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영화 같은 연극 '살·색(殺色)', 치정과 복수극 그리고 반전의 재미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영화 같은 연극 '살·색(殺色)', 치정과 복수극 그리고 반전의 재미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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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석 각색 연출의 '살·색(殺色)'...영화 한 편을 본 것 같은 연극
- 반전과 서스펜스...영화보다 현장에서 몇 배 더 실감나게 느껴지는 아우라
- 배우들의 유려한 연기 돋보여
최원석 각색, 연출의 ‘살·색(殺色)’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뭐 이런 연극이 다 있지!!”

대학로 아름다운극장에서 공연 중(~10월 30일)인 최원석 각색, 연출의 ‘살·색(殺色)’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하다 못해 입이 벌어지는 연극이다.

3시간짜리 소극장 연극인데 지루하기는커녕 재미가 있다. 인터미션 15분 빼고는 암전 없이 전개되는 공연에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몰입되고 긴장되는 괴이한 연극이다.

영화 같은 연극. 영화에도 여러 장르가 있다면 이 연극은 멜로, 치정극, 반전의 복수극이다.

원작은 중국 현대작가 차오위(曹遇·1910~1996)가 1937년에 쓴 ‘원야(原野)’다. 조우는 국립극단에서 공연한 ‘뇌우’의 작가로, 중국 사회의 패악을 여실히 고발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여기서 더 강조하고 싶은 인물은 원작을 ‘살·색(殺色)’으로 각색해 연출한 최원석이다. 그는 한 때 국립극단 배우였고 작가이며 연출가다. ‘변태’, ‘불멸의 여자’, ‘빌미’, ‘화로’... 그의 공연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불멸의 여인’을 보면서 너무 리얼한 극중 상황에 질려 극장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경험이 있다.

극단 인어의 대표인 그는 최근 헤롤드 핀터의 ‘생일 만찬’에 이어 조우의 ‘살·색(殺色)’을 잇달아 공연, ‘고전연극의 귀환’을 꾀하고 있다.

연극 ‘살·색(殺色)’ 포스터. 

최원석의 ‘살·색(殺色)’은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이라 할 만하다.

‘뇌우’나 ‘조씨고아’ 같은 형식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으나 그는 ‘원야’의 줄거리만 차용해 와 자기 식의 연극문법으로 각색했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연출했다.

여기서 줄거리는 관객들을 위해 생략하되 2~3대에 걸친 운명적인 복수극이며 예기치 못한 운명의 업보라는 점만 내비치고 싶다. 주목할 점은 최원석의 연출이고 배우들의 연기이기 때문이다.

최 연출은 “사실주의 연극형식의 현대적 수용을 완성하기 위해 생략과 압축을 바탕으로 한 비사실적 무대와 극사실적 연기의 결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여 왔다”고 밝혔다. 극사실적 연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과학적인 태도로 인간의 행동을 관찰하고 복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원석 각색, 연출의 ‘살·색(殺色)’  

복잡한 설명 보다 한마디로 그는 무대장치에 묻혀 왜소해진 배우들을, 무대장치를 제거해 오롯이 무대에서 유희케 하는 ‘배우 연극’을 꾀하고 있다.

‘살·색(殺色)’의 매력은 배우들의 물 흐르듯 한 연기를 따라가는 것이다. 장강 역 윤상호 배우는 지명도가 높지만 송예리(황염), 윤재진(리춘희), 지근우(마대성), 박현욱(우보, 진소동) 등은 극단 배우들이다.

그런데 이들 5명의 연기는 경중을 따지기 어려울 만큼 막상막하다. 각자 개인기가 개성 넘치고, 앙상블도 뛰어나고, 연습량이 보일 만큼 무대를 물 흐르듯 끌어간다.

이들을 위해 무대(이경표)는 대나무와 의자를 중심으로 외곽에 소품들을 배치해 배우의 활동 공간을 넓혀주었고, 조명과 음악도 느껴지지 않을만큼 스며들었다. 다만 분장(김선미, 안소연)과 의상(김정향)은 배우들의 캐릭터를 강하게 드러내도록 튀게 하여 조화를 이루었다.

최원석은 중국의 1930년대 시대극을 오늘의 한국으로 옮겨왔고 배우들의 연기로 박제된 스토리를 활동 사진처럼 입체화해 필자가 이 연극을 영화 같다고 한 것이다. 영화 같다는 것은 전개가 매끄럽고 현실감이 느껴진다는 의미다.

어떻게 연출은 사각의 무대에 멜로와 에로티시즘, 복수의 격투, 욕망과 질시, 세대에 걸친 원한과 신분의 격차까지를 배우들로 하여금 구현할 수 있게 했을까.

반전은 꾀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게 할까. 특히 팽팽한 긴장 속에 라스트의 휘몰아치는 상황은 영화보다 더 생생하게 관객에게 다가왔고, 그래서 재미있다고 한 것이다.

최원석 각색, 연출의 ‘살·색(殺色)’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사진=정중헌

배우들이 어떻게 극 중 인물화가 되었을까도 볼거리다.

윤상호는 클라이맥스에서 복수의 화신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는 가슴이 쫄깃할 정도였다. 마 씨 집안에 팔려간 리춘희 역 윤재진은 영화 ‘색,계’처럼 농염한 에로티시즘과 끈끈한 치정 연기를 펼쳤다.

앞이 안 보이지만 마 씨 집안을 지키려는 시어머니 역 송애리는 복잡한 캐릭터를 카리스마 있게 표출했다. 훤칠한 체구의 마대성 역 지근우는 어머니와 부인과 의형제 간의 연결 고리 속에서 참신한 연기를 펼쳤다. 우보 역 박현욱은 우리 극계에 이런 배우가 있을까 할 정도로 연극적이며 매력이 넘치는 연기를 해냈다.

리뷰가 길어졌지만 관심 있는 관객이라면 연극을 보라고 하고 싶다. 왜 필자가 영화같다고 했고 어이없어 했을까를 현장 무대를 보아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원석과 배우들도 눈여겨 보고 기억 속에 새겨 놓으라고 하고 싶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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