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노(老)연출가가 펼쳐낸 숙성된 연극의 아우라, 연극 '겹괴기담'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노(老)연출가가 펼쳐낸 숙성된 연극의 아우라, 연극 '겹괴기담'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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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푸른연극제 초청작, 김우옥 연출의 구조주의 연극 '겹괴기담'
- 40년전 ‘당혹’스런 실험극에서 드라마틱한 토탈씨어터로 진화
마이클 커비 작, 김우옥 연출의 ‘겹괴기담’ 공연 장면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노(老)연출가의 실험극은 난해하지 않고 오히려 친근하면서도 드라마틱했다.

올해 늘푸른연극제 첫 작품인 마이클 커비 작, 김우옥 연출의 ‘겹괴기담’(10월 21일~11월 6일)을 한남동 더줌아트센터에서 관람하면서 40년 전에 연극이냐 아니냐는 논란과 함께 ‘당혹’으로 표현됐던 구조주의 연극이 지금은 자연스레 이해되는 시대 변화를 체감했다. 당시에는 낯설던 구조주의 연극이 현대연극 속에 용해되어서일까, 기대만큼 실험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더 파격이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원로연극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늘푸른 연극제가 1980년대 구조주의 연극을 한국에 선보인 연출가 김우옥을 초대한 것은 탁월한 한 수였다. 올해 88세의 김우옥은 지난 20여년간 연극현장을 떠나 있었지만 그의 삶은 평생 새로움을 추구하고, 첨단의 예술을 탐험했으며, 젊은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감각을 단련해왔음을 필자는 지켜보았다.

그렇지만 2022년 늘푸른연극제에 1982년 국내 초연한 마이클 커비의 ‘겹괴기담’을 택했다는 것은 올드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연 오늘의 관객에게 어떻게 수용될까 하는 궁금증도 동반했다.  

필자만의 소견일지 모르지만 90세를 바라보는 김우옥의 감각은 원숙하게 무르익었고, 인접 예술을 받아들여 종합예술(토탈씨어터)로서 숙성되고 확장된 연극의 아우라를 펼쳐냈다고 본다. 40년 전에 보였던 난해함과 당혹감이 아니라 관객이 조금만 이해하려 든다면 구조주의 연극의 본령을 무대 메카니즘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아주 쉽고 친철하게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스토리 위주의 연극과 다른 특이한 무대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더줌아트센터 중앙에 위에서 보면 거대한 상자모양의 구조물이 무대 중심에 놓여있다. 관객석은 구조물을 마주보며 A와 B로 배치돼 반대쪽 관객을 볼 수 없다. 6겹의 샤막(투명막)이 쳐져 있는 미로 같은 5개의 통로에서 배우들은 연기하고, 관객들은 자기 위치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보게 된다.

암전으로 공연이 시작되면 루카스 킹의 교향곡이 극장을 압도한다. 그 음악 이 일순 멈추고 스팟 조명 프레임에 배우들의 몸짓과 연기가 몽타주 형식으로 관객에게 노출된다. 전시장에서 미술 작품을 보듯 부분만 포착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간다.

그리고 겹괴기담이라는 제목처럼 두 개의 이야기가 객석 A와 B 양쪽에서 배우들의 연기로 펼쳐진다. 괴담이라지만 무서울 것도 없는 괴이한 상황이 동일한 리듬과 템포로 전개된다. 객석에서 보면 한쪽의 이야기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점차 멀어지고, 다른 편 이야기가 점차 가까워지는 형식이다.

마이클 커비 작, 김우옥 연출의 ‘겹괴기담’ 포스터

구조주의 연극의 특징은 이야기를 약화시키고 구조와 조합을 통해 연극을 따라가게 하는 형식에 있다. ‘겹괴기담’은 괴담이니 이야기가 있지만 줄거리를 쫒아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이야기를 받치는 구조들을 살펴야 한다. 등장인물은 팀마다 여배우 3명인데, 주인공 1명에 적대자와 조력자가 붙는 3인 1조다. 한쪽의 이야기는 차가 황량한 길에서 고장이 난 주인공이, 또 한쪽의 이야기는 낯선 기차역에 내린 주인공이 똑같이 이상한 조력자의 안내로 무서운 장소로 안내되어 거기서 적대자를 만난다는 구조다.

여기서 이야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풀벌레 소리와 개 짓는 소리 같은 섬세한 음향, 배우들의 마임 같은 동작, 조명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한 폭의 그림’ ‘영상의 한 장면’을 보듯 관극 하면 구조주의 연극이 결코 당황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이클 커비 작, 김우옥 연출의 ‘겹괴기담’ 커튼콜 무대에 오른 배우들.

필자는 80년대 초반 조선일보에 마이클 커비가 김우옥을 위해 썼다는 ‘내·물·빛’을 구조주의 연극이라고 크게 소개하였지만 솔직히 다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배우들이 분명 연기를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모르니까 ‘반(反)연극’, ‘파격적 실험’이라고 했지만 당시 관객 반응은 ‘당혹스럽다’는 쪽이 많았다.

이번 공연을 본 젊은 관객들이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지만 ‘당혹’이란 표현은 그들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았더니 하나는 루카스 킹의 음악과 정교한 무대, 조명과 음향 등이 조화를 이루어 웰메이드 연극이라는 인상을 준 점이었다. 또 하나는 구조주의 연극에서는 이야기가 약화 되고 배우들의 연기도 모호하기 마련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사실주의 연기를 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같은 이야기가 같은 구조로 반복되다 보니 난해하지도 않았다.

왜 그렇게 달리 연출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지만 김우옥 연출은 프로그램 글에서 “이 작품을 다시 올리는 이유는 우리의 획일화된 연극 보기를 깨고 싶어서, 줄거리를 쫓고 의미를 찾고 갈등과 기승전결을 따지는 연극 보기에 벗어나고 싶어서”라고 썼다.

그는 ‘겹괴기담’이 “연극이라기 보다는 춤 또는 그림보기 같은 체험”이기를 바랐다. 마지막에 다시 반복되는 몽타주들은 춤 또는 그림으로 볼 여지가 충분했지만, 배우들의 제의(祭儀) 같은 진지한 연기를 보면서 그냥 연극이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주의 연극이라 배우들이 오브제로서 존재하지 않을까 했는데, 커리어가 있는 연기파 배우들은 어려운 연극을 어렵지 않게, 사실적 연기로 작품을 해석해 주었다. A팀은 전소현(적대자) 김지영(조력자) 권슬아(주인공), B팀은 이윤표(적대자) 김광덕(조력자) 이아라(주인공)가 각기 다른 팀웍과 앙상블 연기를 펼쳤다.

김우옥의 ‘겹괴기담’은 당혹스런 이야기, 난해한 실험극이라는 선입관을 벗어나 세련된 무대와 배우의 몰입이 조화를 이룬 노연출의 인생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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