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호성 배우의 사실주의 연기 일품, 소유진의 당당한 연기도 볼거리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구순을 바라보는 이순재 대배우가 연출한 안톤 체홉의 '갈매기'가 12월 21일 막을 올려 2023년 2월 5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대형 무대, 화려한 출연진과 원작에 충실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출연진은 이항나 소유진(아르까지나), 정동화 권화운(뜨레블레프), 진지희 김서안(니나), 오만석 권해성(뜨리고린), 이순재 주호성(쏘린), 김수로 이윤건(도른), 강성진 이계구(샤므라예프), 이경실 고수희( 뽈리나), 신도현 김나영(마샤), 전대현 김아론(메드베젠꼬) 등이다.
다음은 12월 22일 공연의 리뷰다.
안톤 체홉 작, 이순재 연출의 '갈매기'는 세기말 인간 군상들의 사랑과 갈등을 대형 무대에 사실적으로 펼쳐내, 소극장 무대와는 다른 후련한 미장센으로 체홉 작품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우선 첨단 기술의 영상을 정교한 세트와 조화시킨 무대가 돋보였다. 그간 수십 편도 넘는 '갈매기'를 보면서 무대에 대형 호수를 만든 공연도 보았는데 이번에는 영상이었다. 자작나무와 떡갈나무가 숲을 이룬 호수에는 물결이 일렁이고, 창공에는 갈매기가 동영상으로 날아다닌다.
호숫가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여배우 아르까지나(소유진)의 아들이자 신세대 젊은이 뜨레블레프(권화운)가 연인 니나(김서안)를 내세워 자작극을 공연한다. 하지만 어머니 아르까지나가 작품을 조롱하고, 니나는 아르까지나의 연인이자 작가인 뜨리고린(권해성)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줄거리만 따라가면 여느 '갈매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대형 무대에서 배우들의 동선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호수를 배경으로 한 전경이 세련된 구도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무선 마이크를 써 연극적 아우라가 덜한 게 흠이었지만 연극은 배우의 예술임을 증명하듯 배우들의 연기가 꾸밈이 없고 자신감에 차 있어 관극이 편했다.
배우들의 캐릭터가 기대만큼 표현되지 못한 부분도 적지 않았지만 사실적인 연기로 앙상블을 이뤄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극이 무르익을수록 구순을 바라보는 이순재 대배우가 왜 체홉의 '갈매기'를 연출하려고 했는지 그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원작에 충실한 연극, 사실적인 표현을 통해 작가 체홉의 철학과 사상을 전달하고, 더 나아가 그것이 현대에 어떻게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를 던지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도 대학극은 물론 대학로에서 자주 공연되는 '갈매기'는 그 해석도 분분했다. 어떤 연출은 비극적 사랑에 초첨을 맞추었고, 또 다른 연출은 인물의 갈등과 인간관계에 방점을 두기도 했다.
이순재 버전의 '갈매기'는 젊은이들의 꿈이 기성세대에 의해 좌절당하는 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순재 대배우는 필자에게 “체홉의 '갈매기'는 개혁으로 풀어야 작가의 의도와 사상을 전달할 수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뜨레블레프는 자신의 총에 맞아 죽은 갈매기를 니나에게 보여준다. 총 맞은 갈매기는 세상을 날지 못한다. 날 수 없다는 것은 젊은이들의 좌절된 꿈을 의미한다. 개혁도 사랑도 좌절된 젊은이가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는 것으로 연극은 막을 내린다.
필자는 뜨리고린을 따라간 니나가 버림받고 삼류 배우가 되어 뜨레블레프를 찾아오는 마지막 장을 좋아한다. 니나의 대사는 절절하고 뜨레블레프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리고 집안에 들리는 총성…. 주치의 도른(이윤건)은 약병이 터진 것이라고 둘러대고 일상은 평온하다.
이순재 연출은 4막 역시 정석대로 연출했는데 라스트가 다소 밋밋해 아쉬웠다. 하지만 재미가 적더라도 원작 그대로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대형극장에서 펼쳐지는 이순재 연출의 '갈매기' 관극 포인트는 세련된 무대 위에 펼쳐지는 배우들의 연기다. 10명의 주요 배역 중 단연 돋보인 배우는 아르까지나의 오빠이자 뜨레블레프의 삼촌인 쏘린 역 주호성이다. 애드리브를 살짝 가미한 그의 무르익은 연기는 이번 무대의 백미이자 놓치면 아쉬운 사실주의 연기의 전형이다. 필자는 같은 역의 이순재 연기를 보기 위해 한두 번 더 '갈매기'를 관극할 생각이다.
탤런트이자 유명인의 부인으로 알려진 소유진의 아르까지나 연기도 이번 공연의 새로운 발견이다. 숙성되지는 않았지만, 연출의 의도를 흡수한 정직한 연기와 무대에서의 당당함은 칭찬할 만하다.
장원을 관리하는 사므라예프 역 강성진은 드라마보다 무대 연기가 더 빛이 났고, 그의 아내 뽈리나 역의 이경실은 자신의 캐릭터를 명징하게 구현해냈을 뿐 아니라 여유까지 보이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니나 역 김서안, 뜨레블레프 역 권화운은 필자가 무대에서 처음 대하는 배우들로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지만, 더 깊이 파고들고 매력을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뜨리고린 역 권해성은 훤칠한 외모로 시선을 끌었으나 작가로서의 아우라가 덜 배어나온 점이 아쉬웠다. 도른 역 이윤건의 굵직한 음성, 마샤 역 김나영과 메드베젠꼬 김아론의 듀엣 연기도 좋았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를 받쳐준 심도 있는 조명, 개성 있는 의상, 동적인 영상 등 스태프들이 이룬 창의력과 퀄리티가 작품의 세련미를 높여 주었다.
2022년을 보내는 세모에 우리 시대의 이순재 대배우가 연출한 '갈매기'를 생활연극협회 배우 10여 명과 단체 관람할 수 있어 행복했다. 새해에도 이어질 '갈매기' 공연의 순항과 이순재 대배우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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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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