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굴종이냐, 항거냐?' 비장한 이야기, 경쾌한 축제처럼 풀어내
- 고건령 연출 "대본 없는 실험극 시도해보고 싶다"
- 손정욱 류지애 박혜란 등 출연..."호평 받는 작품으로 각인되길"
인터뷰365 서영석 인터뷰어 = '굴종이냐, 항거냐?' 아주 사소한, 독재 권력에 아주 소심한 항거란 타이틀로 연극 '초대'가 무대에 오른다.
공연을 목전에 두고 찾은 연습실은 어수선과 긴장감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아직 연극이 몸에 배지 않은 초년생들은 그야말로 희희낙락이고 중고참 이상 참여자들은 긴장감이 팽배했다. 이 공연의 참여 배우는 12명. 이들은 막 중 무대를 이동하며 스스로 맡은 역에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초대'는 국적 불명의 연극이다. 팸플릿에 소개된 내용으로는 1950년대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로 지칭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박정희, 전두환 군부독재 시대를 연상케 하는 작품으로, 유럽의 시골이 아닌 우리네 근현대 소시민들의 생활사를 그린 듯해 국적 불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하다.
소리 없는 민중의 항거, 그 결말은...“복종할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작품은 점령군의 압제에 시달리는 한 마을이 배경이다. 점령군의 압제가 점차 심해지는 와중에 결혼식을 앞둔 한 쌍의 청춘남녀가 있다. 모처럼 열리는 마을 잔치로 모두가 들떠 있던 결혼식 바로 전날, 점령군의 원수가 사망한다.
이에 점령군은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전국의 집회와 결혼식, 장례식을 비롯해 사람들이 모이는 모든 행사를 금지한다. 결혼식이 취소될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은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독재정권에 사소한 항거, 갑론을박 끝에 소리 없는 결혼식을 하기로 뜻을 모은다.
산턱 조그마한 산장에서 조심조심 마을 사람들은 소리 없는 결혼식을 진행하다 스스로 흥에 겨워, 또 압제에 항거하기 위해 흥겨운 파티로 이어지는 와중, 독재자의 앞잡이가 등장 마을 사람들에게 차례로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 작품의 극작 겸 연출을 맡은 고건령은 작품의 팸플릿에서, “굴종이냐, 항거냐? 복종할 것인가, 분노할 것인가?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할 것인가? 맞서서 대들어 볼 것인가?”라며 나름대로 소심한 항거에 불만을 토로한다.
고 연출은 “우연히 술자리에서 지인에게 들었던 오래된 영화 이야기와 스치듯 파편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를 모티브 삼아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며 “하 수상한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결정하지 않으면 결정 당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 논리가 없는 행위는 위험하고 행위가 없는 논리는 공허하다던가. 결단이 필요하고 결정했으면 움직여야 할 때다”며 작의에 대한 소신을 피력한다.
작가 고뇌와 세밀함 돋보여...고건령 연출 "대본 없는 실험극 시도해보고 싶다"
'초대'는 작품 곳곳에 스며있는 작가의 고뇌와 세밀함이 돋보인다. 극 중 연극배우 등장으로 막 종반 부분 무언극으로의 전환이나, 점령군 장교에 의한 억울한 강간과 주검을 배치해 씨줄날줄로 엮은 탄탄한 구성 솜씨는 어지간한 극작가의 수준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극작을 맡은 고건령 연출은 독학으로 연출을 공부했다.
“우연한 기회에 친한 형이 연출을 한다 해서 구경을 갔어요. 연극 연습 장면을 보고는 ‘재미있겠다’란 생각이 들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나도 해 볼까?’ 했는데 평생의 직업이 되었습니다.”
첫 시작은 단역배우였다. 무대 활동을 이어가던 중 연출에 소질이 있어보인다는 동갑 연출가의 권유로 연출 워크샵에 참여하게 됐다. 연출 공부에 매진한 그는 공연을 많이 보는 것이 가장 큰 공부가 되겠다 싶어 2년을 미친 듯이 연극관람에 매달렸다. 토, 일요일에는 하루 2편씩 공연을 봤다. 이제는 몇몇 작품을 연출했다는 소박한 꿈을 이루었다.
'초대'를 제작한 ‘공연제작소 사람들’은 대학로에서 20여 년 이상 극작, 연출, 배우, 스태프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던 중견 연극인들이, ‘보다 깊이 있는 공연 창작과 새로운 시도’라는 기치를 걸고 2022년 새로 창단한 연극단체이다. 연출 고건령과 배우 손정욱을 중심으로 뭉친 이들은 “새로운 경향을 담은 순수 창작물 제작을 목표로 합심하며 매진하겠다”며 결의를 다진다.
고 연출은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실험극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대본 없이, 배우들과 시작과 종점, 클라이맥스와 주제만 정하고 배우들에게 맡기는 공연이지요. 매 공연 다른 연기로 독특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이 같은 발상은 신선하면서도 파격적이다. 연극이 예술로 인정받는 가장 큰 이유가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한 배우들과 스태프들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은 항상 누군가에 의해 새로운 장르가 개발되고 소멸된다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의 도전이 무모하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말기 암 극복한 '의지의 연극인' 손정욱..."연극은 사명감"
이 공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배우가 있다. ‘극단 공연제작소 사람들’의 산파역을 했던 대표 배우, 손정욱이다. 그는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헤쳐 나온 의지의 연극인이다.
그는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연극과 83학번으로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그냥 좋아서 연극과를 지망했어요. 이전에 연극을 한 편도 본 적이 없었어요. 집안 형편 상 대학 원서 낼 돈조차 지원해 주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작정 낸 원서에 덜컥 합격했죠.”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탓에 졸업과 동시에 삶의 현장으로 내몰려야 했다. 먹고 살기에 몰두하며 20여 년을 보내던 어느날, 그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말기 암 판정을 받은 것. 그는 모든 걸 접고 강원도 홍천 인근으로 떠났다.
