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수능과 학종 프레임 벗어난 교육혁신 시급"
[인터뷰]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수능과 학종 프레임 벗어난 교육혁신 시급"
  • 신향식
  • 승인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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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제주도 충남도교육청 ‘IB교육평가 정책연구책임자’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IB 벤치마킹해 10년 계획으로 한 한국형 바칼로레아(KB)로 수능·내신 선진화"
-"주입식 암기식의 '집어넣는 교육'에서 벗어나 '꺼내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사진=이혜정 제공

[인터뷰365 신향식 인터뷰어] “당신은 왜 이 연구를 하십니까?”

“…….”

몇 년 전 미국에서 열린 한 학회에서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당시 미국 미시간대학교 객원교수)이 ‘서울대와 미시간대 학생들의 성적 요인’을 주제로 발표를 했다.

청중 중 미국 대학 교수로 보이는 한 한국인이 질문을 했다.

“서울대 교육의 문제는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 전체의 문제이고, 나아가 대한민국 미래의 문제입니다.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극소수의 전문가들만 읽는 외국 학술지에 게재하고 외국 땅에 와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로 발표하는 일이 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꾸는 데 무슨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까?”

“…….”

“이제까지 교육학 논문이 없어서 대한민국 교육이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교육학자가 없어서 대한민국 교육이 안 바뀌는 것입니까?”

“…….”

이혜정 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하는 일 자체에 근원적 성찰을 하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교육을 개혁하는 데 도움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혜정 소장은 단행본을 집필하여 대중들에게 이런 문제들을 알리기로 했다.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2014년에 단행본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를 집필하고, 2017년에 ‘대한민국의 시험’을 발간했다. 그 전까지는 학자로서 대학에서 주로 요구하는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사회과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지 색인) 등재 논문을 쓰는 것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이혜정 소장은 한국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주입식 암기식의 ‘집어넣는 교육’에서 벗어나 ‘꺼내는 교육’으로 수업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시험문제 형식을 객관식 정답찾기에서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평가하는 서술 논술형으로 바꾸는 평가 혁명에 착수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KBS 명견만리’, ‘EBS 다큐 프라임’, ‘SBS 스페셜’ 등 각종 다큐멘터리에서 다뤘다. ‘EBS 교육대토론’ 등 각종 토론회에서도 한국 교육에 관한 걱정과 우려를 전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의 기고문으로도 인식을 확산하고 있다. 전국 주요 교육청의 초청을 받아 장학관, 장학사, 교장, 교사, 학부모 등을 대상으로 강연하면서 한국 교육의 혁신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지금이 평가 혁명의 적기입니다. 지난 수십년 간 우리는 선진국을 따라하는 추격형 경제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 생산된 응용적 생성적 지식을 그대로 들여와서 대량 생산에 활용하는 제조적 지식으로 경제발전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 됩니다. 지금은 제조적 지식으로 직업 얻고 살기 힘듭니다. 교육 측면에서 기존의 내신, 수능 제도는 문제가 많습니다.

논술도 본래 취지와 다르게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 비교과도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구한말 근대화 변화에 늦게 대응하여 나라를 잃었듯이, 지금 4차산업혁명 지진해일(쓰나미)에 늦게 대응하면 또다시 다른 나라에게 경쟁력을 빼앗깁니다. 지금 빨리 착수해야 합니다. 집어넣는 수업에서 꺼내는 수업으로 바꿔야 합니다.”

서울시교육청 IB 교육과정 교육정책연구팀 간담회에서 발표하는 이혜정 소장/사진=신향식
서울시교육청 IB 교육과정 교육정책연구팀 간담회에서 발표하는 이혜정 소장/사진=신향식

이 소장은 “기존의 수능과 내신으로는 비율이 어떻게 정해지든 어차피 4차산업혁명 대비 역량을 기르지 못한다”며 “시대 정신을 읽고 교육이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교육혁신을 위해 10년 계획으로 한국형 바칼로레아(가칭 KB)를 만들어 수능과 내신을 선진화하자고 제안했다.

