세기 초반은 오스만 제국의 확장세를 두려워하던 유럽의 공포가 있던 시기였다. 매캘링던은 친티오의 이야기에는 키프로스에 닥칠 위협이나 전쟁에 관한 언급이 없음에도 셰익스피어가 오스만 함대의 침공을 추가하고 있음에 주목하는데, 비록 2막 1장에서 폭풍으로 인해 “전쟁이 끝났다”고 선포하지만 당대의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불안’이 잠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오셀로는 베니스를 위협하는 외부적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완전한 내부인이 될 수는 없는 다른 문화권의 타자로서 내면에 정체성의 ‘불안’을 안고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의전당이 선보인 연극 ‘오셀로’는 ‘불안’의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무대가 깊은 토월극장을 적극 활용해 오셀로의 전반적인 정서를 ‘지하 벙커’로 구현했다. 또, 인종의 의미보다는 차별의 의미를 부각시키면서 셰익스피어의 대본에서 인종의 차이를 드러내는 표현들을 상당 부분 걷어내고 이방인의 느낌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무대 및 조명 디자인을 맡은 여신동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모든 곳이 어둠으로 잠식되어 서로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 상태를 의도했음을 드러내는데, “불안하게 달려있는 조명들”에 비춰진 “흔들리는 물그림자”까지 무대 공간의 모든 것들이 왜곡될 수 있는 ‘불안감’을 의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지는 고인 물이 무대 앞쪽으로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이루는데, 오셀로의 마음에 흐르는 질투라는 감정의 스며듦과 축적을 드러낸 듯 느껴지는 특징이 있다.
‘불안’이 잠재된 낯선 땅에 체류하고 있는 이질적인 이방인 오셀로는 7살 때부터 전쟁터에서 성장한 경험과 군인으로서의 뛰어난 전투 능력으로 인해 ‘장군’이라는 지휘관의 위치에 올라 있다. 하지만 관객들이 그의 모습을 마주하기 전까지 오셀로는 기수인 이아고와 귀족 로데리고의 입을 통해 “늙고 검은 숫양”이나 “입술 두꺼운 놈”, “천하고 음탕한 무어인”으로만 언급될 뿐이다.
오셀로가 마침내 무대에 등장해 자신의 입으로 베니스를 위해 행한 공적과 왕족의 혈통에 대해 말하기 전까지 관객들은 그를 원로원 의원 브라반티오의 소중한 딸을 도둑질한 ‘강도’이자 북아프리카 바바리 해안에서 온 검은 ‘말’과 같은 인물로 인식하게 된다. 자신의 딸이 무어인과 결혼할 리 없다고 확신하는 브라반티오는 오셀로가 마법과 주술의 힘을 사용하거나 약물을 먹여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하다면서 그를 체포해 법정에 세우겠다고 공표한다.
셰익스피어는 베니스 사회에서 ‘타자’로 취급되며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오셀로의 영웅적 면모를 그의 언어를 통해 드러내는데, 오셀로는 공작과 다른 의원들 앞에서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이르게 된 과정을 길게 설명한다.
오셀로는 브라반티오가 자신을 아주 좋아해서 자주 집에 초대해 삶의 여정과 모험담을 듣기를 원했고, 온갖 전투와 포로생활, 죽음과 운명, 기이한 섬과 식인종, 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과정에서 데스데모나의 ‘연민’을 사게 되었다는 점을 토로한다. 데스데모나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그가 겪어 온 고통과 위험, 아픔 때문이고, 자신은 그녀가 보여주는 동정과 연민 때문에 사랑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는 오셀로는 자신이 사용한 마술은 ‘혀’에 있음을 강조한다.
매캘링던은 오셀로가 베니스 사회의 보호자이자 구원자인 군인으로서 용맹함을 갖췄을 뿐 아니라 “혀의 마술”이라는 감동과 설득의 힘 또한 지녔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상형을 충족하는 전형적 영웅”의 특징을 갖고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처럼 영웅적인 면모를 갖춘 오셀로가 인종 차이, 나이 차이, 문화적 금기, 브라반티오 의원의 분노에 찬 저주와 반대, 전쟁의 다급한 위협, 키프로스 섬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거센 폭풍까지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어렵게 이룬 결혼 생활을 너무도 쉽게 빨리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오셀로의 부하이자 기수인 이아고의 계략과 속임수에 넘어가 부사령관인 카시오와 아내 데스데모나의 사이를 의심하고, 자신이 선물한 손수건이 카시오의 수중에 있음을 본 것만으로 ‘외도’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어 분노로 이성을 잃는 급격한 변화는 연극 ‘오셀로’의 긴장감과 흡입력을 높이고 관객들을 공포와 연민으로 몰아넣는 비극적 효과의 ‘핵심’으로 여겨져 왔다.
비평가들은 도대체 왜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결혼이 그토록 빨리 파괴되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제기해 왔는데, 수잔 스나이더는 “그 어떤 답변도 전체의 진실을 다 제공하지는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틀도 채 되지 않아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창녀로 취급하고, 아내의 죽음을 결정내리는 데에는 질투라는 ‘독’을 심는 이아고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왜 그토록 이아고는 오셀로의 몰락을 추구하며 온갖 술수와 책략을 일삼고 그를 증오하는가’에 대한 비평적 관심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이아고의 연극”이라고 할 정도로 여러 해석과 논란을 낳아왔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오셀로를 증오한다고 말하는 이아고는 여러 전투를 함께 해 온 자신이 아닌 피렌체 출신의 장교 카시오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다. 이아고는 전투 경험도 없는 이론가인 카시오를 선택한 오셀로를 향한 분노가 겉으로는 따르는 척하면서 의도와 동기를 숨긴 채 그를 배신하고 파멸시키는 이유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아고의 복수에는 지나친 점이 있다.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도구’처럼 이용해 카시오의 파면과 오셀로의 질투, 데스데모나의 죽음을 조장한다.
