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인생 50년' 여무영, 특별했던 '백조의 노래' 커튼콜 무대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연극인생 50년' 여무영, 특별했던 '백조의 노래' 커튼콜 무대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2.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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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에 평생 바친 70대 노배우 여무영, 연극의 혼을 선배가 후배에게 넘겨주는 ‘영혼 전달식’ 가져
연극 '백조의 노래-라스트 댄스'의 커튼콜 무대에서 75세의 노배우 여무영은 연출가 임형택을 무대로 나오게 했다. 그리곤 여무영은 손을 잡으며 후배 배우 서창원, 문재경을 향해 관객들에게 “이들이 미래 연극을 이끌 주역들”이라며 기립박수를 청했다./사진=정중헌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연극의 영혼을 선배가 후배들에게 전달하다.

대학로 민송아트홀 1관에서 공연 중인 '백조의 노래-라스트 댄스'의 커튼콜. 이 작품의 주인공인 75세의 노배우 여무영(본명 염우형)은 연출가 임형택을 무대로 나오게 해 30대의 서창원, 40대의 문재경과 손을 잡은 후 관객들에게 “이들이 미래 연극을 이끌 주역들”이라며 기립박수를 청했다.

관객들은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노배우는 사라져도 무대 위 영혼은 후배에게 물려주겠다는 아름다운 의식이었고, 무대에 배우가 있고 객석에 관객이 있는 한 연극은 지속된다는 무언의 외침이기도 했다.

연극 '백조의 노래-라스트 댄스'의 커튼콜 무대에서 배우 여무영(사진 가운데)와 서창원, 문재경 배우/사진=정중헌 

여무영은 스타는 아니지만 50년간 무대를 지켜온 개성 있는 연기자이다. 서울예대를 나와 영화와 TV 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러시아에 유학해 사실주의 연극을 전공했고, 서울시극단 전속 배우 겸 지도위원과 서울예대 연기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가 원로연극인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오랜만에 무대에 섰다. 교단에서 물러나 극단도 만들었지만, 공연 활동을 원활하게 해오지 못한 그에게 안톤 체홉의 '백조의 노래'는 고별 무대 같았고, 월드컵 축구의 리오넬 메시처럼 그는 라스트 댄스를 추었다.

필자는 2017년 소극장 혜화당에서 여무영의 '백조의 노래'를 보고 그의 변화무쌍한 연기술에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무대에 평생을 바친 노배우가 회한에 젖어 화려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이 작품에서 여무영 배우는 희랍극부터 셰익스피어, 베케트와 체홉에 이르는 명작의 명장면들을 명연기로 되살려냈다. 적어도 무대 배우라면 연기 스펙트럼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을 1인극으로 보여준 것이다.

50년간 무대를 지켜온 여무영의 연극 '백조의 노래' 포스터.

이번 '백조의 노래'는 역량 있는 임형택 연출이 참여해 독백 형식이 아닌 2인극 형태로 재미를 살렸고, 라이브 연주(기타리스트 서경교)와 영상-퍼포먼스-효과(문재경)를 끌어들여 다원화된 공간 연출을 보여주었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면서 공연의 완성도 못지않게 여무영이라는 배우의 열정과 에너지에 주목했다. 예전 같으면 70대 원로 배우는 무대에 설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여무영의 무대 연기를 보면서 번득이는 광기와 넘치는 생명력, 그리고 연륜에서 배어 나오는 고독한 심연의 아우라가 파고처럼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배우가 무대에 선다는 것, 자유자재의 발성과 손끝 발끝까지 움직이며 빚어내는 연기가 얼마나 숭고한가를 느끼게 해준 것이다.

여기에 제자인 서창원과 빚어내는 듀엣의 하모니는 이번 연극의 보너스였다. 여무영 연출작에서 주역을 해왔던 서 배우는 스승과 함께 명장면을 연기하며 극에 활력과 재미를 불어넣었다. 스승을 존경하며 화려한 순간의 연기를 받쳐주는 서창원의 일취월장한 연기력도 칭찬해주고 싶다.

극 중 극은 '오이디프스'와 '리어왕'을 거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절정을 이루었는데 70대 남자 로미오 여무영과 30대 남자 줄리엣이 입을 맞추는 장면은 이 작품의 보석 같은 하이라이트였다.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보여준 이중주 미장셴도 멋졌다.

연극 '백조의 노래' 커튼콜 무대. 호흡을 맞춘 원로배우 여무영(사진 오른쪽)과 그의 제자 배우 서창원./사진=정중헌

여무영 50주년 공연의 라스트 댄스는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 엔딩의 빛나는 캐릭터 피루스와 함께 했다. 집사 피루스는 모두가 떠난 벚꽃 동산 저택 앞에서 잠자듯 세상을 떠난다. 평생 연극의 길을 걸어온 배우 여무영에게 무대는 때로 동굴처럼 무섭기도 했지만 그 무대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모래성을 쌓으며 동심의 천진함을 연기하는 노배우 여무영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본 관객도 있을 것이다.

여무영의 무대가 이 작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연극의 혼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자 기립박수를 젊은 연극인들에게 돌리는 추앙의식을 행한 것이리라.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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