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석의 현장인터뷰]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 5인의 여배우를 만나다
[서영석의 현장인터뷰]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 5인의 여배우를 만나다
  • 서영석
  • 승인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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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존여비 시대를 관통해야 했던 기구한 여인들의 구슬픈 삶 담아
- 강선숙, 김주현, 홍성숙, 김현숙, 권도연 등 5인 여배우 출연
- ‘극단 춘추’ 송훈상 연출 "여인들의 한(限)과 구슬픈 삶 재조명"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 리허설 현장/사진=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인터뷰어 = 구슬프지만 아름다운 공연이 막을 올린다. ‘극단 춘추’(대표 송훈상)의 ‘가자, 서천 꽃밭으로’가 그것이다.

유교적 전통에서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사회 현상, 특히 기생이라는 아픔을 지니고 사랑을 가슴앓이해야 했던 여인의 안타까운 삶의 이야기가 극의 내용이다. 

이 공연은 ‘극단 춘추’가 ‘극단 춘추 레퍼토리 1’이라는 간판을 걸고 추진하는 특이한 공연이다. 하루에 전혀 상반된 두 개의 공연이 같은 극장에서 다른 시간을 조율하여 막이 올라간다. 그 공연이 ‘가자, 서천 꽃밭으로’와 ‘배우시장’이다. ‘배우시장’은 남자배우들만으로, 이 공연 ‘가자, 서천으로‘는 여배우들만 출연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어머니 장례식에 모인 성이 모두 다른 세 딸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 리허설 현장/사진=서영석

‘가자, 서천 꽃밭으로‘는 3년 전 ‘극단 춘추’가 새로운 레퍼토리 작품으로 선정, 야심 차게 준비하던 중 뜻하지 않게 코로나라는 암초를 만나 좌초된 공연이다.

작품의 줄거리는, 기생이었던 할머니 ‘화수’와 ‘화수’의 딸이자 ‘동희’, ‘미향’, ‘희주’의 엄마인 무기수 ‘진옥’, 5명의 여자배우만 출연하는 여성연극이다.

막내인 ‘희주’의 아버지를 죽인 죄로 무기징역 살이 중 감옥에서 세상은 떠난 진옥의 시신을 인계받은 뒤 딸들이 옛집에 모이면서 극은 시작된다. 세 딸이 평범하지 않았던 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이 공연의 내용이다.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 리허설 현장/사진=서영석

기생 ‘화수’에겐 완벽한 사랑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은 남자의 실종으로 끈을 놓아버린다. 멈춰버린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이상화되어 자신만의 방이 된다. 현실이 잔인할수록 ‘화수’는 자신만의 세계에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집착과 바램은 딸 ‘진옥’에게 전이 되고 ‘진옥’은 ‘화수’의 기대와는 달리 상상과 고달픈 현실에서 방황하다 급기야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르고 이에 무기징역을 받는다.

그녀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아 딸들에게 시신이 인계된다. 같은 엄마이지만 아버지가 다 틀린 세 딸, 이런 형제에게 어떤 정이 있을까? 엄마의 오락가락 사랑과 예술은 아름답지만, 그들에게는 한없이 혐오로 다가왔다.

세 딸은 할머니와 엄마의 임종을 지켜봤던 ‘동희’의 제안으로 기구했던 할머니와 엄마의 삶을 역추적하기 시작한다. 딸의 의상을 안고 ‘가자, 서천 꽃밭으로’를 읊조리는 할머니의 대사가 그녀들의 삶의 정체를 관통시킨다. 천박한 기생이라는 신분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예인의 길을 추구했던 기구한 그녀들의 삶에서 남존여비 시대를 관통해야 했던 여인들의 가슴 아프고도 구슬픈 이야기이다.

송훈상 연출 "우리 가락으로 들려주는 여인들의 한(限)"

여배우들만이 출연하는 이 공연은 여성들의 가슴을 아련하게 만든다. 기생이었던 할머니 ‘화수’ 역에 강선숙, 엄마 ‘진옥’은 남편(셋째 희주의 아버지)을 살해한 죄를 짓고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서 죽기에 무대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한복디자이너인 큰딸 ‘동희’ 역에는 차분한 연기의 김주현, 무용안무가인 둘째 딸 ‘미향’ 역에는 역동적인 왈패 에너지 배우 홍성숙, 결혼을 앞둔 막내딸 ‘희주’ 역은 무아지경의 연기가 돋보이는 김현숙, 멀티 아역은 권도연(중랑 초등학교 4년)이 맡았다. 