“그 구체적인 실현방안으로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교육과정을 국내 공교육 일부 학교에 시범적으로 도입하면 좋겠습니다. 현대자동차 처음 설립 시 벤츠 승용차를 몇 대 들여와서 해체 분석해 봤듯이, 우리도 수능과 내신을 선진화할 수 있는 한국형 바칼로레아를 만들려면 해체 분석해볼 ‘본보기 교육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소장은 지난 해부터 서울시교육청, 제주도교육청, 충남도교육청에서 각각 연구용역을 의뢰 받아 IB 교육과정을 국내 공교육에 도입할 수 있는 교육정책방안을 만들어 왔다. 다른 교육청에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수능에서 객관식 문제를 줄이거나 폐지하고 서술논술형으로 바꾸는가 하면 IB 교육과정을 공교육에 도입하기 시작한 상태다. IB 학교 인증과정은 교원연수 등을 포함하여 2~3년이 걸리는데, 2018년 8월 현재 84개교(초등 28, 중학 17, 고교 39;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경우 한 학교로 세면 59개교)가 IB 학교로 인증을 완료했고, 140여 개교가 인증 대기 중이다. 인증 대기 중인 학교도 이미 IB 교육체제로 바뀐 수업을 하고 있다.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는 ‘전인교육’을 교육이념으로 하고 있다. 초등교육프로그램(PYP), 중등교육프로그램(MYP), 디플로마 프로그램(DP)을 거쳐 ‘탐구하는 인간’, ‘지식이 있는 인간’, ‘생각할 수 있는 인간’ 등의 10가지 학습자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IB 교육과정은 1968년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기관 IBO에서 개발했다. 전 세계 146개국에서 채택하고 75개국 2,000여 개 대학이 인정하는 국제적인 교육과정이다. 객관성과 신뢰성이 검증된 표준화 시험이면서도 객관식 정답 맞히기형 시험이 아니라 학생들의 독창적인 사고와 비판적인 능력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는 게 특징이다.

이혜정 소장은 서울대 교육학과에서 교육공학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연구 조교수, 미국 미시간대학교 객원교수,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최근 2개월에 걸쳐 이혜정 소장에게 한국형 바칼로레아(KB) 구축을 위한 IB 교육과정의 국내 공교육 시범학교 도입방안을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외국서 온 고구마, 감자, 고추도 우리 토양서 우리 것으로 키웠다

- 일부 교육청에서 국제 바칼로레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교육학적 관점에서 IB는 서구 유럽의 선진교육과정을 종합해 장점만을 추려서 만든 겁니다. 유럽의 어느 교육과정보다도 더 균형적이고 교육적 타당성을 갖고 있습니다.

IB의 구성은 한국의 고교교육 정상화에도 유리합니다. 2015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과정중심평가와 균형 잡힌 역량 차원에서 보면, IB는 서구 선진국의 어떤 교육과정보다도 우리 교육의 롤모델로 삼기에 적절합니다. 지금의 수능과 내신 체제로는 어차피 비율이 어떻게 되든 인공지능 시대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려면 대한민국 공교육이 패러다임적으로 전환되어야 함이 불가피합니다.

궁극적으로 10년 정도의 로드맵을 짜서 한국형 바칼로레아(가칭 KB)를 우리가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KB를 만들 수 있으려면 면밀하게 본보기로 삼아야 할 교육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IB를 한글화해서 공교육에 몇 개의 시범학교로 운영해 보는 것이 반드시 요구됩니다.

IB 인증학교는 평가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수업도, 교원연수도, 학교의 거버넌스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고려한 치밀한 계획이 준비된 상태에서 도입해야 합니다. 교육청들에서는 일단 한두 개의 IB 시범학교를 운영하면서 관할 내 다른 학교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사진=신향식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사진=이혜정 제공

- IB를 외국제도라면서 국내 공교육에 들여오는 걸 반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IB가 뭔지 정확히 모르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외국에서 들여온 비교육적인 부분을 가장 벗어나지 못한 것은 ‘교사와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지 못하게 하는 식민지 교육’입니다. 과목(콘텐츠)으로만 보면 현재 우리가 배우는 수학, 과학, 음악, 미술, 모두 서양에서 들여온 것입니다. 원래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걸 외제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고구마, 감자, 고추도 원래 외국에서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토양에서 우리 것으로 길러왔잖아요.

외국에서 온 톨스토이 작품과 우리 소설 홍길동전을 비교 분석하는 수업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문학 비평적 사고력을 키우면 이게 외제인가요? 우리 아이들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없도록 교육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식민지 교육’을 벗어나지 못한 의존적 교육인 거죠.