오셀로와 자신의 아내 에밀리아가 부적절한 관계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똑같이 갚아줘야 한다거나 카시오 역시 에밀리아와 부정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계속해서 복수의 이유가 달라지거나 제거해야 할 대상을 향해 이유를 만들어내는 이아고는 마치 ‘오락’처럼 악행을 즐기는 듯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이아고는 중세 후기 도덕극에 등장하는 악마적 인물의 후손이라는 분석과 음모를 꾸미는 기술과 흥분을 즐기는 예술의 본능을 의미한다는 분석, 사람들 위에 군림하며 조종하는 권력의 희열을 즐기는 마키아벨리적 인물이라는 분석 등 다양한 해석들이 있어왔다.
예술의전당의 ‘오셀로’의 경우, 연극적 속성을 강조하며 이아고가 관객들을 향해 자신의 모략의 과정과 수순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강조한 경향이 있다. 이아고의 복수심의 원인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것은 원작과 같으나 오셀로 한 개인을 향한 ‘증오’라기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물을 장기판의 말처럼 여기며, 한 가지 잘못을 덮기 위해 다른 계략을 계속 생산해내는 작위적 느낌을 더했다.
또, 에밀리아와 데스데모나, 비앙카를 향한 그의 원작 대사의 여성 혐오적 발언들을 상당부분 덜어낸 듯 보인다. 이아고의 장면들이 객석의 웃음을 많이 생산하는 편인데, 웃음은 거리를 확보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오셀로를 비롯한 모든 인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기보다는 이성적인 관점에서 분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물론 그로 인해 이아고에게 조종당하는 오셀로의 ‘어리석음’이 강조되면서 영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비극성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의 관객들이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통해 마주하게 되는 질문은 과연 이 작품을 한 개인이 어떤 사악한 힘에 조종당해 무고한 아내를 살해하게 되는 ‘비극’으로만 볼 수 있겠는가라는 점이다.
‘오셀로’는 인종 차별과 계급 차별의 문제 말고도 여성 혐오와 가정 폭력, 학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속임수와 조작, 질투심과 증오심이 끔찍한 ‘살인’이라는 범죄로 이어지는 현실 속 데이트 폭력과의 연계성을 품고 있다.
2016년 매튜 쉐퍼드는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을 통해 현대의 관객에게 오셀로의 비극은 성차별과 학대, 가정 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범죄’의 이야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오셀로가 이아고의 계략에 철저히 속아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한 데스데모나를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는 결말에 대해 오셀로가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가 사랑하는 아내를 죽였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착각’과 ‘오해’로 인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점 때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셰익스피어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오셀로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데스데모나를 비롯한 모든 여성 인물들을 소유물로 표현하고, 남편의 잘못과 폭력을 자신의 “불행한 운명” 탓으로 돌리며, 증오가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내를 살해하고 “명예로운 살인자”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사회’를 겨냥한 것일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영국 국립극장 부예술감독으로서 2022년 12월 “전혀 새로운 느낌의 비극”이라고 평가받은 ‘오셀로’를 연출해 선보인 클린트 다이어를 통해 긍정된다. 다이어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는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분명히 제시되고 있는데, “질투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간과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오셀로’는 “권력에 관한 이야기”이며 “셰익스피어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남성에게 학대받는 여성의 비극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이러한 다이어의 관점은 이아고의 아내 에밀리아가 데스데모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게 되는데, 결혼 관계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이중적 잣대를 적용하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장면, 오셀로의 어리석음을 크게 비난하며 분노하는 장면, 남편 이아고의 명령을 거부하는 장면 등을 통해 드러난다.
예술의전당의 ‘오셀로’ 역시 경제성을 이유로 삭제되곤 했던 데스데모나의 버들 노래 장면을 보존한 점이나 에밀리아의 역할을 강조한 연출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페미니즘적 시각을 부각하려고 한 듯 보인다. 하지만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데스데모나의 성격이 좀 더 적극성을 갖고 저항하는 필사적인 느낌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2023년 2월, 폴저 셰익스피어 도서관과 툴레인 대학은 다양한 인종과 성별의 배우들로 연기한 ‘8명의 오셀로’를 통해 “기표와 캐스팅의 변화를 통해 단어를 바꾸지 않고 텍스트를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을 탐구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퍼포먼스 이론가 존 레이 프락터는 1603년 관객들의 연극 경험이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오늘날 관객들의 연극 경험이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연극은 일종의 ‘실험실’로 기능할 수 있으며, 현재의 관객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공연이 “의미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함을 강조했다.
질투심이라는 괴물이 삼켜버린 오셀로의 비극이나 이아고의 복수심의 동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비극과 복수를 방치하는 사회, 만연한 잘못된 태도들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 낡은 생각들이 여전히 현재에도 작동하며 죽음과 폭력을 지속하고 있는 상태, 이것이 현재의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통해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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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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