연출을 맡은 송훈상은 “이 공연은 조선 시대를 통해 전해 내려왔던 여인들의 한과 아픔의 삶을 재조명한 이야기다. 우리 가락과 소리에 주안점을 두려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연극배우이자 소리꾼 명창 강선숙/사진=서영석

공연의 타이틀을 맡은 강선숙은 일반인에게 소리꾼으로 더 알려진 명창이다. 그는 과연 소리꾼인가, 연극배우인가? 강선숙은 정체성이 모호한 배우이다.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79학번인 그는 우연히 연극에 써먹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 소리를 배우기 시작, 2000년 판소리 명창 대회에서 덜컥 대상을 받아버린다. 연극인으로는 최초란다.

“1979년 ‘극단 가교’에서 ‘안티고네’로 데뷔, 본격적인 연기 생활을 시작했어요. 기억나는 작품으로는 ‘홍어’, ‘작은할머니’ 등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그중에 2018년 ‘후궁 박빈’으로 서울연극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해 가장 소중한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이번 작품은 송 연출의 제안으로 참여를 하게 됐다. 그는 “우연히 송 연출에게 연락이 왔다. 소리와 장고는 자신이 있어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는데, 연습 중간에 참여하다 보니 상황 연결이 잘 안 돼서 대본 암기에 애를 먹고 있다”는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대사 암기가 절대 나이 탓이 아니라고, 또 자신은 강력히 연극배우라고 강조하는 그는 현 (사)여성연극협회 이사장이기도 하다.

맏딸 ‘동희’ 역을 맡은 김주현. ‘극단 춘추’의 간판 배우다./사진=서영석

맏딸 ‘동희’ 역을 맡은 김주현은 1969생으로 조용한, 무대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연기자로 ‘극단 춘추’의 간판 배우이기도 하다. 90년대 초반 ‘실험극단’에서 연극을 시작한 그는 당시 한국의 간판 배우들의 격전장이기도 했던 ‘실험극단’에서 스태프로 참여를 하면서 연기를 배운 독학파다.

연기에 목말라 하던 그는 연기에 대한 갈증 해소와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프랑스로 연기 유학을 떠났다. 학위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연기를 위해 실기 위주인 학원에서 2년 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피터 브룩이 득세하던 시절 그의 공연을 많이 보면서 연기의 견문을 넓혔어요. 귀국 후 실험 출신들이 많았던 ‘은행나무극단’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극을 했지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초중고 학생들을 위해 하던 연극 강사를 하기도 했어요. 자연히 연극에 소홀하다는 생각에 강사 생활을 접고 연기에 매진하기로 했지요.”

김주현은 이번 작품의 ‘동희’에 대해 “너무 아픔이 많아 참고 인내하는 역이라 성격에 맞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공연은 관객에게 설명이 박한 공연이라 연기에 많은 고민을 했다”며 ”항상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지만 차분한 연기도 충분히 극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성숙<br>
둘째 무용안무가 역 ‘미향’ 역을 맡은 배우 홍성숙/사진=서영석

둘째 무용안무가 역 ‘미향’ 역을 맡은 홍성숙은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성숙’한 배우이다. 시원한 이목구비와 운동선수를 연상케 하는 탄탄한 몸매는 단연 대학로에서 돋보이는 ‘에이스’배우이다. 1971년생으로 서울예전 91학번이다. 그는 이미 고교 시절 2학년 때부터 KBS 아침 드라마 ‘꽃 피는 둥지’,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했던 탤런트 출신이다. 원활한 배우 생활을 위해 서울예대 진학하라는 주위의 권유에 진학했단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장벽에 막혀 연기와 담을 쌓고 살다가 2008년부터 연기 활동을 재개했다.

“이 작품은 여성들이 선택 불가능한 사대의 잔존을 보여주는 공연이에요. 순간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낼지 누구도 모르지요. 낭독극 공연부터 참여했기에 애착이 많이 갔어요. 대사 중, ‘막연한 기다림은 잔인한 거야.’에서 배우라는 직업과 동질성을 느껴 계속 마음속에 맴돌더라고요. 파주에서 해장국 가게를 하면서 공연을 하기란 쉽지 않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자긍심을 느껴 행복합니다. 공연하면서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여자의 삶이란 것에 많은 생각을 하고 울컥해지기도 했어요. 심신은 피곤하지만, 배우로 무대에 설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극단 춘추’의 대표 배우 김현숙.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에서 결혼을 앞둔 막내딸 ‘희주’ 역을 맡았다./사진=서영석

배우 김현숙 역시 ‘극단 춘추’의 대표 배우다. 별로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듯한 그는 맑은 눈동자를 소유한 투명한 배우이다. 1973년생, 51세라는 나이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극강 동안을 자랑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서 연기에서 멀어졌고 또 남편의 해외 주재원으로 파견 생활을 하게 되어 40들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게 됐다.