◆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프랑스 바칼로레아보다 더 바칼로레아적

- 프랑스 바칼로레아(FB)가 조선시대 과거시험과도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만.

물론 전국민이 아닌 극소수의 양반들만 본 시험이고 채점기준도 지금과 달랐을 수 있지만, 시험 문제로만 보면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프랑스 바칼로레아보다 더 바칼로레아적입니다.

- 어떤 문제가 나왔나요?

먼저 세종 때는 ▲‘노비 또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그처럼 대대로 천한 일을 해서 되겠는가?’를 냈습니다. 신분제가 자연현상처럼 당연하던 시대에 그에 비판적으로 접근해 보라고 요구한, 경천동지할 파격적인 문제였지요.

성종은 ▲‘국가의 법이 엄중하고 정밀하지 않은 것이 아닌데도 범법자가 줄어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를 출제했습니다. 명종은 ▲‘교육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인가?’를, 광해군은 ▲‘공납을 장차 토산품 대신 쌀로 바꾸어 내도록 하자는 의견을 논하라’는 문제를 선보였습니다. 이건 대동법인데 대동법 시행 전에 과거시험문제로 출제하면서 전국의 수험생 선비들의 의견을 물었던 것이지요.

숙종은 ▲‘요즘 일본인들이 울릉도 주변 우리 백성들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 견해를 설명해도 이들은 들을 생각이 없다.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고 출제했습니다. 모두 지금 출제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요구한 논술문제였습니다.

◆ IB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한국에 가장 유리

- 다른 교육과정도 많은데 굳이 국제 바칼로레아(IB)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사실 IB만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IB 이외에는 한국어판이 개발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IB 이외의 교육과정은 다른 언어로 확장하지 못합니다. 각 나라의 국가교육과정 및 대입시험이기 때문에 그 나라 언어로만 개발되어 있고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 운영하는 것을 지원하는 체제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요.

어느 외국에서 우리나라 수능시험을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해서 운영하는 것을 지원해 달라고 한다고 합시다. 교원연수, 채점관 양성, 시험 번역, 채점체제, 품질관리 등 모두 포함되겠지요. 그러면 우리 교육부에서 그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많은 논의와 협의가 필요할 겁니다.

- IB는 그런 걸림돌이 없다는 논리군요.

맞습니다. IB는 다른 언어로 번역해서 운영하는 것을 지원하는 제도가 구축돼 있습니다. 교사 연수, 채점관 양성, 시험 문제 등을 포함하여 언어 확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미 IB는 공식 언어 자체를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세 가지 언어로 선언했습니다. 각기 다른 이 세 언어 버전으로 교육과정 및 대입 시험이 운영돼 왔습니다. 이와 같은 공식어 외에 외국어 버전도 있습니다. 교육과정의 일부가 중국어, 독일어, 아랍어 등으로 번역되어 있기도 합니다. 일본어로는 전체 디플로마(고교 학위) 수여까지 가능한 버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IB 프로그램으로 교육하는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과학 교사가 지구 모양의 큰 풍선을 들고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사진=신향식
IB 프로그램으로 교육하는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의 과학 교사가 지구 모양의 큰 풍선을 들고 설명을 해 주고 있다./사진=신향식

◆ 번역 필요 없는 영어권에도 IB 보급 확산

- IB가 번역이 필요 없는 영어권 국가에도 많이 보급됐나요?

IB는 그 자체로 우수함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권 국가에서도 질적 교육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립학교나 공립학교에서 많이 도입하는 추세입니다. 영어권/비영어권 선진국들에서도 그들의 국가교육과정과 국가적 대입시험 대신 민간 비영리 기관에서 운영하는 IB 도입이 증가합니다. IB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표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 프랑스 바칼로레아(FB)와 국제 바칼로레아(IB)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요?

FB는 프랑스 교육부가 주관합니다.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전세계에 지역 지사를 둔 (국적 없는) 민간 국제비영리 교육기관에서 개발 운영합니다. FB는 만점이 20점이고 10점 이상이면 합격으로 봅니다.

반면 IB는 45점 만점이고 24점 이상이면 디플로마를 수여합니다. IB프로그램에서 한두 과목만 수강할 경우도 가능한데 그때는 디플로마가 아닌 이수증(certificate)이 발급됩니다. 전 세계에서 IB 고교를 졸업하면 디플로마 수여와 무관하게 각 국가에서 제공하는 고교졸업장도 수여됩니다.