병마와 싸우면서 여행과 자연을 원 없이 접했다. 강원도 길 1,000㎞ 걷기, 제주도에서의 체력 훈련, 유럽 여행도 했다. 그 와중에 그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상념들이 스쳐 지나갔고, 많은 고민에 빠졌다.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하고 싶었고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그 답은 너무 명료하고 간단했다. 바로 연극이었다. 그런 애절한 염원 덕인지 극적으로 완치 판정을 받았단다. 그 후 6년 전, 꿈에도 그리던 대학로에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앞으로 제 삶은 연극밖에 없다. 연극은 바로 사명감이다. 밥만 먹으면 살아진다고 생각한다”며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연극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장 확실하게 뇌리에 새긴 단어가 ‘사명감’입니다. 밥을 굶으면서, 압박 속에서도 연극에 매진했던 선배님들도 바로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누가 뭐래도 옳은 길이면 가시밭길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 그 표면적 작품이 바로 이 공연, ‘초대’가 아닌가 합니다. 이 작품을 통해 선후배 연극인들에게 연극인의 ‘사명감’을 표출해 보고 싶습니다.”
30여 년간 120여 편 연극 참여, 열혈 연극인 류지애
배우 류지애는 이번 작품에서 시종일관 무대 밸런스를 잡아주는 배우다. 1969년 생인 그는 두 딸의 어머니다. 남편 역시 연극을 하고, 딸 현율이 이 작품에 음향 오퍼로 참여한 '연극 가족'이다.
전주 유일여고 연극부 출신인 그는 1992년 창작극회 동인으로 연극을 시작한 후 120여 편의 연극에 참여했다. 30여 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연극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기에 아동극도 마다하지 않았죠. 오랜 시간 연기에 임하면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방송이나 영화와 인연이 닿지 않아 얼굴을 널리 알릴 기회가 없었지만 그래도 연극인이라는 자부심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2020년에 했던 ‘그대는 봄’을 꼽았다. 그는 “근 6년여를 아르바이트해서 제작에 참여했고 또 남편이 연출을 했기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초대'를 준비하면서 “멋진 공연으로 관객분들은 물론 연극계에서도 호평을 받는 작품으로 각인되기를 바란다”며 해맑게 웃는다.
“이 작품을 하면서 피해자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억압을 받으면서 그냥 숨죽이고 산다는 자체가 후손들에 가해자란 이상한 논리가 정립되더라고요. 이 공연은 관객들께서 생각하면서 보셔야 좀 더 작품의 진의에 다가가지 않을까 사료해 봅니다.”
직장 다니다 연극 배우로...박혜란 "무대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
또 한 명의 늦깎이 배우, 결혼을 앞둔 새 신부 ‘질리엔’역을 맡은 박혜란을 빼놓을 수 없다.
1992년생으로 서른이 넘었지만 2019년에 데뷔했으니 경력으로 보면 신인에 가깝다. 그는 울산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남대 화학공학과를 졸업 후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삶의 진정한 행복’에 대한 고민 끝에 부모님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극에 뛰어든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연습을 하고 무대에 있을 때 너무 행복해요. 한 번뿐인 인생에서 행복을 빼면 뭐가 남을까요? 물론 작품이 끝나면 공허하고 힘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제 행복을 위해서 택한 직업(?)이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버텨낼 자신이 있습니다. 꿈이 있다면 오래오래 무대에 설 수 있는 생명감 있는 배우가 되는 거 아닐까요?”
다른 한 명의 주요한 배우가 있다. 배우로서 훌륭한 체격과 어린 왕자, 미소년 같아 연기의 기본기만 충실히 닦는다면 장래가 촉망되는 새신랑 안톤 역의 이 준은 공연 시간 관계로 인터뷰를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리허설 공연 보니...연출과 배우, 스태프 혼연일체 결실
이 공연은 작가와 연출, 극작의 디테일과 연출의 세밀함, 무대, 조명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넘어간 부분이 없는 수작이다. 배우는 물론 모든 스태프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을 경주했기에 정부 지원을 받은 부유한 공연에 비해 훨씬 멋진 공연임에 이설이 없다. 손정욱과 김성기의 중후한 연기에 류지애와 김현주 등 깔끔한 연기가 조화를 이루며 공연을 끌고 간다.
하지만 옥에 티라면 배우들이 작품을 대하는 연기에서 깊이가 모자란다는 느낌이다.
연출의 의도와 행동선의 타당성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년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미진함이 무대에서 생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결혼이 임박한 당사자와 그 부모들의 심정이 무대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당사자는 ‘기대와 설렘, 긴장감’, 또 부모들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로 인한 난맥상들의 연기가 무대에서 표현되지 못한다.
아무리 무언극으로 표현되지만, 진행되는 결혼 파티에서 즐거움이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이 즐겁고 슬퍼야 관객들의 동화를 끌어낸다는 절대 명제를 간과한 부분이 아쉽다.
또 열악한 예산 문제로 홍보에 좀 더 노력을 기울이지 못한 부분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쪼록 공연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훌륭한 공연으로 마무리되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초대'는 2023년 5월 25일~6월 4일까지 대학로 한성아트홀 2관에서 공연한다.
-
서영석
인터뷰365 기획자문위원.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로 극단 「에저또」를 거쳐 다수의 연극에서 연출, 극작, 번역 활동. 동국대에서 연극학 석사를, 중앙대에서 연극학 박사를 취득했다. 동양대 연극영화학과,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겸임 교수를 지냈으며, 현 극단 「로뎀」 상임연출이자, 극단 「예현」대표를 맡고 있다.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