“이번 공연은 극단 소속이다 보니 강압적(?) 캐스팅이었으나 좋은 역이라 불만은 없어요. 이 공연을 통해 춤과 가야금 등 다양한 예능을 배울 수 있어 좋아요. 이 작품의 재공연을 하면서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거 같아 항상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배우가 되고 싶다면 ‘오기’가 필요하고 ‘욕심’이 절대적인 몫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는 이렇게 하면서도 ’오기‘와 ’욕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 김현숙은 무대에서 자기 역 소화에 최선을 다하는 배우이다.

멀티 아역 배우 권도연 양/사진=서영석

이 공연에서 잔잔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빼놓을 수 없는 멀티 아역에 권도연(중랑초교)이 출연한다. 작년 중랑구민 Christmas-Carol 무대에서 데뷔했던 연기 초보자이다.

“작년에 같이 공연을 했던 심태선 배우에게 매료되어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배우를 하다 보면 공부를 등한시하게 되어 걱정되지만, 많이 놀 수 있어서 좋아요.”

꿈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연기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버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밝게 웃는다. 그는 “연기가 좋아요. 재미있어요. 극 중에 내 대사는 내가 하니까 다 좋아요. 한 대사, ‘애초 내려놓을 수 없는 거라면, 오히려 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지’라는 대사를 가장 좋아해요. 교훈적인 내용인 것 같아서...”라며 어린아이답지 않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공연 자랑을 해달라고 요청하니 “나 배우 한다, 부럽지~, 내가 잘 되길 기원해 줘. 그리고 꼭 공연 보러 놀러 와 줘”라는 깜찍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리허설 공연 보니...강선숙 소리와 장고의 절묘한 어우러짐 '으뜸'

연극 '가자, 서천 꽃밭으로' 리허설 현장/사진=서영석

공연의 볼거리로는 단연 소리꾼 강선숙이 장구와 소리다. 공연 중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장구 소리, 때로는 경쾌하게 또 아련하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바로 우리의 소리이자 공연에 등장하는, 극 중 여인들의 피 울음소리이고 환희로 승화시키는 우리 할머니들의 탄식이다.

공연적 특성 또한 강선숙의 소리와 장고의 절묘한 어우러짐이 으뜸이다. 또 극 중 삼류 기타리스트이자 사기꾼인 아버지의 피를 받은 홍성숙의 다이내믹하고 서구적인 호방한 연기와 맏언니답게 차분하게 극을 이끌어 가는 김주현의 연기가 극을 절묘하게 조율한다. 가끔 극의 분위기를 틀어 주는 김현숙의 나른한 연기와 아역 권도연 깜찍하면서도 명료한 연기가 관객들을 극 중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앙상블의 문제가 있는 듯하다. 물론 김주현의 말대로 관객에게 자세한 설명을 외면한 대본이지만 대사가 배우들의 입가에만 맴돌아 관객의 입장에서 극 내용을 파악하기가 여간 난해하지가 않다. 또 배우들 연기와 대사가 너무 생활연기에 매몰돼 연극인지 드라마나 영화인지 규정이 모호하다. 연극다운 연극이 아쉽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이는 연극인 스스로 연극을 방송이나 영화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이라는 등식을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또 공연 기간이 워낙 짧기에 배우들 역시 대사가 입에 붙을 만하면 공연이 끝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가자, 서천 꽃밭으로’는 대학로 ‘스튜디오 블루’(대표 하형주)에서 2023년 5월 10~14일 공연한다.

서영석

인터뷰365 기획자문위원.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로 극단 「에저또」를 거쳐 다수의 연극에서 연출, 극작, 번역 활동. 동국대에서 연극학 석사를, 중앙대에서 연극학 박사를 취득했다. 동양대 연극영화학과,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 현 극단 「로뎀」 상임연출이자, 극단 「예현」대표를 맡고 있다.

서영석
서영석
gnja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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