한편 FB는 철학이 필수과목이지만 IB에서는 철학이 선택입니다. 다만 모든 학생들에게 인식론 과목(지식론, TOK)이 필수입니다.

- 그밖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FB는 내신이 포함되지 않고 수능시험 같은 한번의 대입시험 점수만 포함됩니다. IB는 전체 총점에 전과목별 내신이 30% 내외로 반드시 들어갑니다. IB에는 이외에도 주제가 자율적인 소논문과 창의체험활동도 내신에 필수로 포함됩니다. 전혀 다른 주관기관에 의한, 전혀 다른 구성의 시험입니다.

제주시교육청이 지난해 12월 개최한 IB 교육과정 국제 심포지움 장면./사진=신향식
제주시 교육청이 지난해 12월 개최한 IB 교육과정 국제 심포지움 장면./사진=신향식

- 해외 각국의 대입시험 제도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세계 교육의 흐름을 대입시험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한국 수능은 타 국가의 교육과 차이가 많습니다. 영국의 에이레벨(A-Level)과 프랑스 바칼로레아, 독일의 아비투어, 그리고 IB까지 수능과 내신 모두 전 과목 논술형 방식입니다. 미국 AP/SAT/ACT는 선다형에 서술형의 시험 형태입니다만 내신은 전적으로 전과목 논술과 수행평가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한국은 수능과 내신 모두 전 과목 객관식입니다.

채점도 영국과 프랑스, 독일, IB는 현직 교사들이 직접 채점관으로 활약합니다. 미국은 기계와 채점관을 병행합니다. 100% 객관식 문제유형을 택한 한국 수능은 전적으로 기계가 채점합니다.

◆ 세계 교육의 흐름은 수능 내신 모두 전과목 논술형 시험

- 성적 산출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나요?

성적 산출 방식에서도 한국의 수능은 타 국가의 시험과 차이가 있습니다. 모두 수능과 내신 모두 절대평가인 타 국가와 달리 한국 수능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입니다. OECD 35개국 중 수능과 내신이 둘다 객관식 상대평가인 체제는 딱 두 나라입니다. 일본과 한국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이미 교육혁명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세계교육의 흐름을 비교해 보면 명확합니다.

IB 교육과정을 도입한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소논문을 발표하는 장면/사진=신향식
IB 교육과정을 도입한 일본 삿포로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소논문을 발표하는 장면/사진=신향식

- 다른 나라는 한국만큼 대입이 치열하지 않다는 인식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만큼 1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문화에서는 논술형 절대평가가 도입되기 어렵지 않을까요?

서구 선진국들의 대학입시도 치열합니다. 특히 최상위권 대학들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하버드나 아이비리그 등의 대입이 서울대보다 덜 치열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 영국의 대학도 매년 여러 기관에서 랭킹을 발표하는 서열이 있습니다.

프랑스도 대학 평준화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철저하게 서열이 있는 고등교육제도를 갖고 있습니다. 프랑스 고등교육기관은 ‘대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위권 학생들이 가는 그랑제콜이 있고, 그랑제콜 진학을 2~3년간 준비하는 기관인 프레빠도 있습니다. 의대, 법대, 공대 전공은 대학에 지원하지만, 그 외의 전공에서 상위 10~15%는 프레빠를 지원합니다. 학생들은 프레빠에서 또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랑제콜에 진학합니다. 프랑스의 기득권 집단은 대부분 그랑제콜 출신입니다.

- 선진국도 대학입시 경쟁이 치열하군요?

우리 못지 않게 경쟁을 세게 합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공정하고 신뢰감 있는 평가가 필수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모두 전과목 논술형 절대평가로 시험을 봅니다. 공정하지 않다면 그런 평가가 수십년간 유지될 수 없었겠지요.

강연 중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 선진국도 대학입시 경쟁 아주 치열

- 선진국들 대입 체제의 공통점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대학 입학 시에만 대량 탈락이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대량 탈락이 대학 입학 시점에서 발생하고 일단 입학하면 졸업은 대부분 용이합니다. 그런데 서구 선진국들은 입학을 했어도 대학 재학 중에 많은 탈락이 일어납니다.

예컨대, 프랑스의 대학은 누구나 원하는 대학에 지원할 수 있고 지원자가 많은 경우 추첨에 의해서 합격자를 결정하지만, 인기 전공의 경우는 1학년 지나고 절반 이상이 탈락하고, 2학년 지나면 남은 학생들 중 또 절반 이상이 탈락합니다. 의대는 졸업 시 입학 정원의 10% 정도만 남기도 합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캠브리지도, 독일의 대학들도, 미국의 대학도 입학생들이 모두 졸업하지 못하고 상당수가 탈락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 자신의 수준보다 더 높은 대학에 합격했다고 해도 좋아할 일이 아닙니다. 졸업을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죠.

- 그래서 너도나도 대학에 가려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가 보군요.

대학에서 버텨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전국민이 다 대학에 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대학졸업률이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높은 것이, 일단 대학에 가면 졸업이 용이한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 그렇다면 각국의 내신평가와 대입 반영 여부는 어떤 양상을 보이나요?

내신평가에서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전과목 논술형과 수행평가를 병행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객관식 상대평가와 수행평가로 진행합니다. 이러한 내신점수가 독일과 IB에서는 대입에 반영되고, 프랑스에서는 그랑제콜 준비기관인 프레빠 입학 시 반영됩니다만 그동안 ‘대학’ 입학 시에는 반영되지 않았어요.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 시험 점수가 20점 만점 중 10점만 넘으면 ‘대학’이라 이름 붙은 고등교육기관에는 지원할 수 있지만, 지원자가 많으면 추첨으로 합격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가면서 대량 탈락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학생들의 시간을 낭비한다는 비판이 계속 있어왔지요.

◆ 프랑스 교육개혁, 반발도 있지만 국민 상당수 지지

- 프랑스가 요새 교육개혁 문제로 시끄럽더군요.

위와 같은 이유로 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겁니다. 그의 교육개혁 중 하나가 바로 일반 대학에서 지원자가 많으면 추첨으로 합격을 결정하지 말고 내신 등을 반영해서 대학이 선발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주자는 것입니다. 이 정책은 반발도 있지만 프랑스 국민들 상당수의 지지를 얻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교육개혁에서 주목할 것은, 시험문제 패러다임을 질적으로 바꾸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과목 수를 조정하거나 내신을 반영하는 등의 문제만 개혁하려는 것일 뿐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을 하는 수업과 평가 패러다임은 여전히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 세계 교육이 어떤 흐름을 보이는지 설명해 주셔요.

‘기존의 지식을 집어넣는 교육’과 ‘자신의 생각을 꺼내는 교육’으로 양분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기존 지식을 습득하는 교육도 중요합니다만, 기말고사에서, 대입에서, 고득점을 얻을 수 있는 궁극적 평가 능력이 무엇인지에 따라 교육방향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를 집어넣고 그걸 얼마나 잘 이해하고 숙지했는지의 여부를 평가합니다.

그에 반해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스웨덴, 핀란드, IB는 학생들이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너머를 얼마나 생각해내는지를 평가합니다. 다시 말해, ‘꺼내는 교육’을 추구하고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꺼내는 능력에 고득점을 부여하는 겁니다.

강연 중인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 최근 서울시 교육청도 중학교 일부 과목에서 객관식을 폐지한 22개의 선도학교를 선언했습니다. 작년에 부산교육청에서도 초등 과정에서 객관식을 전면 폐지한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렇게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면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을 구현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물론 객관식 시험을 폐지하는 것이 ‘꺼내는 교육’을 구현하는 첫 걸음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객관식을 폐지했다고 해서 ‘집어넣는 교육’을 넘어 ‘꺼내는 교육’이 보장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단행본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 나온 연구를 보면, 서울대 학생들은 교수의 관점, 용어, 논리를 그대로 수용할수록 학점이 높았어요. 그런데 서울대는 객관식 시험을 안 봅니다. 대부분 논술이죠.

◆ 객관식 시험 없앤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

- 객관식 시험을 없앤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군요.

2017년 6월 충남교육청과 매일경제신문이 수능을 치르는 고교생들에게 IB 시험을 보게 한 실험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의 논술은 ‘출제자의 의도와 채점자의 기대를 예측해서 써야만 하는,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또다른 종류의 객관식일 뿐’이라고 답변했어요. 수행평가 서술형 문제도 사실상 기대하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건 어떤 능력을 기를 것인지에 관한 교육방향(패러다임)과 철학의 문제입니다. 단순히 객관식/주관식, 절대평가/상대평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 서울대에서는 객관식 시험 대신 어떤 방식으로 수업과 시험을 진행하나요? 그 문제점이 무엇인가요?

서울대에도 과제연구(프로젝트) 수업, 거꾸로 수업, 토론학습 등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다 받아적느냐고 물으니, 그런 다양한 방식의 수업을 하더라도 거기서는 변별이 안 되더라고 학생들이 입을 모았습니다. 결정적 변별은 결국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교수의 논리, 관점, 용어를 얼마나 충실하게 숙지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고 응답했습니다.

- 그렇다면 관건이 무엇인가요?

중고교에서 수행평가를 해도 사실상 정답이 정해져 있는 사례가 많습니다. 학생들의 생각을 꺼내는 평가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 변별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결정됩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밤새워 공부하면서 궁극적으로 기르는 사고 근육은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해진 정답을 숙지하는 수용적 사고력입니다. 전념(올인)하면서 전력을 다해 공부하는 부분이 어디인지가 관건이라는 뜻입니다.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수학 수업 뒤 교사(오른쪽)에게 질문하고 있다./사진=신향식
가이세이 중등교육학교 학생들이 수학 수업 뒤 교사(오른쪽)에게 질문하고 있다./사진=신향식

◆ IB에선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공부에 전념하게 돼

-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운동을 할 때 가벼운 무게를 쉽게 드는 것으로는 근육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힘든 무게를 들어낼 때 근육이 생기지요. 적당히 참여하는 수행평가를 하는 것보다 밤새워 집중해서 전력을 다해 공부할 때 학생들의 결정적 능력이 길러집니다. IB 학생들은 생각하는 힘을 평가하는 시험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잠 못자며 전력을 다해 공부합니다.

한국 학생들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현재의 수능과 내신을 대비하기 위해 잠 못자며 전력을 다해 공부합니다. 양쪽 다 학생들은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면서 공부에 전념합니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능력을 기르게 되는 거죠. 어떤 유형의 시험 문제를 두고 밤잠 줄여가며 공부해야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 마지막으로, 영국과 독일, 프랑스의 대입시험을 소개해 주시지요.

영국의 국가적 대입시험인 에이레벨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내신을 전혀 포함하지 않고 단 한 번의 시험으로만 점수를 매깁니다. 반면 독일의 대입시험인 아비투어나 IB는 전체 총점 중 내신이 반드시 일정 비중 이상 포함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육 체제의 관점으로 보면 대입에 내신이 반영되는 것이 공교육 내실화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독일의 아비투어는 전과목 논서술인 대입시험의 1차 채점을 해당 학교의 담당교사가 합니다. 물론 별도의 2차 채점을 합니다.

국내 대입 논술시험에서는 1차 채점을 담당교사가 하는 것보다는 완전히 모르는 제3자가 맡는 게 채점 공정성에 관한 불필요한 논란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교사의 채점에 대한 신뢰문화가 독일처럼 형성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에이레벨은 3과목만 시험 치고도 대학을 갈 수 있습니다. 즉 이과 성향의 아이가 언어나 사회탐구 분야 없이 수학, 물리, 화학 만으로도 대학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IB는 아무리 이공계통 전공을 하려 한다 해도 반드시 언어, 외국어, 사회탐구 분야의 과목을 한 과목씩 필수로 이수하게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즉, 이과 성향의 아이도 반드시 문과 과목을 이수하고 문과 성향의 아이도 반드시 이과과목을 이수하게 하는 정책을 씁니다. 교육학적으로 보면 고교 교육까지는 전문 교육보다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골고루 균형있게 길러주는 일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신향식

필명 신우성. 언론인 출신의 입시전문가 겸 대학강사. 스포츠조선과 굿데이에서 체육기자로 활약했고 월간조선, 주간조선,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독서신문에서 프리랜서 기자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경희대, 경인교대, 백석대, 인덕대, 신우성학원에서 작문(글쓰기) 관련 출강. 연세대 석사 졸업 때 우수논문상을 수상한 '신문 글의 구성과 단락전개에 관한 연구'의 요약본이 서울대 국어교재 <대학국어>에 모범예문 수록. 신우성글쓰기본부 대표. 저서 <미국처럼 쓰고 일본처럼 읽어라> <논술신공>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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